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3권 8화 – 홍수 5
홍수
막 도착해서 최 교수와 일상적인 인사말을 어색하게 나누고 있던 현암은 정작 묻고자 했던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 교수가 준후에 대해서 계속 물었기 때문이다.
‘이 양반은 준후에 대해 뭐 이리 궁금한 게 많지? 나중에 사위 삼으려고 그러는 건가?’
현암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의 등 뒤에 숨어서 가 끔씩 고개를 내미는 아라를 보았다.
‘아직 저렇게 어린애인데……………. 내 생각이 지나쳤나보군.’
현암이 중얼거리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초인종 소리에 달려 나갔던 아라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준후의 옷소매를 질질 잡아끌고 들어왔다. 하지만 준후는 아라와는 정반대로 뭔 가 불안한 듯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최 교수가 준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호. 꼬마 도령이 또 오셨구먼. 늦은 시간에 웬일인가?”
“네? 아, 네. 그러니까………… 아까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가서 죄송하다는 말을…………….’
“허허허. 괜찮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는가.”
최 교수가 웃자 현암도 웃으면서 말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직 어린데요.”
“허허허. 그래도 어엿한 도련님인걸. 그래, 설마하니 인사를 하려고 이렇게 헐레벌떡 온 것은 아닐 테지? 괜찮으니 이야기하 게나. 뭐 알고 싶은 게 있나?”
준후는 전에도 여러 번 최 교수를 느닷없이 찾아와서 뭔가 물 어보거나 자료를 달라고 한 것 같았다. 준후는 어두운 생각을 감 추려는 듯 실없이 웃어 보이고는 최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의 연구 내용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요.”
“오? 허허허. 이런 영광이로구만. 꼬마 도령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최 교수의 농담 섞인 말투는 항상 악의가 없어 듣기 좋았다. 아라는 그런 자기 아버지를 보면서 혀를 날름 내밀었다.
“치, 만날 그거 연구한다구 아라랑 잘 놀아 주지두 않구. 만날 밤새 연구 싫어, 싫어……………..”
“아이구, 미안하다. 봐주렴. 중요한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구 나. 허허허.”
최 교수와 아라가 실없이 떠들 때 현암이 준후에게 살짝 말했다.
“뭐 새로 알아낸 거라도 있니?”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암도 알았다는 듯 더 이상 묻지 않 았다. 최 교수는 아라를 달래서 방으로 쫓아 보낸 뒤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워낙 딸아이가 버릇이 없어서 말이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음, 그래. 가만…… 아까 뭘 물어봤더라? 아, 그렇지. 내 연구에 대해 물어봤지?”
“네….”
“나는 고대의 홍수 신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네.”
“홍수라고요?”
“그래. 홍수 말이네. 인간의 뇌리에 아직까지도 자리 잡고 있는,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지.”
“홍수라면 어디에서나 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홍수를 말하는 것이 아 니라 인류가 망하여 없어졌을지도 모를 만큼 거대한 규모의 홍 수를 말하는 거라네.”
“그런 홍수가 정말 있었어요?”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네. 내 연구에 따르면 홍수가 일어난 시기는 최소 기원전 2500년에서 최대로 잡으면 기원전 4000년 전이라네. 즉 지금으로부터 사천오백 년에서 육천 년 전의 이야 기지.”
“윽. 그렇다면 문자로 남은 기록도 없겠네요?”
“당시에 남겨진 기록은 물론 없네. 기원전 4000년이라면 전반 적으로 따져서 청동기 시대 초기이거나 신석기 시대 말기에 해 당한다네. 모든 문명이 싹트려고 할 때에 불과하지. 그렇지만 그 에 대한 단서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네.”
“어디에 나오지요?”
“유명한 홍수 이야기가 있는데, 자네는 모르고 있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말이네.’
현암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워낙 서양 계통에는 깜깜한 준후는 고개를 저었다.
“노아의 홍수요? 에구, 저는 모르는데요.”
“아담과 이브를 만듦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 간이 날로 타락해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세상을 거 대한 홍수로 뒤덮어 버렸다네. 모든 것을 멸종시키고 새로운 세 상을 열려는 것이었지. 하지만 진정한 의인이었던 노아에게만은 거대한 홍수가 일어날 것이니 그에 대비하라고 계시하셨다네. 노아에게 인류의 대를 잇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지. 충직한 사람 인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네.”
“방주가 뭐지요?”
“방주는 영어로 아크(Ark)라고 하는 배의 일종이라네. 그러나 파도나 풍랑에도 침수되지 않기 위해 돛이나 노 같은 것을 다는 대신 모든 곳에 문을 만들고 역청을 발라 방수 처리를 한 것이라 서 배라기보다는 상자 모양에 더 가깝지 후에 모세가 십계명을 깨뜨리고 그것을 담았다는 언약궤도 역시 아크라고 불리니까.”
“그래서요?”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대로 대홍수 뒤에도 사람들과 모든 생 명들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방주 안에 모든 식물의 종자와 살아 있 는 동물들을 암수 한 쌍씩 넣었다네. 비는 내렸고, 노아의 방주 에 탄 존재들만 빼고는 모든 인간들과 산 것들은 멸종해 버렸지.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산 위에 자리를 잡았고, 홍수가 끝난 뒤에 는 노아의 세 아들인 함, 셈, 야벳의 가족들이 흩어져서 각 민족 의 조상들이 되었다고 한다네.”
“그렇군요.”
최 교수는 머리를 긁적이는 준후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성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나? 동화나 여러 가지로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현암은 말할 수 없는 준후의 내력을 떠올리며 미 소를 지었고 준후는 창피한 듯 중얼거렸다.
“헤헤헤. 읽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런데 그 홍수 전설은 노아의 것뿐인가요?”
“그렇지 않다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놀랍게도 거의 모든 민족의 창세 설화나 이야기에는 홍수에 대한 부분이 있다네. 재 미있는 일이지.”
