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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88화


1588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8)

콰아아아아아아!

두 기가 충돌하며 여파가 사위를 휩쓸었다.

시대를 지배하는 거인들의 전투다웠다.

그러나 정작 그 대지 위에 선 이들은 거기에 정신을 팔 여력도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뻗어 나간 검이 누군가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제에에에에에!”

“이 개 같은 자식이!”

수십 년간 함께 고락을 이어 온 이가 비명(非命)에 쓰러진다. 그러자 곳곳에서 악에 받친 검들이 날아들어 적을 고슴도치로 만들고 만다.

콰득! 콰득! 콰득!

단번에 십여 개의 검이 박힌 이가 울컥울컥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이 땅 위에서는 이 숱한 비통한 죽음에 애도할 최소한의 여유마저 없었다.

“죽어라아아아아!”

“아미타불!”

달려들던 사파가 금빛 권력에 가격당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진다. 소림의 무학은 과연 명불허전. 병기를 든 이들을 맨손으로 상대하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림의 상황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큭!”

“흐하하하핫! 잘난 소림 중놈들 몸에도 칼은 박히는구나!”

“물러서시오!”

콰앙!

일격을 허용해 버린 소림승이 어깨를 부여잡은 채로 이죽대는 만인방도를 후려쳐 날린다. 그리곤 연이어 권을 떨치려 했지만, 부상 당한 어깨가 말을 듣질 않아 휘청이고 말았다.

이를 본 법계가 크게 소리치며 지시했다.

“내력을 끌어올려 중독에 저항해라!”

“예, 장로님!”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좋지 않다.’

피 흘리는 소림의 제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보고 싶지 않지만, 뿌연 흙먼지 속에 영영 쓰러진 이들의 모습마저 보였다.

‘이리될 일이 아니었다. 분명 이리될 일이…….’

물론 어떤 전쟁도 희생 없이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승리하기 위해서 희생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큰 희생이 따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예상한 바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들려온 끔찍한 비명에, 법계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너무 과했다. 천천히 적들을 포위하며 몰아붙여도 되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적의 무력이 대단하지 않았고, 저 장일소가 언제 달아나 버릴지 모른다는 초조함까지 드니 모두 뒤를 돌아보는 법을 잊은 것처럼 돌진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장일소의 충실한 개들이 소림의 제자들을 물어뜯고 있다. 장로들과 법계가 포진한 앞쪽은 내버려 두고, 확연히 뒤처진 후미를 위주로 공격해 온다. 무리를 대상으로 사냥하는 굶주린 짐승처럼 말이다.

“사형! 이대로는 피해가 너무 큽니다! 지금이라도 수를 내야 합니다!”

사제가 절박한 외침에 법계의 두 눈이 흔들렸다. 이대로는 피해가 크다고? 당연히 법계도 뼈저리게 잘 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버티라고 해라!”

“사형!”

“버텨야 한다지 않느냐!”

진형은 이제 못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이른바 쐐기 대형은 상대를 꿰뚫고 돌진할 때는 더없이 큰 힘을 발휘하지만, 돌진이 멈추는 순간 사방을 포위한 이들의 공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한마디로, 뒤가 없는 진형이다.

실패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막아서는 적들을 제치고 법정을 장일소에게 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세 마리의 뱀이 구름처럼 몰려온 쥐 떼에 둘러싸인 상황.

뱀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앞의 쥐가 죽는 사이에도 숱하게 몸뚱이를 물어뜯는 다른 쥐들을 모조리 떨쳐 낼 방법이 없었다.

뱀의 날카로운 이가 쥐를 물어뜯는 만큼, 쥐들의 이빨도 뱀의 꼬리를 잘근잘근 씹고 있다.

“뒤쪽이! 뒤쪽의 제자들이 무너진다니까요, 사형!”

“알고 있다지 않느냐!”

법계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처음 생각한 것과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지만…….

‘이젠 물러설 수 없다!’

뒤쪽에서 공격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여기서 물러선다면, 다름 아닌 법정이 위험해지고 만다.

수장끼리의 승부라는 상황에 집착하는 것은 정파뿐이다. 저 더러운 사파 놈들은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떼로 달려들어 법정을 죽이고 장일소를 구해 내려 할 것이다.

