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 :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 4화 – 더욱 심각한 상황 [완결]
더욱 심각한 상황
준후는 이미 박 신부의 곁을 떠나 현암과 승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박 신부의 숨이 다시 돌아오자 준후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곧 떠나야 했다. 불합리를 막기 위해서도 그렇고, 현암 측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낭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준후의 몸에 가해지는 타격도 심했다. 박 신부가 잠시나 마 죽은 상태였을 때는 덜했지만, 숨이 돌아오자 다시금 반발력이 극심해졌다. 심지어 박 신부의 의식이 돌아오기 전임에도 그랬다. 급히 떠났지만 한참을 날아온 후에도 묵직하게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충격이 덮쳐 왔다. 보호 주술이 다시 깨져 나갔지만 당장 도 로 발동시키지도 못했다.
물론 아직도 능력자들에게서 얻은 힘은 꽤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박 신부를 구하기 위해 원래부터 가졌던 힘을 과하게 쓴 것이 문 제였다. 그 힘은 준후의 영체도 유지시켜 주는 근본이었고, 정신력도 섞인 법력이었다. 즉 극도의 피곤함까지 겹친 것이다. 그토록 주문과 주술에 능했던 준후가 주문을 바로 외울 수도 없을 정도였다.
‘괜찮아. 그래도 난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아니, 버텨야만 해……’
준후의 영체는 이미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준후는 안간힘을 다 해 다시 한번 보호 주술을 두르고 속도를 올렸다.
현암과 승희의 손목이 발견됐던 장소는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직도 간간이 폭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좋 지 않은 것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최소한 아직 현암 형이 버티고 있다는 증거야!’
준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그 쪽으로 날아갔다. 물론 가는 도중에도 계속 반발력은 강해졌다. 이제는 준후도 고통과 압박, 피곤까지 겹쳐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그러나 가던 도중 그는 뜻밖 의 상황, 예상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다시 해밀턴을 만난 것이다. 그는 엉망진창인 몰골이 돼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해밀턴은 침통하게 되물었다.
신부님은?
다행히도……………..
해밀턴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어두운 얼굴이 됐다.
잘됐구나. 정말로・・・・・・ 그러나 여긴 상황이 안 좋다.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요?
가까이 가려 할 때마다 반발력이 너무 강해져서다.
반발력이 강해지는 현상은 이해할 수 있었다. 준후도 박 신부와 가까이 했을 때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해밀턴이 버티지 못할 정 도였다는 것은 당장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절실함은 준후가 더 크겠지만, 고통에 대한 참을성이나 인내는 해밀턴이 더 강했다. 심지어 별다른 내색도 없이 반발력과 혼자 싸우며 준후를 보호까지 해 주었던 해밀턴이었다. 그렇다고 해밀 턴과 현암, 승희가 준후와 박 신부의 사이만큼 교분이나 불합리를 더 발생시킬 리도 없었기에 해밀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준후는 깨달았다.
해밀턴 씨 혹시・・・・・・ 아녜스 수녀를 죽이고 싶으셨어요?
그 말에 해밀턴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솔직히 그랬다. 아? 바로 그것 때문에 반발력이…………?
이것이 정답이었다. 사실 준후와 해밀턴 둘 다 퇴마사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러나 섭리는 그런 것을 가리지 않았다. 아녜스 수 녀를 죽이거나 해를 입히는 것도 당연히 불합리에 해당됐다. 있어 서는 안 될 존재가 지금의 존재를 살해하는 일은 엄청난 불합리의 요인이었다.
물론 준후가 박 신부를 살려 내기는 했으나, 적어도 박 신부에 게 준후의 존재는 인식되지 않았다. 그리고 준후도 처음에는 박 신부를 부활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밀턴이 아녜 스 수녀를 죽이고자 했던 마음은 현실에 개입할 것이라는 의지를 확실히 비춘 것이었다. 그러니 해밀턴에게는 준후가 겪은 것보다 더 강한 반발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여기서 함부로 누군가를 죽일 수는 없었겠구나’ 준후는 그제야 자신이 하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던 것인지 깨달았다. 오로지 퇴마사들의 안위에만 몰두했던 탓에 다른 존재 들은 대강 편한 대로 넘겨짚어 생각했다. 하지만 섭리는 모든 것 에 똑같이 작용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준후와 해밀턴이 존재하 고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작게나마 섭리의 균형을 깨뜨리 는 중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계속 반발력이 생긴 것이다. 뭔 가 할 때마다 더더욱 큰 반발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박 신부를 노리던 괴물들도 준후가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괴물들조차도 섭리의 영향하에 있기 때문이었다. 준 후가 괴물들을 직접 해치우려 했다면 기도력으로 재가 되는 원래 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면 준후는 지금의 해밀턴보 다 더 큰 반작용을 받아서 괴물들을 상대하지도 못했거나 박 신부 가 준후의 존재를 눈치채서 그 즉시 소멸되는 상황이 벌어졌을지 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옥결 씨가 말했던 엔트로피 문제도 있다.’
이미 준후는 시간적으로 존재하면 안 되는 장소에 있는 것이기에 작은 행동 하나마다 반발을 받았다. 양자 복원 원리가 그것을 메우기 위해 작동했으므로 엔트로피 증가를 감수해야 했다. 그렇 게 되니 불균형, 불합리가 점점 더 심해졌다. 이것은 준후나 해밀 턴이 힘을 쓸수록 더욱 문제가 됐다.
‘이러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때 다시 저만치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아직은 현암이 버티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해밀턴조차도 도움을 줄 수 없었으니 언 제 끝장날지 모른다. 서둘러 뭔가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돌파할 방법부터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욱 큰 불합리가 발생….. 그러다 준후는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냐, 다른 것이 있어!’
