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4장 : 철탑의 인슬레이버 enslaver – 12화
“저게 그건가.”
키는 능선 아래쪽으로 뻗은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조타수 칸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칸나는 주위의 해적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있느라 바 빴다. 칸나를 억세고 용감하고 난폭한 식인종으로 알아왔던 노스윈드 해적들은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를 보면서 놀릴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할 만큼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키의 질문을 받은 칸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임으로써 간신히 키의 질문에 대답했다. 해적들이 보기엔 위아래로 떠는 것처럼 보였다 — 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의 해적들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그게 있었군.”
그렇다면 저기엔 대사가 있는 것이고, 오 왕자의 검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힘은 철탑의 인슬레이버란 말이지. 키는 갑자기 의문을 떠올렸 다. 제국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슈마허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오 왕자의 검은 전략을 배운 이라면 어쩌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로 모이지 않도록 억제하는 힘이 대사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그리고 그녀가 그런 일을 하는 이유를 아는 자는?
・방문해서 물어볼 것은 아니잖은가.
키는 흠칫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키 드레이번은 포악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 느낌, 추락감과도 비슷하며 압박감과도 같은 느낌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의 두 눈이 철탑에 대한 초점 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키는 망막에 어리는 ‘귀신’을 보았다. 그의 허파가 비명을 짜내기 위해 수축하는 순간, 키는 눈을 감으며 왼손으론 부러진 오른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 전부가 부르르 경련하며 허공을 움켜쥐었지만 키는 증오와도 같은 감정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경 련이 어깨를 지나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을 강습했다.
오스발이다. 그래. 나는 오스발을 잡아야 한다. 대사는 내 관심거리가 아냐.
“……님? 선장님! 선장님!”
키는 눈을 떴다. 하지만 눈앞에선 아직까지도 반딧불 같은 잔광들이 무수히 떠다니고 있었다. 간신히 시야를 회복한 키는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라 이온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라이온은 키의 왼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키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제서야 키의 얼굴을 보게 된 라이온은 그 눈을 향해 말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라이온의 뒤쪽에는 다른 선장들이 각자의 걱정과 우려를 담아 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는 속눈썹에 남아 있던 눈물을 짜낸 다음 몸을 돌렸다.
“마법사 세실.”
세실 역시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 무리는 패스파인더와 함께 떠났다고 했지. 그 패스파인더는 충분히 노련한가?”
“어,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야. 하지만 테리얼레이드에선 최고급에 속하는 패스파인더라더군.”
60로드쯤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데스필드가 들었다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본인은 최고급에 속하는 것이 아니야. 본인은 최고야’ 등으로 말했을 테 지만 목소리가 들릴 거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당신 왜 그러는 거지?”
키는 입을 열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세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런 최고급이라면 비록 풋내기 여행자들을 이끈다는 핸디캡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고서 다림까지 갈 수 있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저 건물의 소유주에게 뭔가 물어볼 필요는 없다. 저 건물을 우회하여 계속 전진한다.”
멀리서 해적들을 바라보고 있던 공주 일행은 다음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해적들은 철탑을 멀리 둔 채로, 바로 그들이 숨어 있는 수풀 옆을 지나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데스필드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 해안가의 땅에서 그들이 숨어 있는 덤불숲 이외에 다른 숲은 모 두 반 마일은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데스필드는 배낭을 집어들었다.
“제길, 뛰어요!”
“좋아요!”
데스필드와 율리아나는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세월을 속일 수 없어 약간 굼뜨게 일어난 파킨슨 신부는, 그래서 상당히 불쌍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 다. 제자리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던 신부는 절망적인 감정을 담아 외쳤다.
“어디로?”
신부의 고함에 고개를 돌린 데스필드와 율리아나는 서로 마주보게 되었고, 그 사실에 경악하며 역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각자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꺄아아악!”ᅳ”으아아악!”ᅳ”데스필드!”ᅳ”공주님 당신!”ᅳ“왜 뒤로.”ᅳ”왜 거기로.”ᅳ”달리고 있어요?”ᅳ“가고 있는 거요?”
공주와 데스필드의 모습을 본 순간 몸을 경직시켰던 라이온은 이들의 외침을 듣는 순간 환호를 내질렀다.
