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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14화


1614화. 그러니 허물 수밖에요. (4)

“하여튼…….”

조걸은 계속 구시렁거리며 발을 재촉했다. 다들 뭐가 이리 복잡해진 건지. 세상일이라는 게 복잡하다면 복잡하지만, 또 단순하다면 단순한 건데.

조걸도 알고 있다. 그 모든 게 사실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걸. 하지만 요즘은 좋아하던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늘 고리타분하게 여겨 왔던 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아 답답했다.

“나만 애새끼지, 나만.”

투덜거린 조걸이 이내 슬그머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맞던가?”

아마 맞는 것 같은데?

“청명아. 청명이 안에 있냐?”

묻기는 했으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청명이 놈을 만나야 한다. 해 줘야 할 말도 있고 듣고 싶은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을 박차고 성큼 들어선 조걸이 본 건 청명이 아닌, 또 다른 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주 낯이 익은.

“왔냐?”

“……엑?”

조걸이 눈을 끔뻑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을 잘못 찾아…….”

“여기 맞다.”

“아니, 그러니까 사숙을 찾아온 게 아니라서요.”

“여기가 청명이 방 맞다고.”

“아?”

나가려고 문밖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었던 조걸이 도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얼굴에 의문이 어려 있다.

“그럼 사숙은 왜 여기 계십니까?”

“너랑 같은 이유겠지?”

“아……. 청명이를 만나러?”

지금 보니 이곳에 있는 건 백천뿐만이 아니었다. 백천 옆의 침상에 골골 드러누운 가느다란 놈은 딱 봐도 임소병이었고, 그 앞에서 여기저기 기웃대는 놈은 분명 설소백이다.

청명이 놈을 만나러 왔는데 방에 청명이는 없고 다른 놈들만 득실거린다.

“일단 들어와라.”

“……아니, 청명이가 없는데요.”

“쏘다녀 봐야 어차피 그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기다리면 오겠지. 다들 그런 마음으로 여기 있는 거고.”

부인할 수 없었던 조걸이 희미하게 앓는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닫고 대충 임소병의 옆에 걸터앉자 임소병이 신경질을 냈다.

“아, 안 그래도 좁은데!”

조걸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인간은 자신이 천우맹 군사라는 자각은 있는 걸까? 이 중요한 시기에 맹주님은 안 뵙고 여기에 와서 죽치고 있는다고?

하지만 뭐가 어쨌든 결국 다들 같은 마음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든든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조걸이 옅은 미소를 흘렸다. 흘렸는데…….

“…….”

“…….”

“큼.”

어째 방 안 분위기가 지독하게 어색했다. 그제야 조걸은 새삼 깨달았다.

‘이거 조합이 뭔가 이상하다.’

차라리 백천과 둘이서만 있다면 뭔가 터놓고 대화를 해 보겠는데 다른 이들이 있어서 조금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과 말을 섞자니 이렇다 할 화제가 없다.

그러니 다들 입도 안 열고 안 그런 척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런 걸 지독하게 못 견디는 조걸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문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거의 삼도천에서 조상님을 만난 기분으로 조걸은 얼른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야! 왜 이제…….”

“…….”

“……오십니까. 사형.”

더 무거운 정적이 고였다.

활짝 열린 문 앞에는 윤종이 방 안에 있던 이들보다 세 배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걸과 윤종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서로 그리 원만한 대화 끝에 헤어진 게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그, 청…명이 만나러 오신 거죠?”

“그렇……기는 한데.”

“그럼 일단 뭐, 들어오시겠어요? 다들 같은 처지 같은데.”

“그래…….”

윤종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힘겹게 떼어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 공기는 한층 더 어색해졌다.

조걸의 옆이 아닌 반대편 침상 모퉁이에 윤종이 걸터앉았다. 그러자 임소병을 사이에 두고 조걸과 윤종이 미묘하게 대치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 청명이는?”

“오겠……죠?”

“그래.”

윤종이 하릴없이 벽을 바라본다. 누군가가 내뱉는 숨소리만이 작은 방을 하염없이 규칙적으로 떠돌았다.

결국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한 조걸이 미친 사람처럼 발작하고 말았다.