“홍수야 뭐 아무 데서나 날 수 있는 일이니 그런 것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네. 그러나 홍수의 기록 대부분이 파 괴와 두려움을 담고 있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네. 홍수가 자주 난 곳으로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을 들 수 있지. 나일 강은 해 마다 대규모로 범람해 많은 희생자가 나기도 했네. 그렇지만 그 범람은 강에 의해 운반된 대량의 비옥한 흙을 대지로 되돌려 주 는 역할을 하곤 했다네. 즉 홍수로 인해 강 유역의 토지가 비옥 해져서 그로 인해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은 오히려 풍요로 워지고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런 문명권에서라면 홍수설화라도 파괴적인 양상보다는 좋은 측면으로서의 양상도 겸해서 전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그렇겠네요.”
“그런데 이 홍수의 경우는 좀 다르단 말이네. 공포와 멸망이라 는 모티브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네. 어디 이번에는 홍수가 자 주 나지 않는 곳의 예를 들어 보세. 아까 이야기한 노아의 홍수 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 노아는 유대 민족으로 그들은 당시 중동 지방에 살고 있었네. 그곳은 사막에 가까운 지역이네. 그곳에서 홍수가 났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사막에서 홍수가 난다는 것은 좀…………… “
“서양 문명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홍수의 신화는 전해진다네. 주신(神) 제우스의 분노로 인해 대홍수가 일어나고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는데 그중 진실한 믿음을 가졌 던 데우칼리온만이 살아남게 되지. 이 역시 노아의 홍수 이야기 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네. 그 외에 홍수와 관련된 유명한 것으로 는 게르만의 창세 설화가 있지. 게르만과 켈트족의 설화에서는 세계가 거인 이미르의 몸에서 창조되었다고 전해진다네. 즉 신 들의 왕인 오딘과 그 형제신인 빌리와 베이가 그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서리거인의 두목 격인 이미르를 공격하여 죽인 것이 지. 이미르의 피는 바다와 호수가 되었고 살은 대지, 뼈는 산, 이 와 부서진 뼈는 암석, 머리 가죽은 천공(天空), 뇌수는 구름이 되 었다고 하네. 무지무지한 거인이지. 그런데 신들이 이미르를 죽 였을 때 그의 몸에서 분출된 피로 인해 전 세계가 멸망하고 모든 산 것이 죽어 없어지는 대홍수가 났다고 전해진다네. 인간은 나 중에 이미르의 부패한 살에서 구더기처럼 생겨났다고 하지.”
준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그래도 구더기라니…………”
그러나 현암은 눈을 빛냈다.
“묘한 일이군요. 그러고 보니 홍수설화가 정말 많은데요.”
“소수 민족의 경우에도 그런 예는 많다네. 잉카와 마야 문명에 도 홍수설화가 있지.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 는데 대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것이 멸망하려 할 때 흰옷을 입은 신의 사자가 나타나서 홍수를 막아 주었다고 하지.”
“오호.”
“또 중국 남부 묘족의 설화에 의하면 하늘의 번개신인 뇌공 ()을 잡은 용감한 사냥꾼의 자식들이 물을 주지 말라는 아버 지의 당부를 어기고 뇌공에게 물을 주는 바람에 뇌공이 하늘로 승천해 버리고 보복으로 비를 퍼부어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설화 가 있다네. 물론 그때 뇌공은 커다란 바가지를 두 개 붙여서 자 신을 구해준 아이들을 안에 넣어 죽지 않게 보호해 주었다고 한 다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지.” “음. 노아의 홍수와 대단히 비슷하군요. 아니 그보다는 모두가 무언가 공통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인도에도 홍수설화가 있지. 그러니까…………….. 준후는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을 반짝였다.
“맞아요. 비슈누 신의 첫 번째 아바타라(Avatara)가 물고기 변신인 마츠야 아바타라지요. 비슈누 신은 그 첫 번째의 아바타 라로 변하여 대홍수가 일어날 때 마누에게 미리 일러 주고 배를 만들게 하여 마누를 구했지요. 그래서 마누는 인류의 시조가 되 었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 노아의 홍수와 꼭 같네요.”
“그렇구나. 정말…….”
“동쪽으로 가 볼까? 수메르 지방에서 발견된 점토판 중에는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중에 우트나피슈팀*의 대 홍수 이야기가 나오지. 이 홍수 이야기 또한 노아나 데우칼리온, 마누의 홍수 이야기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네.”
“정말 신기하네요.”
준후는 이야기에 취하여 아까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문 제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현암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프리카에는 보통 문자가 없었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구전 되어 오기 때문에 자료를 찾기가 더 어렵지만, 그곳에도 대홍수 설화는 전해지고 있다네. 자, 내가 간략하게 예를 들기는 했지만 일단 전 세계의 곳곳에 홍수의 신화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존재 한다는 것은 알겠지?”
“네. 그런데 몇몇 나라는 말씀을 안 하신 것 같아요. 우리나라 나 동방에도 홍수설화는 있는데…”
최 교수는 준후의 말에 한 손을 내저으며 크게 웃었다.
“허허허. 그래그래.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라네. 우리는 일단 대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기로 하세. 그런데 그 파괴적 이고 세상을 뒤엎어 멸망시켰던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정확하게 말하면 대비책을 세움으로써 일반적인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 던 나라가 두 곳 있네. 어디어디인지 알겠나?”
“아! 그렇다면 그게 바로…………….”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언급되는 인류의 선조, 노아와 거의 같은 일을 행했으며, 그 대가로 영생을 얻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유대교 의 노아 설화나 북구의 대홍수설화 등은 거의 이 바빌론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준후는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서양의 경전이라든가 설화 같은 것에 대해서는 깜깜한 준후였지만 이 홍수 이야기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몇 가지 알고 있었다.
“중국의 치수(水) 설화하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치수의 기록이………….”
현암은 궁금한 모양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홍수와 치수의 기록이 있니?”
