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7화
“추, 추워 죽겠어요.”
율리아나 공주는 나무 밑둥에 기대어 앉은 채 온몸이 부서져라 떨면서 말했다. 얇은 속옷 하나만 걸치고 차가운 바다를 가로지른 데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맞이한 밤이기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스발은 들고 있던 나무 꼬챙이를 내려놓으며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대로 해보았습니다만, 공주님. 아무래도 불이 안 붙는데요.”
율리아나 공주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겸연쩍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상하네.. 책에 보면 나무를 비벼서 불을 붙일 수 있다고 하, 하던데.. 에츄!”
“책에 보면 강철로 칼을 만든다고도 나와 있겠죠. 하지만 대장장이가 아니라면 누가 칼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 다른 방법도 읽었어요. 돌멩이를 부딪쳐서 불을 붙일 수도 있다더군요.”
오스발은 잠시 율리아나 공주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단단한 돌멩이를 찾아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결국 공주가 그만두라 고 말했을 때, 오스발은 손바닥에 생긴 물집을 처량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아주세요.”
“그게 낫겠군요.”
오스발은 공주에게로 다가앉아서 그녀의 가냘픈 몸을 살짝 안았다. 율리아나 공주는 오스발의 품속에서도 무섭도록 떨고 있었다. 더 이상 떨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공주의 몸은 계속 떨렸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공주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꺼내었다.
“제가 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아세요?”
“차라리 얌전히 라오코네스에게 잡아먹힐걸, 하는 생각이겠죠.”
“어? 맞았어요. 어떻게 알았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공주님이 달아나든 말든 내버려두고 자유호에 있었으면 지금쯤 부른 배를 안고 편하게 자고 있었을 겁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불빛도 없는 숲속의 밤이었기에 오스발은 코앞에 있는 공주의 표정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잠 시 후 공주는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 하지만 자유가 없는 노예 생활이잖아요.”
“자유? 글쎄요. 공주님은 자유 의사에 따라 필마온 기사단장 발도 로네스에게 시집 가시는 것이었습니까?”
“그건……”
“자유는 환상입니다. 세상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럼 절 버리고 그 해적들에게 돌아가지 그래요? 가서 늙어 죽을 때까지 노나 젓다가 죽어요.”
“그럴까요?”
“너, 너, 너무 쉽게 대답하는군요?”
“어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오스발은 무뚝뚝하게 대답했고 공주는 울고 싶어졌다. 그를 떠밀어버리고 싶었지만 추워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주는 아랫 입술을 깨물며 다른 행동을 취했고, 그래서 오스발을 실소하게 만들었다. 율리아나 공주는 오스발의 팔을 시트 자락이나 되는 것처럼 목 위로 끌어올 렸기 때문이다. 오스발은 짐짓 목소리를 진지하게 바꾼 다음 말했다.
“아, 참. 그리고 공주님.”
“뭐죠?”
“제가 반항할 기운도 없다는 것을 틈타서 제게 이상한 짓 하지는 마세요.”
밤하늘을 향해 공주의 웃음 소리가 맑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