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1권 16화 – 프랑켄슈타인의 후예 4 : 냉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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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1권 16화 – 프랑켄슈타인의 후예 4 : 냉동고


냉동고

“뭣들 하나, 엉? 이준이는?”

이제 홍 형사는 이 박사라고 하지도 않고 완전히 반말로 말투 를 바꾸었다. 두 명의 형사가 어깨를 움찔하면서 말했다.

“글쎄요. 도망갈 곳도 없을 텐데 이리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 릴 줄은 몰랐습니다.”

“에라, 이 머저리들! 어서 열쇠를 찾아와! 어서!”

형사 하나가 달려 나갔고 홍 형사는 문을 두들기면서 나오라 고 소리를 치다가 안쪽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철문에 귀를 갖 다 댔다. 박 신부도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이곳은 어제 경비원 살해 사건이 발생했던 냉동실 앞이었다.

“아멘…….”

홍 형사가 박 신부를 향해 소리쳤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 박사가 주술인지 뭔지를 쓰기 위해 사람과 동물들을 죽인 겁니까? 영화처럼요? 예?”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박 신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 형사는 다시 문을 당겨 보다가 뜻대로 안 되는지 혀를 차면서 얼굴을 돌렸다.

“그런데 신부님은 사람의 품 안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아셨죠?”

“그 물건은 아주 특이했어요. 주술적이고 어두운 영의 냄새가 배어 나오는…………..”

“주술? 자꾸 주술, 주술 하시는데 저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아무튼 몹시 긴박한 사정이 있는 것 같 아요. 일단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홍 형사가 다른 한 명의 형사에게 지시를 내려 구경을 하고 있 던 사람들을 모두 쫓아 버렸다. 그사이 박 신부는 철문에 귀를 대고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홍 형사가 철문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그 얌전하게 보이는 사람이 사람을 해 치다니……………”

“글쎄요. 이 박사가 경비원을 죽였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정말 살인을 했다면 제가 주술에 대해 물어본 것만으로 이렇게 행동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박신부는 문에 귀를 댄 채로 홍 형사에게 말했다. 홍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이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자신이 한 짓을 그렇게 자백 하는 놈은 저도 못 봤으니까요.”

“예,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박신부가 말을 마치자 아까 밖으로 나갔던 형사가 키 카드 하 나를 들고 들어왔다. 홍 형사가 키 카드를 보고 잠깐 어리둥절해하다 문 옆에 설치된 슬롯에 긋자 문이 웡 하는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조금 열리자 안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들어오지 마! 들어오면 액체 헬륨 통을 열어 버린다! 이건 액 체질소보다 온도가 훨씬 낮은 거야!”

열린 문틈으로 보니 준승은 커다란 소화기 비슷한 압력 용기 를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홍 형사가 놀라 는 사이 박 신부는 홍 형사를 뒤로 잡아당기고 재빨리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준승이 다시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더 가까이 오면 이걸 열어 버릴 거야! 함께 얼어 죽는 거야!”

“조심해요! 저걸 열면………….”

뒤에서 홍 형사가 소리치자 박 신부는 조용히 하라는 듯 한쪽 팔을 들어서 말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홍 형사가 계속해 서 거칠게 외쳤다.

“도대체 왜 그러나? 그런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안 돼! 더 가까이 오지 마!”

박신부가 고개를 가로젓고 나서 준승에게 말했다

“지금 자네는 그 물건을 빼앗길까 봐 그러지? 잡히거나 죄를 뒤집어쓰는 것보다도 그게 더 두려운 거지? 도대체 그 물건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준승이 몸을 떨면서 대답을 하지 않자 박 신부가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해도 그것밖에는 자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어. 자네 는 마음만 먹었다면 밖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리 로 들어왔어. 빠져나갈 길이 없는 구석으로 온 거야. 왜지? 여기 에 뭐가 있나?”

“아………… 아냐! 가까이 오지 마!”

준승이 위협하듯 옆에 있는 책상을 향해 헬륨 통의 밸브를 열 자가스가 슉 하면서 새어 나왔다. 책상 위에 있던 유리 기구들 이 폭발음을 내더니 삽시간에 주위가 얼음덩어리로 변해 버렸 다. 액체 헬륨의 온도가 영하 이백칠십삼 도로 절대 영도에 가깝 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할 줄은 몰라서 박 신 부와 홍형사는 움찔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박신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사람을 해치지 못해. 그럴 사람이 아니야. 마음이 약 해…….”

