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 :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 3화 – 박 신부의 죽음
박 신부의 죽음
후는 이전에 지나갔던 경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곧 박 신부 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러나 박 신부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반 발력이 커졌다. 보호 주술 중 표면에 있던 두어 개는 이미 깨어져 버려서, 보다 효율 좋은 주술에 힘을 몰았다가 이를 악물고 다시 발동해 재생시키며 버티는 판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박 신부와의 정이 깊었기 때문에 반발력은 거리를 조금씩 좁힐 때마다 급격하게 강해졌다. 날아가는 것조차도 정말 이를 악물고 힘을 써야 할 정도로 어려웠 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 지만 절대 아니었다. 거의 모든 법칙들이 박 신부와 준후의 만남 을 막기 위해 작용해서 결국에는 한 치 한 치를 사투하며 간신히 전진하는 꼴이 돼 버렸다. 보호 주술들도 이제는 거의 연속적으로 터져 나가서 새 주술을 덧대기가 힘들판이었다.
‘신부님이 나를 알아차리면 안 되니까 이렇게 저항이 강해지는 거겠지?”
괴물들과의 싸움보다도 이게 더 문제가 됐다. 결국 준후는 날 아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지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었 다. 그러자 저항도 훨씬 줄어들어 그나마 버틸 만하게 됐다. 섭리 의 작용은 아주 철저했지만, 또 그만큼 단순한 면도 있었다. 조금 이라도 둘이 조우할 확률이 높아지면 급격히 강해졌다가 조금이 라도 확률이 줄어들면 다시 낮아졌다. 준후와 박 신부가 마주치게 된다면 그 순간 급증해 이것저것 할 틈도 없이 곧바로 준후를 소 멸시켜 버릴지도 몰랐다.
‘조심해야 해!’
결국 괴물보다는 박 신부에게 들키지 않는 상황에 더 신경 써야 만 하는 상태였다. 준후는 그래도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일단 박 신부가 있는 위치는 강한 반발력 때문에 오히려 쉽게 파 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준후는 박 신부의 마지막 순간을 본 기억이 있었기에 박 신부가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뒤쪽에서 몰래 접근 할 생각이었다.
발소리를 숨기는 도둑처럼 준후는 가급적 은밀하게 돌아갔다. 가까이 접근하자 저만치에서 아스타로트가 불러낸 괴물들의 요란 한 기척이 느껴졌다.
준후는 서둘러서 박 신부의 뒤편에 위치한 나지막한 흙 둔덕 뒤 에 숨었다. 그런 다음 조심해서, 박 신부의 눈에 띄지 않게 위로 조금 떠올라 뭔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장 주술은 준비하지 않았다. 박 신부의 눈에 띄지 않는 순간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위로 떠오르자 준후는 박 신부가 대규모의 괴물들과 맞서는 엄청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박 신부는 단정히 앉아서 온몸에서 기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박 신부의 주특기인 오라 막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박 신부의 몸에는 오라가 둘러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편, 엄청난 숫자의 괴물 무리에게 오라 막이 씌워져 있었다.
‘아! 저래서……………!’
준후는 비로소 박 신부가 어떤 방식으로 수많은 괴물 떼를 물 리쳤는지 알 수 있었다. 괴물들의 무리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점은 바로 엄청난 숫자였다. 그것들은 흩어져 사방에서 공격하거나, 일 부가 나눠져 쌍둥이를 안은 이 지구의 준후를 쫓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박 신부는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다. 그 결과 박 신부는 최대의 힘을 발휘해 괴물 전체를 오라 막에 가둬 버 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건 박 신부가 아니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냥 가둔 것도 아니고 서서히 오라 막을 좁혀 가고 있었다. 아마 도 맨 처음에는 괴물들 전체를 포함한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 오 라를 치고 계속 범위를 줄여서 한데 가두었을 것이다. 악마의 수 하들인 괴물들은 신성한 오라와 상극이라, 닿으면 마구 몸이 타서 부서져 갔다. 박 신부가 오라를 극한으로 좁힌다면 단번에 괴물들 전체를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엄청난 힘이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수백 마리 괴물들의 힘을 막고 모조리 태워 버리는 것 이 쉬울 리가 없다. 박 신부의 힘의 원천이 이론적으로는 무한할 수 있는 신앙심이더라도 육체가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몸이 재로…………!’