원래대로면 지금 한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 볼 것이 아니었다. 에너지 면에서만 따진다면 이미 준후는 박 신부를 구하기 위해 방대한 에너지를 이쪽 세계에 추가했다. 이 자체로도 엄청난 반발력 저항을 받아야 했다. 또한 엔트로피 문제 로 뭔가가 이상해지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옥결 덕분인 것 같았다. 옥결은 천기의 수 호자로서, 준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였다. 법칙이 나 섭리에 대해서도 준후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예측 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옥결은 엔트로피 문제 같은 것은 이야기만 살짝 했을 뿐, 그것을 조심하라고는 말해 주지 않 았다. 다만 본질적인 문제, 즉 퇴마사나 인간들 사이의 불합리만 발생시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되는 이유 도 퇴마사들의 이후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분은 개입하지 않았지만 엔트로피 같이 어쩔 수 없는 나머지는 옥결이 알아서 해 주고 있다고, 준후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운석을 쳐 내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지…………’
옥결이 인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운석들을 쳐 내면서도, 인간들 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손을 뗀다는 것처럼, 이도 마찬가지 였다. 준후가 해낼 수 있는 부분은 준후에게 맡겨 두지만, 그 외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옥결이 엄청난 권능으로 해결해 주고 돌봐 주고 있는 셈이었다. 지구 하나를 새로 만들어 줄 정도이니 능력 이 모자랄 리는 없지만, 준후 스스로 해내야만 하기에 일부만 개 입하는 것이리라.
비록 한정적이지만, 준후는 결이 자신을 믿고 도와준다고 믿 었다. 그러자 용기가 생겼다. 물론 발각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만, 최소한 힘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이것도 모르면서 시간 역행을 시도했던 자신이 얼마나 바보였는지, 그리고 옥결이 자신을 얼마 나 딱하고 안쓰럽다 생각했으면 대놓고 잡아다 도와준 것인지 이 제야 간신히 깨닫게 됐다.
그러나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준후는 의기소침해진 해밀턴을 격려했다.
해밀턴 씨, 아녜스 수녀를 죽일 생각을 버리세요. 진심으로요! 그러면 반발력도 줄어들 거예요.
네 말이 맞다.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 왜 그러셨어요? 저는 말리셨으면서………………
해밀턴은 짧게 대답했다.
・・・・・・네 손에 피가 묻을까 봐.
전 이젠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알았다. 내가 널 너무 못 믿었구나. 분명히 내 실수니 부끄럽다. 일을 다 망칠 뻔했다………….
아직 망친 건 아니에요. 절대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시면 안 돼요.
그러자 해밀턴이 말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아녜스 말고도 다른 부하들, 특히 화기를 쏘는 녀석들도 싹 쓸어버릴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큰 반발력이 생긴 걸 거예요.
좀 알겠다. 그럼 어쩌지?
준후는 이제 답을 알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영능력이 약해요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거나 쓰러뜨리세요.
그리고 무기를 망가뜨리세요.
그것도 반발력이 막지 않을까?
사실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제 준후는 옥결을 믿고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에만 관계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힘은 써도 된다는 것을.
상대를 죽이거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괜찮더라고요.
해밀턴은 좀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미 박 신부쪽을 처리하고 온 준후의 말이니 곧 신뢰하고 따랐다.
알았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다. 그러나 솔직히 이제 우리 둘 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 영체가 반 정도 날아가 버렸잖느냐.
해낼 수 있어요
아녜스 수녀는? 접근만 해도 알아차릴 텐데?
그러나 준후는 방금 생각해 낸 것이 있었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현암은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엄폐물을 찾아 움직였다. 사실은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등에 이미 정신을 잃은 승희를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희의 손은 현암의 오른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러나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놓아서는 안 되는 손이었다. 그 때 문에 현암은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리고 현암도 이미 여러 차 례 파편에 맞아 몸 여기저기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승희도 그냥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초반 승희는 투시 능력으 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염동력을 사용해 위험한 화기 를 사용하는 자들을 여럿 쓰러뜨렸다. 물론 신경계를 쥐어짜 기절 시킨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승희가 초반에 강한 화기를 든 자 들을 선별해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둘 다 포탄의 집중 사격에 뭔가해 볼 틈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도 그런 승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녜스 수 녀는 공격을 가해 현암의 팔을 묶어 둔 상태에서 승희에게 치명 적 저격을 가했다. 승희가 쓰러지자 현암은 분노에 떨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암은 절대 승희를 버리지 않았다. 잡은 손도 놓지 않았다. 그대로 승희를 들쳐 메고 지독한 공격을 피해 다니 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적 중에서 대형 화기를 소유했던 자 들은 승희가 거의 다 쓰러뜨렸지만, 불행히도 화기는 주술이나 기 술이 아니었다. 다른 자가 주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적들이 쓰러진 자의 중화기를 주워 쓰며 계속 공격을 가했고, 현 암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화력이 분산됐기에 꽤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천정개혈대법으로 머리를 제외한 전신에 공력을 돌릴 수 있게 된 현암은 원래대로라면 상대할 자가 드물었다. 특히 인간을 상대 할 때에는 더더욱 강했다. 전신에 공력을 돌릴 수 있어서 어지간 한 공격은 받아 내거나 튕겨 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력이 받쳐 줄 때에 한해서였다. 현 암의 엄청난 공력도 한계는 있었다. 더구나 그의 가장 강력한 무 기였던 월향검도 스스로 버린 이후였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암 스스로가 살생을 하지 않았 기 때문이다. 강한 내공으로 서슴없이 상대를 날려 버린다면 지금 아녜스 수녀 무리를 상대 못할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압도했을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준후에게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한 것처럼 천정개혈대법의 구 단계를 완성해 공력을 촉발시키는 것이겠지만, 이 방법을 쓰면 승희도 죽는다. 그렇기에 애당초 쓸 수 없는 방법 이었다.
