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3장 : 제왕의 낙조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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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3장 : 제왕의 낙조 – 2화


그러나 다벨인들의 희망의 정수인 휘리 노이에스와 8군단은 그때 골치 아픈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휘리 노이에스는 바스톨 장군의 다벨 공격을 알게 되자마자 록소나를 깨끗이 단념하고는 그대로 말을 서쪽으로 돌렸다. 목젖을 누르고 있던 칼날이 치워진 형국이었던 록소나로서는 환호를 지르며 축제를 벌였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제국으로부터 임차받은 당대 최고의 공 격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록소나의 중장기병대는 알레미지우스 회전의 패배로 반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서 브라도는 그 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해 버렸다. 강제된 체중 감량이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감량에 성공한 록소나 중장기병대는 서 브라도의 지휘 하에 경쾌하게 움직이며 다벨 8군단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 은 다벨로 진군하는 8군단의 배후를 맴돌며 유리한 지형에선 반드시 싸움을 걸어 8군단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공격에는 밤낮이 없었고, ‘조금 있 다가’라는 말은 아예 통하지가 않았다.

서 브라도는 눈앞의 평원에서 후퇴하는 록소나 기병들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다벨 8군단의 병참을 신나게 두드리던 록소나 기병들은 저편에서 다벨 중장보병이 나타나자마자 대오도 정연하게 후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따 라갈 재주가 없던 다벨 중장보병들은 대장장이가 만들어준 무기 대신 그 어머니가 만들어준 무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록소나 중장기병들은 다벨 보 병들이 날려보내는 욕설과 비난의 화살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씩씩하게 퇴각했다. 서 브라도는 옆을 돌아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후퇴 기록을 또 하나 세우는군요, 남작. 지금까지 얼마지요?”

바탈리언 남작은 다시 록소나군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알레미지우스 회전에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만을 고수한 것을 확인한 록소나군은 더 이 상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전폭적으로 신뢰한 것도 아니었지만.) 바탈리언 남작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8회입니다. 제국 기사단장의 명성에 대단한 누를 끼칠 소재로군요. 문객으로서 저는 이런 소재를 제공해 주신 경에게 감사드리고 싶군요. 사람들 은 위대한 이의 볼썽사나운 꼴을 좋아한답니다. 가십과 스캔들의 정수가 그거지요.”

“부디 그 무자비한 필봉을 휘두르실 때 불쌍한 노병에 대한 약간의 동정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껄껄. 5회 정도로 줄여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조건을 들어주신다면, 고려는 해보지요.”

“조건이 뭡니까?”

바탈리언 남작은 얼굴에 웃음기를 남겨둔 채, 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명백한 유배지 이탈입니다.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입니까? 경의 주장으로 이 추적행이 벌어졌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휘리 노이에스와 8군단을 끝장 내지 않는다면 왕자의 땅에 안식이 없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유배지를 이탈하시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실 텐데요.”

남작은 서브라도가 단숨에 대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브라도 켄드리드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바탈리언 남작은 귀대하고 있는 중장기병들이 일으키는 먼지를 보며 몇 개의 수식어를 다듬어보았다. 그때 서 브라도가 말했다.

“오랜 친구의 초청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라고 하면 될까요.”

“친구?”

“친구라면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군요. 평생 한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람이니.”

“사트로니아의 바스톨 엔도 장군 말씀입니까?”

“예.”

“그 분이 무슨 초청을 했다는 거죠?”

서 브라도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 바스톨 장군에겐 너무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바 탈리언 남작에게 설명한다는 것이 그를 난처하게 만든 듯했다. 서 브라도는 약간 힘겹게 설명했다.

“글쎄요. 바스톨 장군이 다벨 본국을 치는 바람에………… 다벨군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는 스스로, 음, 모루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라도 내가 망치가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바탈리언 남작은 이해했고, 그리고 감탄하고 말았다.

평생 한번밖에 만난 적이 없던 사이이건만, 늙은 무장들은 이렇게 아무런 말이나 약속 없이도 서로의 흉중을 꿰뚫고서 넓은 대륙의 이쪽과 저쪽에서 완벽한 협조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완숙한 경험과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사람살이의 이치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끼리의 무의식적인 조 응이었다.