“물론, 있다네.”
“그래요? 그것도 공통적인 이야기인가요?”
“그래. 바로 그거라네. 일단 중국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보 세. 중국에서는 커다란 홍수가 나서 수습을 할 수가 없었지. 모 든 땅은 물에 잠기고 비는 밤낮으로 퍼부어 댔지. 그때 치수를 맡았다가 실패한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치수를 맡은 것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꼬마 도령? 동양의 고사에는 정통하니까 말이야.”
“예! 우(禹)이지요.”
“그래, 우 임금이라네. 물론 치수 사업을 하고 있었을 때는 임 금이 아니었네. 그런데 우는 자신의 힘으로 치수 사업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 아니라네. 그는 동방에서 치수법을 배워서 십 년에 걸쳐 물에 잠긴 세상을 복구하고 마침내 치수 사업을 마무리 지 을 수 있었지.”
“맞아요. 동방・・・・・・ 중국의 동방이라면…”
“그래. 우리나라밖에 없겠지.”
현암과 준후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앉아 있자 최 교수는 자 리에서 일어나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네들에게 내 기록을 보여 줌세. 흥미가 있다면 직접 보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세나. 어떤가?”
“좋습니다.”
현암과 준후는 최 교수의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온갖 책과 원고 더미가 어지러이 쌓여 있었고 빈 음료수 병과 커피 잔이 여 기저기 널려 있었다. 방에 짙게 배어 있는 담배 냄새에 현암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했다. 담배를 끊은 지 꽤 오래되었지 만 공연히 담배 생각이 났다. 최 교수는 더러운 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책상 위에서 책 한 권을 찾아 들었다. 현암은 그 책의 제 목을 힐끗 보았다.
“단기고사로군요.”
“맞아요. 발해 시조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이 썼다는 단군 시대의 역사서지요.”
“사실 이 책을 후대에 모작된 일종의 위서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네. 내용적으로 오류가 있어서 대조영의 동생이 썼다고는 볼 수 없으니, 후대의 누군가가 지어낸 거란 뜻이지.”
“그런가요?”
“그거야 모르지. 규원사화나 단기고사』는 실증적으로 당시 에 쓰이지 않는 것으로 믿어진다는 몇몇 단어나 기술이 나오며, 지나치게 우리 민족을 높인다고 하여 위서라고 배척받고 있네. 그것들을 바탕으로 저술된 『한단고기』 또한 마찬가지 취급을 하 는 사람들이 많다네. 사실 한단고기』는 나도 전체를 사서로 볼 만큼 믿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내용을 모조리 지어낸 것 이라 보기는 어렵지.”
준후가 끼어들어 말했다.
“규원사화는 적어도 후대에 지어진 책은 아닌데요. 아주 오 래된 고서를 본 적이 있는걸요**”
*일반적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다룬 저서는 다음 세권 으로 요약된다. 단기고사』, 「규원사화」와 「한단고기」이다. 「단기고사는 본문에 서 언급된 바와 같이 발해 태조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지은 사서이며, 규원사 화는 숙종 2년(1675년)에 북애(北崖)라는 본명을 밝히지 않은 어느 학자가 지 은 책으로 북애는 전국을 누비며 얻은 40여 권의 사서를 바탕으로 썼다고 전해 진다. 한단고기는 광무 15년(1911) 운(雲) 계연수 선생이 다섯 가지의 사 서를 엮어서 낸 책이다.
“어? 그걸 어떻게 봤지?”
해동밀교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서 준후는 그냥 둘러대었다.
“어느 절에서 봤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최 교수는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거 아쉽구나.”
준후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최 교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긴, 오래전에 쓰인 책이라고 전부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만 믿을 수는 없지. 허나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을 기록했다고만 볼 수도 없어. 신화나 전설에 대한 기술은 글자대로만 봐야 하 니? 일부 학자들이 하늘처럼 받들고 섬겨 모시는 중국 이십오 사 에는 틀린 기술이 없고, 부적절하거나 잘못 쓰인 문구들이 없는 줄 아니? 고대사가 아니라 근세에 이르러 집필된 정사에도 허무
** 1990년대 들어서 규원사화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600년때 숙종 때의 진 본이 발견되어 그동안 내려오던 20세기에 지어진 모작이라는 주장을 무색케 했 다. 그러나 이후로 이것이 위작이라고 퍼뜨리던 학자들은 그 즉시 침묵하거나, 책이 오래된 것이라도 내용까지 다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 전까지 이 책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때 주로 쓰인 척도 중 하나가 ‘당시에 존재하 지 않았던 단어나 표현이 기술되어 있다’였는데 이제 진본이 나왔다면 단어나 표 현에 대한 논란부터 잠식시키고 판별 기준을 달리 세워야 할 것인데, 여전히 무 슨 교전을 숭상하듯 위서라는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는 학자들이 정말 학자들인 지그 진위부터 판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맹랑하거나 말도 되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단 다. 과학이 발전된 현재의 논리 기준으로 볼 때는 허무맹랑하지 만 당시의 기준에서는 그것이 과학이었거나, 합리적인 기술이었 던 거지. 그런데 현대적인 잣대만을 들이대며 단점을 찾아 거부 하려는 논리는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그 내용들을 다룰 때, 아 직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일종의 가설 비슷하게 여긴단다. 물론 그게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은 틀렸 다는 논리도 다 맞는다는 논리도 받아들일 수 없어.”
“맞는 생각 같은데요.”
“그러나 반대로 그런 내용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다. 뭐든 냉정한 기분으로 선을 잘 지키며 판단해야 하 는데,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믿지 않는 것은 둘 다 옳은 방법이 라고 볼 수 없어. 더구나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이런 내용으로 추 악한 짓들도 하지.”
“어떤 짓이요?”
