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2권 9화 –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12 : 에필로그 (2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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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2권 9화 –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12 : 에필로그


에필로그

모든 것은 잘 마무리되었다. 아라만 빼고 다들 의식을 잃고 부 상당한 상태였지만, 뒤늦게 별장을 찾아온 일본 경찰에 의해 모 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간신히 찾아온 백호에 의해 퇴마사 일 행은 전세기 편으로 한국으로 옮겨져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후 송되었다.

백호는 이번 일로 일행에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신이 부 탁해서 일본까지 간 일행이 모두 중상을 입자 몹시도 난감하고 미안한 모양이었다. 백호는 여러분 덕분에 국가에 득이 되는 일 이 생겼으니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왔다. 도대체 이런 일이 국가에 무슨 득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스즈키가 전직 고위 각료였던 터라 모종의 협상이 있었던 것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난번 와불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윗사람의 부탁 이라며 정적의 마음을 투시해 달라고 부탁받은 일 때문에 평소 백호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승희는 백호와 대판 싸우기까지 했고, 현암도 한 번만 더 그런 목적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인다면 절교해 버리겠다고까지 난리를 쳤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은 돌 이킬 수 없었다.

백호가 전해 준 소식에 의하면 스즈키는 곧 충격에서 회복되 었고 오키에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스즈키는 과거 다카다와 묘렌을 암살한 일을 경찰에 스스로 고하고 자수했다. 칠인방과 묘렌과의 일은 더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겠지만 퇴마사들은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라는 그때 받은 충격 때문 에 요양을 해야 했다. 준후는 아라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 웠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준후는 아라에게 묘하게 생긴 구 슬 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준후가 그것을 어디서 얻었는지 다 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실은 군다리명왕이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승희의 총상은 염려했던 것보다는 가벼운 편이었고, 연희도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나마 준후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줄였 기 때문에 그래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다음으로는 현암이 의식을 차렸다.

승희는 곧 예의 쾌활한 성격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준후는 이번 일로 꽤 큰 충격을 받았는지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과 달리 어쩐지 침울해지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연희 와 승희는 그런 준후를 몹시 안쓰러워했지만, 현암은 준후가 언 젠가는 스스로 마음의 시련들을 이겨 낼 것이라고 애써 믿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 신부가 죽었다 살아난 것을 알 고는 모두 놀랐다. 박 신부는 가장 위중한 상태에 있었기에 현암 이 정신이 든 후에도 사흘이나 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 났다. 의식을 차린 후 다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어떻게 된 것이 냐고 묻는 말에 박 신부는 이렇게 짤막하게 답했다.

“나는 그분을 만났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어. 그분은 장차 당신이 오실 길을 예비하라고 내게 이르셨다.”

“그분이요? 그리고 그분이 오실 길이라뇨?”

현암은 더 물었지만 박 신부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승희가 마지막 순간들을 말해 달라고 조르자 박신 부가 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다시 정신이 드는 순간 누군가가, 아니 틀림없이 다카다 였을 거야. 하여간 그 사람이 내게 말해 주더구나. 그 앰플 병에 는 자신의 체액이 들어 있어 오키에에게 집어 던지면 그녀의 위 장술이 들통 날 것이라고 말야. 나중에 듣고 보니 준후에게도 이야기했던 것 같더라만.”

“체액이요?”

“그래, 다카다의 체액이지. 야마모토가 다카다의 건강 진단을 위해 뽑았던 혈액 샘플에서 나온 것인지 어땠는지 그것까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그 체액이 어떻게 아라와 오키에를 구분하게 해준겁니까?”

“다카다는 번민했지. 다카다의 영은 그리 사악한 게 아니었어. 물론 육인방에 대한 복수심은 있었지만 묘렌이 그렇게까지 악한 일들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계속 번민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내게 가르쳐 준 것이지. 즉 자신의 체액에 기력을 넣어 표가 나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게 아니면 다카다와 묘렌 간에는 무슨 인연이나 혈연의 끈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이 상한 현상을 일으켰는지도 모르지. 그것까지야 난들 어찌 알 수 있겠나.”

“그런데 언제부터 번민했을까요? 그 앰플 병을 신부님께 준 그 순간 이미 다카다의 영은 오키에, 아니 묘렌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글쎄? 그것은 어쩌면 일본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 지. 우리가 정말로 묘렌을 타도할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 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그런 힘이 있다면 물론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다카다는 반드시 교주를 배신했다고 볼 수 없 지. 결과가 뻔한데…….”

그다음 일행은 묘렌의 정체와 묘렌이 목적으로 했던 것이 무 엇이었는지에 대해 말들을 나눴고, 박 신부는 묘렌에게서 들은 「해동감결」의 내용 중에 세상을 흔드는 힘의 예고가 씌어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는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힘의 노예가 되어서 악행을 불사하는 사람들이나 악령들을 너무 나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대강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묘렌의 정체에 대해서만은 누구도 자신 있 게 답변을 내지 못했다. 사실 그편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흠! 이번 일은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도 피해가 컸구요.” 

승희가 깁스를 하고 있는 어깨가 답답한 듯 말했다. 연희와 현 암이 박 신부를 바라보자 승희도 곧 실언을 한 것을 알고는 입을 다물었다. 박 신부는 가슴의 상처보다도 다리의 상처가 더 깊었 다. 어쩌면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의사로부 터 들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박 신부는 저만치에서 우울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준후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박 신부의 시선이 준후에게 가 있는 것을 보고는 현암이 나직하게 말했다. 

“준후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더군요. 그리고 이미 알 건 다 알 고 있었구요.”

박 신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희는 준후가 가엾다고 말했고, 연희는 준후가 다시 웃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자 박 신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미 준후는 웃고 있는걸? 허허허.”

모두들 고개를 돌려 보니 준후가 창밖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 고 있었다. 창밖에서 아라가 손을 흔들면서 달려오는 모습이 어 렴풋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승희는 허탈한 듯이 웃었다. 

“원 참, 조그마한 것들이…………….”

박신부는 준후가 아라를 자꾸 찾는 것이 과연 스스로의 선택 인지 아니면 묘렌이 쓴 어떤 술수의 여력이 아직도 남아서 그런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나, 여전히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삭막한 생활 중에 그런 기쁨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 까 싶기도 했다. 사실 준후나 아라나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승 희의 생각이 좀 지나친 것이 아닐까 하고 박 신부는 입맛을 다시 며 씁쓸히 웃었다. 연희는 준후가 뇌전으로 자신을 친 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여겨 준후를 진정으로 가여워했다.

그러나 현암은 다른 의미에서 웃음을 지었다. 준후도 이젠 많 이 컸고, 현암 자신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준후도 많은 고민과 스스로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 가야 할 것이었다.

모두 준후를 믿었다.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말은 하지 않았지 만, 준후가 조금 방황하더라도 예전의 선량하고 티 없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그러면서 준후의 키가 그 짧은 사이에 부쩍 큰 것 같다고 모두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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