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1장 : 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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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1장 : 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 – 5화


데스필드는 뒤를 흘끔 돌아보고는, 다시 앞쪽을 바라보았다가, 싱긋 웃으며 사실을 공표했다.

“넘어왔습니다. 이제 페인 제국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추기경과 신부는 서로 끌어안고 통곡하며 주님을 찬미했다. 행동이 미치광이 짓인지라 그 몰골이라도 좀 정상적이었으면 좋으련만 도스 계곡에서 미리온 산맥의 산기슭을 넘어온 강행군은 그들의 모습을 흉측하게 바꿔놓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헤진 걸레 같은 머릿결과 수염, 잠들 때도 벗 지 않아 온통 구겨지고 젖고 흙투성이가 된 옷가지들. 그들의 모습을 불난 집에서 뛰쳐나온 자들보다 약간 더 잘 봐줄 수 있다면, 그건 그들에게 자신 이 선택한 고난을 자력으로 건너온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위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성직자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다가 그만 흥에 겨워 찬송가까지 몇 곡 불러버리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 동안 데스필드는 바위에 걸터앉 아 담배를 피우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힘들게 일어난 파킨슨 신부는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배가 고파 죽겠다. 뭐 먹을 거 없냐?”

“그러게 어느 당신이 그렇게 요란을 떨라고 그랬소. 아시다시피 어제 아침에 먹은 게 마지막이오.”

“으윽. 그럼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그래도 본인이 계산을 잘했으니까 저 위에서 굶어죽지 않고 내려왔잖아요.”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만, 당장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군. 좋아. 어디쯤 가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오냐?”

“플레리 당신이 말해 준 바에 의하면… 꼬박 한 나절은 더 가야겠는걸.”

파킨슨 신부와 핸솔 추기경은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파킨슨 신부는 심지어 데스필드가 피우는 담배를 보며 그건 혹시 배 부르냐는 질문까지 던졌 지만 신통찮은 대답만 받고는 풀이 죽었다. 결국 두 성직자는 넌더리를 내면서도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파킨슨 신부는 걸어가면서도 길가에 혹시 먹을 만한 풀이나 과일이 없을까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발견되지 않았고 신부는 우울하게 투덜 거렸다.

“황제 폐하의 땅에 들어왔건만 황은은 구경도 못하겠군. 젠장.”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황은이오, 형제여. 제국에서는 그래도 산도적 따위를 만날까 봐 걱정하진 않아도 되니까. 게다가 우린 더 큰 분 의 은혜에 힘입어 사는 사람들이잖소.”

핸솔 추기경이 텅 빈 위장으로 심포니를 연주하면서도 점잖게 질책했다. 그러나 그들의 앞쪽으로 무장한 인마가 달려오자마자 당장 경계의 빛을 띠 었기에 그의 지적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뭐지? 도적인가?”

데스필드는 앞쪽에서 달려오는 인마를 바라보다가 파킨슨 신부에게 눈짓을 보내었다. 그러자 파킨슨 신부는 당당하게 되물었다.

“왜?”

“으으…………… 대포 뽑을 준비 하라는 거였소.”

“그럼 말을 해. 눈 끔뻑거리지 말고.”

“잘못했수. 일단은 차분하게들 걸어갑시다.”

데스필드는 패신저들에게 행동 요령을 일러준 다음 허리춤에 찬 대거를 약간 느슨하게 뽑아놓았다. 그러나 잠시 후 인마의 모습이 좀더 커졌을 때 데스필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정예 제국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후 데스필드는 순수한 놀라움을 느꼈다.

오랫동안 말을 달려와서 먼지가 켜켜히 쌓여 있었기에 금방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은빛 문장이 잘 보였다. 데스필드는 그 문장을 알고 있었다. 사실 대륙에 사는 사람들 치고 그 문장을 모르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따라서 핸솔 추기경의 말은 완 전히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런, 제국 기사단이잖은가?”

파킨슨 신부도 당황한 얼굴로 그 은빛 별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그들을 발견한 제국 기사들은 날렵한 동작으로 말을 멈춰 세웠다. 제자리에 가만히 선 기사들은, 그러나 엉뚱하게도 데스필드 일행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무리 가운데 있는 한 기사를 바라보았 다. 그리고 데스필드도 그 기사의 모습을 보곤 의아함을 느꼈다. 흰 수염이 무성하게 자란 기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갑주나 무장이 전혀 없이 말 을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자 늙은 기사는 피식 웃으며 이상한 말을 했다.

