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4권 7화 – 홍수 20 : 승희와 로파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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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4권 7화 – 홍수 20 : 승희와 로파무드


승희와 로파무드

사툼나가 외치자 그의 뒤에 잔뜩 몰려들었던 순례자들도 모두 소리를 모아 마하라가를 외쳤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파도처 럼 사방에 울려 봉우리 위를 가득 메웠고 승희는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내저었다.

“난 힘이 없어. 나는…………….’

승희가 뭐라고 더 말하려 하는데 몸 안에서 무언가 기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애염명왕이었다.

내 말을 전해다오.

승희가 그러겠다고 마음먹자 애염명왕이 말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수다르사나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는 영혼과 육신이 합쳐지지 못할 것이다. 기다려라.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될 것 이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기다리시오. 수다르사나가 모습 을 감추기 전에는 영혼과 육신……”

승희는 애염명왕의 말을 옮기면서 마음속으로 애염명왕과 격렬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그리고 왜 나와 똑같이 생긴 거지?

그 여자는 너의 육신이다.

내 육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뭐지?

너의 영혼은 너의 것. 그러나 너의 몸은 아바타라다.

뭐라구? 그럼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잘 들어라. 이제 너의 모든 것이 앞에 있으니 내가 알려주도록 하겠 다. 너는 원래 여기, 인도에서 로파무드로 태어날 운명이었다. 나를 믿 고 나의 힘을 행할 자로서………………

내가 인도에서

그렇다. 그러나 악의 존재들이 세상의 힘을 거두어들이면서 세상의 조화가 허물어졌다. 사람들은 정신과 영혼보다는 물질을 더 믿기 시작 했고 선과 악의 차이 때문에 순리와 억지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선 과 악의 조화를 위해서는 나의 힘을 대신 행하는 자가 아니라 내가 직접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정되어 있던 로파무드는 너의 영혼만을 수용할 수 있었고 그 외의 어떤 인간도 내가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비슈누의 지혜를 빌려 나 자신의 아바타라를 만들고 너의 영혼을 그리로 부른 것이다.

그, 그럼 로파무드는 지금 영혼이 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렇다. 예정되어 있던 조화를 깬 나는 그에 해당되는 인과를 치러야 만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내 화신, 즉 내가 너의 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힘을 발휘할 수도 없는 이유다.

그러면 왜 한국으로?

너는 화신이지만 인간이며 네 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죽고 상처받을 수 있는 약한 존재다. 나는 지금 너의 몸, 그러니까 내 화신의 속에 •서 매우 제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한 선의 수호자들이 있는 곳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억해 보라. 너는 쌍둥이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선의 수호자라는 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승희는 알 수 있었으나 그보다는 그 말에서 받은 충격이 더 강했다. 승희는 주 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자신은 일반적인 쌍둥이가 아니라 주희를 본떠 애염명왕이 만들어 낸 복제 인간 같은 존재 란 말인가?

그럼 ・・・・・・ 그럼 나는 인간이 아닌가?

염려 마라. 그대는 인간이니. 화신이라 해도 엄연히 인간이다. 비슈누 는 열 가지의 화신으로 변했으나 인간일 때는 인간으로, 물고기일 때는 물고기로, 아수라나 야차일 때에는 아수라나 야차로 도리를 다하고 생 을 마쳤다. 더구나 너는 너 자신의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너의 영혼으로 움직인다. 나는 나의 힘을 빌려 줄 뿐. 정확하게 말한다면 너희가 말하는 화신 아바타라는 아닌지도 모르지. 

승희는 잠시 침묵하다가 애염명왕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조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왜 인과를 치르면서까지 내 몸으로 들어온 거지?

나는 믿는다. 나는 당장의 조화를 깨고 천기를 어겨 유배를 온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로 인해 더 큰 조화를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더 큰 조화?

홍수다. 하늘의 뜻에 틈이 벌어져 다시 한번 인간들 스스로가 죄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 홍수를 막아라.

호, 홍수라니! 어떻게?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신의 섭리란 알기 어려운 법이니………….

신의 섭리라니? 당신은 신이 아닌가?

나 또한 신의 피조물이다. 인간이 부르기에 신이라 하는 것뿐. 진정한 신은 초월신뿐이니 ………….

당신도 피조물이라고?

신의 섭리가 인간을 만들고 수없는 생물을 만들었는데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눈에 보이고 느껴져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그 말을 듣자 승희의 뇌리에 블랙엔젤이 마지막으로 소리치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

아까의 악마나 당신이나 모두 신의 피조물? 그러면 다른 세상에 사 는 다른 존재들이란 말인가?

인간이 미개할 때에는 우리가 신이 되었다. 이제 인간은 초월신의 영 역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우리도 신인 척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원한다 면 우리를 신으로 불러도 상관은 없겠지. 신은 우리 안에도 계시고, 인 간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도 계시고,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것이니까.

승희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고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애염명왕이 말했다. 수다르사나가 잠들고, 모든 것이 정리되면 로파무드도 순리대로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사라졌다. 승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염명왕의 마지막 말을 반복했다.

“수・・・・・・ 수다르사나가 잠들고 모든 것이 정리되면 ・・・・・・ 로파 무드도 순리대로 될 것이다.”

승희는 이유 없이 슬프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승희는 손을 뻗어 로파무드의 뺨을 만져 보았다. 뺨의 감촉은 부드러웠 고 생각 외로 따스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로파무드의 텅 빈 눈동 자는 백짓장 같아 일견 멍해 보이기도 했으나 그 뒤에 반짝이는, 뭔가 알 수 없는 순수함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갓 태어난 아기의 눈동자였다. 사툼나와 순례자들 은 계시가 내려지자 환호성을 올리면서 계속 기도를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현암과 박 신부, 준후는 서로 얼 굴만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일행에게 승희가 중얼거 리듯 말했다.

“이 여자애는 나 자신이기도 해요…. 구해야 해요.”

박신부가 승희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승희야, 마음속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니?”

승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승희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것보다도 로파무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꽉 차올라서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박 신부는 승희의 마음을 알 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쳐 주었다. 그 러자 승희가 중얼거리듯, 로파무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간신히 말했다.

“수다르사나를 잠들게 하라 했어요. 그래야 로파무드도 순리 대로 될 것이라고………….”

박신부는 승희를 돌아보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승희는 로파무드의 얼굴을 흘린 것처럼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 었다. 평소와는 다른 어눌한 어조에 끝에 가서는 더듬기까지 했다. 

“조화를 지키라고…………… 홍수를, 홍수를 막으라고 했어요. 인 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현암과 준후는 깜짝 놀랐다. 현암은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승 희에게 물었다.

“홍수라고 했니? 홍수가 난다는 거야? 애염명왕이 말했어?” 

승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염 명왕에게 몸을 빌려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자세 그대로 딱 딱하게 굳어 버렸다. 현암은 답답했으나 박 신부는 그런 현암을 미소로 다독거렸다.

“홍수가 나더라도 지금 할 일은 해야지. 승희가 한두 번 저렇게 된 것도 아니고…………. 여기 벌어진 난리부터 수습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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