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 : 인간 장준후의 불완전한 계획 [징벌자와 구원자 탄생 2시간 후] : 3화 –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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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3 : 인간 장준후의 불완전한 계획 [징벌자와 구원자 탄생 2시간 후] : 3화 – 시간 여행


시간 여행

“말도 안 돼!”

시타 교수의 말이 나오자마자 대부분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어 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공상 과학에서나 나오는 것이 실제로 가능 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시타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일은 아 니라 생각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거요? 차라리 부서진 인간을 되살리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사실 물리학적으로도 시간과 공간은 연결돼 있으며, 시간도 하 나의 개념일 뿐이라 역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견해가 나 오고 있어요. 시간역행 자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실질적 문 제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죠.”

시타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물리학계 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을 어느 정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달지 교수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둘 다 물리학이 전공은 아니 었지만 어느 정도 식견은 지닌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학(學)인 승현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방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판 단을 내린 것이다.

시간이 단순한 인식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연결돼 연속체적으로 작용한다는 이론부터, 이를 뒤집어 과거로 가는 것 이 실질적으로도 완전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로 천문학적 관점에서도 원 홀(Wormhole)과 화이트 홀(White hole) 이라는 측정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중력이나 기타 힘의 관계 아래 에 있는 특이점에서는 시간 차원을 넘나들 가능성도 있다는 이론 도 나오고 있었다.

“물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지구 차원을 넘는 천문학적 단위 의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바로 상대성 이론과도 연 관되는 질량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죠. 시간 역행이 가 능해지려면 특이점이 발생되는 광속의 기준을 넘어서는 조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속도가 올라갈수록 질 량은 증가하게 되므로……”

시타 교수와 황달지 교수는 번갈아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모인 이들은 이런 분야에서는 결코 박학하지 않았 다. 그래서 결국은 하겐이 나서서 이론 부분은 생략하고 조건만 간략하게 추려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은 승현이 나서서 교수들의 이론을 간추려 정리했다.

“정리하자면 시간 역행은 원래로서는 힘든 일입니다. 이에 관해 조금 줄여서 설명하자면 큰 요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질량 문제입니다. 무게가 조금이라도 나가는 것은 물리 법칙을 벗 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시간 역행이 가능해지는 특이점까지 가 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즉 육신이나 물건을 지닌 채로 과거 행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도 큰 힘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냥 안 된다는 것과 뭐가 다르지?”

누군가가 말하자 승현은 합장하며 말했다.

“그러나 영혼이라면요?”

“영혼은 무게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처음으로 동조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었다.

“영혼도 어쨌든 세계에 속한 것이니, 지극히 가볍다고 해도 무 게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자 승현이 답했다.

“어쨌건 극히 작은 무게만 가졌다면, 적어도 육신을 지닌 상태 보다는 쉽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 누구도 영혼의 실체를 과학적 으로 규명하려고 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일단 무게가 없거나 거 의 없다는 것은 첫 번째 조건에서 그만큼 유리한 겁니다.”

황달지 교수도 애써 동조했다.

“실제로 시간 여행 실험은 아주 가벼운 소립자(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 단위로 설정된 작은 입자)를 통해 시도되고 있소. 영혼이 그런 소립자들이나 플라스마(Plasma)로 이 루어져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거요.”

승현이 다시 주장을 이어 갔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달리, 여기 계신 분들은 갖가지 초능력을 지녔습니다. 심지어는 과학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중력을 이용하 거나 조절하는 분도 계시고, 전자기적인 힘을 번개의 힘으로 이용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비록 경험적이고 특이한 것이라 과학처럼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 쳐도, 분명 이러한 특수 조건에 도 움이 되는 기술을 가진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상당히 희망적일 수도 있다고 감히 판단합니다만.”

그러자 의외로 비협조적일 것 같았던 아사신파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우리는 원래 암살 능력을 주로 삼았기에 스스로 몸을 가볍게 하거나 잠깐이라도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비전이 있긴 하오. 정말 도움이 된다면 내어 드릴 용의도 있소.”

그들뿐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며 제안하는 자들이 속속 나왔다. 그에 모두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물론 해밀턴과 준후의 위협 때문 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들도 이것으로 멸망 내지는 큰 위험을 막을 수 있다면 가릴 수가 없어진 것이다. 거기에 아주 희박하게 나마 이론적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라니 더더욱 그랬다.