박신부는 준승이 헬륨가스를 바로 앞쪽에 있는 실험용 짐승 우리를 향해 쏘지 않고 일부러 몸을 돌려 옆에 있는 책상에 대고 쏜 것을,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뭇거리던 눈빛을 보았다. 이런 긴박한 순간조차 동물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 을 리는 없었다. 박 신부는 한숨을 내쉬고는 준승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지 맛! 나가!”

준승이 위협하듯 가스통을 들이댔다. 박 신부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우리 이야기하세. 그러면 될 거야. 자네는 죄가 없어. 그런데 왜 이러지. 응?”

박신부가 보니 가엾게도 준승의 손은 흰 서리로 뒤덮여서 반 은 얼어 버린 것 같았다. 방 안은 잠깐의 헬륨 분사로 인해 삽시 간에 한겨울이 된 것처럼 추웠다.

“그 주술,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알 것 없어! 그만!”

“사연이 있는 것 같군. 우리 천천히 이야기하세. 천천히, 응?” 

“아! 나는…………….”

준승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박 신부의 판단으로 준승은 그저 착하고 심약하기만 한 사람 같았다. 지금 준승이 취 한 일련의 행동들은 조금이라도 앞뒤를 생각했다면 취할 수 없 는 행동들이었다. 준승은 오래전부터 남몰래 많은 고민을 해 왔 고, 지금 그것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박신부가 그렇게 여긴 데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었다. 아까 이 앞을 지나가다 느꼈던 알 수 없는 어두운 기운・・・・・・ . 그 기운은 냉동실 안의 냉동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냉동 고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준승이라고 들었고…… 준승 처럼 심약한 사람이 누가 보아도 표가 날 정도로 뻔하기는 하 지만ᅳ살인 누명까지 쓰게 될지 모르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무 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런 판단을 뒷받침해 주었다. 

“자네, 저 냉동고에 뭔가를 감추어 놓았지? 그건 자네가 가진 주술적인 물건하고 깊은 연관이 있는 걸 거야. 그렇지?”

“그건…….”

“자네가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야. 허 나 그러한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어. 또 자네가 알고 있는 그 주술과도 말야. 그렇지 않은가?”

“아!”

준승은 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저렇게 극단적으로 몰린 상태가 더더욱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홍 형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신부님.”

뒤에서 홍 형사가 속삭였다. 박 신부는 홍 형사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슬픈 얼굴로 상상외의 말을 했다.

“가엾은 사람………….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다른 말보다도 이 말 한마디가 준승을 허물어뜨린 것 같았다. 준승은 비틀거리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물기 있는 준승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몇 마디씩 새어나왔다.

“으흐흐. 난…… 어쩔 수 없이……………. 윤희….. 흐흑.”

‘윤희?’

박신부가 짚이는 것이 있어 준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느 닷없이 뒤에서 홍 형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신부님, 피해요!”

홍형사는 박 신부를 밀치고는 준승을 덮쳤다. 놀란 준승이 고 개를 들기도 전에 홍 형사는 준승의 손에 들려 있던 압력 용기를 손으로 내리쳐서 떨어뜨렸다. 둘은 그 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 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홍 형사! 이게 무슨!”

박 신부의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이미 준승과 홍 형사는 한데 뒤엉켜서 싸우는 중이었다. 박 신부는 바닥에 떨어진 압력 용기 를 발로 차서 한쪽으로 굴려 버린 다음, 둘을 떼어 놓을 생각으 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때 뭔가가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준승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안돼!”

폭탄이 터지듯 엄청나게 강한 어두운 영기가 방 안에 가득 퍼 졌다. 박 신부는 준승의 품에서 떨어진 물건을 재빨리 주시했다. 작고 검은 구슬이었다. 그러나 영기는 구슬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영기가 느껴지는 곳은 바로……

갑자기 어디선가 쇠를 쥐어짜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냉동실 한쪽에 위치한 거대한 냉동고였다. 홍 형사가 기겁을 하 면서 준승에게서 떨어져 나와 뒤로 물러섰고, 준승도 고함을 지 르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윤희, 안 돼!”

의외의 사태에 놀라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선 박 신부 몸에서 본 능적으로 강한 기도력이 흘러나와 둥근 오라의 막이 삽시간에 펼쳐졌다.

