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592화
1592화. 부처도 너를 버린 거란다. (2)
죽음이 딱히 멀리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법정 그도 나이가 적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설마 이런 식일 것이라고 상상한 적 있었겠는가?
지금 그 상상도 해 보지 못한 형태의 죽음이 냉혹하게 법정의 온몸에 엄습해 오고 있다.
‘나는⋯⋯.’
역류하는 진기가 전신을 갈기갈기 할퀴고 찢는 듯하다.
그러나 그 지독한 고통마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법정의 마음은 지옥 속에 있었다.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
모든 게 찬란해야 했다.
소림의 영광.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기에 더욱 손에 넣고 싶었다. 아무리 궁구하고 또 궁구해도 영원히 그의 이해 안으로 들어와 주지 않던 불법처럼, 꼭 손아귀에 쥐고 싶었다.
‘나는⋯⋯.’
헛되도다.
그가 살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말이다. 수없이 읊조렸다.
그런데 정작 무언가를 헛되이 여겨 본 적이 있던가?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던 그 말을 조금이라도 따르려 한 적이 있던가?
“쿨럭.”
뿌연 상념 위로 역류한 피가 쏟아진다. 삐쩍 마른 몸 안에 뭔 피가 이리도 많았을까. 마치 꾸역꾸역 속에 품고 있던 그의 욕심처럼.
“그렇게 억울해하지 말려무나.”
까드득.
장일소가 느릿하게 법정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내 손에 죽는 게 꼭 나쁜 결말은 아닐 거란다.”
“⋯⋯.”
“살아서 네가 감당해야 할 것에 비하면 말이지.”
법정이 실소를 흘렸다. 어쩌면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죽는다면 그는 그저 어리석은 자로 기록될 터.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감당키 힘든 비난과 오욕을 뜬 눈으로 모조리 버텨 내야 할 것이다.
그 억겁 같은 가시밭길을 사람의 몸으로 어이 걷겠는가?
허무하게 웃음을 흘린 법정은 어떻게든 반장을 지으려 애썼다.
그러나 손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힘이 다해 버린 것인지, 그게 아니면 부처가 그에게 반장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인지.
장일소의 뒤에선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아마 소림의 방장이 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저 학살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어리석게도 이 힘없는 어깨에 그만한 짐을 져 버렸으니까.
“헛⋯⋯되도다⋯⋯.”
법정의 고개가 점차 수그러든다.
그를 가만히 보던 장일소의 얼굴에 묘한 불쾌감이 스쳤다.
“이런, 이런⋯⋯. 이제 와 어울리지도 않는 흉내라니.”
장일소가 푸르게 물든 손을 들어 올렸다.
“돼지는 돼지처럼 죽어야지? 멱 따이는 소리라도 내며 말이다.”
장일소의 손이 막 휘둘러지려는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권력이 장일소를 저지했다. 그리고 처절한 고함이 이어졌다.
“방자아아아아아아앙!”
한쪽 팔이 있었던 곳이 이젠 텅 비어 버린 법계가 피를 줄줄 흩뿌리며 쇄도해 오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그가 남은 한 손으로 내뿜은 권이 연이어 장일소에게 박혔다. 장일소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날아드는 권을 몇 번이고 쳐 냈다.
“이⋯⋯!”
그 틈에 법계는 무릎 꿇은 법정을 둘러업고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 등을 향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던 장일소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의외로 천천히 손을 내렸다.
“려, 련주!”
법계를 상대하던 적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놈이 제 팔을 내어 줄 것이라고는⋯⋯.”
“흐음.”
장일소가 슬쩍 눈만 돌려 바짝 굳은 적호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 적호는 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이 잘린다고 해도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죄다. 방심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능은 방심보다 더 큰 죄이므로.
“놈을 당장⋯⋯!”
“어떠니?”
“⋯⋯예?”
적호가 고개를 들었다.
장일소의 시선은 이미 그를 떠난 후였다. 지옥과도 같은 전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
“꽤 근사한 광경이잖니?”
“⋯⋯련주님.”
“봐 두렴. 이런 광경은 어쩌면, 평생에 다시 보기 힘들 테니까.”
적호는 어안이 벙벙하여 장일소를 바라보다 다시 부복했다.
“노, 놈을 추격하겠습니다.”
