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8화
키 드레이번은 분노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온 라이온과 식스를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시끄러워서 못 가져왔다는 설명에는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 이온은 심히 억울하다는 투로 키 드레이번을 보았지만 그가 말한 변명들은 키를 이해시키기는커녕 더욱 분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니까, 에, 그게 꼭 시끄러워서만은 아니지요. 에, 저는 포성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단 말입니다. 어, 음. 그런데 그 비명이라는 것이, 흠흠. 참, 거 뭐랄까……”
“뭐?”
라이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목 졸린 여자 같단 말입니다.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어요.”
키는 한참 동안 라이온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 옆에 있던 식스에게 말했다.
“일항사, 율리아나 공주를 데려가.”
“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줘야 하나! 여자는 싱잉 플로라의 소리를 못 듣는다. 그러니 율리아나 공주가 들고 오게 하란 말이다!”
식스와 라이온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선장실을 빠져나왔다. 선장실을 빠져나온 라이온은 으르릉거리며 눈에 들어오는 어떤 선원이라도 붙 잡아서 반드시 시비를 걸어 – 너 이 새끼, 왜 눈은 깜빡거리는 거야! 화풀이를 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율리아나 공주가 감금되어 있는 선실까지 걸 어가는 동안 한 사람의 선원도 만나지 못했다. 라이온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 이놈들이 다 어디 쳐박혀 있는 거죠?”
“전부들 메인 마스트 아래에 모여 앉아 벌벌 떨고 있을 걸세.”
“젠장. 이번에 붙잡은 것은 너무 골치 아픈 재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싱잉 플로라가 있을 줄은 몰랐지.”
“아니, 그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스는 라이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얼굴을 찌푸려 미간에 세로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일단, 여자가 있다는 것 때문에 오닉스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듣자니 놈은 무기를 휴대하고 자유호에 올라왔다면서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비록 낮엔 레보스호를 습격하기 위해서였고 밤엔 율리아나 공주가 목표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은 키 드레이번의 배입니다.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 어도 그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식스는 라이온의 표정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것이다. 라이온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라는 것이 카밀카르의 공주고 필마온 기사단장의 아내가 될 여자입니다. 카밀카르의 해군이나 필마온의 갈가마귀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둘과 원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것,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그만. 키 드레이번이 결정한 일이야. 그리고 바다의 신사가 원한을 두려워하나. 교수대에 걸려서도 껄껄 웃으며 죽는 것이………”
“제기랄, 여 ・론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여 론!”
라이온은 여론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이 퍽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 단어를 길게 발음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식스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우쭐거리며 말했다.
“필마온은 신부를 뺏긴 얼간이 취급당할 겁니다. 여 ᅳ 론이 그렇게 될 거라고요. 놈들은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 그런 여―론에 시달리게 되는 것에 더 화를 낼 겁니다. 카밀카르도 마찬가지지요. 자국의 공주를 빼앗긴 국민들의 여론이 어떨지 생각해 보시라고요.”
“그만해. 다 왔네. 공주가 듣겠어.”
식스는 방문을 가리켜 보였고 라이온은 입을 다물었다. 식스는 방문의 열쇠를 연 다음, 퍼뜩 생각난 것처럼 라이온을 바라보고는 근엄한 동작으로 방문을 노크했다. 라이온이 잠시 감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예절도 아슈? 그래서 ‘여론’이라는 단어를 말할 줄 아는 라이온과 신사의 예절에 밝은 식스는 퍽 자랑스러운 태도로 공주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율리아나 공주의 방으로부터 식스의 난감해하는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다.
“고, 공주님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자유호와 해적 선단은 총체적인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매끄러운 밤바다 위로 주름을 잡듯 가볍게 물결치는 파도 이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해원에서,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음산함을 더해 갔다. 레보스호의 선실에 갇혀 있던 라스 법무대신과 슈마허 도 놀랄 정도의 노랫소리였다. 그들은 항해 동안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를 들어왔지만 이토록 기분 나쁜 노랫소리는 듣지 못했었다.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약간 슬프고, 동시에 약간 낯부끄러운 노랫소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밤바다를 새하얀 공포로 물들이고 있는 노랫소리는……………
“고스트 송(Ghost song, 鬼哭聲)이야.”
라스 법무대신은 무의식중에 말했다.
“이건 고스트 송이라고.”
슈마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말했다.
“저는 싱잉 플로라가 고스트 송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로드 라스.”
“서 슈마허. 저 꽃은 지금 낮의 전투에서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세.”
