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4권 9화 – 홍수 22 :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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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4권 9화 – 홍수 22 : 티베트


티베트

한편 연희와 윌리엄스 신부는 티베트에 도달하여 포탈라궁의 아래쪽 둔덕을 낡은 트럭 같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포 탈라궁은 널리 알려진 장소는 아니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불 가사의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산 하나를 통째 로 굴을 뚫고 구조물을 씌워서 만든 건물이었는데, 놀랍게도 모 든 건축물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티베트가 산간 지방이라 굵은 나무가 귀해, 기둥 같은 곳은 얇은 나무를 다발로 묶어서 두꺼운 나무와 같은 효과를 주도록 사용한 것이 특이했다. 포탈 라 궁의 초입 주변은 그야말로 사원의 분위기라기보다는 어수선 한 시장 같았다. 멀리서 볼 때에는 장관이었으나 가까이에서 본 포탈라궁은 전모가 보이지 않아 그냥 여기저기 작은 건물들이 산재한 변두리의 시가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장사하는 사람들 과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곳곳이 붐볐다.

“사원의 분위기가 아니군요.”

연희가 웃으며 말하자 윌리엄스 신부도 씩 웃어 보였다. 

“티베트는 종교와 정치와 시민 생활과 문화가 모두 일치된 나 라였지요. 지금은 중국의 한 자치지역이 되어 있지만 생활습관은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아직도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지요.” 

두 사람이 트럭 같은 버스에서 내리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멀찍이서 그들을 구경했다. 남루한 옷에 얼굴이나 머리칼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활기가 있었고 행동도 순수해 보였다.

“사람들의 성격이 퍽 맑군요.”

“이곳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생활을 별로 중시하지 않습 니다.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맨 위부터 하층민까지 동 등하니 부를 쌓겠다거나,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욕심도 없지요. 오로지 내세에 좋은 곳으로 환생해서 복락을 누리고자 하는 염 원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쁜 말로 하면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이 고, 좋은 말로 하면 미래 속에서 산다고 하겠지요. 물론 요즘은 도시 지역부터 점점 근대화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뭐라고 떠들면서 연희와 윌리엄스 신부의 옷자락을 만져보려다가 말고, 만져 보려다가 말고 하였으나 두 사람은 웃 으면서 개의치 않고 발길을 옮겼다.

“이 아이들, 씻기면 무척 예쁠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은 씻는다는 개념이 없을걸요. 물이 워낙 귀하기 도 하고요. 세수를 일 년에 한 번이나 할까 말까 하죠. 허허허.” 연희는 그 말을 듣고는 찔끔하여 아이들과 거리를 두려 했으 나 윌리엄스 신부는 가던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러면서 비로 소 자신이 티베트에 초청받게 된 경위를 연희에게 소상하게 말 해 주었다.

“이번에 티베트에서 제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은 포탈라궁지 하의 알려지지 않았던 방에서 발견된 에메랄드 태블릿 때문입 니다. 그 안에 무언가 신비한 힘이 들어 있는 것 같고 또 비면(碑 面)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더군요. 그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티베트 측과 나아가서는 저희의 바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티베트는 가톨릭에서도 포교를 하지 못했던 유일한 지역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원래 티베트는 정치, 사회, 문화가 모두 종교적인 일치를 이 루고 있던 지역이지요. 라마교도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고요. 그 런 티베트에서도 불가해한 것으로 여길 정도라면 보통 일은 아 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가요?”

“기존에 발견되었던 에메랄드 태블릿에 대해서는 서구 쪽에서 많은 조사가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 제는 학자의 연구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문제라고 여겨서 성직자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 같습니다. 티베트와 교황청이 드 러내 놓고 연결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영국 성공회를 통해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에요. 그랬더니 저에게 연락이 오더군요. 제가 유 달리 인정받는 신부도 아닌데 저에게 연락이 온 것을 보면 뭔가 감춰진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춰진 것? 어떤 것이?”

“제가 영국에서 알려진 것은 단 한 가지, 영적인 능력뿐입니 다. 물론 박 신부님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는데, 그러한 능력이라면 라마교의 사람 들도 뒤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저의 작은 능력을 필요 로 할 까닭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작은 능력이라니요. 무슨 겸손의 말씀을………………”

“아닙니다. 허허허. 그래서 저는 이렇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에메랄드 태블릿이 가톨릭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어서 그쪽의 능력과 영적인 힘을 같이 지니고 있지 않으면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올라가자 저만치에 서 노란 승복을 입은 젊은 라마승 두 명이 서 있다가 합장을 하 면서 두 사람을 맞았다.

“윌리엄스 신부님이십니까?”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그 젊은 승려는 유창한 영어로 두 사람 을 맞았다. 연희는 속으로 라마들이 저렇게 영어로 잘한다면 자신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윌리엄스 신부도 그들의 인사에 답하면서 연희를 소개 했다.

“이쪽은 한국에서 오신 서연희 양입니다. 각국의 언어에 능통 하신 분이지요.”

라마들은 연희에게도 정중한 합장으로 인사를 했고 연희도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판첸 라마께서 나와 계십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라마승들은 두 사람의 앞을 인도하여 포탈라궁의 안으로 들 어갔다. 포탈라궁에는 수많은 문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를 통 해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명의 승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가운데 한 나이 많은 승려가 눈에 도드라져 보였다. 특별히 체구 가 크다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 게 평안해 보이는 인상이 그를 돋보이게 했다. 윌리엄스 신부와 연희 두 사람이 그들의 앞에 다다르자 그들을 인도했던 라마승 이 소개를 했다.