승현은 주위를 정리하고 다시 깔끔하게 내용을 이어 갔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막상 영혼의 상태로 가더라도 과거에 같은 영혼이 이미 존재한다는 불합리의 문제입니다. 비록 영혼의 질량이 없거나 극도로 약해도 존재가 중복되는 일이 허용 될까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실제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몹시 어렵겠지요. 그러나 이와 비슷한 초능 력이라면, 이미 많은 분이 지니고 계실 겁니다. 존재를 나누거나 영을 이탈시키거나 분리하는 능력 말입니다. 나아가서는 영을 보 호하거나 남에게 빙의하는 방법 등으로 어느 정도 불합리를 막을 수 있다고 보입니다. 상당히 많은 수법이 이런 능력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불합리를 피하기 위해 준후가 과거에 존재하는 준후 의 몸으로 빙의된다면 가능해진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육체가 필수라 생각한다면 이건 불가능해지죠. 합 해질 수 없으니까요. 즉 아직까지 과학으로는 넘을 수 없는 불합 리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가능합니다. 일반 과학으로는 안 되지 만, 우리 세계에서 영혼이 남에게 들어가서 빙의하는 일은 혼합니 다. 그렇게 자신 스스로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런 불합리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당사자가 스스로 행동한 셈이 되니까요”

“영이 겹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것도 만만치는 않을 텐데요?” 

그 말에 승현은 간단히 답했다.

“준후 시주는 초월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도 강한 능력을 지녔습 니다. 이전의 영혼에 대한 방어력도 상당히 크겠지요. 그러나 초 월에 접어든 준후 시주의 영혼이 더 강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근본적으로는 같은 영혼이기에 거부 반응도 적을 테고요. 쉽게 말해 강제로 빙의해서 원래 영혼을 잠시 억누른 채 행동하면 될 것이라 보입니다.”

그러면서 승현은 잠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건 사실 악마, 악귀들이나 쓰는 일이라 우리가 직접 행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그들과 맞서 싸운 우 리들이 진행한다면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물론 당장의 상황에서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면 마지막 문제는?”

다시 의견이 나오자 승현은 합장해 보이며 말했다.

“세 번째는 이런 불합리가 발생했을 때 세상 자체가 일그러지는 문제입니다. 과거가 변하면 현재에 영향이 없지는 않을 텐데, 그 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불합리가 극에 이르러 큰 악영향을 나타 낼지, 혹은 수습 가능할 정도로 될지 의문입니다.”

이번에는 황달지 교수가 조금 떨면서 말했다.

“저는 전공이 이쪽은 아니지만, 요즘 양자역학 이론이 많이 발 전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원리에 따르면 많은 불가사의가 과학적으로 해명될 것으로도 보이고, 심지어는 시간 여행이나 영 혼의 원리도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게 양자 복원 원리인데.”

“그게 대체 뭐요? 난 처음 듣는 소리인데?”

대다수가 아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승현이 다시 정리 해 주었다.

“복잡한 이론까지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대강만 말씀드리면, 양 자 복원 원리란 어떤 불합리가 실제 우주에서 일어날 경우, 자연 적으로 입자 단위에서 그 불합리를 메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 을 거슬러 과거로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패러독스, 즉 불합리가 생기게 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주 자체가 어지간한 불합 리는 스스로 메우도록 이미 섭리에 안배돼 있다는 겁니다.” 

승현은 조금 더 설명했다.

“가령 과거로 가는 데 성공했다 쳐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 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면 거기서 오는 불합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 다. 그런 경우는 우주 자체가 자연스레 움직여서 아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주 스스로가 그 사실을 지우게 돼 있다 는 이론입니다. 물론 이것이 정말 통용될지도 아직 확신할 수 없 으며, 된다고 해도 만능일지는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 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까도 언급했듯, 시간 여행을 하더라도 그리 멀리 가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위험을 최소로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요.”

그러면서 승현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이곳은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라 생각 외로 변수가 적을 겁니다. 우선 우리들의 위치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외부와 복잡하게 얽힌 사 회적 사건이나 영향력도 아직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래전으 로 가서 이런 일을 행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남은 시간 동안 행동했 던 일들이 새로 꾸며지는 셈이니 먼 과거로 갈수록 인과의 여파는 더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준후 시주가 원하는 것처럼 박 신부님이 나 현암 시주 승희 시주 등이 위기를 면하기만 한다면, 그것도 그 당시의 준후 시주가 직접 행동해 그들의 죽음만 막을 뿐이니 그렇 게 큰 불합리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해밀턴이 만족한 듯 말했다.