라스 법무대신은 자신의 말에 찬성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슈마허는 그런 라스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음산한 노랫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찔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자유호의 갑판에서는 키 드레이번이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선원들을 사나운 시선으로 노려보았지만 선원들은 고개 를 돌리거나 발끝을 바라보는 식으로 키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선장의 명령이라도, 저는 저 꽃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키는 그런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했다. 함대 내에 있는 유일한 여자인 율리아나 공주조차도 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도대체 저 꽃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키는 레보스호를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어졌다.
오닉스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은 채 그런 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마스크 때문에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오닉스는 캡스턴에 기대어 앉아서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었으며, 불량스럽게 고개를 조금 기울인 상태였다. 그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을 것인지는 뻔하 다. 키는 낮게 말했다.
“한 놈도 없는가. 내 부하들 중에 나를 위해 저 꽃을 가져올 놈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선원들은 모두 키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했다. 고지식한 식스는 차마 그런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매우 송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키를 바 라봄으로써 키를 미치게 만들었다. 키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가지.”
“안 됩니다!”
식스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는 키의 허리를 잡기라도 할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안 됩니다, 선장님. 저 꽃에 가까이 가시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어도 정신이 이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런데 가까이 가시고 그것을 만지시면, 오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기만 합니다.”
“한 놈도 없잖은가!”
“아침까지, 아침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낮이 되면 노래를 멈출 겁니다. 그럼 그때 제가 직접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웃기지 마! 아침이 오면 아마도 난 혼은 악마의 꽃에 빼앗기고 육신만 남은 껍데기 유령들이 모는 배의 선장이 될 것이다. 그렇잖으면 그들의 선장 을 위해 꽃 하나 가져다줄 수 없는 너희 덜떨어진 해적놈들이 모두 바다에 빠져들든가!”
“제가 가도 될까요?”
목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키와 식스, 그리고 각자 다른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이온과 오닉스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갑판 해치 쪽이었다. 해치는 조금 열려 있었고 그 아래에서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것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라 해치 아래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키는 삼엄하게 말했다.
“누구냐, 노잡이인가? 올라와서 말해라!”
해치 아래에서 말하던 자는 머뭇거리며 갑판 위로 올라와서는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라이온이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아, 너. 오스발이라고 했지?”
무릎을 꿇고 있던 오스발은 고개를 조금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그 꽃을 가져오겠습니다.”
키 드레이번은 오스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식스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말했다.
“일개 노잡이 노예 주제에… 네가 할 수 있단 말이냐?”
오스발은 다시 송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발음은 명확했으며 공포에 질려 있는 것처럼 들리는 부분은 없었다.
“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들도 낮의 전투 때문에 몹시 피곤합니다. 그런데 저 노래 때문에 친구들이 잠들 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예장님도 몹시 무서워하고 계시고요. 저는 낮에 노예장님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이 많은지라 어떻게든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까짓 꽃이 문제라면 저 같은 미천한 작자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식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키가 먼저 말했다.
“너는 저 노래가 들리지 않느냐?”
오스발은 노스윈드가 직접 말을 걸어왔다는 것에 대해 크게 황송해하며 말했다.
“저, 이상합니다. 아주 가느다란 노래 비슷한 것이 들리기도 합니다만, 저런 작은 소리에 왜… 아, 절대로 귀하신 분들을 욕보이려는 것은 아닙니 다. 하지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라이온은 눈을 껌벅거리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 가는귀가 먹었나?”
하지만 아무도 라이온의 짐작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스발은 키나 식스의 말에 는 또박또박 대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온은 다시 한번 주위의 시선을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다.
“저 녀석, 여자인가 봐.” 라이온은 기어코 주위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주위의 해적들이 그를 때려 죽일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키가 말했다.
“오스발이라고 했나? 좋다. 만일 네가 이 얼간이들을 대신해서 저 꽃을 가져온다면 평수부로 승격시켜 주겠다.”
식스와 라이온, 오닉스, 그리고 갑판 이곳저곳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해적들은 키의 이런 파격적인 제안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놀라움을 표시했 다. 그들은 일개 노예가 그들과 같은 신분이 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까지도 느꼈지만, 키의 선언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들은 도저히 싱잉 플로라에 다가갈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그들의 놀라움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오스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뭐라고?”
키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고, 그 표정은 주위를 둘러선 해적들의 얼굴 대부분에도 떠올라 있는 것과 같았다. 오스발은 키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해적을 교수대에 매다는 나라는 많아도 노잡이 노예를 교수대에 매다는 나라는 없습니다. 저, 그러니 그런 끔찍한 승격은 바라지 않 습니다.”
키는 잠시 말을 잃은 채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식스와 라이온 역시 경악을 가누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그래서 오스발의 발언에 대해 가장 먼 저 실감 넘치는 반응을 보여준 것은 의외로 과묵한 오닉스였다.
