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3권 16화 – 홍수 13 : 수다르사나(Sudarsana)
수다르사나(Sudarsana)
슬픔과 노여움에 짓눌려 망연자실했던 승희도 시간이 흐르고 준후가 계속 달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준후는 승희 가 정신이 든 듯하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승희 누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일단 연희 누나나 현암 형 과 대화를 해 보는 게 어때요?”
준후의 말을 듣고 옳다 싶어 승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눈이 커지면서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었 다. 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마구 뒤졌다.
“으아악! 없어 없어졌어! 세크메트··
“예? 잘 찾아봐요. 네?”
준후도 당황하여 땅바닥을 손으로 쓸면서까지 찾아보았지만 세크메트의 눈은 찾을 수 없었다. 승희는 이제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준후마저도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없으면 어떻게 현암 일행과 연락을 한단 말인가!
“투시로 현암 군 마음이라도……………..”
승희는 말을 더듬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러지? 집중이 안 돼!”
“승희 누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해 보세요.”
“안 돼! 준후야, 어쩌지? 응?”
승희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엉엉 울었다. 준후도 승희가 세크메트의 눈을 잃어버리고 투시마저 안 된다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다시 해보죠. 별일 없을 거예요. 신부님도 계시고 현암 형도 있으니……………… 하지만 준후의 달래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희는 목을 놓아 엉엉 울기만 했다. 눈앞이 캄캄한 건 준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승희가 옆에 있고 좀 쉬기만 하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크게 낙담은 하지 않았다.
“울지 말아요. 누나, 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승희는 약간 진정되었는지 준후가 달래는 말에 고개를 까닥거렸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데 대한 자책감 에다 극도로 나쁜 상황, 거기에 능력마저도 자신을 배반하는 것 같아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미안해, 준후야,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도저 히 울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우리가 왜 이래야 되지? 이게 우리 의 운명이야? 이게?”
준후는 승희와 마주하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는 무슨 생각 을 하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용한 목소 리로 말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봐요.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카르마(Karma)와 다르마(Dharma)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지요.”
“카르마라면 운명이나 업(業)을 가리키는 말 아니니?”
“맞아요.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다르마지요.”
승희는 여전히 슬픈 듯한 얼굴로 눈앞의 허공에 초점을 맞추고는 준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조그맣게 물었다.
“다르마는 뭔데?”
“다르마는 법이나 정의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운명을 말하는 것이지요. 운명이나 업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나 할까요?”
“무슨 뜻이지?”
“이런 거예요. 카르마는 정해진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요. 그래서 변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다르마는 자신의 판단과 행 동에 맡겨져 있는 거예요. 비록 카르마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 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선택은 사람에게 맡겨져 있어요. 그 길을 따르는 것이 다르마의 길을 따르는 것이지요. 고대 인도인들은 이렇게 가르쳤죠. ‘카르마에 굴복하지 말고 다 르마의 길에 충실하라고요.”
“난 잘 이해가 안 돼.”
“예를 들면 이래요. 누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나이 서른 살 이 되는 해에 죽어야 하는 운명이 지워졌다면 그건 카르마지요.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러니까 그 정해진 순간까지 어떻 게 살아가고, 어떻게 올바르게 행동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다르마예요. 죽음에 닥쳤을 때 무서워하고 떨면서 비 참하게 죽는가, 아니면 당당하고 고귀하게 할 바를 다하고 죽는 가는 카르마와 함께 주어진 다르마를 얼마나 충실히 지키는 달려 있지요. 다르마는 정의이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은 보통 운 명이라고 하면 그냥 체념해 버리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하 거나 하죠.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운명적으로 그런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역시 그 사람이 어떻 게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운명을 무조건 신봉하거나 무조건 체념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봐 요.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러기 위해서 애를 써야죠. 이 번 생애에서의 다르마를 얼마나 충실히 지켰는가로 다음 생애에 서의 카르마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니까요. 모든 것은 사람 자신 이 결정하는 것이에요. 운명은 무조건적이지도 않고 편파적이지 도 않죠. 누구만을 미워하거나 힘겹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요. 모 두에게 공정해요. 모두에게………….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를 공정 히 되돌려 주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순환되고 돌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난 싫어! 전생이나 내생에 잘되면 뭐해! 지금 당장 이 지경이 되었는걸!”