“말도 안 되게 책의 내용을 확대시키는 거다. 우리 고대 민족 은 제일 잘나서 전 세계가 우리 땅이었고 전 세계인이 우리 선조 들의 발밑에 엎드렸고 모든 문화가 우리 민족에게서 나왔고 모 든 거대 유적은 우리 민족이 만들고・・・・・・ “
“말도 안 되잖아요.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죠?”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건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음모가 아닐까 싶다.”
“음모요?”
“나는 그런 책들의 내용을 확대하여 우리 민족이 세상에서 가 장 잘났고 고대에는 전 세계가 다 우리 땅이었다고 외치는 국수 주의자들을 제일 경계한다. 내가 보기엔 사실 그들이야말로 어용 식민학자들의 앞잡이들이 아닐까 싶거든. 어쩌면 얼굴을 숨긴 그들 자신일 수도 있고.”
“왜 그런데요?”
“그렇게 누군가가 난리를 떨어 주어야 사람들이 기분이 언짢 아서 반대쪽 의견에 힘을 실어 주지 않겠니? 결국 그 책들의 내 용 전체를 사장시키려고 일부러 악선전을 하는 셈이지. 나는 상 당히 의심스럽단다. 결국 이 책들은 강단학자들이 제일 거부하 는 것들이지만, 반대로 그럴 수 있게 해 주는 게 도리어 자칭 민 족주의자들이라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는 바보들도 있겠 지만, 어쩌면 그 학자님들이야말로 가면을 쓰고 숨어서 일부러 그런 추악한 소문을 퍼뜨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단다. 그런 다 음 그런 주장을 조금이라도 꺼낸 사람은 전부 헛소문을 퍼뜨리 는 악인들로 규정지어 매도하는 거지. 실제로 건전하게 비판적 으로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책들 이야기만 꺼내면 같은 부류 로 몰아서 매도해 버리는 수법이지.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쓰던 방법이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보면 양 떼 이야기가 나오잖니.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를 일제히 소리쳐 상대의 입을 막아버리는 양 떼.”
준후는 머리를 긁었다.
“그건 아직 읽은 적이 없네요.”
“어? 너라면 읽었을 줄 알았는데. 네 지식은 동양사에만 편중 되어 있는 것 같구나. 뭐, 나중에 읽어 봐도 된다.”
“대체 왜 그러는데요?”
“자기가 이제껏 해 왔던 말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 없으니까 그 러겠지. 또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거나 그래야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서 외면되고 매도되 어 치워질 테니까.”
“그건 심한 생각 아닐까요?”
“내 생각일 뿐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아라. 어쨌든 나 는 이런 유의 책들을 참조하지만, 한 구절 한 구절 무조건 믿지 도, 무조건 불신하지도 않는다. 이거 말이 길어졌구먼. 일단 보 기로 하세.”
최 교수는 다시 현암에게 말한 다음, 책갈피를 넘기며 어딘가
를 찾고는 말했다.
“여기・・・・・・ 전(前)단군조선의 제2세였던 부루()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네. 보게나.”
임금께서 태자였을 때에 중화의 우와 더불어 친하시다가 임금께서 보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 때 홍수가 구 년 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에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 가 도산 회의(山會議)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 팽오 를 특명 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준후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깐 내용을 보았으나 현암은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현암이 책에서 눈을 떼자 최 교수가 말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상고 시대를 다룬 여러 기록들에 의하 면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치수법을 배워 갔다는 기록들이 있다네. 시기적으로 볼 때 각 나라의 역법이 맞지 않았 기 때문에 정확한 대조는 할 수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시기도 일 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네. 즉 우리나라는 당시 홍수의 치수법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는 거지.”
“기록들의 신빙성은요? 대부분 소실된 기록들이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모화사상(思想)에 심취한 나머지 많은 사서들이 탄압 속에서 강제로 실전되었네. 『조대기(朝代記)』, 『삼성비기(三聖秘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 詞)』, 『동천록(動天錄)』, 『지화록(地華錄)』. 그 외에도 많은 사서들이 금서로 지정되어 엄하게 회수되고 사라졌다는 기록이 세 조실록』나 『성종실록』 등에 나와 있네. 중국에 거슬리는 일 을 할 수 없었던 조선 조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 모 르나 참으로 애통한 일일세. 지금 그나마 기적적으로 남은 것 이 규원사화와 단기고사』, 그리고 한단고기』 정도이지. 그러나…….”
최 교수는 씨익 웃었다.
“지금 이것은 황조복판 『단기고사』라네.”
“황조복판이요?”
“그래. 단기고사가 얼마나 험난한 경로를 걸어야 했던 책인 지 좀 길어도 짚고 넘어가세. 고구려 때까지만 해도 단군 시대의 거의 모든 기록들이 보존되어 있었지만, 고구려가 망할 때 중국 인들이 제일 먼저 역사서고로 가서 불을 질러 모조리 없애 버렸 지. 중국의 모화사상에 위배되는 우리의 옛 역사가 세상에 나오 는 것을 싫어했던 거야. 일제 강점기의 역사 왜곡과 비슷한 수법 이지. 후에 발해가 일어나자 대조영은 동생인 반안군왕盤 王) 대야발에게 단군조선과 기자 조선의 내용을 복원한 사서를 만들게 했고 이에 대야발은 십삼 년이나 고서를 모으고 비문을 읽으며 돌궐국(지금의 투르크)에까지 여러 번 답사하는 노력 끝 에 이 책을 만들었다네.”
“그랬군요. 적어도 발해 때라면 지금보다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었겠지요.”
