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4장 : 철탑의 인슬레이버 enslaver – 11화
“명심하쇼, 공주님 당신. 본인은 공주님 당신이 그렇게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떼쓰는 모습이 보기 힘들어서 이곳까지 온 거요. 오스발 당신을 이곳에 서 발견할 수도 있고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라도 본인은 대사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겠소. 오스발 당신이 이곳에 잡혀온 것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고는 날래게 튀는 거요.”
“저게 철탑이에요?”
·본인의 말 듣고 있지 않았죠?”
“예? 어, 미안해요. 사실 당신 말 듣고 있지 않았는데, 뭐라고 물었죠?”
간단히 데스필드를 반쯤 돌아버리게 만들어놓은 율리아나 공주는 다시 덤불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눈앞에 펼쳐진 철탑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해안 절벽 위에 높다기보다는 단단하게 자리잡은 철탑은 바라보는 눈이 아플 정도로 순수한 백색이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건물을 본 자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하얀 탑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철탑이었다. 금속이라면 당연히 주위의 색깔들을 반사해야겠지만 그것은 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은 채 한 가지 백색만으로 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리아나 공주는 그것이 금속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주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금속인지는 말할 수 없었다.
“알……”
“예?”
“알 같아요. 세워놓은 하얀 알.”
“흐음. 맹독을 품은 뱀 당신이 들어 있는 알이긴 하지요.”
“어떻게 들어가면 되죠?”
“현관을 찾아간 다음 노크하고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요. 물론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웃는 표정을 지어두는 것이 좋겠고.”
아무렇게나 말하던 데스필드는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 다음 덤불을 헤치며 걸어가려는 율리아나 공주의 손목을 황급히 잡아당겨야 했다.
“젠장! 무례를 용서하쇼, 공주님 당신. 하지만 본인을 그렇게 격파해대는 것이 재미있으슈?”
“새로운 취미로 발전시켜 볼까 생각중이에요. 어쨌든, 몰래 들어가야 할까요?”
“몰래든 어떻게든 들어가지 않아요! 절대로! 그건 -.”
데스필드의 말이 갑자기 잦아들었다. 그의 말을 싹 무시한 채 철탑만 바라보고 있던 율리아나 공주와, 자신에게도 입이 있음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고민하던 파킨슨 신부는 동시에 데스필드를 돌아보았다. 데스필드는 해안 절벽으로 이어지는 능선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돌아갔던 공주와 신부의 시선은 다시 능선 쪽을 향했다.
데스필드가 보고 있던 능선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리가 멀었지만 그들이 상당히 대규모의 인원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파킨슨 신부와 율리아나 공주는 혹시 아피르 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했지만 시력이 좋은 데스필드는 능선을 넘어오는 무리들의 옷차림까지 대충 알아보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아피르 족이 아님을 알 수 있 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철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저 100여 명쯤 되어보이는 무리가 도대체 뭐하는 작자들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 율리아나가 긴장한 어조로 질문해 왔다.
“데스필드, 저 사람들은 뭐죠? 아피르 족인가요?”
“아니오. 아피르 족 당신들은 부족들끼리 전쟁이라도 벌이는 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많이 몰려다니지는 않소. 게다가 옷차림이나 체격이 아닌걸.”
“와! 옷차림이 보여요? 패스파인더답군요. 그런데 체격이라니?”
“저 당신들……… 체격 하나는 정말 좋은데. 마치 뱃사람들 같군. 헤? 그러고 보니 모두들 무장을 하고 있군. 하지만 이 근방엔 산적 당신 같은 건 없는 데. 얼레? 저 친구 당신은 뭐야. 왜 얼굴에 마스크를 걸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저건 도끼인가? 원 참 무식하게도 생긴 도끼로군.”
데스필드는 보지 못했지만, 파킨슨 신부는 율리아나 공주의 얼굴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씨구? 저건 또 뭐야. 저건 자마쉬 당신인 것 같은 데? 그러고 보니 별의별 지방 당신들이 다 모인……”
“혹시 키 크고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침착하게 돌아버린 듯한 얼굴의 남자 없어요?”
“음? 침착하게 돌아버린 얼굴이 어떤 얼굴이오?”
“없어요?”
“글쎄요. 얼굴은 안 보이지만 키 큰 당신은 보이는군. 음. 검은 코트도 걸치고 있어. 그건…… 음?”
고개를 돌리던 데스필드는 공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데스필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파킨슨 신부를 바라보았고, 역시나 황당해하는 얼 굴이었지만 파킨슨 신부는 친절하게 손을 뻗어 땅바닥을 가리켜보였다. 신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데스필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공주님 당신. 도대체 땅바닥에 엎드려서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이유가 뭐요?”
“당신도 빨리 엎드려요! 신부님, 신부님도 어서!”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데스필드와 파킨슨 신부는 공주의 말에 따라 땅바닥에 엎드렸다. 파킨슨 신부는 머리만 조금 들어 다가오는 일행을 보며 말 했다.
“저 사람을 아십니까, 공주님?”
율리아나 공주는 여전히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비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랐으면 좋겠어요. 만나지도 말았었다면 좋겠어요. 저렇게 저를 쫓아옴으로써 자신이 티없이 순수한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리고 다 닐 만한 작자가 아니었다면 좋겠어요!”
데스필드는 티없이 순수한 미친놈이라는 말에 벌쭉거렸지만 파킨슨 신부는 근심스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어, 저 자가 누군데 그다지도 험한 말씀을?”
그리고 율리아나 공주가 신부의 질문에 대답했을 때, 데스필드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현재 제국 최고의 유명 인사를 소개시켜 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군요. 저 신사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사전을 바꾼 사나이 키 노스윈드 드레이번 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