그리고 신성 펠라론에서는 또다른 사람이 두 노장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놀라워. 서로 미리 약속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완벽하진 못했을 거야. 모루가 망치 역할을 하고 망치가 모루 역할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 황을 그들은 이렇게 타개해 버렸군. 그것도 아무런 논의도, 아무런 약속도 없는 상태에서 휘리는 이제 스스로 모루로 달려가야 돼. 바스톨 장군에게 로 말이야. 그리고 서 브라도는 마음껏 그 뒤를 후려대다가 휘리가 모루에 놓여진 순간 바스톨 장군과 더불어 마지막 결정타를 먹이겠지. 알레미지우 스 회전이 휘리 놈의 최전성기였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노장들의 이토록 무서운 반격이 펼쳐지는 지금 놈은 끝이야!”

“그러나 유배지 이탈입니다. 성하.”

“응? 뭐라고, 플로라?”

플로라는 언제나처럼 창문으로부터 쏟아지는 햇빛 속에 앉아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그녀의 초록빛 머릿결과 하얀 알몸 위에서 눈이 부시도 록 반짝이고 있었다. 플로라는 사람이라면 눈이 멀어버리고 말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브라도 경 말입니다. 형식상 그 분은 록소나에 유배된 것입니다. 그리고 록소나와 다벨의 국경을 넘는 순간 그는 유배지를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 다. 성하께서 그 분을 위해 뭔가 손써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렇군. 하지만 그건 황제가 적당히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내가 나서서 그를 변호해 주거나 하는 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되지 않 을까?”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겠습니다만.”

흥에 겨워 있던 퓨아리스 4세는 그제서야 플로라의 안색이 약간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법황은 의아한 얼굴로 플로라에게 다가섰다.

“플로라? 왜 그래.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태양을 바라보던 플로라는 고개를 돌려 법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법황은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하이낙스인가?”

“예?”

흥분은 사라졌다. 법황은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책상 귀퉁이에 걸터앉은 법황은 꼬아올린 무릎에 두 손을 얹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하게 말하려 애썼다.

“네 눈에 내가 비친다는 건, 네가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지. 플로라. 난 그 외에 다른 때 네 눈이 젖는 것을 본 기억이 없어. 아, 내 눈치를 볼 필 요는 없어. 창피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 질문을………… 내 속에 있는 질투에 눈이 먼 어떤 철부지 청년이 던지는 것이 아닌, 순수한 호기 심에 의해 던지는 질문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군. 왜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그 두 분의 장군들은 레프토리아에서도 계셨습니다.”

“그래서였나. 흠.”

법황은 목이 메인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곧 자기 환멸에 빠져버렸다. 이런 얼간이! 다행히도 플로라는 빨갛게 변한 법황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때 하이낙스는 비웃으며 말씀하셨지요. 그 둘은 신경 쓸 거 없다고. 단지 서로를 방해하기 위해서라도 협조를 거부할 것이 뻔한, 넘치는 자의식 으로 충만한 바보들이라고. 예. 아시겠지만 그 분들은 그때 처음 만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대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단지 상대보다 더 높은 전과를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싸웠습니다. 어떤 전사학자는 그럼으로써 동맹군의 사기를 앙양시켰다고도 말하지만………… 현장 목격자인 제 견 해는 다릅니다. 그 두 분은 동맹군마저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앞뒤 없이 싸웠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많이 하는 말입니다만, 만일 타르타니 어스 공이 조금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그 두 분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던 동맹군을 일격에 분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예… 물론 제 머릿속에 하이낙스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랬나. 하긴, 그때의 두 사람들이면 대단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을 테고 당연히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예. 그런데 이제 두 분은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정확히 간파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동으로 서로를 돕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되셨군요. 시간 이 이토록 흘렀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플로라는 다시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법황은 반대편, 어두운 방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성하.”

“응?”