“그렇다네. 그래서 이 책은 발해문으로 목판 인쇄되었는데 발해 건흥(興) 8년, 그러니까 835년 4월에 발해의 대문호인 황 조복이 이를 한역하고 장상이 주석을 달아 펴낸 것일세. 조금 씩 떠돌던 이 책을 구한말에 학자이신 유응두 선생이 중국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하여 입수한 다음 문하생인 이윤규를 시켜 수십 권을 등사했지. 이것이 광무 11년, 그러니 1907년인가 다시 간 행되었으나 이건 일제가 모조리 소각했다네. 그 후 1912년에 단 재 신채호 선생과 이윤규 선생의 아드님이신 이관구 선생께서 만주에서 이것을 출간하려다 실패하셨지. 하지만 이관구 선생은 이것을 필사적으로 보관하여 광복 후에 겨우 김두화 스님과 함 께 국한문으로 번역하시고 초대 부통령을 지내신 이시영 선생의 교열을 거쳐 1949년에야 펴냈다네. 그런데 6.25를 겪으면서 이 나마도 거의 없어져서 몇 권 안 남았고 특히 이관구 선생이 목숨 을 걸고 지켜 오신 황조복 판도 동란중에 결국 사라져 버렸다네. 기구하고도 기구한 운명의 책이지.”
“그런데 그게 황조복판이라면서요?”
“그래. 이건 황조복판의 복사본일세. 내가 이 연구에 전적으 로 매진하게 된 것도 중국에 있는 그분 덕분이지.”
“그분이라뇨?”
“황달지 선생이라고 중국의 역사학자일세. 그분은 우연한 기회에 이러한 사서 수십 점을 얻게 되었다는데, 거의가 우리 고대사에 대한 것들이라는 거야. 그래서 일단 내게 보내신 것이 이 황조복판의 복사본일세. 조만간 한번 방문하려고 하네.”
“그렇군요.”
“물론 아직은 진위가 판명되지 않았으니 공표할 수는 없지. 확 실한 건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을 거야. 일단은 홍수 이야기로 돌아가세.”
말을 하면서 최 교수는 준후와 현암에게 도표 하나를 보여 주 었다. 거기에는 각 나라의 설화에 따른 홍수의 기록이 연대별로 나와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단군세기의 연표 에 따른 홍수 기록을 적은 것이었고 그다음에는 중국 우의 치수 기록이 그다음으로는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일단 우리의 기록에 의하면 전 단군조선 1대이신 단군 왕검 때에 큰 홍수가 났다고 되어 있다네. 그리고 중국의 우 임금의 치수 기록…………. 그래, 우 임금이라면 삼황오제(三皇帝)의 시 대에 뒤이어 등장한 요. 순 임금 중 순 임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왕이지. 중국의 상나라 이전의 기록들은 중국에서도 정확하게 나와 있는 것이 없으니 대략 추정치로 맞추어 볼 수밖에 없다네. 그러나 보게나. 우 이전에는 그의 아버지 곤이 치수하였는데 그 것이 『서경(書經)』나 『요전(堯典)』에 따르면 績用弗成이 라. 즉 구 년이라고 되어 있지. 그 이후에 『사기(史記)』의 「하 기(夏)」에 의하면 ‘禹居外三年, 過家門不敢즉 우가 십 삼 년이나 집 밖으로 다니면서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감히 들어 가지도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네. 중국의 이러한 기록으로 보면 중국의 홍수는 이십이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 외의 연도는 나오지도 않는다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홍수가 난 것은……………. 이렇게 고고학적 관계로 계산하면 정확하게 나오 지? 기원전 2284년에 치수가 완료되었다지. 그리고 구년 홍수 였다는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록이 같네. 요 임금은 자기 때 에 홍수가 있었는데 막지 못하고 순 임금에게 왕좌를 물려주었 지순이 즉위한 것이 기원전 2284년으로 우리가 치수를 완료한 때와 같네. 그러니 실질적인 홍수는 기원전 2293 년이라 할 수 있 을 거네. 그리고 도산 회의가 있었던 것은 기원전 2267년이라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치수가 완료된 것과 비교하여 십칠 년 이후지자, 여기서 생각해 보세. 중국 기록의 ‘우가 집에 십삼 년 동안이나 들어가지 못했다’는 구절 때문에 보통 우가 치수한 것 이 십삼 년이라고 믿지. 그러나 홍수가 다 끝나고서야 우가 집에 갔다는 구절은 없다네. 그러니 우가 치수한 것은 훨씬 더 이후라 고 봐도 되네. 같은 홍수를 만나고, 구 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별 피해 없이 치수를 끝냈는데 우의 아버지 곤은 치수를 못한 거지. 그리고 그 이후 우는 십칠 년 동안이나 고생했어도 별 업적이 없 었고, 그사이 십삼 년 동안 집에도 못 간 거겠지. 그러다가 도산 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 오행(五行法)을 배워간 후 치수를 간신히 마무리한 거라네.”
*중국 고대 전설상의 여덟 명의 제왕을 일컫는 말. 3황(皇)과 5제(帝)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사실 준후가 한학 교육을 주로 받아서 동양 고금의 지식에 다 소 능통하다고 하더라도 역사 분야에서 최 교수가 설명하는 말 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고금의 예를 드는 것은 그래도 알 수 있었지만 역년 계산과 기타 복잡한 숫자 계산의 근거와 그 내 용을 알아듣기는 벅찼다. 그러나 열띤 최 교수의 목소리에서 준 후는 최 교수의 말에 어느덧 공감하고 있는 비록 다 알아듣고 이해한 것은 아니더라도 말이다-자신을 발견했다. 현암은 기 록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최 교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최 교수는 준후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을 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재미있는 것이 우가 도산에서 치수 작업을 했을 때 삼십이 넘 어 비로소 장가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때 흰색의 구미호를 보았 다고 하는 것이네.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구미호가 요사스러운 동물로 규정되어 버렸지만, 원래 고대에서 구미호 는 보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아주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네. 그 구미호는 우리나라의 이름이었던 청구국(靑邱國)에서 만사는 동물이었네. 그래서 우는 여교(橋)라는 아가씨와 혼인 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우가 우리나라에 와서 치수법을 배워갔 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지. 즉 신화란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네. 단군 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부족 토템을 나타 낸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지. 그러니 내 생각으로는 우가 청구국 에서만 사는 구미호를 보고 결혼하고 왕이 되었다는 것은 동방, 즉 당시 조선에서 중매도 받고 왕위의 지지도 받았다는 그런 뜻 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네.”
