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580화
1580화. 어디 가져가 보렴. (5)
“아―미―타―불!”
웅혼하나 동시에 악에 받친 듯한 불호가 터져 나왔다.
선봉으로 달려드는 소림승들에게선 도무지 불자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무인이 본다면 웅장하다 느끼겠지만, 같은 불도를 걷는 이들이 본다면 너무 과격하다 눈을 찌푸릴 듯했다.
그러나 소림승들로서는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장강참변으로부터 지금까지, 천하에서 가장 많은 고난을 겪지 않았던가. 그들은 명예를 잃었고 자부심을 내려놓았다. 심지어 같은 소림승들끼리 반목하여 분열해야 했다.
스스로 저지른 일은 조금도 없었음에도, 그 대가의 가혹함을 전신으로 견뎌 내야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의 원흉이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패구우우우우운!”
누군가의 고함이 고막을 터뜨릴 듯 울렸다.
소림승들의 눈빛이 절로 날카로워졌다.
그래. 바로 저자다. 천하를 도탄에 빠뜨리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그 소림마저 더러운 오물통에 처박은 만악(萬惡)의 근원!
‘회피’라고 했다.
툭 내뱉은 그 한마디가 소림의 가슴을 얼마나 잔인하게 후벼팠는지, 장일소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그들이 이 악물고 참고 버텨 온 모든 오욕이 무의미함을 넘어 비겁했다는 말. 이게 소림에 소속된 이에게 어떤 의미로 닿을지 이해나 할까.
“적을 섬멸하라!”
‘회피’라는 말이 남긴 분노의 여파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항상 무승들을 침착하게 이끌어 왔던 법계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노기를 주체하지 않고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분노와 적의는 오연히 서서 그들을 지그시 응시하는 장일소를 보는 순간 더욱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래, 저자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을 초래했으며, 그로도 모자라 세 치 혀로 세상을 농락한 마귀다.
화려한 붉은 장포는 이토록 많은 이들이 뒤섞여 바글거리는 혼돈 속에서도 북극성처럼 선명했다.
소림을 비롯한 모두가 그 또렷한 붉은빛을 보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저 목!
어떤 고난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저 목만 베어 낼 수 있다면 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다.
그럼 세상은 다시 그들이 알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소림을 비롯한 구파는 다시금 세상의 칭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저자만 죽일 수 있다면……!
몇몇 소림승의 눈에 핏발이 불거졌다.
“오오오오오오오!”
선두에서 내달리는 소림승의 전신에서 황금빛 불광이 피어난다.
이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그의 뒤를 따르던 소림승들의 몸에서도 광휘로운 불광이 동시에 뻗어 나왔다.
극성으로 끌어 올린 소림 기공의 효과.
상서로운 금빛으로 전신을 물들인, 황포 차림 무승들의 모습은 마치 황금의 군대가 대지를 내달리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소림이 강호의 북두로 불리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적에게는 공포를, 그리고 아군에게는 충천한 사기를!
장일소에 대한 충심으로 제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홍견의 발마저도 일순 굳게 할 만큼 찬란한 광경이다.
그리고 소림의 힘은 결코 기세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아―미―타―불―!”
몸을 띄워 올린 법계가 허공으로 장을 내질렀다. 손바닥에서 쏟아진 장력은 허공에서 거대한 손바닥 형상을 이루더니 마주 달려오는 사패련의 군세를 향해 쏘아졌다.
“여, 여래(如來)!”
콰아아아아아앙!
내달리던 홍견들이 법계의 장력에 얻어맞아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간다.
“이곳에 자비는 없다! 살계(殺戒) 열기를 주저하지 말라!”
“아미타불!”
소림승들이 용기백배하여 기세를 끌어 올렸다.
“소림을 따라라!”
그 기세에 고무된 건 소림뿐만이 아니었다.
뒤를 따르던 팽가와 공동 역시 소림승들이 보여 주는 기세에 취한 듯 함성을 내질렀다.
구파일방.
결코 바랠 수 없는 이름. 그 이름 아래 가졌던 긍지가 지금 이 대지 위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반면 가장 앞서서 그들을 맞는 이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타다다닷!
홍견들은 마치 먹이를 쫓는 사냥개처럼 내달렸다. 충혈된 두 눈과 번들거리는 살기는 섬뜩하기 이를 데가 없으나, 이들은 각오를 소리쳐 가며 다지지도 않고, 끓어오르는 살심을 폭발시키려 들지도 않았다.
싸우는 것. 물어뜯는 것. 짓밟고 지키는 것.