“전 하이낙스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길고 긴 여름의 낮이 한 점에 축약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점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고 그 주위로 유리 깨지는 소리 같은 침묵들이 얕게, 혹은 깊 게 헤엄치고 있었다. 플로라의 가슴이 잠깐 부풀었다가 내려가며 그녀는 햇살을 토해내듯 말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시간을 길다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직까지도 그를 어제 헤어졌던 사람처럼 느끼고 있는 저 자신 때문에… “

플로라의 말끝이 부스러졌고 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우습군요. 자기 연민인 걸까요. 자기 연민에 빠진 꽃이라는 말은, 왠지 노래의 한 구절……”

그녀 외에 또다른 사람이 그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플로라의 공포보다 빠르게 법황의 입술이, 그리고 그녀의 당황보다 빠르게 그의 손이 다가왔다. 그래서 플로라는 무서워하거나 당황할 겨를도 없었 다. 햇살을 받고 있던 그녀의 살갗은 뜨거웠고 그래서 법황은 뜨거운 찻잔을 만지듯 그녀의 볼과 목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살갗은 풀잎처럼 매끄러웠 지만 법황의 손길은 자주 끊어지며 힘겹게 이어졌다.

정제되었던 여름이 다시 녹아 흘렀다.

퓨아리스 4세는 천천히 물러나 당황한 눈으로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플로라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올려 법황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성하?”

법황은 그 말에 떠밀린 듯 다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열리며 말들이 새어나왔다.

“내가 또 부쉈군.”

플로라는 법황의 얼굴을 보는 대신 그 가슴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법황의 목소리는 높낮이의 변화가 심했다.

“모르겠어. 이건………… 열여섯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하…………… 하하. 단지 여름이라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마치 자포자기한 심정 으로 저질러버린 소년의 첫키스 같아. 늦여름에 흔히 있는…꽃과 키스하신 건 처음이시겠죠.”

“그러지 마. 플로라.”

플로라는 다시 아리스 4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법황은 입 가장자리를 가늘게 떨며 플로라를 보고 있었다. 그 갈구하는 눈빛을 보며 플로라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매정하게 금을 그었다.

“성하께서 기묘한 느낌을 받으신 건 아마도 제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불쾌하시진 않으셨…………”

“관두라고!”

입을 다문 플로라는 물끄러미 법황을 바라보았다. 퓨아리스 4세는 앞으로 뛰면서 동시에 뒤로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웃음을 지으 며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플로라는 그에게 어떤 매개도, 어떤 동기도 주지 않았다.

그는 이제 로데인 백작이 아니다. 에름 후작은 머메이드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지만 법황은 그럴 수 없다. 플로라는 로데인 백작이었다면 자신이 끝까지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로데인 백작은 리포밍된 싱잉 플로라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을 것이다. 하 지만 퓨아리스 4세는 그럴 수 없다. 플로라는 퓨아리스 3세에게 감사했다.

‘고맙군요, 선황 성하. 당신이 위험한 턱을 가진 젊은이에게 법황의 위를 주어서 구한 건 세상뿐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 행동을 통해 한 송이의 꽃 도 지키셨습니다. 당신은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겐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발!”

서 기리우는 내버려두면 땅에 몸을 던져 사령관의 신발이라도 핥을 듯한 얼굴로 외쳤다. 그래서 휘리 노이에스는 조심스럽게 발을 끌어당기며 말했 다.

“하지만, 서 기리우. 아, 물론 자네에게 행운이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자넨 두 번이나 실패하지 않았나.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 자네에게 또 기회를 준다면 모두들 내가 자네를 편애한다고들 할 텐데.”

“전 괜찮습니다!”

“……이봐. 흥분을 좀 가라앉혀. 곤란해지는 건 나라고 말한 거야.”

“아, 그렇습니까?”

서 기리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참모 회의에 모여 있던 나머지 지휘관들은 낮은 웃음 소리를 내었다. 서 기리우는 빨개진 얼굴을 조 금 숙이며 낮게 말했다.

“그럼 이번엔 누구에게 맡겨보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차례로 본다면 다시 서 소팔라이긴 하지만…………” 

휘리는 서 소팔라 쪽을 바라보았고 그가 두 손 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발견하곤 우 울하게 말했다. 

“그는 기관인 것 같군. 내 사견이지만, 서 소팔라는 점점 그의 노예병을 닮아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그의 노예병들은 점점 그를 닮아가는 것 같고.”