“그렇겠군! 몇 시간 전으로만 간다면, 그래서 그들의 죽음만 막 을 뿐이니 큰 불합리는 발생하지 않고, 그것은 양자 복원 원리로 자연스레 해결될 수도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사실 시간 여행은 생각보다 대단히 까다롭고 제 약도 크며, 아주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쳐도 앞서 말씀드린 동일 인물의 중복이나 그에 따른 인과 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화에서처럼 몸이나 기계를 지니고 간다면, 그 구성 원소나 존재 자체가 크게 문제가 되며, 현재의 시간과 합체된다 쳐도 굉장한 불일치가 일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만 가서 본인의 몸으로 들어간 뒤 몇 시간만 기다리면 저절로 몸 안에서 영혼은 합체돼 부작용이 가장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승현의 설명을 다 이해한 자는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가능 성 자체가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과학도 주술도 그 자체만으 로는 이런 우주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둘을 결합하니 새 로운 탈출구가 열리는 셈이었다. 어쩌면 길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 다른 의견이 나왔다. 박학한 하겐의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준후가 과거로 간다고 해서 과연 그들을 살릴 수 있 을 거라 생각하오? 여기서의 초월 능력이 부가됐다고 그들을 모 두 구할 만큼 힘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일반 과학적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보존해 두는 게 불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주술은 근본 원리를 모르더라도 이미 하고 있잖습니까? 아무 무게 없고 흔적도 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영 혼이라도 막대한 힘을 보존하고 끌어낼 수 있지요. 도가에도 원신 출규라고 해, 힘을 쓸 수 없는 영혼만 끌어내는 수법과 달리 힘을 그대로 보존한 원신을 몸 밖으로 이탈시키는 술법이 이미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비슷한 술법 이야기도 여럿 들어 보았고요.”  

그러자 처음으로 준후가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건 맞아요. 그리고 난 자신 있어요.”

사람들은 준후가 이미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것과 동시에 말투가 온건해졌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준후는 아직도 위험한 존재였지만, 적어도 이 결정을 따르기만 한다면 세상을 파괴하는 짓은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을 꺼냈던 하겐은 덧붙였다.

“그 뜻이 아니라, 실제 준후가 영혼만의 상태로 이 모든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는 이야기였소. 초월의 경지에 들어가 세상 전 체를 없앨 힘은 있더라도, 그 자신의 능력은 그렇게까지 높은 수 준이 아니라고 보오. 더구나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중간 과정을 돌파하는 데에는 아주 다양한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능력 을 다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오.”

이 말에는 해밀턴이 나서서 답변했다.

“그러니 힘을 실어 줘야 하는 것이다!”

“무슨 뜻이오?”

“준후가 과거로 난관을 뚫고 섭리를 무시하며 나갈 수 있을 정도 로!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번에 모든 상대를 물리칠 수 있을 만큼 힘을 부여해 줘야 한다! 일단 영혼만 가는 데만도 엄청난 힘이 필 요할지 모르니, 우리의 모든 힘을 준후에게 줘야 한단 소리다.” 

“능력과 힘을 어떻게 전해 준단 말이오?”

그러자 해밀턴은 크게 웃었다.

“내가 방금 보여 줬지 않나? 블랙 서클이 있다!”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사실 블랙 서클은 원래는 상대의 힘과 능력, 심지어는 영혼까지도 모조리 집어삼키는 사악하기 그지없 는 수법으로 세상에 큰 악을 끼쳤다.

그러나 그 창시자인 마스터가 윤회해 로파무드가 됐고, 다시 그 손에 의해 결정적 도움을 주는 수법이 된 것이다. 과거 마스터가 이 방법으로 숭정들의 힘을 모조리 흡수했었던 것처럼 준후에게 모두의 힘과 능력을 몰아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해밀턴이 직 접 실험해 보여 준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제는 불사의 힘을 잃은 거요?”

누군가 묻자 해밀턴은 코웃음을 쳤다.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이건 힘이 아니라 일종의 권리라고 했 지 않나? 다른 이에게 준다고 해도 내가 그 힘을 잃지는 않더군. 그리고 준후의 불사성은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권리가 분산돼 잠시 혼동을 일으키는 정도일 것이고,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갈 가 능성이 크다. 내 힘이 없어지지 않은 게 바로 그 증거지.” 그러면서 해밀턴은 작게 덧붙였다.