다시 한번 영하 백사십 도의 냉동고 안에서 끼잉 하는 쇳소리 가 흘러나왔고, 철커덩 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안 돼! 지금 냉동고의 문을 열면……….

“냉동고? 아니 그러면 저 안에 누가 있단 말인가?”

홍 형사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갑 자기 냉동고의 안쪽에서 폭발음이 나면서 문이 열렸다. 동시에 차가운 냉기가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신부가 재빨리 기도력으로 냉동고 문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중간에서 홍 형사가 머뭇거리는 바람에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 었다. 박 신부는 할 수 없이 홍 형사를 옆으로 걷어차버린 다음 재차 힘을 모아 냉동고 문을 닫기 위해 기도력을 발했다. 냉동고 의 안쪽에서도 뭔가가 쿵쾅거리고 아우성을 치면서 문을 밖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냉동고의 문은 워낙 두껍게 만들어져 있어서 극저온의 냉기 에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지만, 지금은 안에서 뭔가가 밀어 대 는 통에 벌어진 틈 사이로 냉기가 흘러나와 문 주위에는 삽시간 에 하얀 서리가 맺혔다. 박 신부는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문을 닫 으려고 했다. 그때 냉동고의 문틈을 비집고 대리석처럼 핏기 없 는 하얀 손이 쑥 나오자 박 신부는 깜짝 놀라 힘을 더 가하려던 것을 멈췄다. 질겁한 박 신부가 홍 형사와 준승을 한꺼번에 뒤로 밀어내고는 차가운 냉기를 피해서 뒷걸음쳐 방 밖으로 빠져나가 려고 했다.

그때 냉동고의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하얀 손과 하얀 팔이, 수 의를 입고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문 뒤 에서 서서히 바깥으로 몸을 드러냈다.

영하 백사십 도로 유지되고 있는 냉동고 안에서 사람의 형체 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아무리 박 신부라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 니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몰골이었다. 맨 처음 냉동고에서 나올 때에는 그냥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시간 이 지나면서 공기 중의 수증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온몸에 하얗 게 서리가 맺혔고 서리는 순식간에 얼음덩어리로 변해 갔다. 여자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냉동고를 빠져나왔다. 몸에 얼음 이 맺혀서인지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우직우직 하는 소리가 났다.

“괴, 괴물! 저게 뭐야!”

홍 형사가 신음을 내뱉었고, 박 신부도 긴장하여 가쁜 숨을 몰 아쉬었다. 그러면서도 박 신부는 기도력을 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일단 물러서요! 어서!”

박 신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준승은 흐느끼며 여자에게 다가 서려고 했다. 박 신부는 재빨리 준승의 팔을 잡아 뒤로 끌어당기 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자네가 말하던 윤희라는 여잔가?”

“아! 윤희, 윤희 넌………….”

준승이 더듬거리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얼음덩어리가 된 윤 희가 우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한쪽 팔을 천천히 휘둘렀다. 그러자 오싹할 정도의 찬바람이 박 신부에게로 날아들었다. 박 신부는 기도력을 발휘해서 일단 찬바람을 오라로 막긴 했지만, 차가운 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가자 몸서리가 처졌다.

윤희라는 여자가 내뿜는 차가운 기운에는 주술의 힘이 섞여 있었다. 윤희의 몸이 차갑게 보관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휘두를 때 일어나는 바람은 극저온의 냉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두 가지 기운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오라력을 사용해도 버티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럭저럭 박 신부가 찬 기운을 막아 내자 윤희는 입을 벌려 훅 하고 숨을 내쉬었다. 처음 입에서 바람이 나올 때에는 그냥 투명 했지만 도중에 수증기가 엉겨서인지 흰색으로 바뀌어, 얼이 빠 져서 머뭇거리고 있는 홍 형사에게로 날아들었다. 박 신부가 재 빠른 동작으로 기도력을 발해 홍 형사에게 날아가는 입김을 비 껴가게 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윤희의 입김은 삽시간에 홍 형사 의 몸에 닿았다. 그녀의 차가운 입김에 휩쓸린 홍 형사의 헐렁한 윗도리가 하얗게 얼어붙어 버렸다. 놀란 홍 형사가 비명을 지르 면서 움직이려 하자 윗도리가 우지직 소리를 내더니 이내 부서 져 버렸다. 액체 질소 증기를 쏘인 꽃잎이 얼어서 바삭바삭 부스 러져 버리는 것처럼.

