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4권 10화 – 홍수 23 : 대홍수의 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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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4권 10화 – 홍수 23 : 대홍수의 봉인


대홍수의 봉인

승희는 굳어진 몸이 쉬 풀리지 않아 이틀이 지난 후에야 가까 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현암은 마음이 조급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정작 진짜 이야기를 들은 승희가 꼼짝달싹하지 못 하는 지경이 되어 버린 이상 여러 가지 추측밖에는 해 볼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조치들을 취하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수습하는 데 이틀이 지났다. 승희는 침대에 눕혀 놓았지만 돌처럼 몸이 뻣 뻣하게 굳어 있는 상태여서, 사툼나의 부인과 로파무드 외의 다 른 딸들이 승희를 번갈아 보살펴 주었다. 현암과 준후, 박 신부 도 번갈아 용태를 보러 들락거리곤 했는데 이틀 후, 박 신부가 와 있을 때에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아, 홍수·

박 신부는 승희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서 다가갔다. 승희가 깨 어나자마자 마침 옆에 있던 사툼나의 셋째 딸인 쿤티가 기뻐서 소리를 치며 달려 나갔다.

“승희야, 이제 정신이 드니?”

“신부님…………….”

“그래, 승희야, 다 잘되어 가고 있다. 염려 말고 푹 쉬려무나.”

그러나 승희는 깨어나자마자 눈물부터 한 방울 주르륵 흘렸다. 

“신부님……………. 저는 누구죠?”

“왜 그런 소리를 하니? 승희야………”

“전・・・・・・ 애염명왕이 만들어 낸 몸에 로파무드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대요. 전 누구죠? 네?”

박신부는 당황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승희에게 말했다.

“누가 그랬지?”

“애염명왕이…………….”

승희는 애염명왕에게서 들은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박 신부에 게 전해 주었다. 박 신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준후는 너를 화신이라고 했고, 과거에 철기 옹은 너를 보고 신이 유배 왔다고 했지. 마스터도 전에 그런 말 을 한 적이 있고…. 모두가 틀리지는 않은 이야기였구나.”

“신부님은 절 어떻게 보시나요?”

“나? 허허허. 너는 승희지?”

“그것뿐인가요?”

“말괄량이고 좀 떠들썩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아주 좋아한 단다. 너는 승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

“그렇지만…………….”

“애염명왕이 만든 몸이라 해도 넌 분명 사람이다. 너는 엄연히 어머님의 몸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영혼이 원래 로파무드 것이 라고 말했다는데, 그건 그런 뜻만은 아닐 게다. 인간의 말로 이 해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테지. 너는 생각을 할 때 언어로 하니, 아니면 느낌으로 하니?”

“무슨 말씀이지요?”

“사람들이 언어를 알고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만 언어로만 생각하는 것은 좋지 못해. 그러면 정의되어 있지 않은 말의 뜻은 전달도 하지 못할뿐더러 더 심하면 상상할 수도 없게 된단다. 너 는 유학도 갔다 왔으니 영어는 잘하지? 우리가 뜨거운 것을 마시 면서 ‘시원하다’라고 할 경우가 많지? 그것을 영어로 옮길 수 있 니?”

“어……. 그건 적합한 말이…………….”

“그래. 그런 것과 비슷한 거란다. 언어라는 것은 한계가 있어. 언어는 사물과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지. 그 리고 공통점을 갖는 데서 시작해. 아무도 모르고 자신만이 경험 한 일은 언어로 만들 수는 있을지 몰라도 통용될 수 없어. 그렇 지 않니? 그러다 보면 사람의 사고에 언어가 파고들게 되고 결국 언어로 사고하게 되지. 이미지나 느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 란 말이야. 그러면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건 생각하기도 힘들게 되지. 결국 인간의 사고를 공유하고 돕기 위해 만든 언어가 인간 의 사고를 제한하게 되는 것이지.”