박 신부는 지쳐서 죽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자신의 기도력이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신이나 예수님께. 그리고 그 기도는 분명 응답을 들었을 것이다. 모든 괴물을 물리칠 때까지 계속 기도력이 멈추지 않고 솟아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숨이 끊 어진 후에도 그 기도력의 통로가 됐던 박 신부의 육체는 힘을 이 기지 못해 소금 기둥 같은 재가 돼 버린 것이었다. 오로지 준후를 위해 단 한 마리도 준후의 뒤를 쫓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신부님은…… 정말로…………… 제가 구해 드리겠어요!’
박 신부에게 감탄하던 준후 갑자기 벌어진 돌발 상황에 깜짝 놀랐다. 준후의 위치는 박 신부의 바로 뒤편이 아니고 살짝 사각 이었는데, 박 신부는 기도하면서도 문득 준후가 있는 방향으로 고 개를 돌린 것이다. 준후가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 급격하게 반발 력이 강해져서 모를 수가 없었다. 박 신부는 계속 뒤가 신경 쓰이 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신부는 준후의 뒤를 막는 중이 었다. 그런데 준후가 혹시라도 자신을 위해 되돌아올까 봐 걱정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뒤에 무언가가 느껴지자 그냥 넘기지 못하고 돌아보려고 한 것이다.
‘큰일이다!’
준후는 급히 몸을 낮추어 숨었다. 그리고 그나마 영체를 지탱하 던 보호 주술을 은장술로 돌려 버렸다. 박 신부의 예민한 영감이 준후의 존재를 의심하니 먼저 그것에 대비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급격히 심해진 반발력이 보호 주술조차 뚫고 영 체를 직격했고 준후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야말로 몸 전체가 감전되는 데다 불에 타 없어져 가는 극렬한 고통이었다. 해밀턴이 큰 내색 없이 오래 참았던 게 놀라울 정도 였다.
그러나 준후도 결사적으로 버티면서 참았다. 참지 않을 수 없었 다. 박 신부가 저토록 몸을 불사르며 애쓰는 건 자신을 위해서였 으니까. 비록 지금의 박 신부가 위하는 건 나눠진 지구의 또 다른 자신이지만, 그 사랑은 동일했다.
‘절대・・・・・・ 절대 헛되이 할 수 없어!’
준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반발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준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박 신부가 의 심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발각될 확률이 줄었고 반발 력도 그에 따라 약해진 것이다.
‘다행이다!’
준후는 급히 은장술을 다시 보호 주술로 바꾸었다. 그러자 한결 견딜 만했다. 그러나 이미 입은 영체의 손실은 쉽게 메워지지 않 았다. 육체를 가졌을 때로 치면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셈 이었다. 그러나 준후는 재생술 같은 것을 쓸 틈이 없었다.
반발력은 약해졌지만, 박 신부의 기운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보였다. 폭포나 해일 같은 기도력에 비하면 미약했지만 준후는 박 신부의 생명력을 결코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무리라도 온 것인지, 박 신부의 생명력이 급속도 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큰일이다! 어떻게 하지?’
원래 준후는 자신의 영체가 부서지건 말건 많은 주술을 발동해 괴물들을 한꺼번에 전멸시킬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현암 쪽 일이 다 해결됐을 때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 신부의 생명이 다해 가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나섰다가는 박 신부에게 들킬 게 뻔했다. 방금 같은 반발력을 능가하는 더 큰 저항을 당할 터였다. 그러면 박 신부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영체 도 소멸되고 현암 쪽도 위험해지며, 불합리로 모든 것이 어떻게 잘못될지 알 수 없게 됐다. 준후는 절박해졌다.
한편 박 신부는 이제 점점 다가오던 최후가 마침내 바로 앞에 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음은 평안했다. 마음은 평안했지만 박 신부의 몸은 엄청난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 곧 버 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것이었다. 그래도 박 신부는 오직 한 가 지만 일념을 바라고 있었다.
‘부디 준후, 그리고 모두가 무사하기를……………’
준후가 짐작했듯이 박 신부는 이미 주께 기도해 저 괴물 한 마 리도 준후의 뒤를 쫓지 못하게 해 달라는 청을 드렸고, 응답을 받 은 상태였다. 비록 박 신부가 죽더라도 괴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될 것이었으나, 박 신부는 다만 준후가 부디 살아남기만을 바 랄 뿐이었다.
‘하늘에 가서라도 너를 잊지 않고……?