“난 역시 저 공주님을 사랑해 버릴 것 같아!”
반대로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려던 슈마허는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끝없이 한심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 고 빈약한 상상력이나마 총동원하고 있던 해적들의 머리 위로 키 드레이번의 노성이 떨어졌다.
“잡아!”
그다지 빠르다고는 볼 수 없는 키 드레이번의 명령을 들으며 라이온은 잠시 키 자신도 얼떨떨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해적들은 자신의 이해력을 시험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키의 명령을 반겼다. 고요한 해변가는 순식간에 노스윈드 해적들의 무서 운 외침으로 가득 찼다.
“와아아아앗!”
데스필드는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휘저어대었다. 그것은 모두 율리아나 공주를 향해 집중된 것이었고 그 의미는 간단했다. ‘빨리 이리 오 쇼!’ 하지만 그 간단한 의미가, 오스발을 구하기 위해선 철탑에 들어가야 된다고 믿고 있던 율리아나 공주에게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율 리아나 공주는 또 하나의 합리적인 이유도 가지고 있었다. 키 드레이번을 피하려면 어디로든지 도망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황량한 해변가에 숨어들 수 있는 건물이라고는 눈앞의 철탑뿐이다. 게다가 그것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금속으로 건설된 강력한 건물이다. 그래서 율리아나 공주는 자신이 달려가던 방향, 즉 철탑 쪽을 향해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이리 와요! 철탑 안으로!”
데스필드는 지독한 욕을 해대었지만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패스파인더는 패신저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 패신저를 협박할 수는 있어도 패신저 를 내버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달려오고 있는 해적들을 보며 데스필드는 공주가 떠올린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금속의 탑이라, 제기랄. 너무너무 믿음직해 보이는데?
그러나 언덕을 달려내려오는 해적들을 흘끔거리며 철탑 앞에 도달한 데스필드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아니 절반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철탑은 정말이지 외부의 적에 대한 방어 측면에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들어갈 문이 없는 것이다.
문처럼 보이는 곳이 아무데도 없었기에 율리아나 공주는 조그마한 주먹으로 철탑 그 자체를 꽝꽝 두드리고 있었다. 물론 금속은 단단한 것이며 철탑 을 구성하고 있는 이 이상한 금속 또한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아우, 손이야. 열어줘요! 구해줘요! 으아앙! 손 아퍼. 열어달라고요!”
데스필드는 일단 배낭들을 집어던지곤 재빨리 출입구처럼 보이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노련한 패스파인더인 그의 눈에도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눈으로 찾을 필요도 없다. 패스파인더는 길이 없다는 것을 본능으로 느낀다. 데스필드는 몸을 홱 돌려 이제 지척까지 육박하고 있는 해적들을 바라보았다.
잇소리를 내며, 데스필드는 검을 뽑아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패스파인더를 죽이는 건 패스가 아니라 패신저지. 본인 또한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나. 수평으로 든 검을 눈높이까지 들어올려 흔 들거리며 데스필드는 쓰게 웃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귀를 찢는 충격음에 데스필드는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경악으로 반쯤 감긴 그의 두 눈에 맨 앞쪽에서 달려오고 있던 해적 네 명이 지금까 지의 진행 방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극적인 비행을 마친 네 명의 해적들은 동료들의 품속으로 나가떨어졌고, 해적들은 피투성이가 된 동료들의 모습에 놀라 멈춰섰다. 그리고 그들 속에 서 돌탄 선장은 짧은 순간 자신이 바다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커 태포 소리 아냐?’ 그러나 어디에도 대포는 보이지 않았 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다만 철탑 앞에 서 있는 늙은이가 손에 쥐고 있는 이상한 물체뿐이었다.
늙은이는 왼팔을 가슴 앞에 수평으로 올려 받침대로 삼고는 오른손을 그 위에 얹어두고 있었다. 그 오른손에 쥐어진 물건은 검자루 같은 손잡이와 단단해 뵈는 금속 상자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금속 상자 앞쪽에는 대포의 포신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금속관이 뻗어나와 있었다. 어울리 게도 그 금속관 끝에선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탄이 그 연기를 보며 마치 포연 같다고 생각한 순간, 하리야 선장의 외침이 들려왔 다.
“핸드건(hand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