서 소팔라는 히죽 웃었다. 휘리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림파이어 가문의 다른 기사를 쳐다보았고 서 소사라는 차분하게 말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자신 있나?”

“없습니다.”

“……자네들의 가풍은 정말 놀라워.”

휘리가 고개를 내두를 때 서 기리우가 다시 외쳤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사령관님. 전 정말 자신 있습니다! 반드시 그 늙은 쥐새끼의 목을 베어 사 령관님께 바치겠습니다!”

서 기리우의 장렬한 개소리는 그냥 개소리에서 머물고 말았다. 휘리 노이에스는 서 소사라에게 작전을 일임했고 서 소사라는 큰 희망을 품지 않은 채 여섯 번째의 ‘쥐덫 작전’을 맡았다. 물론 서 소사라는 여섯 번째 시도를 하기에 앞서 다섯 번의 실패를 곰곰이 검토하기 시작했다.

서 브라도는 반쪽이 된 중장기병을 신출귀몰하게 다루어 다벨 8군단을 신나게 두들겨대고 있었으나 휘리 노이에스 역시 이것을 그냥 골치 아픈 추 격전으로 놔두지는 않았다. 어쨌든 상대는 당대에 다시 만나기 어려울 최고의 기병이었고 그래서 휘리는 다벨을 향해 꾸준히 도망치는 와중에도 8군 단의 지휘관들에게 서 브라도의 퇴치를 명령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것을 일종의 실전 연습으로 생각했다. 물론 두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8군단의 지휘관들은 메르데린 스쿨 출신의 장수들인 만큼 궤멸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다벨 본토에 도달할 때까지는 서 브라도 역시 전면전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모루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모루에 똑바로 올려지기 전까지 망치는 휘둘러지지 않을 것이다. 톡톡 건드리긴 하겠지만.

가장 먼저 나선 것은 5중대의 서 소팔라였다. 서 소팔라는 고전적인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에 항상 효과적인 매복 작전을 시도했다. 그는 휘하 의 노예병들을 대열에서 살짝 빼돌려 언덕 뒤에 매복시킨 다음 록소나 기병들이 본대를 칠 때 배후에서 포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노예병들 의 기강은 아직 세련되다고 보긴 어려웠다. 약간의 소란을 감지한 록소나군은 다벨 본대를 무시한 채 곧장 언덕으로 달려왔고 서 소팔라는 그 모습을 보자 당장 결단을 내렸다. “튀자!” 아무도 서 소팔라의 행위를 비겁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8군단의 그 누구도 서 소팔라가 노예병들과 록소나 중장기 병을 정면 대결시켜 5중대를 깡그리 박살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 기리우는 약간 투덜거렸지만, 약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서 브라도 역시 냉큼 본대에 합류해 버리는 서 소팔라의 부대를 보곤 빙긋 웃으며 돌아갔다.

두 번째로 나선 것은 2중대의 서 소사라였다. 서 소사라는 야음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록소나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온다는 점에서 착안 한 작전으로 서 소사라는 밤의 어둠이라면 기병들을 쉽게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사령관의 허락을 받은 다음 일부러 병참부대 를 지연시켰다. 병참이 본대와 떨어진 위치에서 야영에 들어가면 반드시 록소나군이 나타날 것이라는 계산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그의 예측대로 록 소나군은 병참부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록소나군은 밤이 되기 전, 병참이 야영 준비를 시작한 늦은 오후에 나타나버렸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간 병참이 완파될 지경이라서 소사라는 혀를 찬 다음 록소나군을 쫓아버렸다.