“판첸 라마십니다.”

일반적으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는 달라이 라마로 알려져 있지만,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라마교의 외면적인 지도자라고 한다면 판첸 라마는 라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내부적인 지 위는 달라이 라마 못지않다. 두 사람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판 첸 라마 역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곧 두 사람은 내실로 안내 되어 들어갔다.

“먼 길 왕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을……”

판첸 라마 또한 영어를 잘했다. 거의 평생 동안 포탈라궁 밖 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능숙한 영어를 배웠을 까 연희는 궁금했지만 드러내 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판첸 라 마는 내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품이 부처님 상을 대하는 느낌을 주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그 특유의 쾌활하고도 구김살 없는 말투로 판첸 라마에게 말했다.

“이쪽은 한국에서 오신 서연희 양이십니다. 이번 일에 많은 도 움을 주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판첸 라마는 그윽한 동작으로 연희에게 합장을 해 보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나 뵙기 어려운 분이시군요.”

그 말에 연희는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별 말씀을요. 저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합니다.”

“아닙니다. 예부터 예언된 분이신데.”

“무슨 말씀이신지요?”

“모르고 계셨습니까? 허허허. 공연히 이야기한 듯하군요.”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연희 씨라고 하셨지요? 연희 씨의 눈빛을 보고 그동안 아무도 무슨 말을 하지 않았던가요?”

“눈 말인가요?”

연희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간 연희는 자신 의 눈빛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마스터 등 블랙서클의 인물들은 자신의 눈을 보고 ‘심연의 눈’이라고 말했고 리도 이 눈빛 때문에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연희는 그 동안 자신의 눈빛이 무슨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제 눈이 어떤가요? 왜…………….”

“연이 닿으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허허허.”

판첸 라마는 그 말뿐, 더 이상 연희에게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연희는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더 물을 만한 상황이 아니 어서 그냥 마음에 담아 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무 언가가 있으며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 이 뛰는 것은 억제할 수 없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에메랄드 태블릿에 대 한 이야기를 꺼냈고 그러자 판첸 라마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 갔다.

“에메랄드 태블릿이 발견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아시다시 피 포탈라궁은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평생을 이 안에서 사 는 승려조차도 아는 곳보다 모르는 곳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아 주 우연한 기회에 고대에 만들어졌던 방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 정중앙에서 에메랄드 태블릿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인가 이상한 힘에 의해 수호되고 있어서 누구도 만 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만지지 못한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손이 닿지 않습니다. 허허허. 저희로서도 신기한 일입니다만……”

윌리엄스 신부와 연희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눈앞에 두고 도 손이 닿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 손이 닿지 않습니까?”

“허허허. 무리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인연이 있어서 연유 를 알아낼 사람이 아니라면 좋지 못할 것 같아서 내버려 둔 것입 니다. 마침 서방 측에서 이와 비슷한 것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 다고 들었기에 도움을 청해 본 것이지요. 가능하면 손이 닿지 않 는 이상한 현상을 해명할 영능력이 있으신 분으로요.”

윌리엄스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태블릿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거기에 무슨 글자들이 각인되 어 있지 않습니까? 서방에서 발견된 에메랄드 태블릿에는 페니 키아어로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습니다만.”

“글자가 있습니다. 아주 선명하게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어떤……………”

“전혀 알 수 없는 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알려진 적이 없는 글 자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윌리엄스 신부는 연희를 돌아보았다. 티베트의 라마도 무지한 사람은 아닐 터이니 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글 자라고 한다면 필경 새로 해독해야 할 고대어가 틀림없었다. 그 렇다면 연희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윌리엄스 신 부는 과거 잊힌 언어였던 켈트어의 문구를 며칠 만에 풀어 낸 연 희의 놀라운 언어 능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긴 말 나눌 것 없이 당장 그 에메랄드 태블릿을 보러 갈 수 있겠습니까?”

윌리엄스 신부의 말에 판첸 라마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요.”

“예? 포탈라궁 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방은 포탈라궁의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가장 깊은 곳은 아닙니다만, 걸어가시면 지름길로도 하루는 넘게 걸 리실 것입니다. 먼 길을 오셨는데 쉬었다가 가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스 신부와 연희는 믿기 어려웠다. 아무리 포탈라궁이 거대하다고 해도 하루 이상을 계속 걸어야 닿을 수 있는 방이 있 다니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하루 이상이라고요?”

“일반인은 물론이고, 승려들도 대부분 출입이 통제되는 깊숙 한 곳입니다. 포탈라궁은 산 위의 건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 궁 안에는 산을 파고 지하로까지 깊숙이 이어져 있는 수 많은 방들이 있답니다. 그래서 저도 가 보지 못한 깊은 곳이 많 “습니다.”

윌리엄스 신부는 아연한 표정이었지만 연희는 오히려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신부님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출발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 다. 저는 문제없으니까요.”

“연희 양, 괜찮겠어요?”

“박 신부님과 다른 분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일의 실마리를 풀 기 위하여 고생하시는데, 이 정도를 힘들다고 하다니요.” 

“좋습니다.”

윌리엄스 신부는 연희를 쳐다보며 웃고는 판첸 라마에게 가급 적 빨리 출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판첸 라마도 윌리엄스 신 부가 그렇게 말하자 긴 말 하지 않고 즉시 출발하기로 선선히 동 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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