‘그건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다름없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를 압박하는 이들의 기운이 아까부터 선명히 느껴졌다.

특히나 처음부터 장일소를 호위하던 대주라는 놈들은 흘리는 기운부터가 결코 만만히 볼 자들이 아니었다.

만약 그런 이들이 둘만 저 전투에 합류해도 법정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터. 법계는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버텨라! 어떻게든 버텨 내라!”

“사형!”

“방장께서 곧 저 마두 놈을 쓰러뜨리실 것이다! 그럼 다 끝난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될 일이라지 않느냐!”

악에 받친 법계의 고함에 몇몇 이들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뒤쪽에서 제자들이 비명에 쓰러지고 있는데 싸울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니. 대체 누가 이런 지옥도를 펼쳤단 말인가.

전장을 살피는 법계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희생은 분명 크다. 하지만 그건 고작 희생일 뿐이다. 아직 승기가 꺾이지 않았다. 전력은 여전히 이쪽이 우세하다. 장일소가 쓰러지는 순간 모든 상황은 그들이 계획했던 대로 다시금 흐를 것이다.

“방장께서! 방장께서 반드시 해내실 것이다!”

그는 안다. 법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평생을 지켜봐 온 그는 절대 모를 수가 없다.

그는 믿었다. 믿고 있다.

법정은 반드시 장일소를 쓰러뜨리고 소림에 모든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물러설 수 없다…….

그 순간이었다.

“사, 사형!”

“더 버티라 하지 않았느냐! 내 말이 안 들리느냐?”

“그게 아닙니다, 사형! 저기! 저길 보십시오!”

“뭐?”

사제가 가리킨 곳을 향해 법계가 획 돌아보았다.

이윽고, 그리 크지 않은 눈이 금방이라도 찢길 것처럼 부릅뜨였다.

* * *

콰각!

손과 손이 얽혀 든다.

무시무시한 내력이 실린 법정의 손은 울부짖는 창룡(蒼龍)처럼 하나 남은 장일소의 손을 움켜잡으려 했다.

그러나 장일소는 미꾸라지라도 된 양 교묘하게 법정의 금나수(擒拿手)를 피해 냈다.

“이……!”

법정의 두 눈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장일소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흐음. 마음이 조급해 보이는데? 이런, 이런. 수도하는 이라면 조금 더 느긋해야지. 그렇지 않니?”

“닥쳐라!”

법정의 섬전 같은 삼 권이 장일소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쾌속하고 강렬한, 그렇기에 일말의 자비도 없는 권은 장일소의 머리를 터뜨려 버리겠다는 살기로만 가득했다.

파앗! 파앗! 파앗!

장일소는 고개를 틀며 법정이 날린 삼 권을 피해 냈다.

물론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보니 완벽한 회피는 아무리 그라도 힘들었다. 권력이 아슬아슬하게 스친 귀 윗부분이 갈라지며 피가 흘렀다.

법정은 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째서냐?’

이자의 상태는 명백히 위태롭다. 제 나름 선전했다고는 하나, 지금 이 승부에서 승기를 잡은 이가 누구인지는 너무도 빤하다.

숱한 싸움을 거쳐 온 저자 역시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런데 저자의 여유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미 생과 사에 통달하여 삶에 미련을 두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법정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장일소의 저 요괴 같은 눈이 번들거리는 것이. 그 두 눈에 지독한 욕망과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엉겨 있는 것이!

장일소는 누구보다 삶에 집착하는 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직도 저런 여유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그 끝이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법정은 결코 이자를 놓아주지도, 살아남게 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장일소 역시 이 사실을 알 터다. 그러니 궁지에 몰린 이의 발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사특한 권이나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건한 신체보다도, 도무지 속을 헤아리기 힘든 저 여유가 법정을 조금씩 초조하게 했다.

“패구우우우운!”

뻗으면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서 펼쳐진 백보신권.

본래의 위력을 완전히 포기한 대신, 그 속도만큼은 완벽하게 살려 낸 신권(神拳)이 푸르게 타오르는 창염(蒼炎)을 뚫고 장일소의 가슴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장일소가 입으로 피를 울컥 쏟으며 뒤로 밀려났다. 충격에 몸이 뒤로 젖혀진 채였다.

“오오오오오!”