승희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어느새 박 신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고민도 잊 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승희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박신부가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 애염명왕의 말을 그렇게만 해석하면 안 돼. 너는 영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니? 그것이 원래 로파무드에게 갈 것이라고 했다 쳐도 지금 삼십여 년간 그것을 다듬고 닦은 것은 너야.”

“삼십 년이라니! 전 스물여섯 살이에요!”

“아이쿠, 이런 실수했구나. 그래, 이십육 년. 그 영혼은 너 자 신이란다. 그러니 내가 너를 단순히 승희로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렇지 않니?”

승희는 이제 기분이 좋아진 듯 고개를 끄덕였고, 박 신부도 그 런 승희에게 따스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러자 승희가 다른 말을 했다.

“애염명왕은 자신도 신의 피조물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신이 신의 피조물이 될 수도 있나요?”

“그런 이야기도 들었니? 그럼 혼자 알고 있지 말고 자세히 해주려무나.”

승희는 애염명왕이 말한 것을 박 신부에게 들려주었다. 박신 부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오로지 내 짐작일 뿐이다만, 물론 애염명왕의 이야기도 아까 말한 언어의 불확실성 때문에 확실히 전달된 것은 아니라 고 믿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내가 해 왔던 생각과 많은 부분 일치하는구나. 나는 전부터 신이 만드신 세계가 우리 인간 세상 뿐이라는 관점은 너무 좁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왔단다. 물론 외계인 운운하는 그런 것은 같은 공간 안의 일이니 빼고 말이다. 가까운 예로 우리가 만나고 때로는 싸우고 다투며 해결해 왔던 영혼의 세계가 있었지.”

“그렇지만 그건 인간이잖아요.”

“그래, 그건 맞다. 대부분은 인간과 관련 있는 것이었지. 그 러나 그렇지 않은 존재들도 가끔씩 보아 왔어. 그것을 종교에서 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령이라고 부르기도 했지. 그런 것 들의 세계도 야훼께서 창조하셨는지 모르지. 그리고 과거에 우 리가 무지했을 때는 그런 것들을 신으로 섬겼을지도 몰라. 하지 만신의 의지는 모든 것에 계신 것.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 에 대한 생각이 맞는 것인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지. 교단에 는 불경한 소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가 까워질수록 한없이 멀어지는 불가지적인 존재일지도 모르고 영 원히 인간의 인지는 알 수 없거나, 알아서는 안 되는 존재일지 도 몰라. 존재라는 말 자체도 붙일 수 없는지 모르지.”

“인간 스스로가 홍수를 자초한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나도 자세한 것은 알 도리가 없어. 그러나 인간은 확실히 어 리석은 데가 있어. 나쁜 점을 들자면 셀 수도 없지. 인간은 동류 를 해치고, 욕심 많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자신만 잘나고 자신만이 모든 것을 안다고 빼기기까지 하지. 허허허.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인간은 절대로 악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 은 사랑할 줄 알고, 동정할 줄도, 측은해할 줄도 알아. 누군가는 신과 악마를 반반 가졌다고 하지만 난 그건 주제넘은 소리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반반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할까? 좌우간 사랑스럽지 않은 피조물은 아니야. 그렇지 않니? 그래서 나는 신 께서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한다고는 볼 수 없단다. 인간들이 겪는 큰 재난의 대부분은 인간 스스로가 자초 한 것이야. 먼 과거일수록 그런 것이 적었는데 뒤로 오면서 점점 많아졌지. 과거에는 질병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무섭다고 했지만 결코 인간이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어. 그렇지만 공해나 전쟁이나 핵무기를 생각해 보렴. 스스로를 자멸시킬 것들을 만 들어 놓고 우주의 지배자라고 우쭐대고 있잖니? 허허허. 홍수도 결국 순리대로 풀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단다.”

