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4권 8화 – 홍수 21 : 재합류
재합류
박 신부의 출현으로 인해 마스터가 영이 되어 수다르사나에 맺혀 달아나고 블랙엔젤도 사라진 뒤, 사툼나를 비롯한 인도의 순례자들은 부상을 입은 주기 선생, 성난큰곰, 도구 등과 퇴마 사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 어느 작은 산간 부락에 도착하였다. 사툼나는 승희가 수다르사나를 지키지 못하고 마스터에게 넘 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승희와 퇴마사들에게 매우 친절했고 순 종적이었다. 또한 이 마을의 족장이어서 많은 순례자들을 동원 하여 순식간에 뒷수습을 해 주었다.
주기 선생과 성난큰곰 등은 원래의 상처가 다 낫지도 않은데 다 블랙엔젤에게 당하여 움직일 만한 형편이 못 됐다. 도구르 는 출혈이 심하고 얼굴이 많이 찢어졌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 었다. 다만 산간 부락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어서 사람을 동원해 큰 병원에 입원하게 했다. 주기 선생은 온몸을 다쳐 미라같이 붕 대를 감았으나 의식이 있었고, 성난큰곰은 뇌진탕 기운이 있어 서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가련하게 이용당하다가 숨진 레그나와 앙그라는 산간에 매장되었고 바이올렛은 죽지는 않았지만 식 물인간처럼 숨소리만 내며 누워 있었다. 한편 백호는 떨어져 내 릴 때의 충격으로 오른 팔목이 부러져 깁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라와 최 교수는 뒷수습이 대강 끝날 때쯤 백호의 연락을 받 고 비행기에 동승했던 요원 한 명과 함께 마을로 찾아왔다. 아라 가 맨 먼저 뛰어왔다.
“우와앙, 오빠아!”
아라는 준후를 보고 반가웠는지 껑충껑충 뛰었다. 그러고는 어린나이답지 않게 제법 심각하게 준후의 어깨 상처를 걱정했다.
“많이 다쳤어? 으응?”
준후는 얼굴이 빨개지자 옆에 누워 있던 주기 선생은 그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누구는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저 애한테는 너만 보이 나보다. 이거야원 섭섭해서……………”
“아저씨도 아프지 마세요.”
아라가 하도 간드러지게 말을 해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 렸다. 한편 백호는 다른 방에서 아라와 최 교수를 데리고 온 요 원에게 그간 돌아가는 사정을 물었다.
“정보기관들의 근황은 어떤가?”
“별일 없습니다. 다만 중국 측에서 항로를 추적하고 따라온 모 양입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사람들이 뛰어내린 사실까지는 알지 못하니, 그냥 이곳의 공항만을 감시하고 있을 뿐 이지요.”
“인터폴에서는? 도구르가 납치되었다고 신경을 곤두세울지도 모르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중국의 웨이라는 요원이 보고를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백호는 피식 웃었다. 도구르의 신변도 중요하지만 도구르가 어디로 갔는지를 말하면 웨이 자신이 남의 나라 비행기에 난입 했던 것도 알려질 테니……………. 도구르보다는 웨이 자신의 안전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백호는 짐작했다.
“웨이는 역시 도박을 하지 않는군. 하지만 공항을 감시하는 것 도 웨이와 그 부하들이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미행당하지는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오히려 중국 측 요원들에게 우리 측 요원들이 미행을 달고 있지요.”
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웨이는 우리가 도구르를 해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겠지. 도구르도 다시 찾고 틈이 난다면 저 사람들을 잡아 보려고 말야. 하지만 좀 힘들 거야. 후후후. 이 마을을 찾아내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뭔가?”
“저는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상부의 지시는………….”
“여긴 전장이나 마찬가지다. 야전 사령관이 전선에서 재량권 을 갖는 것처럼 여기서의 지휘권은 나에게 있다. 궁극적으로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니 염려 말게.”
“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됐네. 나가 보게.”
“예!”
요원이 나간 후 백호는 불붙이지 않은 인도산 담배를 입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고민에 빠졌다. 인도산 담배라도 불을 붙이지 않으니 별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요원들을 속이면서 저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어 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독한 인도산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은 담 배를 안 피운 지 오래된 백호로서는 너무 큰 모험이지 싶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모험이란 말인가?’
백호는 스스로를 생각하며 어이가 없어 껄껄껄 혼자서 웃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