그렇더라도 현암의 공력은 무서운 수준이었다. 제대로 싸운다 면, 월향을 버리지 않았다면 승희를 업고, 부상을 당했더라도 상 대가 가능했다. 이미 왼손에도 혈도가 뚫려 기를 유통시킬 수 있 으며 다리에도 기를 통하게 해 막강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원거 리 화기 공격은 현암에게도 껄끄러웠지만 월향검으로 충분히 상 대할 수 있었다.
단, 이 모든 것은 상대를 인정사정없이 살해하는 경우에만 가능 했다. 사방에서 포위를 해 왔고 충격과 폭발물까지 난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빈틈을 노리고 날아드는 아녜스 수녀의 무서운 원소력 까지 맞서며 상대의 안위까지 살핀 채 공격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현암이라도 무리였다.
특히 화기를 사용하는 적은 어지간한 부상으로도 제압하기 어 려웠다. 심지어 한쪽 팔이나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도 손가락만으 로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기를 쏴 댈 수 있으니까. 즉 월향검으 로 아예 적의 숨통을 끊는다면 모를까, 장애물도 많은 숲에서 정 밀하게 적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월향검으로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미 현암은 알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현암은 ‘폭’자 결이나 ‘탄’자 결도 애당초 쓰지 않았다. 그 공격은 아녜스 수녀에게도 위험 할 정도였다. 하물며 보통 사람인 아녜스 수녀의 부하들에게는 무 조건 치명적이었다. 오히려 상대가 약했기에 강한 기술을 쓰지 못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암은 상대를 이기거나 제압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 하고 있었다. 준후와 박 신부, 그리고 세상의 운명이 걸린 바이올 렛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것이다. 승희도 마찬가 지였다. 보통 때라면 현암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라도 함께한 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기회가 없기에 승희 도 함께 나선 것이다. 그리고 현암은 받아들였다.
월향검도 마찬가지였다. 승희의 마음을 받아 준다는 것을 행동 으로 증명하기 위해 월향검을 버린 것이지만, 사실 살기 위해 적 을 죽이며 싸우는 상황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 암은 그런 길은 절대 택하지 않으려 했다. 거기에 승희는 이미 총 상을 입었고, 강한 육체의 현암도 부상을 입었다. 아무리 현암이 강해도 맨몸으로 총알이나 폭발물의 파편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다만 반탄력 때문에 그런 것들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덜 파고들 어 부상 정도가 낮을 뿐이었다.
그리고 반탄력에 모든 공력을 쓸 수도 없었다. 아녜스 수녀가 기회만 엿보며 숨어 있다가 번득이며 나타나 지독한 원소력을 쏘 아 댔기 때문이다. 아녜스 수녀는 현암의 약점을 진작 파악하고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기습만 가했다. 총알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움직여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현암이 할 수 있는 건 왼손에 공력을 모았다가 맞서 쳐 내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버티는 것만이 현암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녜스 수녀의 능 력은 박 신부의 능력과는 상극이라 대단히 위험했고, 중화기는 준 후나 박 신부, 특히 산통을 겪는 바이올렛에게 치명적이었다. 단 순한 폭풍이나 폭압에 휘말리기만 해도 바이올렛으로서는 위험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현암은 가장 껄끄러운 이들을 최대한 오래 발 묶어 놓아야만 했다.
현암은 실로 놀랄 만큼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의지와 참을 성 하나만은 세상에서 으뜸갈지도 몰랐다. 현암은 몸이 가루가 될 듯 힘들고 상처의 고통이 쑤셔도 얼굴을 굳힌 채 고통의 표정조차 보이지 않고 계속 버텼다. 심지어 지속적인 공격으로 많은 부분은 뼈가 금이 갔는데도 그 고통을 모조리 참아내며 평상시와 마찬가 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현암을 노리던 아녜스 수녀나 부하들이 먼저 탈진할 지 경이었다. 그들은 특별히 공격조차 받지 않는데도 힘에 부쳐 쓰러 질 지경이었는데 피해 다니며 공격을 계속 받는 현암이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고 있으니 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끈질긴 현암이라도 한계는 있었다. 드디어 막 대했던 공력도 바닥나서 다리에 공력이 제대로 돌지 않게 된 순 간, 현암의 다리가 동시에 부러져 나갔다. 이미 여러 부분 뼈에 금 이가 있던 곳들을 공력으로 덧대 버티고 있었는데, 공력이 고갈되자 즉시 부러져 버린 것이다.
현암 자신도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버틸 만큼은 버 텼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박 신부와 준후의 안위를 빌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순간에도 들쳐 메고 있던 승희의 몸이 험하게 쓰러지지 않게 돌려 안으며 몸으로 받치며 쓰러졌다. 물론 그 순간에도 손은 놓지 않았다. 절대로 절대로 놓지 않을 생각이 었다.
쓰러지는 순간, 현암은 갑자기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것은 준후가 법력으로 기절시켰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절시 키지 않았다면 정신력이 극에 달한 현암은 죽을 때까지 의식을 잃 지 않았을 것이다. 준후는 누구보다 현암을 잘 알고 있었다.