“이보라고. 아닐세. 저자들은 그냥 여행자야.”

기사들 중 하나가 투구를 벗고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글쎄요. 하긴 경을 구출하기 위한 인원으론 좀 빈약해 보이긴 하군요.”

노기사는 그 말에 다시 웃었다. 데스필드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서서는 자신이 무리의 리더라는 점이 분명해 보이도록 했다. 이마의 땀을 닦은 기 사는 데스필드를 향해 말했다.

“여행자십니까?”

“그렇소. 본인은 패스파인더고, 이 분들은 본인의 패신저요.”

“우리는 제국 기사들입니다.”

제국 기사는 그것만 말하면 충분하지 않냐는 듯 다른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기사의 덕목인 겸양의 미덕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하더 라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제국 기사니까. 그때 핸솔 추기경이 말했다.

“그런데… 저 분은?”

제국 기사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기사를 바라보았다. 핸솔 추기경이 다시 말했다.

“저 분은 서 브라도 아니십니까?”

제국 기사들은 당황하여 핸솔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제국 기사단장 브라도 켄드리드는 자신을 알아보다니 놀랐다는 미소를 짓고는 말에서 훌쩍 뛰 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제국 기사들은 언짢은 기색을 띠었고 그러자 브라도 경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미안. 허락 없이 말에서 내려서 미안하군.”

“거동을 주의해 주십시오. 서 브라도.”

“알았네, 알았어.”

서 브라도는 붙임성 있게 손을 몇 번 휘저어준 다음 핸솔 추기경에게로 걸어왔다. 웃음 띤 얼굴로 핸솔 추기경을 바라보던 브라도 경은 곧 의아쩍은 얼굴이 되었다. 다시 핸솔 추기경의 모습을 꼼꼼히 바라본 브라도 경은 곧 당황하여 외쳤다.

“핸솔 추기경 아니십니까!”

“반갑군요. 서 브라도.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저 역시 여쭙고 싶은 말이군요. 도대체 예하께서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서 브라도는 핸솔 추기경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어이없어하는 얼굴이 되었다. 핸솔 추기경은 난처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좀 긴 이야기가 있군요.”

“그러십니까? 제 이야기는 짧으니 먼저 말씀드리죠. 전 유배가는 길입니다. 이 젊은 친구들이 저를 호송하고 있지요.”

“유……배요?”

핸솔 추기경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브라도 경은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이, 간수 친구들!” 

제국 기사들은 곤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부탁인데 여기서 좀 쉬어가면 안 되겠나? 반가운 분을 만나서 그래. 이 분은 펠라론의 핸솔 추기경일세.”

기사들은 놀라워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질문을 하는 대신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이곳은 쉬기 좋지 않습니다’고 말한 다음 데스필드와 파킨슨 신 부, 핸솔 추기경을 말 뒤에 타게 하고는 얼마를 더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숲속의 적당한 공터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핸솔 추기경은 집중해서 보았 지만 명령을 내리거나 지휘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누가 우두머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브라도 경은 ‘나는 유배를 떠나는 죄인’이라고만 말 하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기사들은 말을 치우고 자리를 정돈하고 음식을 펼쳐놓고 나서야 그를 정중히 모셨다. 그래 가지고서는 죄인 취급이 아 니라 상전 대접이었다.

더군다나 기사들은 자신들이 마련한 자리에 브라도 경과 핸솔 추기경, 데스필드, 파킨슨 신부만이 앉게 하고는 자신들은 따로 떨어져 조촐한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데스필드는 그들을 흘끔흘끔 돌아보았지만 파킨슨 신부는 이미 입 속으로 음식을 우겨넣고 있었다. 핸솔 추기경 역시 굶주림 을 더 참을 수 없었던지라 그가 제대로 이야기라도 꺼내게 된 것은 식사가 꽤 진행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브라도 경은 핸솔 추기경의 식사 태도에 많 은 감명을 받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고초가 심하셨던 모양이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서 브라도.”

“무례라니오. 별 말씀을. 더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좀더 먹고 싶지만…………… 궁금함을 더 참으면 소화도 안 될 것 같군요. 서 브라도. 유배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록소나 왕 빌레스의 땅으로 유배를 떠나는 길이지요.”