“아악! 진짜! 이 새끼는 왜 안 오는 거야! 이렇게 다들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것 자체를 모르겠지.”

“사숙은 왜 그렇게 태평합니까?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요! 옛날이었으면 제일 먼저 깠을 거면서.”

“걸아.”

“예?”

“예전에도 내가 너보다 먼저 까지는 않았다.”

“거짓말!”

반사적으로 ‘사숙이 먼저 깐 거 맞잖습니까, 사형!’ 하고 외치기 위해 고개를 돌렸던 조걸은 윤종과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했다. 고개가 다시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내내 누워만 있던 임소병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였다.

“할 일이 있을 겁니다. 해놓은 일이 있어 수습해야 할 테니까. 뭐 그래도 결국 오긴 올 겁니다. 저들에게도 시간은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수습해야 할 일이면 사고를 치지 말지!”

“그 말도 맞지요.”

임소병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싸울 수는 있는데, 괜히 분란만 일으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사파 놈이 청명이를 까네?”

“……하나만 합시다, 도장.”

임소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침묵을 지키던 백천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까, 녹림왕.”

임소병이 웃으며 답했다.

“말은 맞지요, 말은. 항상 그렇듯이 말이지요.”

“……흠.”

“사실 뭐, 천우맹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제 문파가 제일 큰 공을 세웠으면 좋겠다, 남의 옆에서 조연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는 심정은 다 동일하게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로 인해 문제가 벌어진 적은…….”

“그건 장일소가 그 부분을 물어뜯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소병이 부채로 제 손바닥을 가볍게 툭툭 때렸다.

“세상에서 제일 변덕스러운 게 사람의 마음이라,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전술을 짜고 전략을 논해도 말이죠.”

백천이 동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청명이가 이 안건을 꺼낸 것도 이해가 갔다. 그 처참한 지옥도에서 청명이 놈이라면 더 많은 것을 내다보고 느꼈을 테니까.

“그런데요.”

그때, 조걸이 끼어들어 말했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반쯤만 가서 그러는데, 청명이 말대로 하면 확연히 좋아지긴 하는 겁니까?”

임소병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쿠. 그걸 먼저 설명해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조걸 도장이 계시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군요?”

“내,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그래, 소, 소백이! 소백이가 모를…….”

“궁주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야!”

“……그거도 도사가 할 말버릇은 아닙니다, 사형.”

조걸이 시무룩해졌다. 맨날 나만 문제지, 나만.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뭐, 지휘권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편제를 다시 짠다는 걸로 이해하시면 더 쉬울 겁니다.”

“예? 편제요?”

“당, 그리고 각. 어때요? 익숙한 형태죠?”

그곳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문주들이 이 사안에 동의한다면 천우맹은 당과 각을 신설하고 그 안에 각 문파의 문도들을 섞어 배치할 겁니다. 하나의 당 안에 화산과 당가, 그리고 녹림과 빙궁, 심지어 종남의 문도들까지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종남은 뺍시다.”

“…….”

“진심으로.”

이 말을 조걸이 했다면 임소병은 웃고 넘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임소병이 웃지 못한 건, 이 말을 한 이가 백천이기 때문이었다.

“……노력해 보죠.”

“감사합니다.”

임소병이 한숨과 함께 입을 다시 열었다.

“쉽게 말하자면 청명 도장은 한시적으로나마 천우맹을 정말 하나의 문파로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새로운 편제로 인원을 분할하고 거기에 다시 당주와 각주를 임명하는 식으로.”

“그럼 기존 문주님들은요?”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받겠죠. 당주가 될 수도 있고, 각주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부당주 같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

“중요한 건, 당주가 된 이라도 다른 당의 당원에는 명을 내릴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죠.”

조걸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니까 그런 걸 하면 좋아지는 건 맞냐고요.”

“……도장에게 설명해서 이해시키자면 끝이 없으니 그건 넘어가지요.”

“바보 취급하지 마시고요.”

“바보 취급하는 게 아니라 이해력을 고려하는 겁니다.”

“같은 말이잖아!”

“오? 이건 이해하는군요. 다시 봤습니다.”

이 새끼가? 조걸이 슬그머니 검으로 손을 뻗자 백천이 그런 그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가만히 좀 있어라! 정신 사납다.”