승희의 말에 준후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자신이 승 희에게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준후로서도 그것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그래요. 나도 슬퍼요. 지금도요.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 로도 많이 슬플 거예요. 언젠가는 승희 누나나 신부님이나 현암 형과도 이별해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내 말은 당장 그렇게 되는 게 싫단 말야!”
“저도요. 그러나 별수 없잖아요? 가르침에서는 카르마가 험난 해도 다르마를 염두에 두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지만…………….”
“하하하. 저도 그럴 자신은 없네요. 제가 가는 날까지 그럴 수 있 을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전 세상이 너무 신기하고 좋은데…………… 사람들도 좋구, 다 좋은데……………. 이별할 때 섭섭할 것 같아요. 그 렇지만 어쩌겠어요……………..”
준후는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승희는 위로가 아닌 울고 있는 준후의 얼굴을 보고 힘을 냈다. 아니, 억 지로 힘을 내려고 애썼고 그러다 보니 조금이나마 기운이 돌아 오는 것 같았다.
“준후야, 고맙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울지 마. 응?”
승희는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 준 후는 오래 못 산다고 했었지. 지금 내 나이만큼도 못 살지 몰 라. 또 불행한 것은 준후 자신이 그걸 잘 안다는 데 있지. 그런데 도…………. 나이 어린 준후도 저토록 꿋꿋이 잘 참고 버티고 있는 데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이토록 호들갑을 떨다니……. 그래서 는 안 돼. 기운을 내자. 정신을 차리자. 승희는 계속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준후를 달랬다.
“준후야, 기운을 내자. 좋아! 이렇게 처박혀 있을 수만은 없어. 우리 시타 교수를 찾아보자. 우리 목적은 원래 그 사람을 만나러 온 것 아니니? 그 문제부터 해결하자꾸나. 응?”
“하지만 누나가 위험해지면 어떡해요?”
“오, 저런! 내가 그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니? 세계 각국의 첩보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나야. 이래 봬도 애 염명왕이라는 든든한 백을 속에 품고 있는 내가 그토록 호락호 락하리라 생각해? 하하핫! 가까이 오기만 해도 다 알 수 있어. 그러니 준후 너도 내가 잘 지켜 줄 테니 안심해라. 안심……………. 응?”
승희는 의식적으로 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효과는 있 었다. 준후도 승희의 말과 웃음이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 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둘은 언제 울었냐는 듯 이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잠시, 문이 열 리는 소리가 나자 승희와 준후는 당황하여 몸을 움츠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바이올렛이었다.
“오우! 죄송. 놀라지 마세요. 저예요.”
바이올렛은 승희와 준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의아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는 풀이 죽어서 거의 사색이 되었던 두 사람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도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두 분 얼굴이 밝은 걸 보니 저도 기 분이 좋아요. 호호호.”
준후는 바이올렛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위로의 말을 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바이올렛의 억지로 지어내 는 듯한 웃음소리가 마음에 걸려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 세우다가 곧 평온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 미스 바이올렛, 무슨 소식이라도 있나요?”
“그동안 저는 몹시 주저하고 있었지요. 여러분이 실의에 빠져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러나 두 분의 밝은 모습을 보니 이제는 말 해도 될 것 같네요. 지금 시타 교수를 만나 보고 왔어요.”
“네?”
“오! 시타 교수님은 무사하시니 염려 마세요. 중요한 걸 말씀 드려야겠네요. 시타 교수님이 연구하고 있던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어요.”
바이올렛이 앞뒤 없이 이야기를 불쑥 꺼내기는 했지만 승희는 흥미가 가서 물었다.
“뭐였지요? 에메랄드 태블릿이 아니었나요?”
“오, 노!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엄청난 것이에요. 승희 양, 혹 시 수다르사나(Sudarsana)라는 걸 아세요?”
“아뇨. 누군데요?”