승희는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틈도 주지 않고 현암과 준후, 그리고 최 교수가 방으로 들어왔다. 조 금 아까 쿤티가 나가서 승희가 깨어났다고 떠들고 다닌 모양이 었다.

“승희 누나, 괜찮아요?”

“괜찮니?”

준후와 현암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자 승희는 코끝이 찡해졌지만 쌀쌀맞게 대답했다.

“괜찮으니까 깨어났지 뭐.”

그러고 나서 승희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수다르사나를 되찾아야 해. 수다르사나가 잠들지 않으면 로파무드도 구할 수 없어. 더구나 마스터가 그걸로 무슨 짓을 할지 도 모르고…………. 근데 내가 얼마나 오래 이러고 있었지?

“이틀.”

현암이 짧게 대답하자 승희는 놀랐다.

“이틀?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단 말야? 그럼 그사이에 마스터가…………….”

“그래도 시간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어요. 다친 사람들이 많 았고, 최 교수님이 황달지 교수의 노트를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었으니까요. 파키스탄의 그 동굴로 가는 길을 알아내려고 좀 고생을 했답니다.”

“파키스탄의 동굴? 그건 뭔데?”

“에메랄드 태블릿이 있는 곳이지요. 아니, 녹비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군요.”

“녹비요?”

승희는 녹비, 에메랄드 태블릿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 문에 현암이 그간에 박 신부, 최 교수와 자신이 함께 겪은 일들 을 간략히 말해 주고는 덧붙였다.

“마스터는 수다르사나를 얻자 기쁜 나머지 무심코 한국어로 에메랄드 태블릿과 수다르사나의 힘을 합친다고 말했어. 그러려 면 에메랄드 태블릿이 있는 곳으로 가겠지. 태블릿은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럼 그 태블릿이 있는 곳은?”

현암이 대답했다.

“분명하지. 파키스탄에 있다는 그 동굴일 거야. 황달지 교수의 수첩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게 적혀 있는데, 최 교수님이 이틀 동안 잠도 못 주무시고 해독해 내셨지.”

앞뒤를 맞춰 보니 파키스탄에 있다는 동굴이 마스터의 근거지 임에 분명했고, 마스터가 그리로 갔을 거라는 의견에 승희도 동 감을 표했다.

박신부도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리고 애염명왕이 네게 뭔가 단서를 알려 준 것 같아서 그걸 들어 볼 겸 기다렸지.”

그 말에 모두들 승희를 쳐다보았다. 승희가 머뭇거리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준후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수다르사나에 무슨 힘이 있기에 마스터가 그토록 얻 으려 하는 걸가요? 저는 짐작이 가질 않아요. 무기로서 가공할 만한 힘이 있다고는 해도 말예요.”

이윽고 승희가 입을 열었다.

“수다르사나는 대홍수의 봉인이라고 했어. 애염명왕이 이 땅에 온 사명도 실은 대홍수를 막기 위한 것이고…”

“홍수?”

“모르겠어. 수다르사나가 대홍수의 열쇠라고 바바지도 메시지 를 남겼어. 애염명왕도 홍수를 막으라고 했고………………

준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면 마스터는 홍수를 일으키려 하는 것인가요? 그럼 태곳 적 있었다는 것과 같은 대홍수를?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어떻 게 그런 일을………”

현암이 심각한 어조로 승희에게 물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애염명왕은 수다르사나가 무지갯빛의 보석을 안고 있다고 했 고………… 바바지는 그건 인간의 힘으로 다루면 안 되며 파괴되어 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만 없앨 수 있다고 했지. 맞아. 그건 땅의 힘이며 전 세상을 휩쓸었던 대홍수의 봉인이라 고했어!”

“무지개…………… 무지개라…………….”

박신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야훼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산 것을 절멸하지 않으시겠다고 계약을 맺으셨어. 그리고 그 계약의 표로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둔다고 하셨지!”