그건 이들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숨을 쉬고 밥을 먹는 데 특별한 준비나 행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에게는 전투를 위한 다른 의식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명하면 싸우고, 명하면 죽는다. 그 상대가 누구든. 설령 그 대가로 얻을 게 가치 없는 죽음뿐이라 하더라도.
그렇기에 그들은 대지 위로 쏟아지고 번져 나가는 불광을 보면서도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
“죽여라.”
서로를 꿰뚫을 창이 된 두 군세가 조금의 감속도 없이 그대로 충돌했다.
콰아앙!
누군가의 몸에서 뿜어진 피가 축포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노을보다도 붉다.소림 일절(一節)의 나한권(羅漢拳)이 마주 오는 적들을 향해 그 위력을 뽐냈다. 황금빛으로 젖은 주먹은 도를 휘둘러 오는 홍견들의 몸뚱이에 연신 자비 없이 틀어박혔다.
쿠우우웅!
거대한 망치로 범종(梵鐘)을 치는 것 같은 둔중한 타격음.
도를 휘둘러 일격에 소림승들의 목숨을 끊어 놓으려던 홍견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 나간다.
불광이 어린 주먹에 실린 것은 무거움(重). 부수고 찢고 베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켜 온 삶만큼이나 묵직한 무게로 적을 밀어 내는 힘!
강해지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만큼 마구잡이로 끌어모았지만, 그만큼 조잡할 수밖에 없는 게 사파의 내력이다. 그것으로는 정순하기 짝이 없는 소림승들의 내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순간, 크기가 아닌 밀도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하지만 홍견들 역시 그 위명을 그냥 얻어 낸 것은 아니다.
거대한 철구와 같은 주먹이 가슴을 후려쳐 오는 순간에도, 홍견의 도는 휘둘러졌다. 상대의 목이 아니라 제 가슴을 가격한 상대의 손목을 향해.
카각!
내력이 어려 강철보다 단단해진 팔뚝이지만, 전력을 실은 홍견의 도격을 완전히 버텨 내지는 못한다.
그 대가는 단 하나의 자상.
살을 내어 주고 뼈를 치는 것(肉斬骨斷)이 아니라, 뼈를 내어 주고 살을 친다(骨斷肉斬).
사냥개의 역할은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입히고 몰아넣는 것이다.
홍견(紅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도에는 조금의 욕심도 어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능숙한 사냥개도 대호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
하나의 상처를 새긴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상대해야 할 이들의 힘이 너무도 거대했다.
“아―미―타―불!”
고련과 고행, 그리고 엄격한 계율 속에서 단련된 육체. 그 안에 적에 대한 노기까지 담은 소림승들의 권(拳)이 웅비한다.
콰아아아앙!
홍견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천년소림.
천 년간 잠을 자지만, 한번 날개를 펴면 구만 리를 난다는 대붕처럼. 한번 그 힘을 펼치기 시작하자 소림은 과연 무시무시했다.
장일소의 사냥개로서, 사파는 물론이고 천하에 그 악명을 떨치던 홍견조차 소림 나한들의 힘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몰아붙여라!”
쿠우우우웅!
법계가 진각을 내밟으며 양손을 펼쳐 들었다.
천불수(千佛手)!
그가 만들어 낸 수십, 수백 개의 수강(手鋼)이 마라(魔羅)를 쫓아내는 천수관음의 손처럼 달려드는 적들을 휩쓸었다.
일거에 수십의 적들을 날려 버린 법계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악도들을 징치하여, 법도를 다시 세워라!”
그 광경에 도취된 건 소림승들이 아니라, 공동과 팽가였다.
‘과연 소림……!’
눈앞에서 펼쳐지는 힘의 향연에, 공동장문인 종리형은 연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하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이런 힘을 가지고 어째서 지금껏 침묵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다.
물론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소림의 활약도 그저 개전의 기세를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는가? 이 거대한 싸움에서 초전의 기세를 가져왔으니 그 이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우리도 질 수 없다! 소림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마라!”
“예! 장문인!”
공동파의 검수들에게도 구파일방의 주축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모든 공을 소림에 빼앗길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더 발 빠른 이들이 있었다.
“쓸어 버려라!”
“패, 팽가주!”
팽엽이 이끄는 팽가의 도수들이 가공할 기세로 적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호전적이기로 따진다면 정도 무림 어느 곳도 따르기 힘든 곳이 바로 팽가다. 장대한 기골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력의 대도가 여기저기서 적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콰가각!