세 번째로 나선 것은 서 켈커였다. 중장기병대를 이끄는 그는 놀랍게도 정면 대결을 시도하겠다고 말하여 휘리와 다른 지휘관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위풍당당하게 중대기를 펄럭이며 서 브라도에게 달려간 서 켈커는 반 시간 가까이 잘 싸운 다음 자신과 다벨 중장기병이 서 브라도와 록소나 중장기병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깨끗이 인정하고는 큰 손해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하게 후퇴했다. 휘리는 ‘그가 악전고투 끝에 이겼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자랑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그의 후퇴 결정을 치하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나선 것이 경장기병대의 서 기리우였다. 알레미지우스 평원에서 서 브라도가 이끄는 중장기병대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개인적으로도 낙마라는 수모를 선사받았던 서 기리우는 자신 역시 정면 대결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모든 지휘관들이 만류하고 휘리는 약 간 강경한 어조로 재고를 권했지만 서 기리우는 그들을 싹 무시한 채 성난 아피르 족 같은 기상으로 록소나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씹어먹고야 말 겠다는 그 훌륭한 기상도 서 브라도의 노련함과 록소나 중장기병의 무서운 전투력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벼운 경장기병이니만큼 긴 퇴로를 준 비해 두고 지구전을 벌였다면 좋았으련만, 고지식하게 정면 대결을 고수함으로써 서 기리우는 서 브라도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했 다. 

“완벽한 얼간이군.” 

그러나 서 브라도는 공평한 성격이었고, 그래서 서 기리우의 안전한 퇴각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서 기리우는 돌아오자마자 ‘이제 탐색전이 끝났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침으로써 휘리 노이에스와 다른 지휘관들로 하여금 두통에 시달리 게 만들었다. 사령관이 체념하는 심정으로 두 번째의 도전을 허락하자 서 기리우는 쾌재를 올리곤 곧장 작전에 들어갔다. 물론 두 번째는 좀더 신중 한 자세로 임했다. 서 기리우가 두 번째 도전용으로 들고 나온 것은 ‘심층 방어를 기반으로 운용되는 방어 병력의 기동우회 기습’이었다. 간단히 말 하자면 두껍게 세워 적을 막은 후 적이 주춤할 때 두껍게 세운 대형의 뒤쪽의 부대로 하여금 멈춰 있는 적의 옆구리를 치게 하겠다는 말이다. 꽤나 전 통적인 전술이었고 이를 위해 서 기리우는 10단 심층 방어진을 구성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좁아지는 대형에서 적정 수준의 방어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 기리우는 상당히 꼼꼼하게 지형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전술이 전통적인 까닭은 야만인들을 상대로 제국 기사단이 많이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 브라도는 전 제국 기사단장이었다. 서브 라도가 돌격하고 서 기리우가 환호를 지르며 예비대를 우회 기동시킨 순간, 즉 10단 심층 방어진이 4단으로 줄어든 순간 서 브라도는 기다렸다는 듯 이 단숨에 방어진을 돌파해 버렸다. 야만인들과 달리 록소나 중장기병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기율이 흐트러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 브라도 는 단절된 4단 방어진의 우측을 밀어붙여 서 기리우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양단된 부대가 각개격파를 당할 지경인지라 서 기리우는 황급히 후퇴를 명령했다. 그 와중에 서 기리우는 중대기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서 브라도는 적수에게 군기를 잃는 것보다 더 지독한 모욕이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서신 한 통과 함께 군기를 돌려보낸 것이다. 

‘애송이에게 뺏은 군기로 명예를 삼을 만큼 내 명예가 부족하진 않다. 하지만 그대에겐 막심한 불명예일 듯하니, 선의와 우정으로 반환한다.’ 

그날 밤, 다벨군의 진영에선 밤하늘을 향해 짐승의 울음 소리를 내며 방황하는 한 장수의 모습이 많은 보초병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것이 다섯 번의 실패로 돌아간 쥐덫 작전의 그간의 경과였다. 서 소사라는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정공법으로도, 기계(奇計)로도 서 브라도 를 잡을 수 없었다. 어차피 치고 빠지기를 선택한 적군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톡톡 치는 잔주먹이 점점 더 아파오는 것은 무 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잔매에 장사 없는 법인 데다 다벨로 돌아가자마자 바스톨 엔도 장군과 싸워야 되는 8군단은 조금의 손실도 감수하기 어려웠 다. (그리고 바스톨 엔도 장군을 떠올린 서 소사라는 더욱 풀이 죽고 말았다.)

결국 서 소사라는 밤을 꼬박 새운 후 아침이 되어서야 사령관에게 작전 계획을 제출할 수 있었다. 서 소사라의 설명을 들은 휘리 노이에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 있나?”

서 소사라는 하품을 하느라 입을 가렸다.