준후와 해밀턴은 현암이 분투하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물을 머금고 지켜만 봐야 했다. 섣불리 현암이 눈치채게 해 불 합리를 유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 신부 때처럼 현암이 의식을 잃어야 그나마 뭔가라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암을 기절시킬 만한 순간을 잡아야만 했다. 더구나 현암의 내공이 너무도 강했기 에, 준후도 선뜻 현암을 기절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래서 눈물을 머금고 현암의 내공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참아야만 했다. 현암의 분투를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웠지만 준후는 확신하 고 있었다. 현암은 내공이 모두 고갈되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마침내 그 순간이 오자 준후는 즉시 현암이 인식하기도 전에 법 력으로 현암을 기절시켜 버린 것이다. 승희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암을 기절시킨 준후는 남은 법 력을 모두 모아 승희에게 넣어 주기 시작했다. 승희는 총을 세 발 이나 맞은 상태여서 현암보다도 위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준후는 많은 능력자의 기술을 얻었으므로 박 신부에게 행한 것처럼 주술 적 응급처치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역할을 나눈 것이다. 준후가 현암을 기절시키는 순간, 해밀턴이 무서운 속도로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아녜스 수녀의 부하들을 쓰러뜨렸다. 해밀 턴은 현암이 쓰러지길 기다리는 동안 빈틈없이 능력을 발휘해 사 방을 살폈다. 작은 바스락거림이나 기척 등을 파악해 적들의 위치 를 대부분 짐작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해밀턴은 영체의 몸으로 일반인을 쓰러뜨리는 격이라 거의 짚단 을 베듯 순간적이고 간단하게 완전한 기절 상태로 만드는 게 가 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가 숲속이라 적들도 자기편을 볼 수 없어서 인식이 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럿을 처리 했음에도 반발력이 심하지 않았다.
그사이 준후는 일단 승희의 출혈까지는 멈추는 데 성공했다. 승 희의 상처는 너무도 깊어서 목숨을 건진다 해도 제대로 회복될지 의문이었다. 준후는 또 한 번 안쓰러움과 설움에 복받쳤다.
영체의 몸이라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지만……
‘승희 누나. 꼭 살아야 해요…………. 현암 형과 잘돼야죠’
그다음 후는 현암을 치료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뭔가가 느 리게 날아와 풀썩 그들의 옆에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시한장치가 부착된 커다란 C4 화약 뭉치였다. 현암의 능력이 무서웠는지 아 직까지 남아 있던 적 중 한 명이 던진 것이다. 그것도 건물이나 탱 크조차도 날려 버릴 만큼 엄청난 크기였다. 잔인하게도 확인 사살 을 넘어 완전히 날려 버리려고 한 것이다. 그제야 준후는 현암과 승희가 왜 손목만 남고 몸이 없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쓰러졌는데…………! 이런 짓까지!’
준후는 분노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던진 녀석 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생이며, 또 다른 불합리 를 만드는 일이라 간신히 억눌러 참았다. 대신 준후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후는 즉시 그 화약 뭉치를 아주 높은 상공으로 던져 올렸다. 폭발물은 곧 떠오르다가 폭발해 버렸다. 준후가 생각했던 높이만 큼은 아니었지만 폭압으로 지상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준후는 현암과 승희의 몸에 보호 주술을 써서 그들의 몸에 조금이라도 타격이 가지 않게 막아 주었다. 준후도 폭압의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그 타격은 아주 크지 않을 테니 상관없었다. 게다 가 자신보다 현암과 승희를 보호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준후 의 영체는 이제 삼분의 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육체였다면 기 능을 상실했겠지만 영체라서 그나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걸 보면 이쪽 세계의 해밀턴 씨가 달려오겠지.’
숲속에서 터졌다면 못 볼 수도 있지만,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을 해밀턴이 못 볼 리는 없었다. 그러면 당연히 이곳으로 달려 오게 되고,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승희와 현암을 구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지를 발휘해 적들의 치명적 공격을 아군 구조용 신호탄처럼 사용한 것이다.
그다음은 현암 차례였지만, 준후는 생각을 바꾸었다.
‘가만! 아녜스 수녀도 이 폭발을 봤을 텐데?’
아녜스 수녀도 폭발물이 이상하게 작동했다는 것은 보았을 것 이다. 현암을 마무리하려고 이곳으로 다가올 확률이 컸다. 그러면 어떻게든 아녜스 수녀를 상대해야만 하는데 아녜스 수녀의 눈길 을 피하면서 그녀를 쓰러뜨릴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아녜스 수녀가 현암과 승희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것만은 용납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살의를 거두려고 했어도, 현암과 승희를 죽 게 둘 수는 없었다.
‘암살 기술을 써야만 하나……………?”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근처에서 갑자 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온 것이다. 완전히 공포에 질리고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여자의 비명. 놀랍게도 아녜스 수녀의 음성 이었다. 더구나 원소력과 주술력이 충만하던 느낌이 하나도 느껴 지지 않았다. 아녜스 수녀도 손꼽히는 능력자라서, 그냥 음성에도 은근한 힘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는데, 방금 전의 비명은 그냥 밋밋한 보통 여자의 목소리일 뿐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그때 해밀턴의 영체가 준후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뭐긴? 꼴좋다. 아녜스 수녀는 완전히 미쳐 버린 것 같군. 제정신이어도 앞으로 아무것도 못 할 거다.
해밀턴 씨? 어떻게 하신 거예요?
준후는 일단 급하게 다시 현암의 상태를 돌보고 법력을 넣어 주 며 물었다. 그러자 해밀턴은 자신의 거의 너덜너덜해진 영체 속에 서 뭔가를 드러내 보였다. 시커멓게 타오르는 듯한 원형의 무저 갱. 바로 블랙 서클이었다.
그걸로 뭔가 하신 건가요?
저 계집의 주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허공에서 아주 큰 폭발이 생기더군.
제가 한 거예요 아녜스 수녀의 부하들이 폭발물을 던지기에, 위로 던져 버렸어요.
뭔가가 허공에서 터지니 몹시 놀라서 잠시 주의가 흐트러지더군. 그 틈을 타 뒤에서 블랙 서클로 저 계집의 능력을 죄다 빨아들여 버렸다.
