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3권 13화 – 홍수 10 :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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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3권 13화 – 홍수 10 :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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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한국에서는 백호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호 의 앞에는 어떤 사람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뒤로 돌아앉 아 있었다. 의자 위쪽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바 라보는 백호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들은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아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나도 마음이 아프네. 내가 무슨 목석인 줄 아는가? 그러나 어 쩔 수 없단 말일세.”

“설령 외교적인 압력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비공개 적인 일 아닙니까? 어차피 그쪽에서도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는 내용이고요.”

“그렇지 않아. 절대로! 자네는 아직 너무 젊어.”

백호의 이마에는 힘줄이 솟았고 무섭게 긴장된 눈은 타는 듯 이 빛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꼭 쥐고 있는 주먹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그들이 마지막으로 행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구? 그럴 수 없다니? 그럴 수 있네!”

“안됩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그 사람은 거칠게 말하면서 뒤로 의자를 획 돌렸다. 잠시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감돌았다. 그 사람은 거칠게 담

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인터폰을 향해 소리쳤다.

“김 비서관, 백 검사 바래다 드리게!”

“아…….”

백호는 아연한 듯, 얼굴색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직 돌아가지 않습니다. 김 비서관님.”

백호가 빠르게 말을 내뱉자 방으로 들어오던 김 비서관이 잠 시 머뭇하면서 의자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김 비서관이 문을 닫자 백호는 책상 모서 리를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그들은 우리 를 위해 수많은 일을 해 주었습니다. 또 그들은 우리나라의 국민 입니다!”

“잘 알고 있네, 이 사람아.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게나. 그들은 이제 국제적인 위험인물들일세.”

“저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믿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또 일부는 조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는 있나?”

“나도 목석은 아니네. 그러나 한번 내려진 결정을 뒤엎을 수는 없어. 우리 정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자국의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까?”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닐세!”

“그러면 뭡니까?”

“그들은 위험한 존재들이야. 너무도, 너무도 말일세.”

“대통령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장관은요?”

“일을 확대시키지 말게. 더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네. 그분들은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셔. 공연히 말 꺼냈다 가는 미친 사람 취급받을 걸세.”

“그건 살인 행위입니다!”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네.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한두 나라의 입장이 아니네. 모든 나라에서 너무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그러나 그래도…..”

“자네 내 말 잘 듣게. 그들의 위험성은 핵무기 이상이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판 단과 소신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자들이야. 지금까지는 그들이 우리의 말을 잘 들어주었지. 그러나 만일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 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이 가진 힘과 능력을 가지고 우리한테 칼끝을 돌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절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절대로…..”

“자네는 지금 대단히 감정적이야. 이미 늦었네. 자네, 이라크 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려 들다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알지? 전쟁 까지도 가능하네. 하물며 그들은 핵무기 이상의 존재들이네.”

“아아…………….”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아무런 무기를 쓰지 않고도 마음대로 사 람을 없앨 수도 있고, 또 건물을 날려 버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자들…………. 그건 금지된 힘이야. 어떤 보안 장치도, 어떤 경호도 소용없게 되네. 이제 다른 나라에서도 알게 되었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나라도 그것을 절대 용납 하지 못할걸세.”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의 힘만으로는 절 대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네. 그렇다고 그들이 과연 피를 부르는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본 바로 그들은 절대 그렇지 못하네. 차라리 그들이 요인 암살이나 정보 수집 같은 일에 그들의 힘을 써 준다면 그것을 믿고서라도 어떻게든 그들을 지 켜볼 수도 있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러지 않을 거야. 그렇다 면 뭔가? 결과가 뻔한데 어떻게 이 이상 모험을 할 수가 있나?”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우리 책임이 큽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할 수밖에!”

그 사람은 단호하고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의자를 돌려 백호에 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다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고, 한참 동 안 백호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자신은 그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네. 우리 손으로 그들 을 넘겨주기는 싫으니까. 그들은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고 들었네. 그렇다면 아마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나도 이런 나 자신이 밉다네.”