현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군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치수법을 가르쳤다면, 우리 나라는 그 홍수 때 별로 피해를 입지 않은 모양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강한 홍수에 대한 신화가 없잖아요?”
“맞네. 중국의 사서를 보면 요 임금 때는 임금의 생활마저도 궁핍하기 짝이 없었네. 순 임금이 초가집에서 직접 노동을 한 것 은 근검해서라기보다는 홍수의 피해가 그만큼 엄청났다는 것을 뜻할거네. 거의 전 국민이 몰살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지. 왕이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다니 말이네. 그러나 단군조에는 기 원전 2284년에 치수를 마치고 기원전 2283년에 강화도에 삼랑 성과 참성단을 쌓았다고 하네. 우리나라가 홍수의 피해를 크게 입었다면 이런 역사(事)를 벌일 수 없지 않겠나?”
“그렇지요. 그런데 도산이라면 그건 어디 있던 거죠?”
“당시 우리의 판도는 만주만이 아니라 중국 북부 거의 전역을 지배했다고 봐야 한다네. 도산은 양자강의 북쪽, 회하의 남쪽으 로 중국의 중심에서는 조금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지. 즉 옛날 의회) 땅 부근이라네.”
“흠…….”
“자. 다음은 노아의 기록을 보세. 성서의 연대 계산이 분명 지 금의 역법에 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통설로 굳어져 있다네. 예 를 들면 아담이 구백삼십 세를 살았고 므두셀라가 구백육십삼 세를 살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사는 인간은 있을 수 없 기 때문이지. 물론 이를 신학적인 이유를 들어 규명하려는 사람 도 있지만 그보다는 연대를 계산하는 방법이 달랐다고 보는 것 이 더욱 타당할 것 같네. 그 예는 여기서도 볼 수 있지. 이 도표와 는 조금 관계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네.”
최 교수는 성서의 한 페이지를 펴서 준후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자. 수백 년씩을 살았다고 기록되었던 성서 속의 사람들 나 이가 비교적 요즘 현실의 나이와 비슷해지기 시작하는 때는 아 브라함부터 볼 수 있다네. 아브라함은 백칠십오 세를 살았고, 그 자식인 이삭을 백 세 때에 낳았다고 하지. 그때 이삭을 낳을 것 이라는 계시를 신의 사자에게서 받자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가 웃는 장면이 나온다네. 나이가 이렇게 먹은 노인들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가 있느냐는 말이었지. 그러니 이때에 유대 민족의 역법 개념은 과거와는 조금 달라져서 비교적 지금의 것과 비슷 하게 산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거라네. 지금 의 감각으로 볼 때에도 나이가 백 세 가까이 먹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말을 하면서 최 교수는 준후의 멍한 얼굴을 힐끗 보고는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최 교수는 준후에게 설명을 해 준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말에 도취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허허허. 이 꼬마 도령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 좌우 간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이용될 수 있는 근거가 성서에 나 와 있다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를 셈하 는 것은 알고 있겠지? 자, 보세. 신약 성서의 첫 부분 『마태오복 음의 서두에 보면 예수의 족보가 쭉 나와 있다네. 보면 아브라 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까 지가 14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간 다음부터 예수까지가 또한 14 대라고 되어 있지. 그러면 합하면 42대가 되지? 그리고 창세기 편을 보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도 세세히 족보가 나온다네. 이 표를 보게.”
최 교수가 찾은 다른 표에는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계보가 적혀 있었다.
노아의 아들 셈 – 홍수 이년 후 100세 때 아르박삿을 낳음.
아르박삿-35세에 셀라를 낳음.
셀라 – 30세에 에벨을 낳음. 에벨 – 34세에 벨렉을 낳음.
벨렉 – 30세에 르우를 낳음. 르우 -32세에 스룩을 낳음.
스룩 – 30세에 나흘을 낳음. 나흘 – 29세에 데라를 낳음.
데라 – 70세가 되기까지 아브람과 나흘과 하란을 낳음.
“여기서의 아브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 아브람이 이삭을 낳 은 것은 백 세 때이네. 그러니 이를 모두 합하면 대략 삼백오십 이 년 정도가 되지. 그러니 한 세대의 평균으로는 352 나누기 9 니까 약 사십 년이 나온다네. 그리고 42대가 있지? 그것을 여기 서 보인 것과 같이 대략적으로 사십 년을 한 세대로 잡아보기로 하세. 그러면 어떻게 되지? 42 곱하기 40 이니 1,680이 나온다네. 이 둘을 합하면 대홍수는 기원전 2032년이 되겠지?”
“그렇군요. 연도가 조금 안 맞네요.”
“그러나 이것은 그리 큰 오차도 아니라네. 42대 사람들의 평균 을 삼십 세로 잡는다면 당장 그 연대는 기원전 1600년대 이하로 줄 수도 있지. 또 아브라함같이 나이를 많이 먹어서 아이를 가지는 사람이 그중 몇 명만 더 있다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고, 이 렇게 조상들의 숫자로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적 관습 을 알아야 하네. 예를 들면 우리의 조선 왕조는 27대인데 오백 년 정도가 된다고 알고 있지? 조선 시대의 한 세대를 삼십 세로 생각한다면 조선 왕조는 자그마치 팔백십 년이나 된다네. 그러 나 조선 시대는 일반적으로 조혼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네. 또 실제로 자손으로 왕위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왕 의 동생이 계승한 경우도 있고 선조처럼 왕이 오래 장수한 경우 도 있으니 그것을 일반적인 경우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걸세.”
“그렇다면 그것만으로 연도를 정확하게 산정할 수는 없겠네요.”