“호호호.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물건 이름이죠. 들어 본 적 없나 요? 수다르사나……………”
바이올렛이 마지막 단어를 힘주어 띄엄띄엄 발음하자 바이올 렛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준후가 눈을 크게 뜨면서 승희에게 물었다.
“지금 바이올렛 할머니가 다르나’라고 했나요?”
“어? 응. 준후야, 너는 아니?”
“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음………. 그러니까…………”
“그게 뭔데?”
준후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번쩍 떴다.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 그럼…………….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게 뭔데?”
“제 기억이 맞다면 그건 크리슈나의 원반을 말하는 거예요.”
“크리슈나? 비슈누의 아바타라였다던 크리슈나?”
“맞아요! 원반, 그러니까 크리슈나가 쓰던 바퀴 모양의 무기 지요. 전설에 따르면 엄청난 위력을 지닌 산을 뒤엎고 우주에 존재하는 건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무기라고 하던데………………”
”밀교 전설에 나오는 거니?”
“아뇨. 인도 전설에 나오는 거예요. 얼마 전에 제가 책에서 본적이 있어요.”
승희는 대강 듣고 나서 놀란 얼굴로 바이올렛에게 말했다.
“미스 바이올렛, 수다르사나라는 것이 크리슈나가 쓰던 무기 를 일컫는 게 맞나요?”
“맞아요! 그거예요! 크리슈나의 원반……….”
“엄청난 무기라고 준후는 말하는데, 정말인가요? 바퀴 모양의 무기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엄청난가요?”
“오! 어떤 표현을 갖다 붙여도 수다르사나에는 부족하답니다. 절대적인 궁극의 무기지요. 바라문교의 전설로 내려오는 무기랍 니다. 수다르사나가 한번 던져지면 산도 무너지고 도시도 궤멸 되며, 그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마하바라타 에서는 크리슈나가 수다르사나 한 방으로 악한 왕인 살바가 이 끄는 공중 요새이자 거대한 도시인 사우바를 두 조각내지요. 아 쥬르나와 함께 전쟁에 나갔을 때 비록 크리슈나는 싸우지 않겠 다는 맹세를 했지만, 만일 수다르사나를 던졌다면 십만 대군이 몰살되었을 것이라고 하죠.”
“가만! 공중요새요? 아니, 옛날에 그런 것이 있었나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햇무리와 같이 빛나 는 수다르나, 그것의 파괴력과 엄청난 위력이죠. 수다르사나 를 한 번 떨침으로써 거대한 도시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 로 변해 버리고, 그 앞에서는 어떤 영웅도 마신도, 심지어는 천 상계의 신들마저도 무력하기만 하죠. 창공에 빛나는 해와도 같 고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녹여 버리는 타오르는 불길이기도 하죠. 위대하고 또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의 결정체! 천상과 삼계를 지배할 수 있는 비슈누 신의 권능이 가득 담겨 있는 지고지상의 궁극의 무기! 그것이 수다르사나예요!”
바이올렛은 다소 열에 들뜬 듯,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다가 억 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은 시타 교수에게 들은 말이에요. 그분도 제가 방금 그랬던 것처럼 수다르사나에 푹 빠져 계시더군요.”
승희는 바이올렛이 열에 들뜬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조금 싸늘한 눈으로 보고 있다가, 얼굴 표정을 바꾸어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럼 시타 교수가 수다르사나를 발굴했나요?”
“아니에요. 그는 단지 연구를 통해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아냈을 뿐이에요. 수다르사나는 실재해요!”
“그게 실재한다고요? 정말인가요?”
“오! 승희 씨,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도 무리가 아니에요. 신동 들과 그 조직에서 그토록 혈안이 되어 사람들을 쑤시고 다녔던 것도 지극히 당연해요. 오, 수다르사나가 실재하다니! 아마 사람 들은 그게 발굴되더라도 거기에 깃들어 있는 신비한 힘을 믿으 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주술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라면 충분히 매료될 수 있는 물건이지요. 물론 전설에서 전해지 는 것처럼 우주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라고는 믿지 않겠지만, 그 래도 뭔가 감추어진 굉장한 힘이 있다는 것은 믿을 거라고 생각 해요.”