백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한참이나 고개를 떨구고 있었 다. 방 안에는 침묵과 함께 담배 연기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 위층으로 머리를 내민 연희의 눈에 비친 것은 숨을 몰아쉬 고 있는 현암의 모습이었고,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현암 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둥둥 떠 있는 한 사람의 노인과 그 뒤에 있는 마스터였다. 마스터는 양팔을 벌려 하늘로 향하게 한 채 현암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주술력으로 노인의 몸을 허공에 띄워 현암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후후후. 가까이 오면 이 노인은 저승 구경을 조금 일찍 하게 될 거다. 저만치 물러서라!”

마스터는 복화술로 현암을 협박하고 있었다. 현암은 입술을 깨문 채 두어 번 앞으로 다가서려는 듯한 몸짓을 해 보였지만 그 때마다 마스터는 노인의 몸뚱이로 현암의 앞을 가로막았다. 더 군다나 노인은 소리도 지르지 못했고 몸이 휘둘릴 때마다 고통 에 찬 표정을 지었다. 현암은 저런 상황이라면 행여 달려들다가 노인을 다치게 할지도 몰랐고, 또 피한다 해도 마스터처럼 독한 자라면 저 노인 정도는 얼마든지 해치워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주저하는 중이었다.

현암은 인상을 쓰면서 조용히 공력을 오른손에 모았다. 서서 히 오른손으로 공력이 모여들면서 ‘탄(彈)’자 결의 빛이 현암의 손끝에 맺혀 갔다. 마스터는 긴장한 듯, 노인의 몸을 다시 위협 적으로 흔들어 보였다. 마스터가 살아 있을 때의 능력이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죽어서 혼만 남은 터에 저 정도의 능력 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연희는 또 다른 상념에 잠겼다. 마스터가 지금 노인의 몸을 허 공에 띄운 것은 전에 케인이나 리가 염체를 물체에 붙여서 그 물체를 조종하는 것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연희는 상황을 주시했다. 현암은 꼼짝도 하지 않고 언제든지 내쏜다는 듯한 자세로 오른손을 뒤로 돌리고 있었다. 현암의 오 른손 중지 끝에서는 환한 빛의 구체가 거의 완연하게 모습을 드 러내고 있었고, 마스터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노인의 몸으로 자신 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스터는 조금씩 방향을 틀어 서 서히 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바늘 끝 하나 들 어갈 틈이 없을 만큼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러나 상대에게 신경 을 집중한 탓인지 현암도 마스터도 구석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 는 연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연희는 심호흡을 하고는 서서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섰다. 마 스터의 뒤쪽으로 돌아가려는 의도였다.

마스터는 조금씩 방향을 돌려 벽에 기댄 채 문 쪽으로 발을 옮 기고 있었고 현암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런 마스터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마스터는 현암의 손끝에 맺혀 있는 ‘탄’ 자 결의 공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챈 듯, 정적을 깨고 한 마디 던졌다.

“그걸로 날 맞힐 셈인가? 그래도 나는 죽지 않네. 나는 이미 죽은 몸이고 죽는 건 이 꼬마 앙그라일 뿐이야. 잊었나?”

“만일 아이가 죽게 되면 내가 대신 죄 갚음을 할 것이다. 그러 나 너는 절대 용서 못해!”

현암은 예전에 성난큰곰과의 일전에서 ‘탄’ 자결로 그의 몸에 서 나왔던 블랙서클을 맞혀 소멸시켰던 것을 기억해 냈다. ‘탄’ 자결은 물리적으로도 물론 강했지만 영까지 흡수했던 막강한 블랙서클의 검은 원마저도 단 일격에 소멸시킬 정도로, 특히 주 술력에 대해서는 막대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의 위 력이니 마스터의 혼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현암 은 정말로 앙그라를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다. 현암은 속으로 다 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수련한 ‘탄’ 자결의 응 용력을 발휘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마스터의 뒤쪽에서 연희가 나타나자 현암 은 깜짝 놀랐고, 인기척을 느낀 마스터도 고개를 돌렸다. 그 순 간, 현암이 반사적으로 월향검을 내쏘려고 왼팔을 들었으나 월 향검은 기력이 쇠진했는지 날아가지 않았다.

‘아차!’