박신부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홍 형사와 넋이 나간 준승이 다 칠까 봐 둘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한시라도 빨리 뒤돌아 도망치 고 싶었지만 등을 보였다가는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준승이 무어 라 소리를 질러 댔지만 알아들을 경황도 없었다.

이제 완연한 얼음 괴물이 되어 버린 윤희가 내뿜는 하얀 입김 을 홍 형사가 옆에 있던 철제 쟁반을 들어서 막았다. 쟁반을 든 손이 너무 차가운지 홍 형사는 이크 하며 하얗게 얼어 버린 쟁반 을 윤희에게 내던졌으나, 꽁꽁 얼어 붙은 윤희의 몸에 닿은 쟁반 은 쨍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떨어져 버렸다. 뒤쪽에서 형사 한 명이 총을 들고 달려들자 준승이 크게 소리를 치면서 형사의 앞을 막았다.

“안 돼요! 쏘지 말아요!”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듯 윤희는 준승의 등에 차가운 바람을 내뱉었다. 박 신부가 재빠른 동작으로 준승과 총 을 든 형사 두 사람을 밀어냈다. 비록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 어도 아직 사정도 잘 모르고서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는 윤희를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박 신부는 판단했다. 

“일단 모두 나가요! 나가서 문을 잠가요!”

박신부가 외치자 반쯤 얼이 빠져 있던 홍 형사와 또 다른 형 사는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박 신부는 나가지 않으려고 버둥거 리는 준승을 꽉 잡고서 간신히 윤희가 토해 내는 바람을 피해 바 깥으로 나갔다.

밖에는 연구소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박 신부는 윤희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 아 다급하게 소리쳤다.

“문! 어서 문을!”

홍 형사가 문을 잠그려고 허둥대며 키 카드를 찾는 사이에 윤 희가 우직우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온몸이 꽁꽁 얼어 붙어 얼음으로 뒤덮여 있으면서도 움직임은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 은 한시가 급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윤희가 문틈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다.

박 신부는 이를 악물면서 베케트의 십자가를 꺼내 손에 쥐고는 기도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서서히 닫혀 가는 문 앞에 버티고 섰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얼음덩어리로 변한 윤희의 얼굴이 천천히 박 신부 앞으로 다가들었다. 누군가 문 앞을 막고 서 있 는 것을 본 윤희가 입을 벌려 힘껏 바람을 내뿜자, 박 신부도 손 에 꼭 쥔 베케트의 십자가에 기도력을 합쳐서 오라의 구체를 윤 희에게 내쏘았다. 물리력이 깃든 오라의 구체들에 밀려서 우당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윤희의 뻣뻣한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갑작스 런 냉기의 압력에 박 신부의 몸도 휘청거렸다. 눈앞이 깜깜해지 면서 몸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부님!”

홍 형사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철제 자동문이 스르르 닫혔고, 박 신부는 힘에 겨웠는지 헉헉거리면서 뒤로 물 러섰다. 안경에 하얗게 서리가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박신부가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누가 박 신부 의 안경을 휙 벗겨 버렸다. 어렴풋하게 주위의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윤곽이 희미해 안경을 벗겨 준 사람이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박 신부는 익숙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아 하는 신 음 소리를 냈다. 박 신부의 안경을 벗겨 준 사람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박 신부의 절친한 친구 장 박사였다.

“이봐, 가짜 신부, 괜찮은가?”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 박사가 손으로 대강 문질러 닦아준 안경을 받아 끼면서 중얼거렸다.

“지독하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지금까지 일어난 사태로 보아 박 신부는 대강 짐작이 갔다. 준 승이 보였던 태도, 그가 썼던 주술. 그리고 준승이 애타게 부르 던 저 여자, 윤희.

홍 형사는 여전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박 신부를 바라보았 다. 웬만한 일은 다 겪어 본 베테랑 홍 형사였지만 눈앞에서 벌 어지고 있는 일은 전혀 듣지도 겪지도 못한 일이었고, 도무지 이 해할 수도 없었다. 꽁꽁 얼어 버린 냉동 인간이 살아 있는 사람 처럼 버젓이 움직이다니, 세상에.

“이제 어떻게 하죠, 신부님? 저 괴물은…….”

“문은? 혹시 안에서는 문을 자유로이 열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평소에는 안쪽에서 자유로이 열리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만 지금은 완전히 잠갔습니다. 전자자물쇠라 기능이 많군요. 그 러나저러나 저 괴물은 어떻게………….”