“사실 나야말로 없어지길 바랐는데…..”

해밀턴, 즉 아하스 페르츠야말로 오래전부터 죽음을 갈구해 온 인물이었다. 스스로 죽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해서 세상까지 위기로 몰아넣으려 수없이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 법칙을 흔드 는 일 같은 것이어서 준후에게 힘을 옮겨 주고서도 해밀턴에게 여 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해밀턴의 내력을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나 름대로 아쉬움과 안도감을 복잡하게 느꼈다. 그러나 해밀턴은 이 어서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 주관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그게 뭐요? 아니, 가급적이면 좋은…….”

하겐이 말하려 했으나 해밀턴은 코웃음을 치며 스스로 먼저 대답했다.

‘나쁜 소식부터 알려 주겠다. 내 마음이다.”

해밀턴은 아하스 페르츠 때처럼 거침없고 거만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 자체가 하나의 공포였고 위압감을 주는 요소였기에 아 무도 그의 말에는 토를 달지 못했다.

“일단 분명히 말해 두는데, 내 불사 능력과 같은 권리, 즉 근본 적인 법칙에 의한 힘이 아니면 아마 넘겨주는 대로 죄다 없어질 거다. 오로지 힘에만 의존한 하찮은 술법들이니 그게 당연한 것이 지. 그래도 힘이 필요하고 나름의 영혼을 다루거나 자연을 거스르 는 수법도 다양하게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 여기 모인 모든 자들 은 준후에게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넘겨야 한다!”

그 말에는 모두가 동요했다. 평생 수련하거나 타고난 능력조차 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에 동요하지 않을 자는 없었다. 그러나 해밀턴은 딱 잘라 말했다.

“희망자만 넘겨주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는 꺼내지도 마라! 여 기 모인 자들도 서로 대립하고 틈만 나면 싸우는 걸 잘 안다! 어느 쪽만 힘을 모조리 잃게 되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 지? 차라리 모두가 동시에 힘을 잃는 게 공평한 것 아닐까? 그리 고 속죄 아닐까?”

이건 거의 명령에 가까운 폭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 세계의 능력자들 거의 대다수가 모여 있는 셈이다. 당연히 몇몇은 떨면서도 항의했다.

“그러면 우리 집단은 유지할 수도 없게 되오!”

그러나 해밀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지? 너희들 상당수가 종교 집단이지? 대체 언제부터 종교 집 단이 힘이나 능력을 휘두르며 날뛰었지? 이 힘들은 원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극히 통제돼 쓰여야 할 것들이었다. 힘이 아니라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런데도 앞서 날뛰는 자들이 넘쳐나서 지금 하늘이 이런 시험을 내린 것을 모르겠나?”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닌가? 우리도 나름 세상을 지켜 왔는데 모 든 힘을 잃게 되면 세상은 누가 책임지겠는가?”

“책임? 너희가 무슨 책임을 졌지? 그 좋은 능력, 신통력으로 대 체 뭘 했나? 역사상 누구도 기근, 재해, 전쟁 한 번 막지 못했고, 날뛰는 독재자나 진짜 악한 자들을 손봐 주지도 않았다! 그럴 때 만 허울좋게 세상에 간섭 어쩌고 해 대는 데 정말 뻔뻔하군! 차라 리 이런 힘은 이 기회에 모조리 없애 버리고, 다시 기도하고 정신 을 가다듬어! 이적이나 힘에 집착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 만 해도 어지간한 악은 다 물리칠 수 있잖아! 반성하면서 새로 시 작하라고!”

해밀턴의 일갈에 상당수의 종교인은 정신을 번쩍 차리는 듯했 다. 사실 종교와 믿음의 힘으로 악을 물리치는 것이 순리였다. 힘에 의존해야 할 일이 간혹 필요할 때가 있어도 그 수가 정도를 넘어서면 그 자체가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퇴마사들 행적만 보더라도 처음에는 순수하게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악령들을 상대했었다. 그러나 능력이 커질수록 악령들보다 는 사람들과 싸우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비록 이제 퇴마사는 준 후밖에 남지 않았지만, 곁에서 그들을 본 사람들은 많았다. 선을 지키려고 얻은 능력들이지만 오해나 독선, 악마의 협잡으로 인간 들이 더 큰일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 승현이 정중히 합장하며 말했다.