“아뇨.”

“눈 좀 붙였다가 출발하게.”

“알겠습니다.”


“저건 건드릴 수가 없군요.”

서 하빈저는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서 브라도 역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전방을 응시했다.

야산을 등지고 다벨군이 그곳에 있었다. 고지대에는 대포가 줄을 지어 있었고 그 앞쪽, 저지대에는 다벨 중장보병들이 마차 방어진을 형성한 채 추 상같은 기상으로 서 있었다. 마차 방어진은 마차나 수레 등을 일렬로 주욱 세워 간단한 목책 같은 것을 만들고 그 뒤편으로 보병들을 세우는 방어로, 이것이 고지대에 설치되면 기병에겐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 된다. 게다가 그보다 더 높은 뒤쪽에 대포가 있다면 접근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된다. 그야 말로 정석대로의 방어진이며, 그래서 서 브라도는 상대방이 상당히 진지하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건 아무래도 우릴 물리치려는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서 소사라는 반드시 서 브라도를 이길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거꾸러뜨려야 된다는 강박관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간단한 사실이 지만, 적이 덤비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이미 이긴 셈이다. 그리고 서 소사라는 서 브라도나 록소나 기병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방어진을 만든 채 기 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지금도 다벨 본대는 계속 도망치고 있을 텐데, 우회로가 있습니까?”

“있기는 있습니다만 엄청나게 돌아가는 길입니다. 없는 것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뒷문을 완전히 막아버린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서 브라도.”

서 브라도는 골치 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쓴미소를 지었다. 서 하빈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저들로서도 좋은 점이 없을 텐데요. 노이에스 장군은 중장보병대와 포병을 후방에 남겨둔 상태에서 사트로니아군과 싸울 생각일까 요?”

“그러게 말입니다. 전 저게 가짜 대포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듭니다.”

서 브라도의 말에 서 하빈저는 섬뜩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알레미지우스 평원에서처럼 말입니까?”

“예. 하지만 그때 노이에스 장군은 팔라레온 대포를 거의 파괴해 버렸지요. 다벨군에 또다른 대포가 있을까요? 아, 혹시 다케온에 대포가 많이 있었 습니까?”

“다케온? 있기는 있었습니다만………… 네그리파 백작은 포병보다는 리저드라이더를 더 좋아했습니다. 뭐, 어떤 지형에서도 달릴 수 있는 부대라 상대 가 포병이라도 순식간에 접근해서 함몰시킬 수 있는 병력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길 좋아했고, 그래서 대포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 로 구비하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첩보가 정확하다면 그건 현재 다케온에 있을 겁니다.”

“다케온에요?”

“그렇습니다. 다케온의 피린데 성에 주둔한 다벨군이 접수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건 진짜 다벨 대포군요. 전쟁 발발 후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서 하빈저와 서 브라도는 막막하다는 얼굴로 야산을 바라보았다. 서 브라도가 먼저 말했다.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군요.”

“기다린다고 하셨습니까?”

“예. 아무래도 우리가 우회를 시도하면 냉큼 돌아가 본대에 합류한다는 정도의 작전인 것 같군요.”

“그렇겠군요.”

“그러니 저들이 우릴 묶었다면 우리도 똑같이 저들을 묶어야지요. 설마 나머지 기병과 노예병만 가지고 바스톨 장군을 상대할 생각은 아닐 테고. 어디 두고보지요. 어떻게 나오는지.”

록소나군은 대포의 사정 거리 바깥에 진을 쳤다. 그리고 서 브라도는 서 소사라가 언제쯤에 포기하고 본대로 돌아갈지 조용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산에 진을 친 다벨군 역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록소나군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서브라도가 우회하거나 군대를 돌릴 때까지 기다리겠 다는 태도였다. 서 브라도는 그 대치 상황을 곰곰이 분석해 보고는 자신이 손해보는 것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군단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 중장보 병대와 포병을 제외한다면 다벨 8군단은 바스톨 장군의 사트로니아군에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심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정도의 사실은 휘리 노이에스에게도 자명한 것이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 브라도는 나흘 뒤 피린데 성 주둔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바탈리언 남작의 기록을 위해 설명해 줄 때에도 서 브라 도의 태도는 침착했다.