박신부는 『창세기의 무지개의 계약 부분을 암송했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 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 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 타나면, 나는 너뿐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 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 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나타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할 것이다.”

“무지개는 자연 현상입니다. 대홍수 이전에도 무지개는 있었 을 겁니다. 그렇다면 성서에 쓰인 무지개는 혹시 수다르사나에 박혀 있던 무지갯빛 보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현암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 내 타이르듯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말씀은 그 뜻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야. 그 구절은 신께서는 다시 모든 것을 물로 절멸시키지 않 겠다는 뜻을 적으신 것이지. 그러니 그것은 하늘의 뜻에 의한 것 이 아니야. 마스터와 악마들에 의한 거겠지. 그러고 보면 마스터 는 아무래도 대홍수를 준비하는 것이 분명해.”

준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휘휘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술법이나 주술로도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어요!”

이번엔 현암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마스터를 얕보아서는 안 돼. 그는 지옥의 악마들까지 불러낸 녀석이야. 그리고 마스터의 술수만이 아니라 수다르사나에 있는 무지갯빛 보석이나 녹비도 무슨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 모르잖아? 더구나 애염명왕이나 바바지 같은 성인도 그에 대해 말했고……………. 음, 그런데 그렇다면 녹비는 또 뭐지? 수다르 사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박신부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녹비는 에메랄드 태블릿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네. 그렇다 면 티베트로 간 연희 양이나 윌리엄스 신부님이 도움될 만한 것 을 알아낼 수도 있을 거야. 그쪽도 에메랄드 태블릿이 발견되어 서 간 것 아닌가. 연희 양도 지금쯤은 판첸 라마를 만나지 않았 을까? 이틀 정도면 포탈라궁까지도 갔을 법한데………………”

“그러나 연락할 방법이 지금은 없어요. 포탈라궁에 직통 전화 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연희 양은 백호 씨를 통해 연락을 전하 기로 했으니 연락이 오면 백호 씨가 전해 줄 겁니다. 이제 승희 도 깨어나고 했으니 우리도 슬슬 출발하기로 하죠. 가는 길에 연 락을 받을 수도 있는 거구요. 마스터는 수다르사나와 녹비를 둘 다 손에 넣은 셈이니 놈을 서둘러서 막아야 해요.”

“그건 그렇군. 한시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우물 쭈물하다가 마스터가 대홍수를 일으키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 말에 준후가 반대했다.

“하지만 수다르사나와 녹비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수다르사 나를 어떻게 부숴야 하는지도 모르잖아요? 무턱대고 가 봐야 마 스터는 영혼이고, 도력이 높아서 잡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만약 놈이 또 수다르사나에 맺혀서 도망친다면 다음번에는 놈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승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혹시 사툼나가 뭔가 더 알고 있지 않을까? 바바지의 제자이 기도 하니까 말야. 수행한 지 오래된 사람이라 아는 것은 더 많 을지도 모르잖아?”

모두 승희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이윽고 승희의 청으로 사 툼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승희는 사툼나에게 수다르사나와 홍수 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있느냐고 물었지만 불행히도 별로 아는 것 은 없었다.

“마하라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도 달리 아는 것이 없습니 다. 수다르사나는 크리슈나가 쓰시던 무기고 거기엔 분노한 땅 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밖에는……”

“땅의 힘이 확실한가요? 물의 힘이 아니고요?”

“분명 땅의 힘입니다.”

“그럼 가운데 있는 무지갯빛 보석은 뭐죠?”

“저도 모릅니다. 일설에 의하면 동방에서 전래된 것이라고도하는데………………”

“동방에서?”

순간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최 교수가 벌떡 일어 섰다.

“동방? 확실한가요?”

“예.”

최 교수가 흥분하는 기색을 보이자 준후가 물었다.

“왜 그리 흥분하세요? 교수님?”

최 교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흥분해서 말했다. 