“저와 교수님들은 가능성만 보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첫 번째 단계조차도 확신할 수 없으니 만전을 기해야만 합니다.” 그 말에 제일 먼저 깨닫고 나선 것은 놀랍게도 고집스럽고 편협 했던 현현이였다. 그는 앞으로 나섰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 으며 말했다.

“맞소! 참으로 맞소! 차라리 인간들이 이런 분에 넘치는 힘을 얻지 못했다면, 악마들도 큰 힘을 행사할 수 없었을 텐데! 나는 공 감하오! 내 모아 왔던 도력, 아낌없이 이 기회에 털어 버리리다!” 

그러자 현현일로가 오히려 놀라며 말리려 했다.

“사제! 너무 많이 나가는 것 아냐?”

그러나 현현이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도 정신 차리시오! 우리가 이 나이 될 때까지 도를 얻겠다고 날뛰고 다니면서 한 일이 대체 얼마나 되오? 몇 가지 잔재주만 면피한답시고 부려 놓고, 자기 한 몸 우화등선 해 보겠다고 탐 욕을 부렸던 것 아니오? 이제야 한빈 거사께서 왜 우리는 본 척도 안 하시는지 깨달았소! 사실 우리는 그분의 총애가 저 아이나 현 암에게만 가는 걸 시기하고 항상 질투해 왔던 거 아니오? 부끄러 워 죽을 지경이오!”

그 말에 현현일로도 정색을 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현현 이로가 크게 소리쳤다.

“형님! 더 추한 꼴 보이지 말고, 여기서 깔끔히 내던집시다! 이 렇게 흉하게 얻은 도력, 더 무엇에 쓰겠소? 모조리 홀홀 내던지고 새로 도를 닦다가 죽던, 그냥 맘 편하게 뒷방 늙은이로 죽던, 좀 떳떳하게 삽시다! 이나마라도 해야 그동안의 죗값을 괜찮게 치르 는 것 아니겠소? 너도나도 모조리 다 힘이 없어지면 그게 더 낫 지! 허허허!”

고집불통이던 현현이로가 앞장서서 희생하자 그들의 제자이 었던 도방의 현현파나 오의 인원들도 일제히 정좌하고 그 자리 에 앉았다. 오의파의 상곤이 말했다.

“목숨도 내줄 수 있는데, 이런 알량한 능력이라도 도움이 된다 면 도를 닦는 자로서 무엇이 아깝겠소! 모조리 가져가시구려!” 

역시 무련과 사천왕 중 남은 자들도 일제히 가부좌를 틀고 말없 이 앉아 독경을 시작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더 말 을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행동으로 결의를 보여 준 것이다.

한국 도인들은 단호하게 결정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하겐이 제일 먼저 선두로 나섰다.

“나 역시 이편이 맞다고 생각하오!”

그러면서 하겐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한국 도인들을 따라 그 자 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미 시력을 상실한 준호를 측은 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겐은 예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준호에게 흑마법과 백마법의 신비 문양을 전수해 준 바가 있었다. 무뚝뚝하게 내색하지는 않았 으나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준호를 반쯤은 제자처럼 생각하고 있 었다. 그런 준호가 희생당한 것에 그도 내심 분개했으며, 때문에 은연중에 해밀턴의 편을 들어 여론을 이끈 것이었다.

서양의 능력자 중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하겐이 나서자 보다 많은 수가 동참했다. 수단과 방법까지 다 나온 이상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칼키파도 수장의 지휘하에 동참을 결정했고 마지 막까지 눈치를 보던 아사신과 용화교 무리도 해밀턴의 눈빛을 견 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승현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런 표정을 짓지 마십시오. 준후 시주가 성공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도 잃는 것이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칼키파의 수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승현은 합장하며 조용히 말했다.