일단 문이 완전히 잠겼다고 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박 신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전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잠그지 않 았고, 안쪽에서 문이 자유로이 열렸기 때문에 여자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일을 저질렀던 것 같았다. 냉동고 문도 잠그는 형식의 것은 아니었고. 하긴 영하 백사십 도라는데 잠겨 있지 않아도 누가 그런 문을 열 생각이나 했겠는가. 박 신부는 여러 가지 생 각으로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잠깐 생각을 해 봅시다. 서두르지 말고.”

“그냥 총으로 갈겨 버리면 안 될까요? 이건 도대체가 말이 되 는 일이어야지….”

“안 돼요!”

홍 형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준승 이었다. 박 신부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딱 부러지게 말했다. 

“자네 잠시만…………… 나와 이야기를 나누세.”

그런 다음 박 신부는 고개를 돌려 홍 형사에게 말했다 

“사정을 좀 더 알아보고 난 연후에 조치를 취하도록 합시다. 이번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니만큼 홍 형사님보다는 제가 처리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 오.”

박신부가 잠시만 떨어져 있어 달라고 눈짓을 했지만 홍 형사 는 눈치 없이 계속 박 신부를 채근했다.

“설명 좀 해 주십시오. 저 괴물의 정체가 뭔지 신부님은 알고 계십니까? 신부님의 몸에서도 무슨 이상한 빛이 나가던데 그건 또 뭡니까? 당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이건 도대체 정신이 하나도…………….

큰 소리로 흥분해서 떠들어 대는 홍 형사의 말을 가로막은 건 박신부 옆에 서 있던 장 박사였다.

“일단 홍 형사님은 저쪽으로 가 계세요. 어서요!”

안 그래도 냉동 인간을 보고 놀란 홍 형사는 냉랭한 얼굴의 장 박사가 굳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겁을 먹은 듯 순순히 물러섰 다. 박 신부는 문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안쪽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박신 부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장 박 사가 박 신부에게 물었다.

“설명을 해 주게나. 언뜻 보긴 했네만, 저 괴물의 정체가 뭔 가? 그리고 자네 몸에도 뭔가가 빛나던데 그건…………….” “아……”

박신부는 짜증이 나는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말했다.

“자네도 저만치 떨어져 있게나. 내 여기 이 박사와 할 이야기 가 있네.”

“난 자네를 돕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장 박사는 투덜거리면서도 홍 형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 음을 옮겼다. 장 박사는 이 혼란한 와중에도 기괴한 주검을 주로 다루는 직업 탓인지 얼음덩어리로 변한 윤희가 움직이는 것에 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자 박 신부는 아직 흐느끼고 있는 준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 이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겠나?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네.”

“아아…………… 윤희는…………….”

“자자, 일단 일은 벌어졌네. 그리고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열 쇠를 쥔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전 이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준승은 이런 사악한 일을 고의로 꾸밀 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얼음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 준승이라 고 해도, 그렇게 된 윤희가 여러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박신부는 준승이 나쁜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도 박 신부는 가엾고 애처롭게만 보이는 준승을 위해 뭔가를 해 주고 싶다는 심정이지, 괴물을 해치우겠다는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 다. 그런 면이 박 신부의 약점이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박 신부의 두드러진 장점일 수도 있었다.

박신부가 어린아이를 달래듯 준승의 어깨를 토닥거리자 준 승은 박 신부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흐느 꼈다.

“신부님, 윤희를………… 미워하지 마세요. 모두가 제 잘못………….”

“그래그래, 미워하지 않아. 그러니 염려 말게.”

“전 그녀를 되살리고 싶어서………….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 보게. 윤희가 누구지? 자네와는 어떤 관계인가? 애인?”

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구나 싶어서 박 신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윤희는 암에 걸렸었어요. 너무 늦게 알게 돼서 손쓸 사이도 없이…………. 그래서 저는…………….”

“그래서 자네가 그녀를 냉동 인간으로 만들었나?”

준승의 목소리는 흑흑거리는 흐느낌과 섞여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윤희는 제게 모든 것을 맡겼지만 실패…………….”

“실패? 뭘 실패했다는 말인가? 냉동 인간으로 만드는 것, 아 니면 윤희를 다시 살려내는 것?”

“실험 대상으로 되어 있던 말의 컨테이너에 말 대신 윤희를….”

“말?”

“사람은 실험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윤희를 살리기 위해서 동물을 실험했던 것과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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