“저들이 저곳에서 진을 치고 기다린 것은 다벨 제9군단이 움직일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을 거요.”

우필을 잉크병에 담그던 바탈리언 남작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9군단이오?”

“피린데 성 주둔군 말입니다. 사실은 8군단의 별동부대지만.”

다벨 9군단이라는 것은 일종의 농담거리였다. 그것은 원래 팔라레온을 점령했던 휘리 노이에스가 투란에 주둔시켜 두고 떠난 부대였다. 바스톨 장 군이 진군하기 시작하자 투란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던 그들은 8군단이 떠난 뒤 다케온의 피린데 성을 접수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 9군단이 록소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빌레스 국왕은 서브라도에게 다급하게 회군 명령을 보냈다.

서 브라도는 할 수 없이 록소나군을 후퇴시켰다. 그가 군대를 돌리자마자 서 소사라는 방어진을 푼 다음 질서정연하게 본대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비자 록소나로 돌아온 서 브라도는 얼마쯤 예상하고 있던 말을 듣게 되었다. 록소나를 향해 진군하고 있던 피린데 성 주둔군이 다시 피린데 성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서 브라도는 엄청나게 멀어진 8군단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며 풀이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서 브라도의 낙담거리가 품절된 것은 아니었다.

다벨을 향해 열심히 도망치고 있을 8군단을 어떻게 추적하느냐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서 브라도에게 황제가 보낸 명령서가 도달했던 것이다. 비 자 록소나에 머물고 있던 서브라도를 방문한 바탈리언 남작은 그 명령서를 직접 보게 되었다.

“유배 정지라고요?”

서 브라도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면 근신은 충분하니 다시 제국으로 돌아와 제국 기사단장 지위에 복귀하라시는군요.”

바탈리언 남작은 은빛 별 문양의 황제인이 선명한 명령서를 보며 일단 그 문장의 세련됨에 감탄했다. 물론 란셀 최고의 문장가가 쓴 것일 테니 문장 의 유려함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 내용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탈리언 남작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접어 서 브라도에게 돌려주며 말 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유배가 이렇게 빨리 정지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대단히 감읍할 일입니다.”

“서 브라도. 무례한 말입니다만 격식은 좀 제하고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 역시 경의 유배가 실제로는 유배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빨리 유배를 끝내다니오.”

“록소나는 이제 위기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전쟁은 다벨 본토로 옮겨진 겁니다.”

“브라도 경. 휘리 노이에스와 8군단을 끝장내지 않는다면 위기에서 벗어났다느니 하는 말은 사용할 수 없잖습니까.”

바탈리언 남작은 상대방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을 구태여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 브라도가 말문을 열지 않으려 하는 바에야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서 브라도는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사트로니아의 바스톨 장군이 잘 처리해 주겠지요.”

“그의 초대를 받으셨잖습니까!”

바탈리언 남작은 강변하듯 말했다. 그 자신이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꼭 보고 싶었다. 두 개의 나침반이 똑같은 북극성에 이끌리듯이, 두 노장이 서로를 보지 않고서도 조응을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바탈리언 남작은 그 결과를 보고 싶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현재’의 그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모습의 뒷면에는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 브라도는 깊게 패인 볼주름을 만지작거리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기사입니다. 남작.”

“제길. 짐작 가시는 바가 있으면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폐하께선 왜 이렇게 급하게 경을 불러들이시는 겁니까? 휘리 노이에스를 쓰러뜨리고 다벨을 징벌할 때까지 기다려주셔도 되잖습니까?”

“연대기를 쓰기 위함입니까?”

“전 바보가 아닙니다. 우필로 지존의 심중을 더듬지는 않습니다. 제가 알고 싶어서 묻는 겁니다. 혹 제국에… 바탈리언 남작은 자신이 꺼내려는 말의 무게를 퍼뜩 느끼곤 서브라도의 안색을 조금 살폈다. “어떤 위험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런 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럼 폐하께서 이렇듯 급하게 경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잖습니까?”

서 브라도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남작. 난 제부르카스 장군의 말 이외엔 해드릴 말이 없소.”

바탈리언 남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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