“준후 시주가 성공한다면 박 신부님이나 현암 시주, 승희 시주는 살아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준후 시주가 이런 일을 벌였던 사실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지요. 당연히 여러분이 능력을 내놓았던 사건도 같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그게 가능한가? 양자 복원 원리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적어도 학자 중 일부는 그럴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 는 질량이나 기타 요인에 덜 속박적이고 독립적인 영혼을 가지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장담할 수는 없 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미 되돌릴 방법도 없는 셈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그 말을 듣고 나자 칼키파 수장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의 분위기가 변했다. 논리적으로 패러독스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그 렇게 현실이 변조돼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았다. 그러니 기왕 이면 다들 준후가 성공해 이런 희생이 없었던 일이 되기를 자연스 레 바라게 됐다. 그러자 자칫 흉흉해질 수도 있던 분위기가 오히 려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때 해밀턴이 아사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주술적인 능력은 잃겠지만, 암살 집단으로서 너희 조직 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겠다. 관심 있나?”

“무슨 소리요?”

그러자 해밀턴은 웃지도 않고 조용히 말했다.

“나에 대해 안다면, 내 재산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그렇소.”

“너희 집단에게 내 유산의 십분의 일을 걸고 의뢰하겠다. 그 정도면 집단 유지는 문제없을 것이며, 어쩌면 이 일만 마치면 암살 따위 안 하고 모두가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거다.”

그건 실로 어마어마한 환산조차 불가능한 금액이었다. 유지는 커녕 나라 하나를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사신의 대표 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합당한 의뢰라면 응낙하겠소. 거금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우리 는 단순한 살인자 집단은 아니오. 우리도 험한 수단으로나마 세상 을 위한다는 나름의 목표와 의지가 있소. 돈에 팔려서 아무나 죽 이지는 않소.”

해밀턴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청부할 대상은 바로 아녜스 수녀다. 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수없는 희생자를 낸, 세상을 망하게 할 뻔한 악녀지. 이 정 도면 응낙하겠나?”

그러자 아사신 대표도 힘주어 말했다.

“돈을 받지 않아도 그년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소. 우리도 그녀에게 속아서…”

“됐다. 그렇더라도 돈은 받아 둬라. 정말 세상을 위한 살인이라 면, 양심에 걸리지 않고 행해 주길 바라지. 그 의뢰 대금이다.” 

그러면서 해밀턴은 허리춤에서 작은 금고 열쇠 몇 개를 꺼내 아 사신 대표에게 던져 주었다. 아마도 막대한 자금을 모아 둔 개인 금고 열쇠일 것이다. 아사신 대표는 그것을 받더니 조용히 말했다.

“암살 의뢰를 이토록 공개적으로 하다니, 수치스럽기 이를 데 없군.”

“그래서 안 하겠다는 건가?”

“양심과 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의 진정한 악을 백 명 처단해 드리겠소. 누구도 아닌 인류의 이름으로”

“좋아.”

청부 살인 계약까지 이루어지자 하겐이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이오? 당신의 힘도 내줄 거요?”

그러자 해밀턴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일단은 최후까지 봐야지. 또 어떤 바보가 난동을 부릴지 모르니, 모두의 힘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켜봐야만 하지.”

“그건 맞는 말이오.”

“그다음 난 준후와 함께 갈 거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이 일만은 꼭 마무리 지어 놓고 싶다. 물론 내가 성공해서 현재가 바뀐다면 당연히 이것도 없었던 일이 될 테니 손해도 아니지. 하하.”

“뭐라고요?”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지금 인간 중 나보다 오래 살고 경험 많은 자는 없다. 그리고 나는 다들 알다시피 불사의 몸이야.” “그러니 영혼 상태도 될 수 없는 것 아니오?”

“날 무시하지 말라고 했잖나? 영혼 이탈 정도는 이미 천팔백 년 전부터 가능했다. 다만 불사의 섭리로 그 지경에서도 몸과 영혼 모두가 수호돼 죽을 수 없으니 그만둔 거지.”

“그랬었소?”

“그러나 이번은 다를지도 모른다. 내 불사의 섭리가 시간의 섭 리에도 버틸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서 좋은 거다. 내 주변 만 일그러뜨리는 시몬 마구스의 권능 정도로는 준후가 얻은 구세 의 권능에 비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기쁜 거야. 내가 더 약하면 약한 대로 내가 죽어서 좋은 거고, 어느 정도 버티기라도 한다면 준후가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도울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해밀턴은 덧붙였다.

“모두가 힘을 버리는 이때 나만 힘을 지니고 있는 것도 문제겠 지. 나는 또다시 공포의 존재가 될 거다. 그렇다고 힘을 버리면 그 순간부터 나는 왜 안 좋은 꼴로 끝장날 게 분명해. 이천 년간의 원 한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

“이해할 것 같소.”