“그래. 그런 일반적인 계산으로 전체를 볼 수는 없겠지. 그러 나 이 경우는 조금 나은 편이네. 내가 나름대로 계산한 자료에 의하면 말이지……………. 물론 학계에서 이것을 정통으로 인정해 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고 노아 의 홍수가 일어난 연대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네. 물론 약간 의 가정은 들어간 거네.”
말을 마치면서 최 교수는 준후에게 노아의 홍수에 대한 메모 가쓰인 부분의 말미에 있는 숫자 하나를 보여 주었다.
B.C.2000~B.C. 2300년
“삼백 년의 차이가 생길 수 있나요? 모호하네요.”
“그러나 이 이상의 방법은 없다네. 사실 우리나라 연표에 나와 있는 기록도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 그러나 이 정도의 일치를 증빙한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네. 다시 말하면 말이지…………….”
최 교수는 책상 위에서 두꺼운 펜을 집어 들고 메모로 쓴 종이 의 밑부분의 숫자들에 굵은 색의 줄을 쳐 갔다.
-단군조선= 대홍수의 기록과 치수의 기록. B.C. 2275년
-중국=우의 치수 기록. 단군조선의 것과 동일.
-그리스 = 데우칼리온의 신화. B.C. 2200~B.C. 2400년
-노아의 홍수=B.C.2000~B.C. 2300년
-북구 이미르의 죽음으로 인한 대홍수 = B.C. 1800년 이전
(정확히는 알 수 없음.)
-묘족 뇌공의 대홍수 = B.C. 2000년 이전
-남미 마야문명권의 홍수 파멸 설화 = 알 수 없음.
-아프리카 도곤족의 홍수 신화 = B.C. 2000년대 정도.
-인도의 마누 신화 = B.C. 2200년 이전
이하에도 최 교수는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서 얻어 낸 사십여 종 이상의 홍수 설화의 연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문명권이라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나 이 집트의 왕조 성립이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경의 일 이니만 대략적으로 그런 고대의 일들은 추정에 의존하는 수밖 에 없었으나 최 교수는 갖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그 연대가 비교 적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준후는 전적으로 최 교수의 말을 믿고 있었고 골치 아픈 연도 계산 문제에 신경을 쓰 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강 그 목록을 훑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마지막에 몇 번이나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항에 가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메르의 우트나피슈팀의 홍수 신화 = B.C. 2300년경
“수메르요? 그럼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네.”
“이 연대는 비교적 정확하네요?”
“수메르 문명이 유명해진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와 그와 관련 된 내용들이 점토판으로 나왔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는 기원전 2000년경의 신화적 인물로 일설에 의하면 기원전 2100년경 우르의 통치자 우르남무가 그 원형이라고 하지. 그런데 『열왕기』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홍수 이후의 다섯 번째 왕이었고, 당시의 왕들은 상당히 길게 통치했 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네. ‘길가메시의 아들은 삼십 년밖에 통치 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으니 말이네. 이렇게 볼 때 대략 네 명 의 왕들이 평균 오십 년가량 통치한 것으로 보면 기원전 2300년 경이 나오게 되는 셈이지. 그리고 홍수 이야기는 수메르의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들 하지. 물론 서양 학계의 주장이 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의 홍수 설화인 우트 나피슈팀 신화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야. 사실 마누의 신화 나우의 치수 등도 다를 게 없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중국, 수메르, 그리스, 인도, 노아의 홍수까지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틀림이 없군요.”
준후의 말에 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현암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대에 우리나라로부터 중국, 인도, 근동과 중동, 그리고 멀게는 유럽과 오세아니아, 아메리카나 아 프리카까지도 휩쓸었을지 모르는 대홍수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 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연구가 왜 최 교수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현암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홍수와 고대사를 연구 한다고 도대체 누가 최 교수를 해치려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최 교수의 이런 연구 내용 중에 뭔가 또 수수께끼나 중요한 단서가 감춰져 있단 말인가? 현암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지 는 것을 느꼈다.
최 교수는 현암의 무거운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큰숨을 한 번 내쉬고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너무 길게 이야기했나 보군. 내 연구 내용은 대략 이렇 다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고대사 쪽에 포인트 를 두고 있다는 거네. 사실 고대에 있었던 홍수가 정말 세계를 휩쓸었는가에 대해서는 내가 공박당할 우려가 많네. 그리고 기 록상의 이야기들 말고는 정말 홍수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 어났다는 근거도 찾기 어렵고. 그래서 일단은 그 이론적인 가설 체계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고 있네. 하지만 당시는 잘 해야 청동기 시대 또는 신석기 시대 말기였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다면 그런 시대에 괴멸적인 대홍수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치수 기술을 익힐 정도로 문명을 지녔던 나라는 우리 나라뿐이었네. 믿어지지 않나? 그렇겠지.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 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다른 자들의 손에 의해 손질되고 변 조되어 왔네. 더구나 우리 고대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일 대부 분은 역사를 왜곡한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정도여 서 세계 학계에 제출될 이론으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이 사실이지. 그러나 우리의 고대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더 큰 이유는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연구가 대부분 성서에 언 급된 것이나 서구의 고대사에 지나치게 주도되는 경향 때문이라 네. 트로이 성벽이나 미케네 문명이 발견된 뒤로 바벨탑의 원형 인 지구라트와 노아의 방주의 잔편, 모세의 미라 등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지. 그러나 한 가지 통탄스러운 것은 그 대부분이 성 서나 그리스 시대 등 서양 문명의 기조가 되는 것들이란 말일세. 간단하게 예를 들어 서양에 잘 알려졌던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막대한 양의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에 필적하는 남미의 피라미 드나 전설의 도시인 마추픽추, 퀘찰코아틀, 동남아의 앙코르와 트 등의 거대한 유적들은 상대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적고, 명 확한 결론도 내려지지 않고 있지. 동방으로 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네. 우리가 세계적인 문화재로 자랑하는 석굴암조차도 그 가치는커녕 존재마저도 아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네. 즉 모든 문 화사가 암암리에 서양 중심으로 쓰이고 있는 셈인데, 이는 공평 하지 못한 일이네. 동양이나 남미, 아프리카 등 주변 지대의 문 화 및 역사도 제대로 밝혀지고 알려져야 한다네. 내 꿈이기도 하 고 한낱 꿈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지만, 이 홍수 이론이 잘만 된 다면 세계 고고학계에서 고대사 부분의 전체적인 재조사를 이끌 어 낼 수가 있을거네. 그러면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해서도 많 은 것이 다시 밝혀지고 검증되리라 믿네. 이것이 내가 이 홍수 부분의 연구를 밀고 나가는 진정한 이유라네.”