한번 잡은 승기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법정이 밀려나는 장일소를 향해 다시 쇄도했다.

무너뜨리면 된다. 이자만 쓰러뜨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럼 마침내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잃었던 모든 광영을. 그가 온당히 손에 넣어야 했던 모든 영광을!

의심의 시선을 보내던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소림의 이름을 다시 한번 저 무림의 북두(北斗)에 걸 수 있을 것이다.

이자만! 이자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장일소오오오오오!”

타오른다. 푸른 불길이. 법정이 쏟아 내는 모든 것을 양분 삼아, 거칠게 타오르기만 했다. 그 모든 게 법정의 눈에는 한없이 찬란하게만 보였다.

우드득!

뻗어 나온 불꽃 형태의 강기가 법정의 어깨를 짓뭉개고, 내딛는 발목을 갈겼다. 하지만 법정의 두 눈은 오직 장일소, 그 불꽃에 휘감긴 장일소에게 꽂혀 있을 뿐이었다.

“노오오오오옴!”

법정의 주먹이 무섭게 뻗어 나갔다.

이미 무학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단순한 내지르기였다. 가공할 내력이 실려 있으되, 소림의 어떤 무리(武理)도 담지 못한 주먹질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순간.

터어어어어엉!

힘을 다한 듯 휘청거리던 장일소가 돌연 법정의 주먹을 움켜잡았다.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힘으로.

‘뭣?’

법정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윽고, 뒤로 한껏 젖혀져 있던 장일소의 고개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섬뜩한 기운이 등골을 내달렸다.

법정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마주한 장일소의 두 눈은 열기라고는 없이 차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풀 속에서 사냥감을 물색하고 숨소리를 죽이는 맹수의 눈처럼. 지금까지 탐욕으로 들끓던 요사스런 눈빛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만 같다.

“패…….”

“흐음.”

순간, 나긋한 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법정의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무슨…….’

법정을 투명하게 응시하던 장일소가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었단다.”

법정을 향해 말하고 있지만, 장일소의 시선은 법정을 넘어 다른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이곳에서 아직은 먼 어딘가.

법정은 저도 모르게 장일소가 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법정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어두운 밤의 평원, 사막 한가운데서나 몰아칠 법한 거대한 먼지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의도는 실로 명백하고, 또 확연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먼지구름 사이에서, 거대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법정의 단련된 안력은 이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간파했다.

“하오문……!”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하오문이 지금 이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으득.

법정이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뼈아픈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나빠졌다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설령 저들이 합류한다고 해도 우위는 여전히 그들에게…….

“또, 또 온다!”

그 순간 법정의 귓가에 믿을 수 없는 고함이 들려왔다.

‘또? 또라니?’

대체 그게 무슨……?

법정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하오문이 진격해 오는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그리고 믿지 못할 광경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이 깊은 밤에 지평선을 뚫고 거대한 태양의 형상이 솟구치고 있었다.

아니, 태양이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이 거대하게 수놓인 붉은 깃발이었다.

“태…… 태양?”

저 태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 문파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

‘남해태양궁!’

틀림없다. 저 깃발은 남해태양궁의 것이다.

천하에 관여하지 않던 새외오궁 중 하나인 남해태양궁이 지금 이 전장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있는가? 저 먼 곳에 있어야 할 저들이 어째서?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법정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꼈다.

그제야 한눈에 보였다. 엉망으로 망가진 진형과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도록 뒤섞여 버린 이들.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며 달려드는 하오문과 태양군의 군세들까지.

심지어 법정은 장일소에게 이끌려 앞으로 한껏 나와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만들어 낸 건 다름 아닌 법정 그 자신이었다. 날개가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불길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어느새 저 새파란 불이 그뿐 아니라 모두를 불태우고 있었다.

법정이 온전히 절망하기도 전에, 장일소의 입이 열렸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법정의 귀를 파고들었다.

“즐겁지 않니?”

법정이 돌아보았을 때, 장일소는 아까보다도 더 짙게 웃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불타는 마귀처럼.

“웃어야지.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응?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핫!”

웃음소리가 벼려진 칼처럼 법정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비틀린 불길은 기괴하게 타오르며 법정을 비롯한 모두를 휘감았다. 심지어 장일소 그 자신마저도 태우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광기와 욕망을 양분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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