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598화
1598화. 웃음도 안 나오는군. (3)
구역감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치미는 걸 그저 꾹 누르며 청명은 고집스레 다시 앞을 보았다.
“아⋯미⋯타불⋯⋯.”
혜연은 연신 치미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연신 떨리는 목소리로 불호를 외었다.
모두 하나하나 청명의 귀를 파고들었다.
심지어 늘 크게 동요하지 않는 유이설이 검을 콱 움켜쥐는 소리까지도.
이 참상은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청명아⋯⋯.”
현종이 한숨을 내쉬며 청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무언가 말을 더 꺼내려다 결국 고개만 젓고 말았다.
그조차 이토록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무슨 말을 더 얹겠는가.
“공기가 차구나.”
현종은 결국 조금 뜬구름 잡는 말을 했다.
청명이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밝아 오기 전이다. 새벽 공기가 싸늘하게 얼굴을 스친다.
몸이 떨릴 정도로.
그 순간 유이설이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스르릉.
휘두를 곳을 잃는 바람에 검집 안에 잠들어 있던 검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뽑혀 나왔다.
그녀는 가만히 무릎을 꿇고 검을 바닥에 푹 꽂았다.
파앗.
적의 목을 베어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매서운 소리를 내며, 검이 땅을 파내었다. 한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검날을 움켜잡은 채 묵묵히 그렇게 흙을 팠다.
“⋯⋯.”
청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삭히지 못할 분노와 슬픔으로 불호만 외던 혜연 역시 비척비척 앞으로 걸어 나가 무릎을 꿇고 그 손으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어느새 다가온 이송백도 한마디 말도 없이 그들의 곁으로 가 검으로 땅을 팠다.
제각기 복색이 다르나, 다르지 않은 손으로 죽어 간 이들을 위한 무덤을 만들고 있다.
한때는 영원히 한곳을 보고 서지 못할 거라 여겼던 이들이 말이다.
작게 실소를 흘린 청명은 다시 하늘을 보았다. 아직 세상의 서글픔이 저 위까지 닿진 않은 듯했다.
시리다. 저들에겐 더욱 그럴 테지.
청명이 짧은 숨을 토해 내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아⋯⋯.”
등 뒤에서 희미하게 신음이 들려왔다. 찰나 싸늘해진 청명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아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어느새 반쯤 기다시피 다가온 법정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순간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실로 다양한 감정들이 실려 있었다. 원독, 증오, 동정, 혹은 어떠한 눈길로 그를 봐야 할지 종잡지 못한 복잡한 심경까지.
그 속에서 법정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반장을 취하려 했다.
“아⋯미⋯⋯.”
청명의 이가 바드득 갈렸다.
“⋯⋯닥쳐.”
“⋯⋯타⋯⋯.”
“아가리 닥쳐!”
주름진 손은 파들파들 떨리고, 안색은 허옇게 질려 있다. 몸이 아직 말을 제대로 듣질 않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앞을 더듬거리는 꼴이다.
금빛으로 빛나던 승포는 찢기고 피에 젖으며 넝마가 다 되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육체는 상처투성이다. 썩어 버린 고목처럼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위풍당당했던 소림 방장의 모습이라고는 이제 조금도 찾을 수 없이 초라하다.
경건히 부처의 뜻을 따르는 불자의 모습도, 소림을 넘어 구파일방이라는 강대한 세력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모습도 없다.
여기에 있는 건 그저 자신의 죄악에 신음하는, 하나의 초라한 인간일 뿐.
그리고 청명에게는 저 모습조차⋯⋯. 그래, 저 모습조차 그저 가증스러웠다.
청명이 법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청명아.”
현종이 어깨를 붙들며 황급히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언제나 현종의 말을 존중해 온 청명도 이번만은 그 손을 밀어내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벅.
저벅.
그 차디찬 발이 똑바로 내디뎌질 때마다, 법정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윽고 법정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청명은 빙굴보다도 더 시린 얼굴로 차갑게 법정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누구도 청명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듯한 저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덥석.
청명이 법정의 멱살을 콱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단번에 획 끌어당겨 법정의 얼굴을 저 지독한 참상 쪽으로 내밀었다.
“봐.”
법정의 시선이 강제로 고정되었다.