“제 추측이긴 합니다만 동방, 그건 우리에게서 전래된 물건이 분명해요. 자, 생각해 보세요. 여긴 인도입니다. 여기서의 동방 은 여러 나라가 있겠지만 고대 문명이 번성한 곳은 중국과 우리 나라 정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홍수와 관련된 봉인이라고 했어요. 그렇지요?”

“예.”

“제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오행수법을 전파해 준 것은 우리 나라의 단군조선이었습니다. 홍수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나라일 수밖에 없어요! 그 보석은 동방, 즉 우리 쪽에 서 인도로 건너오게 된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사람들이 놀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준후도 무릎을 쳤다. 

“생각해 보면 아귀가 맞네요! 수다르사나는 비슈누 신의 화신 인 크리슈나의 무기라고 했지요? 비슈누 신은 인도에 대홍수가 덮쳤을 때 물고기 아바타라인 마치야로 변해 인간들을 홍수에서 구해내기도 했어요. 그 비슈누의 화신이 쓰던 무기라면……………. 물론 마치야와 크리슈나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어떤 관련이 있 지 않을까요?”

“크리슈나도 비슈누의 화신이니 연관이 있을 것도 같군.” 

박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 교수는 준후의 말이 끝나자 다 급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수다르사나라는 것도 우리의 고대사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에메랄드 태블 릿, 즉 녹비와도 유사한 점이 있을 겁니다. 황달지 교수의 연구 에 따르면 파키스탄 지방의 녹비는 수메르와 비슷하게 서쪽으로 이동해 간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세운 유적입니다. 그건 홍수를 다루는 치수 기술의 전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다 면 그 녹비와 수다르사나라는 것은 관련이 깊은 물건인지도 모 릅니다!”

최 교수가 말을 마치자 현암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마스터는 신동들을 양성하기 위해 찾은 동굴의 유적에서 우연히 녹비를 발견했다. 거기서 태곳적 대홍수의 비밀을 알아내 고수다르사나에 박혀 있는 보석이 홍수의 봉인인 것을 알아냈 다. 그것을 얻으려고 했으나 그건 바바지가 보관했고 대성인인 바바지를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신의 화신인 승 희를 이끌어 낸다는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대강 이렇게 이야기 가 되는군요.”

이제는 모두 현암의 추리가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그들은 새삼 마스터의 용의주도함과 사악한 꾀에 치를 떨었 다. 마스터는 그것을 위하여 자신이 양성했던 신동들마저 주저 없이 희생시켰고 악마를 세상에 끌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제는 세상을 대홍수로 휩쓸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박 신부가 거기까지 듣고 있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스터는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대홍수가 난다고 자신이 힘을 얻는 것도 아니고 죽은 몸이 살아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말을 서둘렀다.

“이제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어. 어서 그쪽으로 가야겠어!” 

박신부가 결정을 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백호가 헐떡거 리면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짐을 꾸리세요! 급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도구르가 병원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쪽에서 몇 대의 차가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정보원들 같습니다. 어서 떠나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랐다. 특히 준후와 승희는 지금까지 쫓 긴 것만도 지긋지긋한데 또 정보원들이 따라온다고 하니 넌덜머 리가 났다. 박 신부가 백호에게 물었다.

“도구르가 사라졌다고요? 병원에서 빠져나가서 우리가 있는 곳을 정보부에 일렀단 말입니까?”

“그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도구르가 사라지고 정보원들이 이곳을 알아냈다면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박신부는 실망한듯, 침착하지만 섭섭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도구르가 그러리라고는 보지 않았는데 마음을 고쳐먹지 않은 것일까?”

현암이 무표정한 얼굴로 박 신부에게 말했다.

“도구르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는 해도, 그가 우리를 위험인 물로 간주하는 것만은 어쩌지 못했나 보죠. 그도 임무가 있는 사 람이니 할 수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더 이상 우리를 마구잡이로 죽이려 들지는 않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죠.”