“그래. 이천 년 전부터 내 바람은 완전한 죽음, 그것 하나뿐이었 다. 사실 지금도 이 방법이 아니라면! 더 강한 섭리가 아니라면 알 려진 힘만으로는 죽을 수도 없었지. 이번만큼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다. 박 신부님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다 면, 피로 물들었던 내 길고 끔찍한 삶도 조금은 멋져 보이지 않겠 나? 허허.”

웃던 해밀턴은 가볍게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없어진다면 기뻐할 자들도 많을 거야. 그들도 안도할 수 있으니, 뭐 나답진 않아도 나쁜 건 아니겠지.”

그 사이, 로파무드는 힘든 와중에도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잠 시기를 추슬러서 희망자들에게 블랙 서클을 심어 주고 있었다. 

“준후를 향해 자신의 능력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될 겁니 다. 이건 스스로 원하기만 하면 바로 사라집니다. 그러니 걱정하 지 마세요.”

그 과정은 해밀턴이 매의 눈으로 빈틈없이 최후까지 지켜보았 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자가 있 더라도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체념하고 자신의 능력을 모조리 준후에게 전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멍한 표정을 한 수아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해밀턴 이 말렸다.

“너는 안 돼. 너무 어린 데다. 네가 쓰는 힘은 나와 준후처럼 일 종의 권능이다. 그것도 이질적인 것이라 섭리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될 준후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거다.”

해밀턴은 수아의 정령력의 면모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이 권능은 브리트라를 물리친 대가로 정령들 스스로가 수아를 여왕처 럼 받들며 복종을 자처한 것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블랙 서클의 힘을 사용해도 전달될 성질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존재인 염체와 달리 정령은 약하지만 스스로 사고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럼 ・・・・・・ 전 뭘 해야 하죠?”

수아가 멍하니 되묻자 해밀턴은 빈틈없이 대답했다.

“준후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 준후의 몸을 지켜라. 몇 시간이면 바로 결과가 나올 테니 그때까지 아무도 준후의 빈 육신은 건드리지 못하게 해. 그게 네 일이다.”

약간은 불공평했지만 수아가 워낙 어린 데다 그녀의 힘이 권능 에 의한 것임을 알고는 다른 자들도 불평은 하지 못했다.

준후는 여전히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에게 들어오는 힘과 능력 을 접수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이런 중에 준호와 아라는 말없이 무련의 뒤편으로 걸어가 앉았 다. 아라가 준호의 팔을 잡고 안내했다.

준후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라는 아무 도 몰래 걸어가면서 준후에게 웃으며 윙크를 해 보였다. 순간 준 후도 아주 약간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렸지만, 아라 말고는 아무 도 눈치채지 못했다. 준호와 아라는 사실 준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부가 절대 그럴 리 없어.’

‘준후 오빠가 세계 멸망? 말도 안 되지..

그들은 애당초부터 준후가 연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 어 준호와 아라는 준후가 ‘말세에 임할 자’를 연기한다는 사실을 직접 캐낸 당사자들이었다. 때문에 준후가 정말 그런 짓을 할 사 람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준후의 생각대 로 무엇이든, 어떻게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없이 보조 를 맞추며 따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준호와 아라와 같은 생각이었다. 생전에 퇴마사들을 접하고 교분이 있던 자들은 누구 하나 진정으로 준후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해밀턴이나 로파무드도 이 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전력으로, 심지어는 자기의 치부까지 드 러내고 다시 아하스 페르츠의 위압감을 보여 주는 식으로 준후를 도왔다.

준후도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눈물을 펑펑 쏟 고 싶을 정도로 감동하고 있었다. 허나 그렇더라도 준후는 계속할 생각이었다. 대놓고 협박을 한 셈이지만, 실제 준후가 염두에 둔 것은 다른 곳에 있었으며, 어떻게 하든 죽은 박 신부와 현암, 승희 만이라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실패해서 영혼조차 없어져도 상관없었다. 그 결과로 현세에 어 떤 악영향이 온다고 하더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들만 다시 살려 낼 수 있다면.

준후는 시간을 뒤엎고 섭리를 무시해서라도 그들을 살려 내야 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섭리를 바르고 온건하게 잡는 일이며, 세 상, 아니 우주가 본질적으로는 정의롭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쌓아 온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희생이 라는 최고의 경의로 보답하는 것을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퇴 마사들의 삶과 고통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포기 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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