네? 블랙 서클은 상대가 원해야만 능력을 전해 주지 않나요?
그러자 해밀턴은 웃었다.
그건 내가 개조해 능력자들에게 준 것이지 않느냐. 내게 있는 원본을 다시 한번 개조해 강제로 상대방의 힘을 빼앗을 수 있도록 했을 뿐이다.
도대체 어느 틈에・・・ 아니, 왜 그렇게 하신거죠?
네가 아녜스 수녀를 죽이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지만 뭔가 찜찜하더군. 아무래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블랙 서클을 개 조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미스터 현암이 애쓰는 동안 오래 기다려야 했지 않느냐.
준후는 해밀턴의 능력에 경탄했다. 역시 해밀턴은 최강자라 불 릴 만했다. 블랙 서클을 이용해 아녜스 수녀를 처리한 것은 준후 는 생각조차 못 했던 일이다. 블랙 서클 자체가 준후에게는 몹시 꺼리는 것이라 애초에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해밀 턴은 그것을 이용해 가장 난감한 상황에서 가장 껄끄러운 아녜스 수녀를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아녜스 수녀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건 힘들었을 텐데요.
나는 아녜스 수녀와 그렇게 큰 연관이 없다. 아녜스 수녀도 눈치채지 못했 고. 게다가 내가 순간적으로 행동한 것이라 저항력이 크지 않았던 것 같아. 물론 내 영체도 많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했다.
아녜스 수녀가 절규하는 비명이 멀리서 다시 들려왔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해밀턴은 다시 말했다.
능력이 갑자기 사라지니 완전히 미쳐 버렸군. 정신적으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면서 날뛴 죗값을 치른 거다. 이쪽 세계에서도 저 계집을 벼르는 자가 많을 텐데, 능력까지 모조리 잃었으니 정말 앞날이 기대되는군.
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해밀턴이 말했다.
이제 다른 자들도 없고・・・・・・ 미스터 현암은 괜찮으냐? 아마 괜찮을 것 같다만.
네. 승희 누나보다는 훨씬 좋아요. 워낙 튼튼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그래도 곧 피해야 해요. 저 폭발물, 이쪽 세계의 누군가 보고 달려오라고 일부러 높이 올린 것도 있거든요 아마 이쪽 세계의 해밀턴 씨가 제일 먼저 달려올 것 같으니, 여기 오래 있을 수 없을 거예요.
해밀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도하며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느낌을 담아 말했다.
결국 해냈구나.
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준후는 다시 한번 울 것 같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결국 준후는 해냈다. 박 신부와 현암과 승희의 목숨을 구해 낸 것이다. 지구 하나를 새로 만들어서라도 이루려고 한 것을 이룬 기분은 실 로 표현이 힘들었다.
둘은 이제 자리를 피했다. 준후와 해밀턴 모두 이제는 거의 껍 질만 남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영체가 손상돼 있었다. 심지어는 더 이상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영체가 거의 기능을 상 실해서 죽어 간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준후는 조금의 애석함도, 슬픔도 없었다.
다만 준후는 끝까지 해밀턴을 속이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소멸돼 없어질 테지만 그래도 끝까지 이렇게 자신을 도와 준 상대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준후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해밀턴 씨・・・・・・ 정말 죄송합니다. 해밀턴 씨에게 말하지 않은・・・・・・ 아니, 속인 것이 있어요. 사실 이 세계는………….
그러자 해밀턴은 피식 웃었다.
새로 만들어진 다른 세계라고? 이미 천기의 수호자께 다 들었는데?
준후는 깜짝 놀랐다.
네? 그럼 제가 거짓말한 것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잖느냐. 다만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제라도 말했으니 됐다. 난 그렇게 빡빡하지 않다. 그리고 뭔가 숨긴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해밀턴은 웃으며 말했다. 이미 거의 형체조차 사라져 갔지만.
넌 착한 녀석이야. 난 괜찮다. 그리고 오히려 내기에서는 내가 이겼다.
네? 내기라뇨?
누구겠느냐? 천기의 수호자와 한 내기지. 네가 날 속이는 것 같더라도 잘 이끌어 달라기에, 난 너는 절대 끝까지 거짓말할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 니 내가 이긴 거다.
준후도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약간 실없이 말했다.
오히려 옥결 씨에게 당하신 것 아닐까요? 해밀턴 씨가 그렇게 잘 받아 주 셔서 오히려 저는 긴장감을 잃지 않았으니까요.
네 말은 아녜스 수녀의 처리나 뭐, 다른 것도 오히려 죄책감이 있었기에 더 잘 따랐을지도 모른다는 게냐? 그래서 일이 이렇게 잘 풀린거다?
맞아요. 그러니 옥결 씨의 의도대로 된 걸지도…………….
그래도 내기는 내가 이긴 거다. 그런 초월 존재를 이렇게라도 이겨 보는게 어디냐?
해밀턴은 그냥 웃기만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하늘에 조금 높이 떠 서 조용히, 앞으로 남은 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 서 소멸되면 끝이었다. 특히 준후는 몹시 뿌듯했다.
‘성공했으니 된 거야. 신부님이나 현암 형, 승희 누나도 최소 삼 십 년은 더 살 거야. 다들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준후 다시 해밀턴을 바라보았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삼 준후가 감사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해밀턴이 먼저 말했다.
부끄러운 소리 할 거면 그냥 하지 말거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느냐?
그런가요?
고생했다느니, 속였다느니, 희생했다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거 다. 나는 정말 제일 바라던 걸 얻을 수 있게 됐다. 영원한 안식, 죽음 말이다.
불사의 능력은요?
준후가 조심스레 묻자 해밀턴은 웃었다.