“그렇군요. 그럼 그게 신동들과 그 조직이 시타 교수에게 관심 을 둔 진짜 목적이군요. 그걸 얻는다면………….”
“오! 안 돼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막아야겠지요. 그 러나 그 전설은……”
바이올렛이 우물거리자 승희가 조금 생각해 보다가 물었다.
“미스 바이올렛, 당신은 그 수다르사나에 정말 그런 힘이 있을 것으로 믿나요?”
“호호호. 글쎄요. 그러나 제 솔직한 심정은 믿고 싶지 않아요. 녹슨 수레바퀴로 밝혀지는 편이 더 낫겠지요. 고고학적인 가치 는 있을지 모르지만요. 혹시 그게 황금이나 보석 같은 것으로 되 어 있다면 또 몰라도…………. 만약 그게 전설대로 무서운 물건이라 면 세상이 얼마나 더 험악해질지 모르잖아요? 호호호.”
바이올렛이 호들갑스럽게 웃는 것을 바라보는 승희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데가 있었다. 그러나 승희는 금세 안색을 폈고 준후는 아주 잠깐 사이에 그런 승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 고는 조금 의아해했다.
“사실 시타 교수 본인도 유물을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수다르 사나의 힘에 대한 전설을 그대로 믿고 있지는 않더군요. 다만 나 에게 이야기해 준 바에 의하면, 수다르사나에는 꼭 그런 파괴력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얼까. 고대 문명에 얽힌 신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승희가 말했다.
“만약 총 한 자루가 이천 년 전의 고대로 전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주를 뒤흔드는 굉음을 내며 보이지도 않고 기척 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리고 아무리 단단한 갑옷이라도 뚫을 수 있는 초무기로 여겨지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수다르사나의 물리적인 파괴력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신동들이 왜 난리를 치고 그걸 찾는 거죠?”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그러나 미스 바이올렛, 이것을 잊으시 면 안 돼요. 신동들과 그 조직은 시타 교수만 찾고 있었던 게 아 니었어요. 최영민 교수와 황달지 교수, 그리고 판첸 라마도 동시 에 찾고 있었어요. 즉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수다르사나 하나 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죠.”
“그럼 한국이나 중국, 티베트 등지에도 그런 고대의 물건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신동들은 최 교수와 황 교수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해독해 내는 것을 막 기 위해서라고 했지요. 그러나 시타 교수가 아직까지 멀쩡한 것 으로 보아 그들이 시타 교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요. 즉 그들은 시타 교수를 수다르사나를 얻어 내는 데 이용하려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최 교수나 황 교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분명한 것은 한 가지예요. 만약 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 어 있지 않다면, 앙그라나 신동들이 공연히 전력을 분산시켜서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닐 이유가 없지요. 수다르사나 그 자체로도 중요한 비밀이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것이 무슨 복합적인 비밀을 풀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지요.”
“단지 수다르사나가 갖고 있는 파괴력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 라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요.”
그러자 바이올렛이 멍한 얼굴로 뭔가 생각하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오오, 저런! 시타 교수가 한 말이 있어요. 고대 문명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 아아! 저런, 그렇다면 혹시?”
“뭔데요? 왜 그러시죠?”
“시타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고대의 영웅들은 죽음을 이겨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요. 지옥으로 내려갔다가도 다시 돌아오 고・・・・・・ . 그런데 수다르사나가 실재한다니, 그리고 사람들도 그 걸 알게 되었다니……………. 여담이지만 수다르사나에는 비밀이 있 다고 해요. 영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이…………. 그러나 그 것은 그다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왜 그러시죠?”
“우리는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 물건이 있는 곳 은 알지만, 또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만 그걸 얻을 방법이 없어요.”
“왜죠?”
“그 물건은 바바지 님이 지니고 계시니까요.”
“바바지 님? 그게 누구지요?”
“오! 바바지는 이름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극존칭이 바바지지요. 정말 도력이 높은 대요 기(大Yogi)세요. 인도에서 그보다 높은 분은 없지요. 그러나 그 분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형체를 내보 이지 않으시니까요.”
“형체를 내보이지 않으신다고요?”
