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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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7화



“아뇨. 죽은 것은 아닙니다. 설령 대천사가 강림하셨다 하더라도 이 지상에서는 판데모니엄의 하이마스터를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선장님의 복수가 그를 억제했을 때 오닉스의 강력한 공격이 있었기에, 구울의 왕자는 지상에 서 있을 힘을 잃고 돌아간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곳으로 돌아가더 라도 약화된 그를 노리는 마귀들이 들끓을 테니, 그의 신세도 사납게 되었군요. 어쩌면 선장님께서는 린타의 사망 이후 최초로 지옥계의 권력 이동에 개입하시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리야 선장은 설명을 끝내곤 피식 웃었다. 아흐레 밤낮 동안 악마 아델토와 토론하여 아델토로 하여금 자승자박에 빠져 스스로를 봉인하게 만들었 다는 린타의 예가 그를 재미있게 했던 모양이다. 키는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했다.

“대충 이해했다. 한 부분만 제외하고 복수가 그를 억제했다고?”

“그렇습니다.”

“만일 복수가 아닌 다른 칼로 그 공격을 막았더라면?”

“다른 칼? 글쎄요. 악마도 죽일 수 있다는 마법의 무구나 전설적인 무기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았습니다만………… 대부분 비슷한 결론이 나오지 않 았을까 싶습니다. 복수 이외에 판데모니엄의 일곱 지배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지상에 있을 리 없습니다. 아마도 막아낼 겨를도 없이 무기 가 부러지며 즉사하셨겠지요.”

“험한 말을 하는군.”

키는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부러진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하리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닉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만일 복수가 그 저주받은 검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오닉스는 그 저주받은 몸을 건드리자 마자 지옥의 권세가 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저주를 다 받았을 겁니다.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안 듣는 척하며 열심히 듣고 있던 오닉스는 거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키는 부러진 오른팔 위로 외투자락을 조심스럽게 덮으 며 말했다.

“그런 지독한 고생을 하고 얻은 결과가, 고작 율리아나 공주는 이미 달아났다는 이야기뿐인가.”

키 드레이번은 우울한 표정으로 교회를 흘끔 돌아보았다. 교회 정문의 계단에는 세실이 서 있었다. 불타버린 교회 지붕을 바라보던 세실은 키의 시 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돌탄! 5분 후 출발한다. 광대 노릇도 지겨워지는군.”

“예?”

돌탄 선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키를 바라보았지만 키는 아무 대답없이 턱을 움직였다. 그의 턱이 가리키는 곳을 본 돌탄 선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테리얼레이드의 시민들이 모두 몰려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군중이 교회를 둘러싼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어젯밤 이루어진 노스윈드의 해적들과 지옥의 지배자의 싸움을 눈으로 목격했다. 아마도 향후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술자리의 이 야깃거리가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륙에 파다한 키 드레이번의 명성에는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전설이 더해질 것이다.

그랬기에 테리얼레이드의 시민들 모두가 키 드레이번과 노스윈드의 해적들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가까이 다가오 지는 못한 채 멀찌감치서 포위망(그들의 견해로는 포위망이었지만 해적들의 견해로는 그저 몰려선 군중이었다)만을 구성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해적들 역시 선 장들의 명령이 없었기에 그 시민들을 향해 짓궂은 표정이나 야유 어린 손짓을 해댈 뿐 계속해서 대치 상태(이 역시 테리얼레이드 시민들의 견해일 뿐 해적들 은 그저 편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었다)를 유지하고 있었다. 돌탄 선장은 싱긋 웃었다.

“처들이 우릴 포내출까요?”

키 대신 라이온이 돌탄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하! 저 친구들은 우리들이 지옥의 지배자와 싸우고 시체들의 군대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용히 나가겠다고 말한다면 송별식이라도 베풀어 줄걸요.”

돌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적들에게 출발 준비를 시켰다. 돌탄의 등을 보고 있던 키는 갑자기 몸을 돌려 트로포스를 향해 걸어갔다.