“눈 감지 말고, 봐.”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에, 법정은 거의 감겨 있던 두 눈을 힘겹게 밀어 올렸다. 파르르 떨리며 열린 눈은 이윽고 도로 질끈 감겼다.
“아, 아미⋯⋯. 아미⋯타불⋯⋯.”
법정의 두 눈에서 차마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곳에 부처가 있나?”
서늘한 목소리가 법정의 귀를 파고든다.
“부처를 찾지 마. 이건 네가 한 일이다. 부처가 아닌 네가!”
법정의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멱살을 움켜쥔 청명의 손은 그에게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봐.”
청명이 강제로 법정의 머리를 또 다른 방향으로 들이밀었다.
“봐!”
법정의 두 눈 가득 들어온다. 그가 결코 벗어날 수 없을, 죄악이.
억겁의 고행을 하더라도 결코 다 갚아 낼 수 없는 깊고 깊은 업. 그 무게가 금방이라도 법정을 짓눌러 터뜨려 버릴 것만 같았다.
법정이 축 늘어졌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 버리기라도 한 듯.
그 모습을 보며 청명은 제 입술을 짓깨물었다.
“이게 네가 얻으려던 거냐?”
왜 반복하는가?
“이게?”
그토록 뼈아픈 결과를 직면해 놓고, 왜 같은 짓을 반복하는가? 그깟 이름이 뭐라고, 그깟 명성이 뭐라고.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고작! 고작 이런 게?”
우드득.
청명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법정의 옷자락이 끝내 뜯겨 나간다.
“말을 해 보라고! 뭐라도!”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이럴 거라면 해냈어야지. 차라리 원하는 걸 모조리 손에 넣고, 그러지 못했던 이들을 비웃었어야지.
그랬다면, 그랬다면 차라리⋯⋯!
그 순간, 누군가가 격정에 휩싸인 청명의 손을 움켜잡았다.
청명은 자신을 붙든 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로 얼굴을 흠뻑 적신 혜연이 법정의 멱살을 틀어쥔 청명의 팔을 가만히 잡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어떤 설득의 말도 없이.
“⋯⋯.”
슬픔으로 가득 찬 눈망울을 마주하자 청명은 그만 맥이 탁 풀렸다. 법정의 멱살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
법정이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늘어진 법정을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던 청명은 몸을 획 돌렸다.
여기에 법정은 없다. 남은 거라고는 그저 껍데기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죄악과 자책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이 순간 느끼는 게 동정인지, 동질감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혐오인지 청명은 스스로도 알기 어려웠다. 알지 못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도 있었을 거다.”
법정은 흡사 듣지 못한 사람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명예를 얻지 않아도, 찬란히 빛나는 무언가를 손에 넣지 않아도, 그를 그대로 인정해 줄 그런 이가.
때마침 밀려온 검은 구름에 달이 가려졌다. 세상이 짙은 어둠에 잠겨 버린 것만 같다. 당최 풀어 낼 길이 없이 답답한 그의 속내처럼.
닳은 숨을 내쉬고 청명이 발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어으⋯⋯.”
뒤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어어⋯⋯.”
비틀어 짜내는 것이 아니다. 차오를 만큼 차올라 흘러넘치는 오열이다. 막아 내려 안간힘을 써도 어찌할 수 없어서 새어 나오는.
“어어⋯⋯. 어⋯⋯. 어흐으⋯⋯.”
청명은 이 흐느낌이 어쩐지 익숙했다. 낯선 듯 닮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법정은 비척대며 땅을 기고 있었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움직임 끝에 법정의 손은 마침내 어딘가에 닿았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버린 시신의 창백한 얼굴.
“⋯⋯계⋯⋯.”
혜연이 직접 둘러업고 옮긴 법계의 시신이었다.
이젠 어떠한 표정도 지어 주지 못할 얼굴을, 법정은 떨리는 손길로 더듬었다.
“법⋯계. 법계⋯⋯.”
법정의 등이 들썩였다. 한없이 초라하고 서글픈 움직임이었다.
법정은 아마 제가 저지른 일을 보고 아마 알아 버렸을 것이다.
그의 깊은 죄악을. 하지만 그걸 다 보고도 마지막까지 그를 살리려 몸부림쳤던 이를.