이미 진작 사라졌다. 역시 작은 섭리는 큰 섭리를 못 당해, 아녜스 수녀의 능력을 빨아들여서 지금 이나마 버티는 거다. 안 그랬으면 진작 없어졌겠지.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해밀턴이 말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어차피 소멸할 것임을 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징벌자와 구원자 쌍둥이를 받는 장면을 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
불합리가・・・・・・
아, 그 소리는 이제 그만. 지긋지긋해. 그런데………… 준후야
네?
이만 하면 모두가 잘됐잖느냐. 박 신부님도, 미스터 현암도, 미스 승희도 살아났고, 아녜스 수녀도 나름 죗값을 치렀다. 세상도 예정대로 구원됐고…….
네. 아주 잘됐어요.
준후는 거의 소멸돼 투명해진 얼굴로 아주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테니까요!
그러나 해밀턴이 돌연 말했다.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 너는?
네?
아니, 이 세계의 장준후 말이다. 우리야 조금만 있으면 소멸이지. 그런데 다른 이들은 나름대로 얻은 게 많은데 그 아이는 얻은 게 없잖느냐? 세상을 구했는데도 말이지.
그건・・・・・・ 뭐, 이 세계의 저도 더 바라는 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제 명이 얼마 안 남은 것 알고 계셨어요?
이천 년을 살아온 날 무시하지 마라. 누구에게 듣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수명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지, 너도 준후잖느냐. 영혼이지만 분명 너도 준후인데 여기서 네 영혼이 소멸되면 그건 어떤 결과를 낳을까?
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쪽 세계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즉 장준후와 해밀턴이 이쪽 세계에서 소멸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 같으냐?
그건 잘・・・・・・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없던 일이 되는 것.
그게 정상이겠죠.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여기서 나와 네가 소멸하 면서 해밀턴과 장준후의 죽음이 이루어지게 되니, 이쪽 세계의 해밀턴과 장 준후의 운명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네?
항상 죽음을 바라온 나로서는 정말 싫은 일이다만, 해밀턴과 장준후의 죽 음이 이미 일어난 것으로 처리돼 어쩌면 예전의 나와 같이 이쪽 세계의 해밀 턴과 장준후는 죽지 않는 운명이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이쪽 세계의 해밀턴 은 질색하겠지. 안 그래도 죽지 못하는데, 더 죽을 수 없게 돼 버린 거니 말이 다. 그러나 이쪽 세계의 준후는? 그 준후에게도 세상을 구한 대가로 권능이 올지 모르고, 혹시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명을 늘릴 수도 있겠지. 어 쩌면 예전의 나와 같이 불사의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너처럼 초월 경지에 오를 테니 그런 가능성도 충분할 것 같구나. 조금만 운이 좋거나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도와준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데. 가령・・・・・・ 천기의 수호자라거나?
그럴까요…?
내가 내기에서 이긴 것도 있으니 말이야.
-외전 완결
외전3권으로 1부를 마무리하며
제일 먼저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독 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아울러 권 말미에 지면을 할애해 제법 거창하게 ‘1부의 마무리’ 라 칭한 이유나 기타 각종 지면에서 밝힐 수 없었던 이야기를 종 합해서 적어 보고자 합니다.
1993년 『퇴마록』을 처음 쓸 때부터 모든 계획이 다 짜여 있던 것은 아닙니다. 1994년 초, 책으로 출간이 되면서 종합적인 계획 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편」, 「세계편」, 「말세편」 정도로 구상했었죠.
처음에는 구성 및 기획하는 능력이나 장편을 다룰 수 있는 능력 이 모자랐기 때문에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이후 점차 좀 더 포괄적인 주제를 크게 표현할 수 있는 장편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겨 혼세편을 기획에 추가했고, 마지막 파트인 ‘말세편을 내기 이전에 『왜란종결자』나 『파이로매니악 등의 다른 장편을 집필했습니다.
원래 제가 그렇게 고집불통인 사람은 아닙니다만, 집필에 있어 서만은 ‘안 되면 될 때까지, 미흡하면 나름 흡족해질 때까지’라고 타협을 안 하는 주의라 많은 시간을 소모해 왔습니다. 실제로 약 속을 안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집필에 한해서만큼 은 불평이 나오거나 제가 어떤 손해를 입더라도 타협하지 않고 세 상에 내놓을만하게 될 때까지 질타를 감수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 습니다.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 다 많은 기대와 성원을 보내 주시는 분들께 최대한 제대로 된 글 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이때 기획 변동이 한 번 있기는 했지만, 말세편의 마 지막 결말만은 그때부터 확정돼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그 도달 점을 향해 이야기 전개를 풀어 나갔지요. 그런데 말세편이 나오 고 나서 저는 그때까지 들어왔던 모든 악평을 뛰어넘는 질타를 받 았습니다. 제가 나름 독자들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일종의 멀티 엔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분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것을 좋게 보신 분들도 다수 존재하며, 그런 질타를 한 분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독자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결말을 기대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을 표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다만 제가 거기서 깨달은 것은 뭐랄 까. ‘내가 부족하구나’ 혹은 ‘너무 자의적, 추상적으로 결말을 냈구 나’ 하는 교훈이었습니다.
