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5화
라이온의 상당히 거친 해적 선발이 호위대장 슈마허의 자발적인 변절에 도움을 받아 간단히 마무리되었을 때, 태양은 이미 수평선을 넘었고 하늘은 부드러운 검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판자 위에 서 있던 라이온은 벼락출세의 본보기가 되어 있었다.
“선장? 내가?”
“물론 임시직입니다. 따라서 취임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판자 끝으로 걸어갈 때 자유호의 갑판장이었던 라이온은, 그래서 판자 끝에서 돌아올 땐 레보스호의 임시 선장이 되어 있었다. 비록 그 안에 실린 화 물을 다 팔아치우는 순간 침몰시킬 배였지만, 어쨌든 선장은 선장이다. 석양을 바라보던 라이온은 노련한 선장 같은 표정을 지어보려다가, 그런 자신 을 비웃어준 다음 고개를 돌려 레보스호의 선장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피탄에 의해 선체에 구멍이 몇 개 나고 충각에 꿰뚫리기도 했지만, 라이온은 레보스호가 웬만한 파도를 만나지 않는 이상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고 판단했다. 그래서 배의 보수에 앞서 사상자들의 시체를 바다에 던지는 작업이 먼저 시작되었다. 해적이 되기로 맹세한 카밀카르의 병사들은 아무 말 없이 전우의 시체를 바다에 던졌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가슴속으로 통곡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풍덩거리는 물소리만이 들릴 뿐 밤바다는 고요했 다. 다른 해적선들 역시 침묵 속에 레보스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체 처리와 부상자 격리가 끝났을 때 밤은 이미 깊어 별빛이 아롱거렸다.
레보스호의 선원들은 격렬한 전투와 그 뒷처리로 정신이 몽롱할 정도의 피로를 느꼈다. 노잡이 노예들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라이온은 자유호로 전 갈을 보내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직한 지시와 명령들이 오갔다. 잠시 후 해적 선단과 레보스호는 밤바람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떠내려가는 식 의 항해를 시작했다. 배들 간의 간격을 나타내기 위해 선수와 선미에 밝혀든 등불만이 장난스럽게 까불거릴 뿐 아홉 척의 배는 정적의 해원을 소리 없이 미끄러졌다.
흔히 육지 사람들이 상상하곤 하는 해적들의 미친 듯한 잔치 – 술통이 바닥날 때까지 퍼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불운한 포로들을 상어에게 던져주는 식의 — 는 없었다. 격심한 전투 직후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강인한 해적들이라 해도 모두 혈관이 파열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노스 윈드의 해적들은 기율이 꽤나 엄하다. 다만 해적선 곳곳에선 레보스호에서 슬쩍한 고급 술병으로 조촐한 잔치를 벌이는 해적들이 있었지만, 엄격한 식스도 눈감아줄 정도의 작은 잔치였다.
사건은 그런 고요함 때문에 일어났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엘리엇 선장의 소유였던 침대에서 사지를 제멋대로 던진 채 잠들어 있던 라이온은 섬뜩한 느낌을 받 으며 일어났다. 침대에 앉은 채 라이온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무엇 때문에 잠에서 깨었더라?
시각, 어둡다. 후각, 별 냄새 없군. 촉각, 매끄러운 시트의 감각. 아아, 이 맛에 선장이 되는 건가. 청각, 뱃전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노랫소리. 별 이상 이 없는………… 잠깐. 노랫소리라고?
라이온은 자신의 등뼈가 타다다닥 소리를 내며 곧추서는 느낌을 받았다. 밤바다 위에서, 특히나 해적 선단에서는 절대로 들릴 리가 없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낮은 허밍.
“우와아악!”
라이온이 비명을 지른 바로 그 순간, 선단 곳곳에서 머리카락이 쭈뼛 설 것 같은 비명들이 터져나왔다. 비명들은 서로 공명하여 더욱 처 절해졌고, 갑판을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덜거럭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고요한 밤항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 같은 소란 속으로 빠져들 어갔다.
해적선 곳곳에서 랜턴 불빛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목적을 잃고 달리던 해적들은 서로에게 부딪히며 놀랐고, 돛에 비치는 자신들의 괴물 같은 그 림자를 보고도 놀라 주저앉아서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자유호의 주승강구에서 갑판 위로 뛰어올라온 식스는 당황하며 고함 질렀다.
“모두 정신차려! 조용히 햇!”
그때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기에 발생한 극히 짧은 정적 속에서, 식스는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 는 부드러운 허밍을 들었다.
음….. 음음…… 음…….
식스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