그 짧은 틈 사이에 마스터는 주술을 운용하여 노인의 몸을 현 암에게 집어 던지고는 순간적으로 뒤로 돌았다. 연희가 막대기 로 마스터를 후려치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그보다 먼저 마스터 가 소매를 휘두르자 가느다란 줄이 달린 철구가 연희를 향해 날 아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그 철구는 연희가 내려치려던 막대기 를 맞히고는 튕겨 나갔고, 막대기가 부러지면서 연희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와 동시에 마스터가 책상에 놓여 있던 화로를 손으로 치자 그 화로는 허공을 날아 빠른 속도로 현암에게로 날아들었다.

‘탄’ 자결을 운용하고 있어서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었던 현 암은 자기 앞으로 날아온 노인을 급한 나머지 왼손으로 받아 내 려 했다. 그러나 날아오는 그 힘은 현암의 왼팔만으로 버티기에 는 역부족이었다. 노인과 현암이 같이 바닥에 쓰러져 나뒹구는 데 마스터가 날려 보낸 화로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위기를 느낀 현암이 오른손에 모아두었던 구체를 재빨리 퉁겨 냈다.

마스터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연희에게 다시 철구를 내쏘 려고 자세를 취하는데, 허공에서 ‘탄’ 자결에 적중된 화로가 폭발 하듯 산산조각나면서 화로의 쇳조각과 안에 들었던 불씨며 재가 사방에 어지럽게 날렸다. 연희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뒤로 쓰러졌고 마스터도 휘청거리면서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몸을 일으킨 현암이 월향검을 빼 들려고 하자 노인의 몸이 허 공을 날아 다시 마스터의 앞을 막아섰다. 현암이 주춤거리는 사 이 이번에는 마스터가 노인의 몸을 현암의 왼쪽으로 던져 버렸 다. 마스터의 오른쪽에는 문이 있었고 왼쪽은 벽이었는데, 거기 에는 약재를 널어놓기 위해 박은 큰못들이 삐죽하게 잔뜩 나와 있었다. 그런 다음 마스터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현암은 순 간적으로 갈등했다. 마스터의 의도는 간단했다. 마스터는 현암 이 노인을 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노인을 큰못이 박혀 있는 벽 쪽으로 집어 던진 것이다. 현암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현암은 기합성을 내면서 노인의 몸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자신 의 몸을 날렸다. 그러나 ‘탄’ 자결을 쓰느라 공력을 소진한 탓에 몸놀림이 빠르지 못해 자칫하면 노인의 머리가 큰못에 박힐 판 이었다. 할 수 없이 현암은 오른손에 남아 있던 공력을 모두 끌 어모아 허공에서 노인의 다리를 잡고 냅다 끌어당겼다. 노인의 몸이 허공에서 주춤하더니 큰못 바로 아래의 벽에 등을 부딪혔 고, 현암도 날아가던 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벽에 처박혀 버렸다. 그사이 마스터는 재빨리 문을 빠져나가 도망쳤다.

저쪽에선 연희가 그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까 철구에 얻어맞아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난데다가 화로의 재 부스 러기들을 뒤집어써서 연희의 몰골은 영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넘어질 때에 발목까지 접질려 마스터가 도망치는 것을 빤 히 보면서도 쫓아갈 수가 없었다.

“현암 씨! 괜찮아요?”

현암은 공력도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호되게 벽에 부딪혀 정 신이 흐릿한 상태에서도 땅에 떨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튕 겨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연희는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설 레설레 흔들었다.

‘철골(骨)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연희는 절뚝거리면서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몹시 아픈 듯 신음 소리를 내면서 꿈틀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노인 의 등에는 붉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어느 틈에 노인의 등에다 이런 부적을 붙였구나. 그래서 마음 대로 조종한 거였군.’

연희는 그 부적을 떼려고 오른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 부 적은 파팟 하고 불꽃을 튀기면서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었다. 연희는 놀라서 주춤하다가 이윽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 신의 손에 준후가 심어 놓았던 부적의 힘이 그 부적과 충돌한 것 같았다.

