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12화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현암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빌은 막 총알이 다 떨 어진 권총을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아이린을 향해 내던지며 외치는 중이었다.
“아이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날 죽이겠다고?”
아이린은 피에 젖은 얼굴로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 를 저었다. 다시 보통 크기로 돌아온 그녀가 머리를 젓자 피에 젖은 금발 머리도 가볍게 찰랑거렸다.
그 광경을 본 현암은 공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암에게 영적 인 능력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간 수많은 악령을 상대한 경험으 로 볼 때 아이린이 발산하는 영력은 심상치 않았다. 일반적인 악 령보다 훨씬 또렷하고 훨씬 명확한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 며 상당히 강력한 물리력까지 행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몸을 크게 부풀리거나 작게 만드는 등의 흔하게 보기 어려운 능력까지 도 구사할 정도로 영력이 강하다. 그런데 왜 아무 생각 없는 것처 럼 행동하며 자신을 죽인 사람인 빌의 말을 들었을까? 또 왜 이제 와서 복수하려는 걸까? 현암은 생각하며 기공력을 잔뜩 담아 여 차하면 월향을 날릴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빌이 소리쳤다.
“넌・・・・・・ 넌 또 뭐야? 날・・・・・・ 날 좀 구해 줘! 저 빌어먹을 유령을 어떻게든 해치워 주면…………….”
그때 아이린이 천천히 웃으며 현암을 돌아보았다. 현암은 영어로 외쳤다.
“멈춰, 아이린!”
아이린은 다시 씨익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그 섬뜩한 미소와 함께 아이린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죽여…………….
그러면서 핏빛 손톱이 곤두선 손을 들어 빌을 가리켜 보였다. 빌은 비명을 지르며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암은 아이린을 노려보며 외쳤다.
“빌을 죽이라고?”
그래…..
“도대체 왜? 뭘 바라는 거지?”
그때 현암의 뒤를 따라온 더글러스가 급히 문 쪽으로 들어오려 다 아이린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문 뒤에 숨었다. 그리고 더글 러스는 문 뒤에 숨은 상태로 떨면서 현암에게 외쳤다.
“아이린은 아이린은 복수를 바라는 거요! 다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빌은 이제는 완전히 겁에 질려 벽 모퉁이에 몰린 채 덜덜 떨면 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아이린은 그 앞에서 즐기듯이 둥둥 떠 있을 뿐 이쪽을 향해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문 뒤에서 승희 도 현암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 살려야 되지 않아?”
빌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비굴하게 구걸했다.
“제발! 제발 날 죽이지 마! 구해 줘! 구해 주면 돈은 얼마든지……”
뒤에서 이반 교수가 말했다.
“굳이 그럴 가치는 없는 것 같은데…………”
현암은 빌과 아이린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싫다는 듯 승희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승희야, 그거 줘 봐.”
“그거?”
“눈”
승희는 곧 현암이 말하는 것이 자기가 한쪽을 갖고 있는 세크메트의 눈이라는 걸 깨달았다. 급히 세크메트의 눈 한쪽을 꺼낸 다 음 문 너머로 손을 내밀어 현암의 손에 쥐여 주었다. 승희도 아이 린의 유령 앞에 직접 나설 마음은 없었다. 두 조각의 세크메트의 눈을 다 가진 현암은 조심스레 빌과 아이린 사이로 들어갔다. 현 암이 다가오자 빌은 계속 비굴하게 소리를 지르며 방 한쪽 구석에 달라붙었다. 반면 아이린의 악령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묘하게 음산한 얼굴로 현암을 바라볼 뿐이었다.
현암은 잠시 주저하다가 월향검을 왼팔에 도로 꽂고 왼손과 오 른손에 각각 세크메트의 눈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을 아이린의 몸 쪽으로 내밀어 아이린의 몸속에 세크메트의 눈이 들 어가게 만들었다. 그 순간 현암의 마음속에 아이린의 마음이 그대 로 흘러들어 왔다. 다만 아이린의 몸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기 때문 에 직접 세크메트의 눈을 들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열리진 않았 다. 그래도 몹시 혼란스럽고 음울한 마음 상태가 느껴졌고 마음속 으로 대화는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마음속으로 물었다.