도끼로 장작을 쪼개는 듯한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린 적의 시신들이 도끼에 잘려 나간 장작처럼 좌우로 쓰러졌다.
적을 밀어 내는 소림과는 달리, 조금의 사정조차 봐주지 않는 잔혹한 살초(殺招)였다. 그 경지의 높고 낮음과는 별개로, 그 거대한 대도가 만들어 내는 결과가 소림 이상으로 위협적이었다.
“오오오오!”
팽엽의 도가 횡으로 그어졌다. 그 일도에 만인방도들 몇의 허리가 갈렸다. 잘려 나간 상반신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사방으로 피를 흩뿌린다.
평소 보이던 침착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과격한 일도(一刀)! 그의 몸에도 팽가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팽엽이 범처럼 포효했다.
“오늘 우리는 천하제일가의 이름을 손에 넣는다! 모조리 박살 내 버려라!”
소림, 팽가, 그리고 공동.
그 하나하나의 이름만으로도 천하를 뒤흔드는 문파들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힘은 과연 상상 이상이었다.
강남에서 사신보다 더한 명성을 떨치는 만인방의 방도들조차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물러난다.
뒤에 장일소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으, 으으아!”
“어딜 가느냐! 이 사파 놈들!”
소림의 권은 물러서는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웅!
연이어 터져 나온 격공장(隔空掌)이 물러서는 이들의 육신을 깨부순다. 웅비하듯 뿜어진 신권(神拳)은 그 주먹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던 이들조차도 뭉개 버린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일방적인 전개였다.
“장일소오오오오오!”
그 순간 법계가 노성을 터트리며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이 살벌한 전장의 먼 뒤편에 여유롭게 서 있는 적포 차림의 사내를 발견한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주먹에서 뻗어 나간 권력이 장일소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몸이 으스러질 듯한 기세!
하지만 정작 앞에 선 장일소는 눈썹도 한 번 꿈틀하지 않고 말없이 날아드는 권력을 보기만 했다.
“주제를 모르는군.”
그런 장일소 대신 뒤에 시립하고 있던 적호(赤虎)가 앞으로 뛰어올랐다.
기이이이잉!
귀를 파고드는 굉음과 함께 발출된 그의 도가 더없이 거친 도기를 뿜어내며 날아드는 권력을 단번에 갈랐다.
법계는 감히 장일소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듯.
확실히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쪽에도 분명 장일소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이가 존재한다.
“아미타불.”
속삭임 같은 불호가 나직이 울렸다.
그 순간, 적호는 전신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걸 느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적진의 한중간에서 거대한 금불(金佛)의 형상이 환상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마치 부처가 현신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적호가 크게 눈을 부릅떴다.
거대한 금불의 형상과 그 형상을 만들어 내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버, 법정!”
그 순간, 황금빛 서광을 뿜어내던 금불의 형상이 적호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적호의 뒤에 있는 장일소를 향해 쏘아졌다.
“으, 으아아아아압!”
전신의 털이 모조리 곧추설 만큼 위기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적호는 몸을 빼내는 대신, 있는 힘을 다해 날아드는 금불에게 도를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앙!
하지만 법계의 권력을 손쉽게 잘라 냈던 그의 도격으로도 날아드는 금불을 벨 수는 없었다. 고작해야 그 방향을 조금 뒤틀었을 뿐.
“련주! 피하셔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금불이 장일소에게 날아들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려, 련주님!”
내내 태연하던 호가명이 순간 경악하여 장일소에게 달려간다.
저 말도 안 되는 강기에 직격당했다면, 아무리 장일소라 해도……!
“련주님! 괜찮으십니까, 련주님!”
호가명이 이를 악물고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헤쳤다.
이윽고 요동치는 전장의 대기 탓에 바람이 일었다. 자욱하게 일었던 먼지구름이 밀려나는 순간, 호가명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만큼 대단한 법정의 힘에 놀란 게 아니다.
바로 코앞에 떨어진 강기의 위력을 보고도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전장을 주시하고 있는 장일소. 저 북해 빙벽에 불어오는 칼바람보다 더욱 차가운 그의 눈빛이 호가명조차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려, 련주…….”
장일소가 보고 있는 건 소림도, 법계도, 심지어 법정마저도 아니었다.
그저 요동치는 전장. 사패련의 피를 양분 삼아 검은 겁화처럼 날뛰고 있는 전장이었다.
“꽤나…….”
붉은 입꼬리가 불길하게 말려 올라갔다.
“신이 난 모양이로군.”
음울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이 뱀처럼 요사스러운 광채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