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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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6화


해적선 곳곳에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착란에 빠지게 만드는 비명이 높아지는 가운데, 흑기사호의 주승강구에서 오닉스가 뛰쳐나왔다. 바지만 걸친 모습이었지만 얼굴의 마스크만은 완고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돛대라도 찍어넘길 듯한 그 어마어마한 배틀 엑스를 꽉 쥐고 있었 다.

흑기사호의 상황도 다른 배의 상황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선원들은 서로의 얼굴에 놀라고 자신의 발걸음에 놀라고 심지어 자기 머리카락을 스스로 잡아당기며 ‘귀신이 내 머리를 잡아챈다!’ 등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어이없어하는 한숨 소리 한번 뱉어볼 만하건만, 대신 오닉스는 갑판에 주저 앉아 있던 해적들의 덜미를 붙잡아 일으켰다.

해적들은 질겁했지만 오닉스는 그들에게 공포에 자신을 맡기는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공포에 손을 떨면서도 해적들은 오닉스의 손짓에 따라 보 트를 내렸다. 오닉스는 뱃전에서 그대로 보트로 뛰어내렸다. 하마터면 배가 뒤집어질 뻔했지만 오닉스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왼손을 들어 자유호를 가리켰다. 노들이 물결을 때렸고 보트는 자유호로 흘러갔다.

보트원들은 노를 젓는 단순하고 격렬한 동작이 가져다준 평온함 속에서 괴기스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닉스의 기세는 분명히 누군가를 때려 죽일 기세였고, 아무리 해적이라도 동료 선박을 방문하는 몰골로는 최하급이었다. 웃통은 벗어붙이고 오른손의 도끼는 그 자체가 오른팔의 연장인 것처럼 단단히 움켜쥔 채 사트로니아의 대해적은 보트의 뱃머리에서 자유호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흑기사호의 보트가 자유호로 흘러가는 동안에도 다른 배들에서는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제기랄, 도대체 뭘 들었다고 이 지랄들이야, 응? 오닉스 선장? 어디 가는 건가!”

그랜드머더호의 선장 킬리는 자유호로 향하는 오닉스의 보트를 발견하고는 뱃전으로 상체를 내밀어 외쳤다. 그러나 오닉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킬 리 역시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킬리가 다른 방식의 질문을 궁리하는 사이에, 오닉스의 보트는 자유호의 뱃전에 닿았다. 오닉스는 배 틀 엑스를 허리춤에 꽂은 다음 재빠른 동작으로 건현을 기어올라갔다. 쿵! 오닉스의 거구가 갑판에 서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갑판에 얼어붙어 있던 식스는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오닉스의 모습에 더욱 놀랐다.

“오닉스 선장? 뭐하자는 거요, 그 도끼는 또 뭡니까?”

오닉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눈만을 붉게 불태우며 식스를 향해 걸어갔다. 소름이 돋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식스는 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는 당신의 배가 아니오, 오닉스 선장! 동료 선장에 대한 예의를 갖추시오.”

오닉스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식스를 보며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식스는 어두운 밤에 오닉스의 빠른 손짓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 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닉스는 매우 간단한 손짓 두 개만을 보내었다. 오닉스는 먼저 새끼손가락을 펴보이고는, 손을 뒤집어 자신의 목을 치는 시늉 을 했다.

“여자, 율리아나 공주? 그건 안 됩니다!”

발끈한 오닉스는 더 이상 손짓을 보내지도 않았다. 오닉스는 그대로 식스를 향해 걸어왔다. 의혹 속에 오닉스를 바라보던 식스는 오닉스가 막을 테 면 막아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식스는 성난 오닉스의 앞을 막는 것은 맨손으로 범고래의 돌진을 막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식스는 옆으로 비켜서고 말았다.

오닉스는 거리낌없는 태도로 식스의 옆을 지나쳐 자유호의 승강구 앞에 섰다. 그러나 오닉스는 승강구의 계단을 내려가지는 않았다. 식스와 자유호 의 선원들은 그런 오닉스의 등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닉스는 앞이 아니라 뒤로, 즉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식스는 계단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귀에 너무나 익숙한 가벼운 발자국 소리. 식스는 승강구를 통해 올라선 남자를 향해 반가움을 담아 말했다.