말세편을 멀티 엔딩으로 끝맺기까지 제가 고심했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퇴마사들이 원했던 세계의 구원은 예정대로 이 루어진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퇴마사들의 생사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크게 보아 희 생을 기본으로 한 이야기였고 그에 따른 아픔과 슬픔도 바탕에 깔 려 있었기에 다 잘된 채로 끝내는 것도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 각이 들었지요. 그렇다고 참담한 결말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가슴 아파하는 분 또한 많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 읽는 분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했습니다. 나름 고심해 접근한 방식이었는데 오히려 이것을 더 많은 분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리라고는 정 말 예상 못했습니다. 물론 좋은 평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100명의 찬사보다 1명의 악평이 가슴에 틀어박히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 요. 나중에 더 생각을 해 보니 제가 마지막을 결말짓는 것이 부담 스러웠던 것처럼, 독자분들도 사랑하는 캐릭터의 생사를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 부담스러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말세편 말미에 ‘퇴마록의 시계는 멈췄다’라는 문장을 달 아 두었던 것처럼, 세상의 구원이나 철학은 전달됐으니 제 나름으 로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셈이었고, 캐릭터들의 생사는 말 그대 로 시간을 멈춘 상태로 두었기에 전혀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았었 습니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말세의 의미와 더불어 이면적, 즉 제4의 벽 을 넘은 상태에서는 준후의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설정했습니다. 이것은 만약 수많은 독자의 요구나 저 스스 로 심경의 변화가 생길 경우, 다시 시간을 가게 만들어서 다음 이 야기도 준비한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문제가 커진 것이 그 세계를 다시 살릴 경우 퇴마사들의 생사를 어느 한쪽으로 정해 놓고 이어질 수밖에 없다 는 점이었죠. 이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퇴마사들을 죽이고 시 작하는 것은 수많은 독자분이 싫어하실 테고, 그렇다고 다 살아난 세계로 만들면 지금껏 해 왔던 작업이 의미를 많이 잃게 되는 것 이었습니다.
결국 딜레마에 빠진 셈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오랫동안 고통 스러웠습니다. 두 가지를 아우르며 만족할 수 있게 써야 할 텐데.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반만 살고 반만 죽은 것 같은 퇴마사 들의 상태를 어떻게 최소한의 개연성이라도 지키면서 풀어 갈 수 있을까.
이것이 『퇴마록』 『말세편까지 쓰고 거의 20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그다음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까닭이었습 니다. 애초에 외전 기획도 1권은 퇴마사들의 소소한 일상, 2권은 주변 인물의 시각 정도로 정했었고, 3권은 바로 이 ‘퇴마록의 시계 를 다시 가도록, 혹은 아예 멈추게 하는 이야기로 정했었습니다. 시계를 멈추게 하는 편이라면 편했겠지만 제게는 어떤 물리 법칙 이나 신적 교의보다 독자분들의 바람과 저 스스로 생각하는 개연 성 문제가 더 중요해 고심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니 상상의 영역에서 너무 사실적으로 이론 에 얽매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벼운 웃음을 주거나 심각하지 않은 작품이라면 이런 불합리한 가설도 임의로 의도와 설정을 밝힌 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퇴마록』은 상당히 진중하고 논리나 개연성, 핍진성을 따지는 작품에 속합니다. 방대한 서사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 개연성이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무작정 들이밀어 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저는 이론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해내야만 했습니 다. 약간 부연 설명을 드려야 할 것이 판타지적 세계관 설정에 대 한 것입니다. 제가 『퇴마록』을 쓸 때 판타지적 세계관을 넣으면서 가장 고심한 것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퇴마록』에 온갖 신적인 존재나 악마들이 나오고, 정신력이나 술법이 가시화, 물리력화, 에너지화돼 나온다는 등의 설정은 모두 허용해도 이 두 가지만은 절 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째는 ‘부활’이고 둘 째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상상의 세계이기에 오히려 이는 절 대 반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퇴마록』은 죽음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종교적 세계관을 포함시켜 주 소재로 삼았는데,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이 쉽게 작품 안에서 일어나 버리면 전체 세계관이 무너지고, 가장 중요하 게 생각하는 생명의 가치 또한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또 마찬가지 로 ‘시간 여행’을 사용하게 되면 아직도 전부 가설에 불과한 수많 은 패러독스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부활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부터 철학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불 가능하고, 불가능해야만 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최근 복제 인 간 등의 요소로 인식론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 건 엄밀한 의미에서 영혼의 재생성, 분할이기에 부활과는 다릅니 다. 시간 역행은 끝없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개념입니다.
시간 여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행 우주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평행 우주 개념은 시간 역행의 패러독스에 대 한 대안 가설을 말합니다. 가령 이것은 1990년대에도 이미 나오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영혼의 근본을 따지는 것이라 볼 수 있는 인식론도 1990년대에 철학계에서는 나오고 있던 상태였고, 시간 패러독스에 대한 문제들도 많이 제기되고 있어서 흥미진진 하게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시간 여행이나 그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간단하게 ‘과거로 가서 바꾸면 현재도 바뀐다’에서 시작됐다가, 그러기엔 너무 불합리한 문제가 많이 생기게 되므로 시간 여행 시도 한 번에 새 우주가 생 겨난다는 설, 또 시간의 연속체적 성격이 발견됨에 따라 아예 모 든 선택지에 따른 우주가 이미 준비돼 있다는 소위 ‘멀티버스’에 도달하게 되는 가설 등이 있습니다.
반면 아예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 시간역행 자체는 항상 실패하 게 되며, 그런 시도 자체가 모조리 무산된다는 다른 가설도 한 줄 기로 존재합니다.
어느 것도 현실적으로는 증명된 바 없지만, 논리적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독자분들은 결과만 보고 즐기셔도 되지만, 만드 는 이의 입장에서는 따져 보고 만들어야만 하니까요. 조금 꼼꼼하 게 따져 보면 멀티버스는 시간 패러독스 자체는 해결할 수 있지 만, 이건 차원 단위로 나눠진 세계로서만 존립합니다.
차원이란 건 마음만 먹으면 들락거릴 수 있는 구분이 아니라 아 예 왕복할 수 없도록 나눠지는 개념입니다.