트로포스는 땅바닥에 깔린 담요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시체나 다름없었지만 끊어질 듯 미약한 호흡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주위 에는 질풍호의 선원들이 모여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트로포스를 바라보는 키를 향해 하리야가 말했다.

“구울의 왕자가 강제로 돌려보내어졌기 때문에 그를 불러내었던 트로포스는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언제 깨어나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들것을 준비시켜야겠군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키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교회 앞에 서 있던 세실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리야와 라이온은 경계 태세를 취하 며 키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세실은 그저 미소만 지어보였다.

“아아, 걱정 마시지, 해적님들. 당신들은 당신들의 두목이 가진 칼을 잊었나 보군. 복수가 그를 지키는 이상 난 당신네들 두목에게 어떤 마법도 쓸 수 없는걸.”

키는 낮게 말했다.

“난 이들의 두목이 아니오, 마법사 세실리아. 같은 선장일 뿐이지.”

“그렇군. 어쩐지 당신 부하들은 당신을 제독님이 아니라 선장님이라고 부르더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용건이 뭐요?”

“당신을 따라가겠어. 키 드레이번.”

키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세실은 그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알겠지만 난 마법사야. 당신들의 추적을 도와줄 수 있어. 어젯밤에 봤겠지만 난 시시한 풋내기가 아니라고. 게다가 여기 정신을 잃은 친구를 보살 피려면 마법사가 있어야 될걸?” 

세실은 트로포스를 가리켜보였다. 

“이 친구는 마법적 부작용 때문에 기절한 거라고. 그렇다면 누가 그를 돕겠어? 당 연히 같은 마법사지.”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당신에게 우리가 필요한 이유는 뭐요. 왜 우릴 따라다니겠다는 거지?”

“은혜 갚음이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목숨을 빚졌잖아.”

키는 찌푸린 표정 그대로 세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 보답을 바라고 마법사를 돕지는 말라고. 마법사는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지만, 그 보답은 저주와의 구별이 어려우 므로.” 

세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순간, 그 미소는 바람을 타고 옮겨진 것처럼 키의 얼굴에 떠올랐다. 

“난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소.”

세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따라가도 돼?”

“당신이 말한 대로 트로포스를 위해 필요하니까. 하지만 난 제국의 공적 1호요. 당신이 나를 따른다면 당신 또한 무사하긴 어렵다는 것은 알 텐데.” 

“상관하지 않아.”

“그렇다면 좋소. 여기는 배 위가 아니니 오닉스도 반대하지는 않겠지.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겠소. 라이온. 마법사 세실리아는 네 휘하에 두도록.”

“예? 어, 예, 알겠습니다.”

라이온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은 빙글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테리얼레이드 교회를 바라보며 어젯밤의 일을 생각했다. 그녀가 키 드레이번을 따를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을. 그때 그녀를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구울의 왕자의 횡포가 아니었다. 그것도 이유의 하나이긴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면 그녀는 바 로 그 공포 때문에 끝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실은 고개를 조금 돌려 키를 곁눈질했다.

당신이라면, 어쩌면 당신이라면.

세실은 잠시 후 스스로를 비웃기 시작했다. 불가능할 거야. 좋아. 내가 잘못 봤다 하더라도 그건 내 책임이지. 여행쯤으로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가벼운………… 여행.

생각에 빠진 세실에게 라이온의 고함이 날아들었다.

“이보슈, 마법사님! 우리는 곧 출발해야 되는데, 뭐 준비하실 것 없는 거요? 언제까지 멀거니 교회만 바라보고 계실 거요!”

세실은 고개를 돌려 라이온을 향해 웃었다.

“아, 미안해. 라이온. 그리고 어제는 고마웠어.”

라이온은 뚱한 얼굴로 세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팔짱을 끼며 근엄하게 말함으로써 세실을 폭소하게 만들고 멀리 서 있던 키를 고소하게 만들었다.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 보답을 바라고 마법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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