청명의 입에서 허탈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왜 항상⋯⋯.’
사람이란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가.
왜 이미 가진 것의 의미는 알지 못하고, 얻지 않아도 될 것을 거머쥐려 안간힘을 쓰는가?
왜 이토록 어리석은가.
“어흐⋯⋯. 어흐흐흐. 아⋯⋯. 아아아아아아아!”
오열이 처절하게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 법계! 계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법정을 증오하고 경멸하는 이도, 심장을 꺼내 쥐어 터트리는 듯한 그 울음 앞에선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동정의 여지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그 슬픔만은 모두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므로.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둑한 눈길로 그런 법정을 지켜보던 청명이 고개를 돌렸다.
산 자를 위해 낭비할 동정 같은 건 없다.
“청명아.”
현종과 시선을 마주한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장문인⋯⋯. 도제를.”
“그래.”
현종 역시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꾸나.”
죽은 이를 위해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도제든 불공이든, 결국은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이를 알면서도 사람은 그 부질없는 짓에 매달린다. 이 간절한 기원이, 이 위로가 조금이라도 닿길 바라면서.
차디찬 대지에 누운 시신들을 향해 청명이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그때였다.
“사질. 태상장문인.”
조용히 주위를 살피고 온 유이설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사고?”
“⋯⋯많아.”
청명이 의문 어린 시선으로 보자 유이설이 나직이 덧붙였다.
“적들의 시신이.”
현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장에 적의 시신이 많은 거야 당연한 일일진대, 그런 말을 왜 저리 심각하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청명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유이설의 말에 담긴 의미를 즉각 알아챈 것이다.
“⋯⋯많다고?”
그건 이곳에서 죽어 간 구파가 생각보다 더 강했다는 의미.
그게 아니라면⋯⋯.
‘적들이 생각 이상으로 약했다.’
가능한가? 그런 게?
순간, 청명이 눈을 부릅뜨며 한 곳을 향해 획 시선을 돌렸다.
“설마⋯⋯!”
구름이 흐르며 다시 달이 드러났다. 그 빛 아래, 청명의 두 눈이 휘청 뒤흔들렸다.
❀ ❀ ❀
“추적은 없습니다, 련주님. 놈들이 시신을 매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흐음, 그래?”
장일소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이런, 이런. 다정하기도 하지. 고작 고깃덩어리일 뿐인 것에 그리도 애를 써 주다니. 우리도 저런 건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가명아?”
뭐라 답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을 물음이었다. 호가명은 당연히도 침묵했다.
딱히 대답을 들으려 던진 질문은 아닌지 장일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말이다.”
“⋯⋯예?”
“전쟁이 끝났다고 여기는 거라면, 너무 안일한 것 같지 않니?”
장일소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린다.
“전쟁은 상처를 내는 게 아니란다. 상처를 후벼 파는 게 전쟁이지.”
그의 시선이 동쪽으로 향했다. 청명이 바라본 곳과 같은 방향이었다.
❀ ❀ ❀
“이곳이⋯⋯.”
온기라고는 없는 싸늘한 눈빛이 눈앞에 솟은 산을 응시한다.
천하에 이름 높은 오악 중에서도 중악(中嶽)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사실 수려한 경관이나 산세보다 다른 것으로 훨씬 더 유명했다.
바로 우뚝 솟은 소실봉의 북쪽에 있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로 말이다.
천하의 가장 이름 높은 사찰 ‘소림’이 위치한 숭산.
삐쩍 마른 손가락이 머리에 씌워져 있던 피풍의를 벗었다. 갈색 피풍의가 털썩 땅에 떨어지자 온통 붉은 의복이 훤히 드러났다.
중앙에 있는 이는 의복 밖으로 드러난 몸까지도 붉은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자 지옥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림이로군.”
“교주님.”
“그래. 알고 있다. 련주의 잔소리를 면하려면 서둘러야겠지.”
사내의 두 눈에서 형형한 혈광이 흘러나왔다.
“고작 잔당을 정리하는 임무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손을 댄 이상 확실히 해야겠지.”
소실봉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그들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자. 오늘 소림을 지운다.”
혈교가 소림을 향해 피비린내 나는 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