최 교수의 말에 준후는 절로 감탄을 했다. 현암도 마찬가지였 다. 그러나 지금 현암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었다. 뭔가가 잡힐 듯 말 듯 현암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현암 스스로의 생각에도 자기가 하는 추측이 지나친 것 같아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두 사람은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 번에 들은 탓인지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인지라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최 교수에게 작별을 고하고 최 교수의 집을 나왔다. 집을 나서면서 현암이 준후에게 슬쩍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뭘요?”
“교수님의 연구 내용 말이야.”
“글쎄요. 제가 뭐 알아야지요. 어쨌든 상당히 흥미 있는 연구 를 하시는 것 같아요. 교수님 말씀처럼 잘만 된다면 잊혔던 우리 의 고대사를 바로잡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 그렇지만 그것 말고 말이야. 교수님의 연구 내용 중에 서 과연 남의 미움을 살 만한 일이 있는 걸까? 주기 선생의 말에 의하면 교수님은 그 연구 내용 때문에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했 잖아.”
“뭐, 교수님을 시기하는 나쁜 학자가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글쎄다.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건 좀……………”
“그러면 음…………. 우리나라의 역사가 밝혀지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 쪽에서…………”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 런 맥락에서 한 가지 더 거론하자면 음……………. 나로서도 조금 지 나친 추측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뭔데요? 현암 형?”
“최 교수의 이야기 중 그 부분이 걸렸어. 이 홍수 연구가 주목 을 끌게 된다면 전반적으로 고대사 부분의 연구가 다시 이뤄질 것이라는 말 말이야.”
“고대사 연구 때문에요?”
“결국 최 교수가 추구하는 것은 보다 정확하고 편향되지 않게 고대사를 연구하자는 데 있는 것 같아. 그렇다면 거기서 뭐가 나 올까? 만약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이 최 교수의 연구 내용이나 그 연구로 인해 파급될 어떤 영향 때문에 최 교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들은 뭔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 야. 그 드러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그건 고대의 잊 힌 힘의 일종일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생각해 보렴.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그 아이들은 블 랙서클의 영향 아래 자라나 주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 무슨 역사적인 소양은 없을 가능성이 많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 그리고 그들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공통적인 관심사는 그런 종류 의 힘이 아니겠니?”
“고대사 연구를 한다고 그런 주술법이 바로 나타난다거나 사 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그래서 나도 설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만. 그러나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라면 블랙서클 같은 데서 신경을 쓸 리가 없잖니.”
“좀 더 지켜봐야겠네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 아 이들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나도 그렇단다. 물론 그 아이들도 보통이 아니라니 위험할 수 도 있겠지만, 그 아이들에게서 어떻게든 뭔가를 알아내야 할 것 같구나.”
말을 하다가 현암은 묘안이 떠올랐는지 무릎을 쳤다. 그러고 는 의아해하는 준후를 끌어당겨서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중얼거 렸다.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기 선생이 다쳐서 병 원에 입원한 것처럼 그 중국 아이도 꽤 심한 상처를 입었을 테 니 어디선가 상처를 치료하느라 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날이 밝자마자 준후는 바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현암이 집 밖에 세워 둔 차에서 최 교수의 집을 지키는 사이에 준후는 집 주 변에 언제든지 발동시킬 수 있도록 결계를 구축했다. 자세히 말 하지는 않았지만 세 단계로 구축해서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했 다고 하는 것을 보아 퍽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난 후 준 후는 주기 선생과 승희, 연희, 현암 사이를 오가면서 소식을 전 했다. 현암과 승희는 가급적 박 신부를 나오지 않게 하고 싶었지 만 박 신부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하루 이틀 정도는 밖에서 지내도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연락을 취 할 테니 그때 오셔도 된다고 해도 박 신부는 자신을 빼놓고 어떻 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따라나서 결국 현암의 반대쪽을 지 키기로 했다. 윌리엄스 신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도와주 기로 약속했고 연희도 자신이 있어야 아이들과 대화가 가능하다 면서 고집을 부려 나와 있기로 했다. 백호도 이야기를 듣고 지원 해주겠다고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그 아이들이 눈치챌 것 같아 그것은 그만두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달려와 달라고 당부해 두었다. 사실 바이올렛의 팩스를 믿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경계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이올렛 의 정체나 기타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바이올렛의 팩스를 믿 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는 긴장된 모습으로 경계에 임했다. 밤에 는 주변을 돌아보아야 해서 현암과 승희가 각각 한 조가 되어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교수는 여전히 두문불출이었고 아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학 교에 갔다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집에 돌아왔다. 준후는 집 안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책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최 교수의 집에 들 어갔다가 아라와 그 친구들에게 붙들려서 한참을 놀아 주고서야 진땀을 흘리며 빠져나왔다.
다음 날이 되자 밖에서 밤을 새워서인지 모두들 피곤해 보였 지만 내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의 나라에서까지 와서 밤을 새우며 고생을 하는 윌리엄스 신부도 아무런 내색 없이 유 쾌하게 지냈다. 박 신부와 현암은 그동안 알아낸 일들을 종합해 서 판단을 내려 보려고 했지만 이전에 추측했던 것에서 한 발자 국도 더 나갈 수 없었다. 결국 그 아이들에게 직접 뭔가를 알아 내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암이 제안한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는 데는 박 신부도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