아이린, 뭘 바라지?
아이린은 몹시 신기하다는 듯 현암 쪽을 돌아보며 역시 마음으로 말했다.
복수…………….
빌의 손에 죽어서? 하지만 그렇다면 왜 여태까지 빌의 명령을 들었지?
그러자 아이린은 갑자기 깔깔 웃는 표정을 취했다. 물론 영혼의 상태였기 때문에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현암의 마음속으로 그 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가시처럼 후비고 들어왔다.
진정한 복수를 원하니까…………….
빌의 말을 듣는 게 왜 진정한 복수가 되지? 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거야?
아니, 난 다만 빌이 죽이기 쉽도록 해 주었을 뿐이지.
그렇다면 빌을 도운 것 아냐? 어째서?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완벽한 복수? 사람들을 수도 없이 죽게 만들었으면서?
순간 악령 상태의 아이린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며 입이 귀 밑까지 벌어질 정도로 길게 찢어져 벌어졌다. 그리고 날카롭고 음 습한 이빨이 돋아나 번뜩이는 것이 현암과 모든 사람에게 똑똑히 보였다. 아이린의 혓바닥이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입술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러면서 아이린은 외쳤다.
바로 그거야. 빌은 죄를 더 지어야 해. 더 죽이고 더 죽여서 죄를 쌓아 올 려야 해! 그리고 지옥 밑바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해. 내가 바란 건 바로 그거였어!
그 말을 듣고 현암은 이를 꽉 악물었다. 비로소 아이린이 왜 그 동안 빌의 사주를 순순히 받아들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협력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빌이 하는 행동은 분명 좋은 행동이 아니다. 갱을 거느리고 악행을 일삼는 빌은 한마디로 오래 살아 있을수록 죄를 더 짓는 셈이다. 더군다나 아이린은 빌이 점찍은 상대들을 빌의 앞쪽까지 몰고 가서 그가 직접 죽이게 만듦으로써 빌이 살인 죄를 계속해서 짓고 그것을 탐닉하게까지 만들었다. 현암은 아이 린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뜨린다고?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얼마나 많이 고민을 했는데! 내 원통한 죽음을 감 으려면 그냥 목숨을 끊는 것만으론 안 되지. 저놈은 완전히 지옥 밑바닥에 짓눌려야 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의 얼굴은 점점 더 흉측하고 일그러져서 악의에 가득 찬 끔찍한 몰골로 변해 가는 것을 현암은 똑똑히 보 았다. 마음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일까? 현암은 분노한 나머지 몸속에서 공력을 끌어올리며 속으로 외쳤다.
그러면 너는? 너는 멀쩡할 것 같아?
현암의 분노와 기세가 느껴졌는지 아이린은 급히 변명이라도 하듯 마음을 전해 왔다.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난 빌의 손에 억울하게 죽었을 뿐이야. 내가 직접 손을 써서 죽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야.
바보가 아니라고? 바보는 바로 너야!
아니야! 난 죄를 짓지 않았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어!
그런 얄팍한 변명이 통할 거라 생각해?
내가 사주하지 않았어. 내가 목표를 점찍지 않았어. 다만 빌이 원하는 대로 놔뒀을 뿐이야!
네가 부추겼어!
아이린은 추하고 비굴하게 재잘댔다.
내가 손을 쓰지 않았더라도 빌은 자기가 원하는 모두를 죽였을 거야. 암살 을 하건 갱을 고용하건. 하지만 빌은 직접 손에 피를 묻혔어. 직접 총을 쏴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이제 빌은 벗어날 수 없어. 영원히.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어. 자, 뭐 하고 있는 거야? 이제 네 손으로 빌을 죽여 저런 악당을 그냥 살려 둘 순 없잖아?
너도 똑같아.
웃기지마!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아무 잘못도 없다고? 정말?
현암이 무서운 눈매로 노려보자 아이린은 유령의 몸임에도 눈에 보일 정도로 떨기 시작했다.
아, 아냐, 난 아냐. 그, 그렇다고 해도 지옥에 떨어지진 않을 거야. 그것만은, 그것만은…………….
