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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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4화


율리아나 공주는 퉁탕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른 채 통로 옆 벽에 기대어섰다. 생선 가시와 실로 만든 낚시는 훌륭하게 작용했고 그래서 율리아나 공주 는 쉽사리 빗장을 열고 감방을 나올 수 있었다. 감시가 허술했던 탓도 있었다. 망망대해 위의 배에서 공주가 어딘가로 도망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해적은 아무도 없었고, 공주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라오코네스에게 바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율리아나 공주는 불 가능에 도전할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율리아나 공주는 계단 옆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보트는 분명히 갑판 위에 있다. 하지만 그녀 혼자서 보트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타고 노를 저어 도망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공주 는 가까스로 이곳이 만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육지가 가까울 것이다. 헤엄을 친다면?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해운국 카밀카르의 셋째 공주인 율리아나 공주가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수밖에 없어.’

율리아나 공주는 이를 악물었다.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하지만 해적들이 득시글거리는 갑판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바다로 뛰어들 수 있 는 곳은…………….

율리아나 공주는 내려가는 계단을 찾기 시작했다.

노 구멍을 통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노예들이 있겠지만 모두 쇠사슬에 묶여 있을 것이다. 노예장만 피할 수 있다면 그쪽이 오히려 안전하다. 공 주는 신발을 벗어버리고는 맨발로 통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헤엄치기에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는 이미 벗어던져 공주는 짧은 속옷 바람으로 달리고 있 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공주는 거의 지나칠 뻔하다가 가까스로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발견했다. 공주는 그것이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였기에 주저없이 사다리 위에 올라탔다.

다행히도 그 사다리는 노갑판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사다리를 내려선 율리아나 공주를 맞이한 것은 완전한 암흑이었기에 공주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노예들을 위해 귀한 기름이나 양초를 태울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를 분간할 수 없었던 공주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벽을 찾아보 았다. 그때 느닷없이 고함이 터져나왔다.

“누구냐! 오호라, 오스발? 네놈이 기어코!”

잠결에 공주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노예장이 내지른 고함에 율리아나 공주는 거의 까무라칠 뻔했다. 그때 또다른 방향에서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 려왔다.

“어? 노예장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오스발의 목소리였다. 공주는 제자리에 굳어버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예장이 몸을 일으키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자식! 들키니까 아닌 척하고 있어? 가만두지 않겠다. 아무리 키 선장님의 결정이라도 너 따위 놈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실수셨어! 잠시만 기 다려라. 모가지를 뽑아놓겠다!”

공주는 숨소리마저 죽인 채 기다렸다. 그때 바로 오른쪽에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공주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꽃을 보았다. 노예장이 부싯돌을 켜고 있는 것이었다.

노예장은 불을 켜려 했지만 조급한 나머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잠시 후 기어코 등잔에 불을 붙인 노예장은 등잔을 위로 들어올렸다. 율리아나 공주 는 눈이 부셔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인기척을 느낀 노예장은 등잔을 돌려 공주를 돌아보았다.

노예장은 숨이 멎을 뻔했다.

불빛 속에 드러난 것은 하늘거리는 속옷만 걸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다른 장소의 다른 시간이었다면 노예장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 만 여자를 볼 리가 없는 망망대해의 해적선 위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자 노예장은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를 먼저 느꼈다. 게다가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공포에 질린 노예장이 보기엔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노예장이 혼절할 듯한 정신 속에서 ‘유령의 울음 소리’ 어쩌고 하는 말을 떠올렸을 때였다.

멀리서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음음…… 음…….

“우아아아악!”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던 노예장은 입에서 하얀 거품을 뿜어내며 기절했다. 등잔이 떨어지며 기름이 쏟아지자 불길이 치솟았다.

“어머!”

율리아나 공주는 불길을 피해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 그때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공주는 몸을 돌렸고, 그녀의 손 목을 부여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오스발?”

“이리 오십시오! 타죽겠습니다.”

오스발은 율리아나 공주를 질질 끌다시피 잡아당기며 달려갔다. 불길이 거세게 일어나자 쇠사슬에 묶여 있던 노예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불 길에서 조금 멀어지자 오스발은 공주에게 다급하게 고함 질렀다.

“도망치신 겁니까?”

“그래요!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해요!”

“어떻게 말입니까? 저는 노잡이 노예에 불과합니다. 공주님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율리아나 공주는 절망적인 얼굴로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스발은 서글프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공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노를 향해 달려갔다. 불빛 때문에 주위가 밝아져 공주는 쉽게 노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오스발은 다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야 했다.

“잠깐! 무슨 생각이십니까? 바다에 뛰어들려는 겁니까?”

“드래곤에게 잡아먹히느니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말한다면 바보 같겠죠?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내가 갑자기 잠재 능력을 발휘하여 헤엄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이제 내가 헤엄을 못 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뛰어들려는 결심을 할 만큼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을 짐 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부디 이 손목 놔주면 좋겠어요.”

이 급박한 상황에서 듣기엔 너무 침착한 대답에 오스발은 잠시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공주가 침착한 얼굴을 유지한 채로 그의 손등을 침 착하게 깨물려고 들자, 더 이상 그러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오스발은 공주의 입을 피하며 말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찬성이에요! 시작해요!”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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