장일소가 피식 웃었다.
“재미없기는⋯⋯. 뜻대로 하려무나. 나는 좀 더 감상해야겠구나.”
“예!”
적호가 이를 악물고 법계와 법정의 뒤를 쫓았다.
그런 적호를 무심하게 흘끗 본 장일소가 다시 피로 흠뻑 젖은 전장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이 어룽거리며 그의 옆얼굴에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하하하⋯⋯.”
힘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하하하핫!”
이내 그 웃음은 커다란 광소로 변해 갔다.
그의 그림자가 마치 비틀비틀 춤을 추듯 흔들렸다. 땅에 흐른 핏자국이 그의 긴 그림자에 걸려 한 줄기 눈물처럼 어우러졌다.
❀ ❀ ❀
“방장, 저를 잡으십시오! 놓아서는 안 됩니다.”
“나⋯를⋯⋯.”
“정신 차리십시오! 방장!”
법계는 더 들을 것도 없이 크게 소리치며 법정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리고 제 승포를 찢어 법정과 자신을 단단히 엮었다.
“방장께서는 사셔야 합니다! 방장이 아니라면 이 뒤의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패배는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울부짖고, 피눈물을 흘린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 이미 이 전장의 운명은 장일소의 손에 들어가 버린 뒤다.
패배에 울고, 목을 내놓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패배를 수습하고 저들을 막을 수 있는 건 법정 말고는 없다. 적어도 법계는 그리 믿었다.
“나⋯⋯는⋯⋯ 살아⋯서는⋯⋯.”
“사형!”
법계의 입에서 방장이 아닌 다른 호칭이 터져 나온다.
오랜 세월 잊었던, 그럼에도 잊지 않았던.
“정신 차리십시오, 사형! 사형은 소림의 방장입니다! 사형의 목숨은 사형 혼자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법계가 할 수 있다면, 직접 이 패전의 멍에를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계는 할 수 없다. 의지가 있다 해도 능력이 모자라다.
법정이 이 뼈아픈 대패를 수습하고, 저 간악한 사파들의 손에서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만이 가능하다.
그러니 살려내야 한다. 모든 것을 걸더라도.
“반드시 살아서 나갈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니 제 목을 꽉 붙들고 놓치지 마십시오!”
법계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후회도, 자학도 나중이다.
설령 뒤늦게 후회로 영혼이 불탄다고 하더라도, 지금 미뤄 둔 자학이 그를 영원한 무간지옥에 가둔다고 해도 말이다.
“물러서라!”
콰아아아아아!
그의 하나 남은 팔에서 가공할 권력이 뿜어졌다.
눈에 띄는 건 잘린 팔이지만, 진짜 중한 상처는 그의 옆구리를 길게 베고 간 도흔(刀痕). 하지만 법계는 내장이 잘린 상처를 입고도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놈이다!”
“소림 방장이다!”
그들을 본 적도들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마치 장일소에게 이끌렸던 정파의 무인들처럼, 욕망으로 그득 찬 사파의 무인들 역시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눈이 뒤집혔다.
소림의 방장을 잡는 영광을 누가 포기할 수 있겠는가?
“잡아라!”
호가명이 짜낸 진형이 단번에 움직인다. 적들이 마치 산사태에 쓸려 내려오는 토사처럼 법계에게로 덮쳐들었다. 법계는 이를 악물며 주먹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아—미—타—불—!”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진의(眞意)에 걸맞게 펼쳐진 소림의 권이 몰려드는 이들을 어마어마한 힘으로 밀어 내었다.
우득! 우드득!
권에 실리는 반동을 이기지 못한 법계가 이를 악물었다. 팔목이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나 그는 제 주먹이 으스러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권을 더 강하게 내질렀다.
“오오오오!”
혼을 깎아 내는 듯한 기합이 터져 나온다. 홀로 열어 내기에는 너무도 험난한 길이다. 밀어내고 또 밀어내도 욕망에 홀려 버린 이들은 연이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망설일 여유조차 없다. 법계는 연신 적들을 향해 제 몸을 던졌다.
콰앙!
주먹을 뻗어 적을 날리고.
콰앙!
다리를 휘두르며 적을 쓸어 낸다.
수라(輸羅)들을 물리치며 길을 여는 인왕(仁王)이 이러할까?