네가 갈 곳도 지옥이다.
현암은 강하게 마음을 전달했다. 현암은 영적인 힘은 없었지만 그의 의지가 세크메트의 눈을 통해 반영됐는지 아이린은 순간 전 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크게 모습이 헝클어지며 형체가 희미 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 마.
현암은 다시 말했다.
지옥에 떨어지는 건 너도 똑같다고 말했다. 만약 지옥이란 게 있다면.
그럴 리 없어! 내가 왜? 나는 억울하게・・・・・・
너도 똑같은 죄를 범한 데다, 바보이기까지 해!
아냐! 아냐! 지옥은 빌 같은 살인자들이나 가는 곳이야!
현암은 탄식했다.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 건 아냐. 가 보지도 못한 주제에 함부로 떠들지 마 네 어리석음은 인간일 때와 똑같아. 네가 비록 죽었다곤 하지만 영혼의 순환 을 거치지도 않고 지상에 남아 죄를 지었어. 더구나 죽은 자 주제에 사람들 을 죽게 만드는 죄까지 더했어. 딱하군・・・・・・
하지만 지옥은 성경에도…………….
훗・・・・・・ 성경 성경에도 지옥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없어. 비유만 있을 뿐이지. 확인해 본 적 있는 거야? 그냥 바보 같은 소문만 들은 것 아냐? 그・・・・・・ 그럴리가! 그러면 넌 지옥을 알아?
현암은 강하게 말했다.
진짜 지옥이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 어. 세상의 섭리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으며, 네 생각과도 다를 수 있고, 내 생각과도 다를 수 있지. 그래도 분명히 너 같은 바보의 얄팍한 속임수로 피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아. 분명히 말한다. 지옥에 가 보지도 못한 주 제에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 너 같은 가련한 영혼들을 나는 이미 수없이 봐 왔어, 그리고 죄지은 영혼의 끝도.
아, 아니야. 죽은 나에게 무슨 죄를…..
현암은 또렷하게 말했다.
단언한다. 너는 분명히 지옥행이야. 그것도 밑바닥일 거야! 거기서 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나 해.
아니야,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아이린의 영혼이 비명과 함께 크게 회오리치면서 공기 속으로 산산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원 동력이 돼 왔던 복수심, 증오심, 모든 것들이 헝클어지고 흐트러 져 가는 것 같았다. 공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현암은 한숨을 쉬며 세크메트의 눈을 손에 쥔 채 아이린의 몸속에 뻗어 있던 왼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면서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바보 같은 여자…’
아이린의 몸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계속 허공을 맴돌았 다. 들리지 않는 고통의 절규가 질풍처럼 사방에 휘몰아쳤다. 그 러면서 아이린의 형체는 점차 옅어져 갔다. 비로소 뭔가를 깨닫 고 섭리에 따라 저승으로 빨려드는 것인지, 이대로 산산이 부서져 없어지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아이린은 괴로워하 고 있었다. 현암은 그 모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서 세크메트 의 눈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철컥하는 쇳소리가 들려 왔다. 조금 전까지 건물 구석 모서리에 처박혀서 목숨을 구걸하던 빌이 벽장에 숨겨져 있던 탄창식 중기관총을 집어든 것이다. 아이 린의 급격한 상태 변화에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빌을 시 야에 두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유령이든 뭐든 전부 죽일 거야!”
빌은 광기 어린 소리를 지르며 중기관총의 노리쇠를 철컥 당겼다. 아이린의 영과 여기에 쳐들어온 모두를 가리지 않고 죽이려는 것이다. 빌이 기관총의 총구를 옆으로 겨냥하자 이반 교수와 더글 러스도 빌을 겨누려 했으나 이미 사격 자세를 취한 빌이 급히 소리쳤다.
“무기를 버려!”
두 사람은 총을 조준하지 못하고 덜컥 동작을 멈추었다. 그때 더글러스는 생각했다. 무기를 버린다고 저놈이 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차라리 모험을 하더라도 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반 교수는 총구를 내렸으나 더글러스는 숨을 고르느라 이를 악 물었다.