“키 선장님!”

키 드레이번은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갑판에 올라섰다. 비명이 요란하던 자유호의 갑판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마치 키의 펄럭이는 외투 자 락이 모든 공포와 소란을 삼켜버린 것처럼. 하지만 조금 떨어진 다른 배에서는 여전히 고함이 들려왔고 그래서 식스는 속으로 한탄했다. 저 선장들께 서는 제 부하 간수도 못하시나. 삼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키가 말했다.

“잠꼬대라면 너무 시끄럽고, 반란이라면 너무 멍청하군. 네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고요한 선원들 사이에서 오닉스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조금 전 취했던 동작이 다시 반복되었다. 키는 오닉스의 마스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 했다.

“율리아나 공주를 죽이겠다고?”

‘이 귀신 소리를 들어보라! 함대에 귀신이 붙었다. 바다는 여자를 싫어한다. 지금이라도 바다에 여자를 던져 해신께 사죄드려야 한다’에 해당하는 의 미를 담아 오닉스는 빠르게 손짓했다.

“귀신이라고 했나?”

오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는 싱긋 웃고는, 오닉스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했다.

“귀신에 대해 알고 싶나?”

오닉스는 주춤했다. 그리고 주위의 해적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키를 바라보았다. 키는 설명하는 대신 앞으로 걸어갔다. 오닉스는 키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배틀 엑스를 두 손으로 쥐었다. 하지만 키는 맨손이었다. 게다가 두 손은 버클에 얹은 채 걸어왔다. 

“응? 말해 봐. 귀신에 대해 알고 싶나? 귀신을 보고 싶나?”

어느새 키는 오닉스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오닉스는 비무장인 키를 상대로 도끼를 들어올릴 수도 없었고 뒤로 물 러날 수도 없었다. 마스크 때문에 오닉스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에서 뿜어져나오는 다급한 숨소리는 오닉스의 긴장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키는 오닉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눈이 귀신을 보게 하고 싶은가? 죽음을 보고 싶나?”

퍼 억. 잔인한 소리와 함께 키의 주먹이 오닉스의 복부에 꽂히자 오닉스는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키는 오닉스의 큼직한 턱을 붙잡아 천 천히 끌어올렸다. 키는 오닉스의 얼굴을 자기 얼굴 바로 앞까지 끌고 와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오닉스를 바라보았다.

“말해 봐라, 이 후레자식아. 귀신을 보고 싶나? 귀신을 보고 싶나? 내 눈을 봐!”

오닉스는 자신의 손에 도끼가 들려져 있다는 사실도 거의 잊어버렸다. 그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키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헛바람을 삼켰 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키의 동공은 축소되어 있었다.

“나는 매일 귀신을 본다. 이 눈동자에 붙어 있기 때문에,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지. 내 눈을 봐라, 오닉스 나이트. 귀신이 보고 싶다고 했나? 내 눈을 봐라. 수천 마리의 귀신이 바글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아? 봐라, 오닉스 나이트!”

오닉스는 키의 눈 속에서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키가 죽인 뱃사람들, 그가 침몰시킨 배, 화염이 불타오르는 돛대와 폭풍에 찢겨지는 돛, 포연과 피바람 속에 으르릉거리는 해골들의 군무. 오닉스는 키의 눈 속에서 그것들을 보았다. 그의 입이 힘없이 벌어졌다.

그러나 오닉스가 말을 토해놓기 직전 키는 오닉스를 놓아주었다.

오닉스는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나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키는 이미 오닉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채 오닉스의 턱을 움켜쥐고 있던 자 신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나씩 손가락들이 천천히 굽혀지고, 키는 손이 하얗게 변하도록 주먹을 감아쥐었다. 키는 그 주먹을 옆으로 뿌리면 서 말했다.

“일항사(1등 항해사)!”

“예!”

“라이온 선장에게 전해라. 레보스호의 화물실을 뒤져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꽃이 있을 것이다.”

“아아, 싱잉 플로라군요!”

“그렇다. 내게로 가져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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