박 신부는 그래도 미심쩍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백호 가 헛소리를 할 사람도 아니니 그 말을 믿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백호는 입에 물었던 빈 담배를 탁 뱉어 내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은 어서 떠나세요. 저는 여기 남아서 정보원들의 동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공항 부근에 호텔 방을 하나 잡아놓았는데, 사툼나가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안내해 줄 겁니다. 그리로 가시면 요원이 마중을 나갈 것입니다.”

백호가 안내를 부탁하자 사툼나는 흔쾌히 응낙하고 거기까지 가는 것은 자신에게 맡기라고 씩 웃어 보였다. 모두가 바쁘게 움 직이는 동안 현암이 백호에게 물었다.

“혹시 티베트에서 연희 씨가 연락을 보내 오지는 않았나요? 이번에는 세크메트의 눈을 주질 못해서……………..”

“아직 없습니다. 호텔 방에 위성 전화기가 있을 겁니다. 그걸 가지고 가시면 땅속만 아니면 지구상의 어느 곳이라도 연결이 됩니다. 그걸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죠. 연희 씨도 그리로 연락할 테구요.”

그 말을 듣고 현암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별 신기한 것을 다 만져 보게 되는군요.”

결정이 내려지자 다들 신속하게 움직였다. 박 신부는 백호에 게 비행기를 준비해 달라고 했고 승희는 사툼나에게 비행장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을 부탁했다. 그곳은 마스터의 최후 보루이고 악마인 블랙엔젤과 살아남은 신동들도 있을 것이 확실해 상당 한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자신이 없으면 동굴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동행을 주장했고, 아라마 저도 아빠와 준후의 곁을 떠날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현암과 준후가 아라를 달래려고 무진 애를 쓰고 또 쓰는데 보다 못한 주기 선생이 준후를 불러 살짝 말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이젠 꼼짝도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할 일은 뒤치다꺼리밖에 없구나. 이 아이는 내가 잡고 있을 테니 그사이 살짝 떠나거라. 내가 한국으로 데려갈 테니 염려하지 말고.”

“네. 고마워요!”

“고맙네.”

준후를 보며 미소를 띠던 주기 선생은 현암이 거들자 큰 소리로 외쳤다.

“너한테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 이러는 게 아냐!”

현암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밖으로 나가자 주기 선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표정으로 돌아와서 준후에게 말 했다.

“너같이 똑똑한 애가 왜 저런 건달하고 같이 다니는지 모르겠다.”

“너는 이제 십이지신술의 전인임을 잊지 마라. 그리고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주기 선생이 엄숙한 얼굴로 준후에게 말했다.

“절대 위험을 무릅쓰지 마라. 특히 정의를 위해서는 그러지마라.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정의야. 차라리 아라를 위해서나, 하다못해 전자오락을 마저 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라. 알아 들었냐?”

준후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기 선생이 다시 말했다. 

“가장 용감한 놈이 가장 빨리 죽는 법이다. 현암 놈은 포기했 고 신부님은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너는 어려. 진짜 정의가 뭔 지 잘 모른다. 내 말은 비겁해지라는 것이 아니고 잘 알지도 못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싸우지 말라는 거다. 그러면 바보가 돼 보이는 걸 위해 싸워라. 그게 내 정의다. 난 나쁜 놈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어.” 

준후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져 주기 선생의 눈을 들 여다보았다. 주기 선생이 준후를 밀쳐내며 말했다.

“정의가 꼭 이기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긴 놈이 정 의가 되는 거지. 그래서 정의파가 되고 싶지 않아. 일단은 이기 고 보는 거야. 알겠니? 난 말재주가 없어서…………. 내 말은 다했 다. 이제 고 깜찍한 계집애는 나한테 맡기고 어서 가려무나.”

준후는 주기 선생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돌아서 방 을 나섰다. 문에서 등을 돌리며 자리에 눕는 주기 선생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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