연희는 노인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 노인은 험한 꼴을 당한 사람답지 않게 매우 침착해 보였으며, 고통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흐릿한 미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아가씨, 고맙소이다. 정말 고마워요. 아까 그 젊은이와는 동 향이오?”

“네.”

“역시 짐작대로군. 헌데 말투로 보아 외국에서 오신 것 같은 데?”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 아이는 도대체 뭐요? 외국 아이 같던데? 세상에 아이가 도술을 다 부릴 줄 알다니…………. 그러나 재주는 좋을지 몰라도 버릇은 형편없는 놈이로군.”

연희는 단순히 버릇없는 아이가 아니라 어르신보다도 나이를 두 배는 더 먹은 괴물 같은 작자의 영혼이 조종하는 아이라고 말 하려다 꿀꺽 삼켰다. 노인은 곤란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연희 를 쓱 보면서 말했다.

“드러내 놓고 일을 하시는 분들은 아닌 모양이구려. 너무 걱정 할 것은 없소.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할 테니. 되었소?”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 쪽에서 해야지. 그 청년이 아니었으면 내 머리는 이미 구멍이 났을 거고 저기 말리던 약재도 다 써먹지 못하고 가 버렸을 게야.”

“죄송합니다. 공연히 소란을 일으켜서……………”

“아니오, 아니야. 보아하니 쫓고 쫓기는 것 같던데…………. 자네 들이 일부러 그 꼬마를 여기로 몰고 오지는 않았을 테니 자네들 잘못은 없소.”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연희는 혹시 마스터와 짠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면 이렇게 목숨을 버릴 정도의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을 리가 없 었다.

“많이 놀라셨지요?”

“그렇다오. 그러나저러나 그 녀석, 왜 많고 많은 집을 놓아두고 이 화씨 약재상에 뛰어들 건 뭐야? 하지만 염려 마시오. 내 나이쯤 되면 믿지 못할 일을 보고도 담담해지는 법이니까.”

노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가만히 연희의 다리를 보더니 쓱 손 을 뻗어 연희의 발목께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연희가 무의 식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데 접질린 발목에서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 감사합니다!”

“뭘, 허허허. 그냥 잔재주일 뿐이오. 오히려 고마워할 건 나라 오. 청년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나를 구해 주지 않았소? 그 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꼬마도 놀랍지만 정말 놀 라운 건 그 청년이구려. 전설상의 무림 고수들이나 그런 지풍(指 風)을 날릴 수 있을까?”

노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희는 말을 붙일 분위기가 아니어서 가만히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잠시 후에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해. 그토록 가공할 공력이 있는데 아까는 왜 내 몸 하나 받아 내지 못하고 힘없이 깔려 버렸는지……………. 오른손의 지풍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는데…”

노인은 연희에게로 힐끗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아까 보니 그 청년의 공력이 대단한 것 같던데, 왜 오른팔로만 공력을 쓰는 거요?”

노인이 갑자기 그렇게 묻자 연희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세상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세세한 면까지 관찰 을 하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면서 연희는 노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잘 모릅니다만, 그분의 공력은…………”

“잠깐! 그 청년 이름이 뭐요?”

“현암, 이현암이라고 합니다.”

“음, 알았소. 하려던 말을 계속해 보시오.”

“예, 현암 씨의 공력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남이 넣어 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테지. 그럴 게야. 저 나이에 저런 심한 공력을 연성할 수는 없지. 그런데 왜 오른팔만 사용하는 것이오?”

“공력이 오른팔로밖에 돌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원래 그랬는가, 아니면 주화입마 되어서 그런 것인가?”

“원래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이 혀를 쯧쯧 차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이 준 공력을 그대로 원활하게 운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니지. 지금 저만큼 이용하는 것만도 내 보기에 아마 십여 년은 수련을 했을 것이오. 그런데 원래 그렇다면 온몸에 고루 공력이 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저 청년의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기 때문일 거요. 그렇지 않소?”

연희는 노인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이상이 있다고요?”

“뭐 이상이라고 해서 병이 있다는 말은 아니라오. 가만 보자・・・・・・ 그렇지! 천정개혈대법을 하면 아마도 공력을 전부 쓸 수 있을 것이오.”

노인의 말을 들은 연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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