오닉스는 발을 쾅 굴렀다. 그는 옆에 세워둔 도끼를 집어들고는 오스발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마스크 아래 오닉스의 눈이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의 눈에 확실히 보였다. 오닉스는 아무 말 없이 원래 말을 안하지만 도끼를 집어올렸다. 키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멈춰라, 오닉스!”
키의 목소리에 식스는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으며 외쳤다.
“저런 발칙한 놈이!”
그리고 라이온 역시 얼굴 근육의 대부분을 수축시킨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이 지금 우리를 놀린 거야?”
그리고 다른 해적들 역시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해적들이 내뱉은 말의 주된 내용은 감히 교수대가 어쩌니 한, 저 건방 진 노예의 소화기관이나 순환기 계통의 구조를 감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장을 끄집어내 목을 졸라줘… 어쩌고 하는 표현은 너무 온화하다는 이유로 배척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러나 키는 아무 말 없이 오스발을, 정확하게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스발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잠자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야 내일도 노를 저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말을 마친 오스발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키는 잔뜩 찌푸린 눈으로 오스발을 바라보았고 그 동안 해적들은 몹시 씨근거렸다. 키의 입이 다시 열렸 다.
“일항사, 라이온 임시 선장. 저 노예를 데리고 가서 싱잉 플로라를 가져와라. 내 방에서 기다리겠다.”
식스와 라이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스발은 주춤거리며 일어섰고 키는 그런 오스발을 향해 말했다.
“네가 내일도 자유호의 노를 저을 수 있을지 두고보지. 만약 네가 싱잉 플로라를 내게 가져오지 못한다면 너는 다른 배의 노를 저어야 될 것이다.”
지옥의 강을 건너기 위해, 라는 말은 생략되었지만 대부분의 해적들과 오스발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오스발이 다시 고개를 숙인 사이에 키는 몸을 돌려 승강구로 내려갔다. 남겨진 오스발은 잠시 주저하는 눈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내가 너를 혼내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겠 지?”라고 물어보는 듯한 눈으로 오스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따라와.”
해적들은 살벌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길을 틔워주었고 식스와 라이온, 그리고 오스발은 보트에 올라 레보스호로 향했다.
레보스호에 도달하여 특별 화물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식스와 라이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오스발은 그런 두 사람의 등뒤를,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따라갔다. 라이온은 얼핏 고개를 돌려 오스발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 걸음씩 떼어놓을 때마다 점점 더 크게 들려오 는 저 노랫소리가 진짜 들리지 않는지. 하지만 고개를 돌린 라이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두운 통로 속에 시커멓게 보이는 오스발의 얼굴뿐이었다. 최소한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스발은 태연한 자세로 예의 바르게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된 녀석이지?”
라이온은 식스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랜턴을 들고 있기에 그의 얼굴은 잘 보였으며, 안타깝게도 근엄한 식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으로 진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문득 라이온은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았다. 자신의 이마를 만진 손에 느껴지는 축축함이 라이온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듣는 이의 뼈까지도 흐느끼게 만들 것 같은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세 사람은 다시 특별 화물실 앞에 섰다.
식스는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열쇠를 연 다음 라이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라이온 역시 식스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 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라이온은 약간 쉰 목소리로 오스발을 불렀다.
“오스발. 안에 들어가서 꽃을 들고 나와.”
오스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두 분은 안 들어가십니까? 식스는 갑자기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라이온은 거칠게 말했 다.
“꽃만 가지고 나와야 한다. 금붙이나 보석 따위를 삼킬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을걸. 화물 목록이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난 제일 먼저 네 녀석의 뱃속 부터 조사하겠다.”
오스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노예에게 금붙이나 보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스발은 싱긋 웃기까지 했다. 라이온은 그 여유 있는 웃음이 싫었지만 아무 말 없이 길을 틔워주었다. 두 사람 사이를 지나친 오스발은 식스가 열어 둔 문을 느닷없이 열었다.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식스와 라이온은 모두 오스발을 쳐다보았고, 그래서 가까스로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오스발은 태연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스발은 잠시 멈춰 서서 식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그 랜턴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안이 어둡군요.”
입을 열기만 하면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았기에 식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오스발을 바라보기만 했다. 오스발 이 다시 말하려 할 때 라이온이 잔뜩 쉰 목소리로 거칠게 외쳤다.
“빌어먹을 놈아, 네 녀석이 이 안에 불이라도 지르면 어쩌라고! 밖에서 불을 비춰줄 테니 어서 들어가!”
오스발은 어깨를 움츠리고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식스는 덜덜 떨리는 손을 힘들게 들어올려 방 안으로 불을 비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