서 브라도가 말하는 ‘유배’는 핸솔 추기경의 귀에는 꼭 ‘유람’처럼 들렸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경과 같은 분이 유배를 떠나신다는 말입니까?”

“아, 모르셨습니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황실 인사 한 분께서 자마쉬로 가시던 도중 극악무도한 해적이자 제국의 공적 제1호인 키 ‘노스윈드’ 드레 이번의 불측한 해적 함대에게 습격당하셨지요. 제가 그 호위를 맡았습니다만,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폐하께 심려를 끼쳐드렸을 뿐만 아 니라 저 개인적으로는 검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해 이렇게 유배를 가는 거지요. 목숨으로써 죄를 씻어도 할말이 없을 죄인께 베풀어 주신 황은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핸솔 추기경은 ‘맙소사,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외치고 싶은 굉장한 유혹을 느꼈다. 품위 없는 일인지라 그렇게 빈정거리지는 않았지만 추기경 은 솔직히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정신없이 먹고 마시던 파킨슨 신부도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고 그래서 데스필드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어야 했다. 브 라도 경이 말하는 것은 절대로 뉴스가 아니다. 핸솔 추기경은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황실 인사가 황제의 사촌동생인 입시뇰 후작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약간만 생각해 보면 4년 전 그때 키 드레이번이 받았던 몸값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시군요.” 핸솔 추기경은 모든 질문거리를 머릿속으로 돌려놓고 거기에 자물쇠를 채웠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폐하의 진노가 빨리 누그러져 유배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하께선 도대체 이런, 글쎄요, 어울린다고는 볼 수 없는 여행을 하고 계시는 이유가 무엇입니 까?”

핸솔 추기경은 그 질문에 잠깐 머뭇거렸다. 그 자신도 정리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음. 저는 메르데린 컬렉션의 경매에 참가하고자 다림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가 조금 전 거론되었던 자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만 짓궂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핸솔 추기경은 말을 끊고 서 브라도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하지만 서 브라도는 그의 검을 뺏어간 자에 대한 언 급을 듣고도 아무런 내색 없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간신히 탈출한 뒤에는 전쟁터를 전전하며 도피행을 계속하다가………… 이렇게 제국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꼴이 이 모양입니다.” 

서 브라도는 진심처럼 보이는 얼굴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고가 커셨겠다는 둥, 주님의 가호라는 둥의 말이 몇 번 오가고 나서 최근에 벌어진 전쟁 의 이야기가 당연히 뒤따랐다. 그 동안 산 위에 있었던 세 사람들은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서 브라도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록소나가 물러났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케온은 다른 이의 손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다른? 누구 말입니까?”

“다벨이죠. 팔라레온을 쳤던 휘리 노이에스가 그대로 동진, 록소나와의 전쟁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다케온을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는 이제 록소나에 대한 명백한 침략 의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 브라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핸솔 추기경은 의아했던 것들이 아귀가 맞아떨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데스필드를 살짝 돌아보았고 데스필드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을 발견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

서 브라도는 다시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어떻게 모셔드리고 싶습니다만 죄인의 몸인지라 자유롭지 못하군요. 저 간수들 역시 폐하의 명령을 수행중인지라 예하를 도 와드리긴 어려울 테고.”

“괜찮습니다. 서 브라도. 다만 가까운 마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겠죠. 여보게, 간수!”

기사들 중 하나가 나무 그늘에서 일어나서는 불쾌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서 브라도. 제발 저희들을 간수라고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그럼 뭐라고 부른담?”

“이름을 불러주시면 되잖습니까. 서 스웨지라고 말입니다.”

“알았어, 서 스웨지. 부탁인데 추기경과 그분의 동행분들께 가까운 마을까지의 여정과.”

브라도 경은 파킨슨 신부를 흘끔 바라본 다음 말을 덧붙였 다. 

“약간의 식량을 베풀어주시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서 브라도는 핸솔 추기경과 파킨슨 신부, 그리고 데스필드와 일일이 악수한 다음 여행길이 즐겁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곤 기사들과 함 께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 오랜 여행에 지쳤던 데스필드 일행은 기사들이 골라놓은 자리에 앉아 조금 더 쉬기로 했다. 핸솔 추기경은 아예 땅에 드러누워서 그도 이제 완연한 도보 여행자의 티가 났다. 하늘을 보며 말했다.