“예……. 이번에도 제가 잘못한 거죠.”

“잘 아는구나.”

조걸은 서러웠다. 그 순간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윤종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핵심은 결국 문주들께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겠군요.”

“맞습니다.”

“전례조차 없는 일인데…….”

“글쎄요. 전례는 의외로 있습니다.”

의외의 말에 모두가 눈을 홉떴다.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이건 우리 쪽이 좀 더 익숙하게 아는 형태죠. 사파가 정말 강해지거나 마교 놈들이 미쳐 날뛰어서 더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체제로는 대응이 어려울 때, 정파 놈들은 한 번씩 이런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무림맹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무림맹…….”

백천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뭐, 물론 그때의 편제는 지금 청명 도장이 말하는 것에 비하면 반쪽짜리도 안 되지만, 어쨌든 비슷한 형태가 이뤄진 적이 있습니다.”

“그럼 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니 문제겠지요?”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반쪽짜리 체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까마득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가만 듣던 백천이 임소병을 빤히 보았다.

“녹림왕께서는 안 될 거라 여기시는군요.”

“예.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임소병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 저야 녹림처럼 느슨한 세상에 살다 온 인간이니 아무래도 좋지요.”

그의 시선이 사뭇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백천 도장. 도장께서는 조걸 도장이 종남의 명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해도 그들을 원망치 않고 후회도 안 하실 수 있습니까?”

백천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지휘권을 넘긴다는 건 생사여탈권을 준다는 겁니다. 지휘권자가 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서로가 무능하지 않고 내부에서 서로를 위한다는 신뢰 관계가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천우맹에 정말 그 정도의 신뢰가 있습니까?”

“저, 저는 있……!”

조걸이 발끈해 나서려 하자, 임소병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 결국 ‘내가 믿는 사람의 밑에서는’이라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신뢰라는 건 사실 상대의 능력만을 보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나를 지휘할 사람을 가린다면 결국 이 새로운 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겁니다.”

“끄응.”

안 그래도 윤종과 비슷한 말을 나누었던 조걸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내었다. 윤종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결국은 어렵겠군요. 문주님들께서도 이 모든 걸 생각하고 계실 테니까.”

“그렇죠. 다만…….”

“다만?”

“아닙니다.”

말끝을 흐린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변수? 그런 건 없다. 하지만 굳이 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쥔 이가 있다면…….

‘하지만 될 리가 없다.’

이쪽도 저쪽도 그 길은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넘기에는 너무 넓은 강이지 않은가. 이들이 쌓아 온 모든 것이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옳게 걸어온 모든 길이.

‘안타깝군.’

창밖을 내다보는 임소병의 눈빛이 조금 아릿했다. 조금 전 조용히 찾아왔던 청명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다.

* * *

“후우.”

청명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은 발걸음이다. 하지만 와야 했다.

이젠 청명도 알기 때문이다. 옳은 길을 가리키며 내가 맞다고 악을 쓰고 드러눕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옳다고 믿는 길을 얼마나 관철해 낼 수 있느냐다. 나를 따라오라고 소리 지르고 겁박하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이야기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러니…….

닫힌 문을 심란한 얼굴로 보던 청명이 결국 문을 두드렸다. 금세 답이 돌아왔다.

“열려 있네.”

끼이이익.

닫힌 문이 열렸다. 방 안에 있던 이가 청명을 보며 웃었다. 희미하지만 명백한 조소였다.

“뜻밖이로군. 진짜 나를 찾아올 줄이야.”

“못 올 곳이라도 왔나요?”

“그건 아니지. 하지만 아주 힘든 길이었겠지. 그렇지 않나?”

“글쎄요. 그렇긴 한데, 뭐…… 막상 얼굴을 보니 잘 왔다 싶네요.”

“어째서인가?”

“깨달았거든요. 불편한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

“어쩌면 나보다 그쪽이 더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리 생각하나?”

“아닌가요?”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를 겨눈 것처럼 잠시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하지만 이내 방 안에 있던 이가 먼저 피식 웃어 버렸다. 지금 그는 딱히 날을 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들어오게. 안 그래도 한 번쯤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니까.”

대종남파의 장문인, 천하검(天下劍) 종리곡(鍾離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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