그때 현암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세크메트의 눈을 허공에 던지 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공력을 잔뜩 불어 넣은 오른손으로 빌이 내민 중기관총의 총구를 잡았다. 현암의 손바닥이 총구를 덮는 순 간 빌은 악을 쓰며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순간 중기관총 탄약에서 터져 나온 화약 폭발음과 함께 우당탕 하는 굉음이 지하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뒤로 튕겨 나간 빌의 몸뚱이가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강력한 중기 관총의 총탄도 공력이 잔뜩 집중된 현암의 손바닥을 뚫지는 못했 다. 그러자 총알들이 총신을 연속으로 메우다가 결국 총이 폭발해 버렸다. 터져 나간 파편은 자연스럽게 총구의 반대편에 있던 빌 쪽으로 날아갔고, 덕분에 빌은 온몸에 파편을 맞고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총의 반동 때문에 현암의 발은 지하실 바닥을 힘 있게 밟으며 약간 뒤로 밀려 있었지만 그의 팔은 여전히 굳건했다. 현암은 파 열된 중기관총의 총구 부분을 꽉 쥐어 아주 찌그러뜨린 후 바닥에 내던졌다. 더글러스가 현암의 손바닥을 보자 동그란 자국과 함께 눌어붙은 구리제 탄두가 몇 개 후드득 떨어졌을 뿐 특별한 상처는 나지 않았다. 더글러스는 혼자 한숨을 쉬었다.
‘역시 저 사람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군’
승희가 반색하며 문 뒤에서 외쳤다.
“이 미련퉁이! 세상에 총을……………! 손 괜찮아?”
현암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이반 교수는 혹 시나 싶어 벨지움 컨바인으로 쓰러진 빌을 겨누고 다가갔다. 허나 빌은 고통스럽게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할 뿐 영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글러스가 다가가 맥을 짚어 보며 말했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겁니다. 한데…………..”
그러면서 더글러스가 돌아보자 현암은 여전히 허공에서 고통 스럽게 흩어져 가고 있는, 이제는 거의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투명해진 아이린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는 현암의 눈빛에서는 분노인지, 혹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현암이 공중으로 내던졌던 세크메트의 눈은 바닥에 떨어져 현 암의 발치 쪽에 뒹굴고 있었다. 그것을 승희가 주워 들었다. 현암의 왼손에는 세크메트의 눈 한쪽이 들려 있었기 때문에 승희는 현암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더불어 아이린과 했던 대 화의 내용도 순식간에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승희는 현암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참, 사람이란 어리석지?
어리석은 사람만 어리석은 거지. 죽었으면서도 이런 짓을 하다니………… 그런데 현암군은 정말 지옥이란 게 있다고 믿어?
글쎄, 난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는 아닐 거야. 그 렇더라도 영혼이 존재하고 순환하는 이상 분명히 섭리는 있겠지. 그 섭리가 뭔지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테지만,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 건 아
닌가봐.
・후우…
그리고 너무 많이 죽었어.
현암군의 책임은 아냐. 마음에 두지 마.
승희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더글러스를 보았다. 이제 아이린의 영혼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승희는 걱 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더글러스는 아직도 미심쩍은 듯 승희에게 물었다.
“이로써 된 거요?”
“다 됐잖아요. 형사님. 빌은 좀 다치긴 했지만 당신이 잡아다가 감옥에 넣든지 알아서 하면 될 테고, 이 안에 총격전하고 죽은 사 람들은 하아…………… 그건 아마 형사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죠? 우리도 꽤 힘들었다고요.”
“하지만 그 악령은…….”
“염려 말아요. 다시 나타나진 않을 거예요.”
승희가 말했지만 더글러스는 아직도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승희는 현암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윙크해 주었다.
“섭리란 게 있잖아요. 섭리. 비록 죽은 영혼이라도 분명 죗값은 치 르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런 거요?”
더글러스가 말하자 이번에는 이반 교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오. 자, 이제 그만 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져
야 할 것 같은데? 형사님 혼자 괜찮겠소?”
그러자 더글러스는 씩 웃어 보였다.
“이젠 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차례인가? 뒤처리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