마귀처럼 덮치고 드는 이들을 물리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서걱!
가슴이 갈라질 때, 법계의 권이 적을 멸한다.
으득!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는 순간, 그의 권이 악(惡)을 참한다.
의식은 점차 흐릿해지고, 몸뚱이에선 힘이 빠져나간다.
그럼에도 법계는 꾸역꾸역 그저 나아간다. 그의 몸보다 더 무거운 것을 그 등에 짊어지고.
‘세존(世尊)이여.’
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권력이 그의 머리에 격중했다.
그 충격에 머리뼈가 으스러지고 눈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알겠나이다.’
그저 궁구함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삶은 고해이되, 깨달음은 그 속에 있나니.
고통을 이겨 내고 진정 원하는 바를 갈구하지 않는 이는 영원히 정토(淨土)에 들 수 없는 법.
법계가 진정으로 원하던 깨달음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아아아!”
하지만 법계는 제게로 밀려오는 깨달음을 단호히 밀쳤다.
영혼은 이곳 너머의 어딘가를 넘보려 하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히 이 더러운 땅(穢土) 위에 머물렀다.
‘깨닫지 않아도 좋다.’
평생을 갈구해 온 깨달음이다. 어쩌면 감히 바라지도 못할 열반(涅槃)의 경지일지 모른다. 수행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바라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 법계는 다시 없을 기회를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그 대신 주먹을 휘둘렀다. 또 하나의 살생을 하며 그 손에 업을 쌓는다. 수백 번의 삶으로도 씻어 낼 수 없는 죄악, 영원한 고통 속에서 그를 헤매게 할 업보를.
서걱!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가르고 지나간다. 저 멀리서 날아든 도기였다. 뿌연 의식 속에서도 그 도기의 주인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윽고 법계는 법정과 함께 땅에 나뒹굴었다.
‘세존이여⋯⋯.’
알고 있다.
부처는 그저 지켜볼 뿐, 그들을 지켜 주지 않는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직접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에는 야속했다.
‘내 목숨을 구하지 마시옵고⋯⋯.’
법계가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어 돌렸다. 그가 앞으로 엎어진다면, 이들의 칼날이 법정에게로 쏟아질 터.
칼날을 받아 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그의 몸뚱이다.
‘다만 방장을 구하소서.’
새파란 칼날이 떨어진다.
부처는 끝끝내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묵묵히 검은 저 하늘처럼 그저 무심하기만 하다.
‘세존⋯⋯.’
하지만 그에게는 부처가 아니어도 손을 내밀 이들이 있었다.
“장로님!”
콰앙!
어디선가 권력이 쏟아져 오며, 무자비하게 칼을 내리치던 이들이 휩쓸려 날아갔다.
“장로님을 지켜라!”
“방장을 구해 내라!”
소림(小林). 설령 안에 품은 뜻이 다를지언정, 그저 묵묵히 따라온 제자들. 그 소림의 무승들이 어느새 달려와 있었다.
“너⋯희⋯⋯.”
“가십시오, 장로님!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방장을 살려내셔야 합니다!”
이들이라면, 법계에게로 적의 시선이 쏠린 사이에 어떻게든 몸을 빼내 달아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제 목숨을 지키는 대신 이곳으로 왔다.
“가십시오!”
누군가가 법계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피투성이가 된 법계는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일으키고 다시 발을 내디뎠다.
이곳으로 달려와 준 모두가 죽을 것이다. 그 운명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들은 법계의 뒤를 지키고 섰다.
그렇다면 법계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아⋯미타⋯⋯.”
법계의 입에서 수없이 외어 온 불호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그리 숱하게 외고도 단 한 번도 닿지 못한 이의 이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욀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이건 이들을 위한 진언이자 누군가를 향한 원망. 동시에 더없이 간절한 바람이었다.
앞으로 나아간다. 등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무게를 온몸으로 떠받치고 버티며.
“여래의⋯⋯ 빛이 널리 비추어(如來光普照)⋯⋯. 온갖⋯⋯ 어둠을 멸⋯하시니(滅除衆暗冥)⋯⋯.”
불광보조(佛光普照). 화엄경(華嚴經)의 한 구절을 홀린 듯 웅얼대는 법계의 육신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금광이 흘러나왔다.
실로 위태롭고도 장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