“데스필드 군. 어떻게 생각하시오?”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고 있던 데스필드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뭘 말이오?”

“어느 정도의 힘을 낼 것 같소?”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니…….막강한 힘을 내겠지요.”

데스필드는 불을 붙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 콧대 높은 당신들도 서 브라도 당신 정도라면 어깨에 힘 뺄 테고. 무리는 없을 거요.” 

“그렇겠지요.”

핸솔 추기경은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 한구석에서 파킨슨 신부의 얼굴이 불쑥 들어 왔다. 핸솔 추기경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파킨슨 신부가 잔뜩 골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는데,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 알았으니 얼굴 좀 치우시오. 원, 깜짝 놀랐잖소?”

파킨슨 신부는 순순히 얼굴을 치웠다. 핸솔 추기경이 일어나 앉자 파킨슨 신부는 질문했다.

“도대체 왜 브라도 켄드리드 경은 4년 전의 일로 유배를 가시는 겁니까? 그게 유배 맞습니까? 무슨 유배가 같이 말 타고 달리며 죄수를 그렇게 대우 한답니까?”

“물론 유배가 아니지요. 데스필드 군의 말대로 최고의 조합을 위해 떠나시는 거지.”

“최고의 조합?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시대 최고의 야전 사령관을 꼽으라면, 서 브라도는 어떤 기준으로 따지든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이오.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 기병 전투의 제일인자지요. 흔히들 그와 비견되곤 하는 사트로니아의 바스톨 장군의 장기가 종합적인 작전 능력이라면 브라도 경은 엄청난 돌격력으로 단 숨에 결판을 내는 야전돌격형 지휘관이라더군요.”

“그렇습니까?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군요.”

“나도 추기경이라는 자리에 있다 보니 그런 쪽의 전문가들에게 주워들은 거요. 그럼 관심이 없는 신부님에게 묻겠는데, 제국 최고의 기병은 어디에 있지요?”

“아, 록소나!”

데스필드가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맞았다. 신부님 당신.” 

핸솔 추기경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전투 전문가에게 묻지 않아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록소나의 기병과 브라도 경이 결합하면 그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거요. 폐하께선 록 소나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신 거지.”

“록소나를 지원해서…………?”

“다벨을 징벌하는 거죠.”

“다벨을?”

핸솔 추기경은 경의를 담아 데스필드를 가리켜보였고 데스필드는 그 손짓에 대해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데스필드 군이 오래전에 지적했듯이 다벨과 록소나는 아마도 공동 전선을 펴기로 했을 거요. 하지만 그건 다벨의 이이제이의 수법이었겠지. 실제 로 다벨은 팔라레온을 정복했지만, 록소나는 다케온을 정복하지 못했소. 다벨이 등을 돌려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마왕은 그냥 물러나야 했던 거지.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다벨이 나서서는 다케온을 취해 버린 거요.”

“아아.”

“그래서 폐하께서는 서 브라도를 파견하여 록소나의 기병을 이용, 흉측한 계획을 펼치는 다벨을 견제하시는 거요. 록소나에 제국 최고의 기병이 준 비되어 있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서 브라도 한 명의 파견은 수만의 군대에 값하는 조력이니까. 그 콧대 높은 록소나 기사들도 서 브라도라면 쉽게 다 룰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제국 기사단장의 임무를 맡고 있는 서 브라도를 그 자리에서 빼내어 록소나로 보낼 구실거리를 대기 위해 해묵은 옛이야기 를 끼워맞춘 것이겠지.”

“왜 당당하게 파견하면 안 되는 거지요? 아무리 꾸미는 거라지만 유배라는 건 그 분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일일 텐데.”

“흐음. 그건 좀 문제가 많소이다. 폐하가 공공연히 록소나를 돕는 건 일단 형평성의 문제도 있거니와………… 다벨은 현재 페인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 인 건 아니잖소. 하지만 폐하께서 공공연히 록소나를 지원할 경우 다벨을 제국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리겠지요. 폐하께서는 그 정도까 지 가기를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해되었소? 그럼 나 눈 좀 붙입시다. 데스필드 군. 조금 누웠다가 출발해도 되겠지요?”

데스필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파킨슨 신부 역시 냉큼 드러누웠다. 그들은 드러눕자마자 잠들었고 데스필드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은 다음 담배 연기를 바람에 섞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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