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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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6화


세실은 갑자기 들려온 함성에 깜짝 놀랐다. 그 함성은 마치 추운 겨울 아침 목덜미에 닿는 첫눈의 감각처럼 세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세실은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밖을 바라본 세실은 시체들을 향해 달려드는 해적들의 모습에 또다시 전율했다.

거친 바다의 사내들 중에서도 가장 거친 사내들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파도와 맞서 싸우다가 어느새 파도가 되었고 바람을 따라 움직이다 어느새 바람이 된 사내들. 노스윈드의 해적들은 함성을 지르며 시체를 향해 뛰어들었다. 세실은 그들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 

“들었느냐, 구울의 왕자?”

키는 어깨로 숨을 내쉬면서도 싱긋 웃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복수는 스스로를 불살라버릴 듯한 맹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구울의 왕자는 모든 종류의 증오를 한꺼번에 섞어버린 듯한 증오로 얼굴을 물들인 채 키를 노려보았다. 그의 거대한 손에는 지금껏 키의 목을 계속 노려왔지만 그때마다 복수에 가로막혔던 거대하고 불길한 검이 쥐어져 있었다.

“봤느냐, 구울의 왕자! 기필코 싸워야 된다면, 그들은 상대방이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에는 신경 쓰지 않아! 기필코 싸워야 한다면, 그들은 상대방 이 나의 공포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아! 판데모니엄의 개백정 녀석아. 그들은, 인간은, 거칠고 난폭한 생물이다. 죽음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은 순결한 맹수다!”

“닥쳐라이미물.”

판데모니엄의 위대한 지배자는 그의 무기를 휘둘러내렸다. 가장 강력한 천사들에게까지 치명상을 입히고 한없는 타락을 선사했던 지옥의 지배자의 공격이었건만, 키 드레이번은 노련하게 복수를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구울의 왕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키를 바라보았고, 키는 복수의 칼 날 아래에서 싱긋 웃었다.

“지옥의 지배자인 네놈에게도 지옥이 있다면……”

다음 순간 복수는 그 예리한 칼날을 번득이며 구울의 왕자의 가슴을 향했다. 구울의 왕자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때 복수의 칼날이 순간적으 로 늘어났다. 키가 땅을 박차며 뛰어오른 것이었다.

“생과 사가 맞부딪히는 이곳! 이곳이 너의 지옥이다, 구울의 왕자!”

둘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던 세실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파도의 끄트머리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처럼 도약한 키 드레이번은 구울의 왕자의 가슴을 크 게 베어내었다. 구울의 왕자는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고함을 지르며 그의 검을 앞으로 내찔렀지만, 키는 이미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들어올린 검으로 키를 견제하며, 구울의 왕자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거멓게 죽은 피가 진득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구울의 왕 자는 그 상처를 믿을 수 없었다.

“인간이너미물이나에게상처를입힌건가.”

키는 대답 대신 복수를 옆으로 힘껏 뿌렸다. 구울의 왕자의 몸에서 묻어나온 저주받은 피가 대지에 부딪히며 초록빛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 광경을 보던 세실은 대지의 비명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구울의 왕자는 사방에 흩뿌려지는 자신의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맹렬하게 포효했다.

“이놈네목숨으로도대가를 치를수없는일을 저질렀음을아느냐.”

노성과 함께 내려쳐진 검을 막아내기 위해 키는 복수를 힘껏 쳐올렸다. 하지만 검이 부딪히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달랐다.

“크윽!”

꽉 다물려진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옴과 동시에 무릎이 무너져내리자, 키는 자세를 봉쇄당하지 않기 위해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그런 키를 향해 구울의 왕자의 검은 숨쉴 사이 없이 내려쳐졌다.

“멈춰요! 구울의 왕자!”

구울의 왕자는 고함보다 그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벼락에 먼저 반응했다. 쓰러진 키를 공격하려던 검을 다시 회수하며 구울의 왕자는 뒤로 물러났 다. 그리고 그 자리로 하얀 벽력이 내려쳐졌다. 콰왕쾅! 구울의 왕자는 검을 곧게 세우며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느닷없는 벼락 소리에 놀란 해적 들 중 일부도 고개를 돌렸다.

교회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문에는 한 여인이 지팡이를 든 채 서 있었다. 트로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입을 열 기도 전에 여마법사가 먼저 외쳤다.

“이 어리석은 바보 녀석! 모든 마법사들이 외워야 되는 기본 중에 기본을 까먹은 거야?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다른 모든 사람까지 속이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속이지 말 것!”

세실은 고함을 지르면서도 손을 움직였다. 그래서 구울의 왕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피하기 위해 화급하게 하늘로 솟아올라야 했다. 세 실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성큼 걸어나왔다.

“너 스스로도 잘 알고 있겠지! 넌 지옥의 권세를 다룰 수 없어! 왜 스스로를 속이고..”

“틀렸어.”

구울의 왕자가 나타난 이후로 계속 무력한 모습으로 있던 트로포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틀렸어. 나 자신은 속인 적 없어.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다른 모든 사람, 그리고 당신을 속인 적은 있어도.”

“뭐라고?”

세실은 의아한 표정으로 트로포스를 바라보았다. 트로포스는 지팡이를 세워들며 외쳤다.

“가라, 구울의 왕자! 내 목표는 바로 저 여자! 지옥의 권세로 그녀를 감싸고 영원한 흑암 속에 그녀를 묻어라!”

트로포스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하늘로 솟아올랐던 구울의 왕자는 올라갔던 것만큼이나 맹렬한 속도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밀어진 그 의 검이 겨냥하고 있는 곳에는 세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있었다.

나를 끌어내기 위해서? 하지만 왜? 그때 세실은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를 교회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구울의 왕자라 하더라도 교회의 보호 안에 있는 그녀를 공격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구울의 왕자는 시체를 일으키고 키와 싸우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마치 트로포스의 지배력을 벗어난 것처럼. 그러나 실제로 트로포스는 자신이 소환한 구울의 왕자에 대한 지배력을 한번도 잃은 적이 없었던 것………… 분노와 좌절로 가득 찬 외침과 함께 세실은 급히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세실의 어줍잖은 방어 동작은 바람처럼 날아든 구울의 왕자의 검에 의해 단숨에 박살났다. 세실의 지팡이를 쪼개어놓은 구울의 왕자의 검은 다시 휘둘러져 올라갔다가 그녀의 목을 향해 거침없이 내리꽂혔다.

다음 순간, 노스윈드 함대에서 가장 협동이 안 될 것 같은 삼인조가 움직였다.

“시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살아 있는 자를 시체로 만드는 것도 마땅찮아!”

라이온은 고함을 내지르며 세실에게 달려들었다. 격렬한 포옹에 세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라이온은 사과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껴안은 채 옆 으로 굴렀다. 그리고 그와 그녀를 향해 내려쳐진 검의 궤적으로 뛰어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복수를 치켜들어 구울의 왕자의 검을 막아낸 키 드레이번 은 분노한 구울의 왕자의 얼굴을 향해 사나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고했다. 여기가 너의 지옥이라고!”

그리고 그때 구울의 왕자의 등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오닉스의 거대한 몸은 그의 거대한 도끼와 하나가 된 것처럼 날아올라 판데 모니엄의 하이마스터의 등을 향해 치명적인 속도로 내려쳐졌다.

그리고, 테리얼레이드의 모든 시민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비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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