“거의 반은 신의 경지에 올라가신 분이에요. 히말라야 산맥의 어딘가에서 혼자 명상을 하시는데, 보통 사람은 그분을 뵐 수도 없어요.”
“사람을 꺼리시나요?”
“아뇨. 진정 뵙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만나시지요.”
“그런데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왜 드물죠?”
“뵙는다 해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왜 사진을 못 찍지요?”
“찍어도 그분이 원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니까요. 분명 뵙고, 또 몰래 사진을 찍은 사람도 나중에 현상해 보면 그 자리에 배경 은 똑똑히 나왔음에도 그분의 모습이 사라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하죠. 그런 것은 그분께 아무 힘도 들지 않는 간단한 일이에요. 그렇게 생각만 하시면 그렇게 되지요. 천지간의 만물이 다 그분에게 통해 있으니까요.”
“음! 그렇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군요. 그 신동들도 그렇게 위 대하신 분을 어쩌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바이올렛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입을 열고서 무슨 말인가를 계속했지만, 승희에게는 하 나도 들리지 않았다. 승희는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게 있었기 때 문이었다. 수다르사나에 영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니! 승희는 순간적으로 월향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현암도…………. 승희가 멍한 표정을 짓자 바이올렛이 말을 하다 말고 의아한 듯 물었다.
“승희 양, 왜 그러나요?”
“아, 아니에요. 미스 바이올렛, 말씀 도중에 미안합니다만 하 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수다르사나가 영혼만 남은 사람을 도로 살릴 수 있다는 게 정말입니까?”
“저도 그대로 확신할 순 없어요. 꼭 헛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죽어서 혼만 있는 사람을 다시 살린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뭔가 있기는 있을 것 같지만요.”
“그래요. 어쩌면 마스터도 그걸 노리고…………….”
승희는 착잡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가슴이 뛰었다. 수다르사나를 얻고 그 힘을 빌려 월향을 도로 살려 낼 수 있다 면…………. 승희는 현암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승희는 수다르사나의 그런 힘을 믿고 싶었다. 어쩌면 마 스터도 그걸 노리고 있는지 몰랐다. 마스터는 죽어서 현재는 혼 만 남아 있고, 그 때문에 수다르사나를 얻어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승희는 믿었다. 그러나 그런 자가 되살아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고, 더군다나 마스터에게 그것을 빼앗 길 수는 없었다.
승희는 생각을 멈추고 바이올렛에게 말했다.
“바바지 님을 만날 수 없나요?”
“네? 아니, 왜요?”
“수다르사나를 꼭 좀 빌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바바지 님을 어떻게 만나나요? 거의 신의 경지에 도 달하신 분이신데 …………. 더구나 만난다 해도 무슨 목적으로 사용 한다고 그것을 달라고 한단 말인가요?”
“믿어 주실지 모르지만, 저는 밀교의 신을 몸속에 봉인하고 있 습니다. 이런 정도면 바바지 님께서 만나주지 않겠어요?” “네? 그게 정말인가요?”
바이올렛은 승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좌우간 미스 바이올렛, 바바지 님이 계신 곳을 알아볼 수는 없나요? 히말라야의 어느 곳이지요? 네?”
“저도 잘은 몰라요. 다만 히말라야의 어느 산인가에 바바지 님을 위한 사원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수소문해 보지요. 승희 씨,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바이올렛은 호들갑을 떨면서 밖으로 나갔다. 바이올렛이 나 가자 승희는 눈을 크게 뜬 채 망연한 듯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 다. 이것이 그냥 뜬소문일 뿐이라면, 아니 함정이라면……………. 승 희는 몹시 착잡했다. 자신이 수다르사나를 얻는 것이 마스터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설령 그 렇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월향 그리고 현암…………. 썩 내키는 기 분은 아니었지만 승희는 마음속 깊이 현암을 생각하고 있었고, 따라서 자기 자신보다도 현암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마음속으로 채찍질했다.
“그래! 함정이라도 좋고 뭐라도 좋아. 반드시!”
승희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영문을 모르는 준후는 말을 걸려고 승희의 팔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승희는 그 것마저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