즉 억지로, 미지의 힘으로 어떤 차원을 떠났다고 쳐도 ‘내 과거’ 로 간 것이 아니고 그냥 다른 차원에 있던 내가 똑같이 복제 세계 로 간 것이다. 돌아온 것조차도 이미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라, ‘내 가 시간 여행으로 다른 차원에 가서 변화를 주고 돌아온, 즉 변조 된 과거에 영향을 받아 새로 생성된 다른 세계’라는 뜻이죠.
이는 겉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사실 원래 세계에는 하나도 영 향을 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차원을 넘나드는 문제는 차치하고라 도 어떤 것이 복제품이냐, 원본이냐의 인식론의 문제가 발생하는 데, 보통 창작물에서는 이런 건 무시해 버리고 좋을 대로 생각하 게 듭니다.
학문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모두가 엄청난 대법칙(엔트로피)인 열역학 제2법칙을 모조리 위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만 논리적 으로 들어가도 패러독스를 해결하려다가 사실은 더 엄청난 패러 독스를 발생시키게 되죠. 절대 왕래하지 못한다면 논리적으로 문 제가 없는데 왕복하게 되면 내가 있는 차원에서만 문제를 발생시 키는 게 아니라 상대의 차원에까지 동시에 문제를 만드는 셈이니 결국 엔트로피 면에서는 더욱 말도 안 되게 됩니다. 물론 여기까 지 생각할 필요는 없고 재미있으면 그만이겠지만, 만드는 입장에 서 저는 이런 논리를 채용하기 싫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멀티버 스에서 차원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으면 이론은 차치하고서 사적으로도 캐릭터가 중복되고 구성이 산만해지며 모든 중요한 가치도 같이 희석돼 버릴 수 있다는 아주아주 큰 단점이 있습니 다. 겉보기와는 달리 부활을 허용해 버리면 안 되는 이유의 몇 배 큰 단점을 안고 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고민하다가 마침내 나름의 영감을 얻어 만들어 낸 것이 외전 3권의 세계관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시간은 초월 적-수학적으로 보면 연속체적인 개념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 중 원하는 시간대의 세계를 활성화시켜서 새 지구로 만들어 버 린다면, 그렇게 해서 시간의 위상차를 두고 두 지구가 현실적으로 도 공존하게 된다면 각 가설을 크게 위배하지 않고 스토리적으로 도 이미 내놓은 세계관을 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옥이라는, 제 세계관 내의 초월자의 조력이 있기는 하지 만 자연적으로 그냥 얻어지지도 않고 항상 강조했듯 헌신과 희생 이라는 가치 전환으로 얻어지는 세계지요. 멀티버스적인 개념을 가지면서도 난잡하게 흐트러지지 않으며, 퇴마사들이 죽은 세계 와 죽지 않은 세계 둘로만 나눠지지, 무한히 증식되는 혼돈의 세 계도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 패러독스의 다른 가설인 ‘그 시간대 로 가는 것이 방해받아 결코 성공할 수 없게 되거나 무화돼서 결 국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개념도 일부 차용했습니다.
이것은 최근 발표된 학설-2025년 현재 기준으로 얼마 안 된 가설입니다. 물론 저는 학자가 아니니 깊은 내용까지 제게 묻거나 헤아리지는 말아 주세요에서 나온 양자 복원 원리 이론인데, 시 간 역행을 행하려 해도 양자 선에서 그 모든 것을 복원해 그냥 시 간 역행의 시도 자체를 전 우주가 묻어 버린다(?)는 내용입니다. 시간역행 불가론에서는 이것을 다양한 상상으로 메웠는데, 저는 가장 최근 가설을 따른 겁니다. 그걸 보니 좀 스토리가 될 것 같고 용기도 나며, 그동안 골몰했던 것의 돌파구로 보이더군요.
작중 시간대는 2000년대쯤으로 이 설이 나온 시기와는 물론 맛 지 않습니다만 이 부분은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튼 이를 응용한 것이 준후와 해밀턴의 영혼이 위상차의 새 지구에 들어가 서 겪는 소멸 현상인 겁니다. 그 지구 자체는 그냥 생성된 거라 불 합리가 없지만, 원래 있었던 지구 출신인 준후와 해밀턴의 영혼은 이 불합리를 겪게 되는데, 새 지구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만 보면 그냥 외부의 외계인 같은 누군가가 조용히 힘을 써 준 것이나 다 름없어서 패러독스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이제 두 개의 세계를 나름 받아들이실 수 있을 정 도의 개연성을 깔아 놓고 과거의 제가 못다 했던 독자분들의 갈망 을 풀어 드릴까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세계관이 두 개가 됐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풀 수 있으며, 주술이나 초능력이 씨가 마른 원래 지구는 보다 현실 적 이야기들-파이로매니악이나 바이퍼케이션 등의 무대 가 될 것이고, 판타지적 세계는 아무래도 독자분들이 사랑하는 캐 릭터들이 있는 새 지구 중심으로 풀어 가게 되겠지요.
그래서 일단 여기까지를 1부로 하고, 새로 시작될 퇴마록 2부에 해당하는 ‘뉴 퇴마록(가제)』은 퇴마사들이 모두 생존해 후계를 양 성하며 상당히 희망적으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사실 이는 시간의 위상차적 특성 때문에 인간을 적대시하는 악 마나 마계로서는 굉장한 페널티를 입게 되는데 어지간한 것들은 새 지구에는 잘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때문 에 오히려 위상차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강하고 큰 존재들이 이 쪽의 불합리성 때문에라도 더 직접적으로 간섭하게 돼 소설의 스 케일은 더 커질 겁니다. 이런 고뇌와 고심을 거쳐 만들어 낸 세계 관이니만치 재미있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힘들었습니 ……ㅠㅠ-.
아무튼 여러분이 사랑하던 퇴마사들은 모두 생존하게 됐고, 나 름 계속 활동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생존하게 됐고, 누리게 됐 습니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6월 이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