그러나 박 신부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덜컥 뭔가 떨어지는 것처럼 극심했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리 고 박 신부는 이해할 수 없는 온갖 형상의 빛과 구름이 가득한 긴 통로를 순식간에 지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박신부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순간, 준후가 튀어나왔다. 박 신부가 숨을 거두자 준후의 몸 에 가해지던 반발력이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박 신부가 죽어서 불합리가 생길 확률이 극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신부가 청했듯, 그의 몸은 계속 엄청난 오라를 좁히는 기도력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박 신부의 몸은 온전했다.
후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준후는 이를 악물고 박 신부 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일부러 기다려 왔다. 그래야 불합리를 최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준후에게는 수많은 능력자의 기술과 힘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많은 법력을 소모해, 적어도 당장 죽은 사람은 다시 깨울 수 있는 현현이로가 중얼거렸던 전기 충격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식의 부활 수법도 있었다. 준후는 바로 그것을 믿고 필사적으로 인내하며 박 신부의 죽음을 참아 넘긴 것 이다.
일단 박 신부의 몸을 보존하는 것이 시급했다. 몸이 망가져 버 리면 도로 영을 불러오는 일은 매우 힘들어진다. 그러니 박 신부 의 몸을 보강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남의 기운은 믿을 수 없었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박 신부와 영적으로 통하던 준후 자신 의 기운뿐이었다. 진신진력이라 할 수 있는 법력을 준후는 있는 힘을 다해 박 신부의 몸에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박 신부의 기도 력을 밀어내고 자신이 괴물들을 해치울까도 생각했지만, 이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박 신부가 최후의 순간에 청한 기도를 헛되이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영적으로도 통하던 박 신부의 몸이라 그런지 준후의 법력도 무리 없이 유통됐다. 힘의 통제와 조절에 누구보다 능하던 준박 신부의 몸 대신 자신의 법력으로 기도력의 통로를 삼았다. 그 리고 박 신부의 몸에도 아낌없이 법력을 퍼붓고, 재생 주술도 썼 으며, 동시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박 신부의 몸을 고쳤다.
그러는 사이, 강대한 기도력은 오라 막을 더욱더 좁히더니 괴물 들을 서로 끼어 터질 정도로 압박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괴물 무 리는 오라에 눌려 자취도 없이 타 버렸다. 땅에는 이전에 준후가 보았던, 커다랗게 불탄 흔적과 잔해만을 남긴 채 모조리 소멸된 것이다. 그리고 박 신부에 응답해 나타났던 기도력도 소임을 다한 즉시 사라졌다.
준후는 즉시 박 신부의 몸에 부활의 주문을 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필사적으로 절규했다.
신부님! 돌아오세요! 제발요!
신앙심으로 가득한 박 신부의 몸에 준후 자신의 주문이 얼마나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애타게 박 신부를 부른 것 이다. 어쩌면 박 신부에게 천국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준후는 알고 있었다. 일신이 편안해지려면 박 신부 는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박 신부는 고통을 무 릅쓰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했다.
‘신부님은 분명 돌아오실 거야! 천국에 가실 수 있어도 그걸 마음에 들어 하실 분이 아니니까!’
준후는 그런 마음으로, 모든 수단을 동시에 동원하면서 박 신부를 계속 불렀다. 그리고 박 신부도 분명 이편을 마음에 들어 할 것 이라고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
눈을 뜬 박 신부는 의아해했다. 눈을 떠 보니 낯익은 경치가 보 였다. 물론 고향에 돌아가거나 천국을 본 것은 아니었다. 막 자신 이 최후로 눈을 감았던 풍경 그대로가 보인 것이다.
박 신부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기도력에 의해 까맣 게 타 죽은 괴물들의 자취가 보였다. 박 신부는 급히 성호를 긋고 기도에 응해 주신 주께 감사를 올렸다.
그러고 나자 박 신부는 의문에 빠졌다.
‘난…………… 분명 죽지 않았었나?’
그러나 자신은 분명 살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완전히 탈진해 있어야 정상인데?”
박 신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기도로 인해 자신의 몸도 같이 구함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 었다.
‘뭐, 나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아까 분명 준후가 근처에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박 신부는 준후를 믿었다. 책임감 있고 자기 사명을 아는 준후가 멋대로 돌아왔을 리 없다고. 그냥 자신의 착각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박 신부로서는 이 일의 진실을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