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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38화


1638화. 짐승도 고마움은 압니다. (3)

찰박.

좁은 뒷골목 바닥에 고인 오수(汚水)가 무심한 발길에 이지러졌다.

장정 둘이 어깨를 맞대고야 겨우 걸을 수 있을 법한 좁은 골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공간이지만, 이곳은 무언가 달랐다.

골목의 좌우를 차지한 가게마다 내건 홍등 불빛이 눈을 찌르고, 어디서 풍겨 오는지 모를 매캐한 향이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했다.

그뿐이랴. 곳곳에서 연신 들려오는 높은 웃음소리와 악에 받친 고함이 신경을 긁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음습함과 악의까지 느껴지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찝찝했다.

말 그대로 환락의 거리다. 술, 여자, 도박, 그리고 폭력까지.

평범한 삶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찾아드는 곳. 그래서 어떤 곳보다 위험하고, 어떤 곳보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이 골목은 여느 날처럼 농밀한 붉은색 빛으로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저벅.

그리고 그 골목에 한 사람이 들어섰다.

술에 절어 널브러져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좁디좁은 골목이라지만 이 열기에 취해 불나방처럼 찾아드는 이들이 어디 적겠는가? 새로운 얼굴이 찾아오는 것은 딱히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입구에 선 이는 확실히 다른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단, 그의 복색이 이곳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들이 골목으로 들어선 이의 옷을 뚫어지게 보았다.

학창의다. 학자와 문관, 소위 유학(儒學)을 받든다는 이들이 선호하는 의복.

커다란 대로에서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저 의복이 이 골목에서만큼은 세상 특별한 옷이 된다.

소위 ‘유생(儒生)’이라 불리는 이들이 가장 꺼리는 게 바로 인간의 모든 욕망이 득실대는 이런 암굴(暗窟)이지 않은가.

풀려 있던 눈들에 어느새 날카로운 빛이 어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다른 이를 경계하고 꺼린다. 이질적인 복색의 등장은 혼란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이곳의 평화를 깨기에 충분했다.

여기저기서 적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만일 좁은 골목 입구에 선 이가 평범한 유생이었다면 이 쏟아지는 적의를 감당하지 못하여 몸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찰박.

하지만 입구에 선 이는 물러나기는커녕 되레 걸어 들어왔다. 곳곳에 고인 더러운 오수가 그 무심한 발길에 튀어 유생의 발목을 더럽혔다.

위협적인 시선이 계속 따라왔지만, 유생은 아예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처럼 걸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눈빛이 제겐 그저 무의미하다는 것처럼.

골목을 지키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다시 유심히 보았다. 그제야 학창의가 아닌 다른 세세한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유생이 입은 질 좋은 학창의가 그 가치에 걸맞지 않게 지저분하다는 점이었다.

남루하다는 등의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 남루하다는 건 의복이 가난과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낡고 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유생의 학창의는 더러울지언정 낡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차라리 가까운 시기에 큰일을 겪어 옷매무새를 돌볼 여지가 없었다는 추측이 더 적절하리라.

한마디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몰골이었다.

그러나 시선을 들어 유생의 얼굴을 본 이들은 더 이상 복색에 신경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평범했다. ‘젊다’라는 말이 어울릴 얼굴이지만, 대단히 특별할 건 없었다. 길을 가다 마주친다면 잠시 후엔 가물가물해질 것처럼, 한둘쯤 있을 얼굴.

하지만 표정과 눈빛이 평범하지 않았다.

무표정하다고 해야 할까, 무감정하다고 해야 할까.

차갑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유생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감정의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과묵한 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가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린 듯했다.

눈빛은 또 어떤가. 흐리고 불투명하다가도, 독기 어린 안광이 불현듯 스쳤다. 그럴 때면 도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유생이 이 공간의 짙은 음울함과 한 몸이라도 된 듯 어우러졌다.

저벅.

유생은 쉬지 않고 골목을 지났다.

지친 몸이 한 번씩 휘청였지만, 마치 이 길을 걷는 것이 그에게 다시없는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결코 멈추는 일이 없었다.

“어이.”

그런 그를 지켜보던 이들 중 하나가 섬뜩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을 붙였다.

“여긴 뭐 하러 왔어? 여긴 너 같은 애송이가 함부로 들락거릴 곳이 아니다.”

“…….”

유생은 자신을 위협해 오는 거한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다. 이를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 거한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본디 미래를 가질 수 없는 이들일수록 자존심만은 놓을 수 없는 법 아니던가.

“이 새끼가……?”

흥분한 거한이 거친 손길로 유생의 어깨를 움켜잡으려 할 때, 뒤쪽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거한을 막았다.

“뭐야?”

거한이 돌아보자 가만히 고개를 내젓는 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뭐요, 홍 형?”

“……보내 줘.”

“저런 애송이를?”

“보내 줘라.”

거한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다시 돌렸을 때, 유생은 이미 그에게서 한참 멀어진 후였다. 애초에 거한의 말과 행동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다.

“……저놈이 누군지 아시오?”

“이름은 모르지만, 놈의 성은 알지.”

“성이 뭔데?”

“호.”

“……호(扈)?”

거한의 낯빛이 살짝 변했다.

“그럼 혹시…….”

“그래.”

자신을 막아섰던 홍 형을 말없이 보던 거한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간다. 저 애송이 놈을 왜 그냥 내버려 두라 했는지.

놈의 성이 호(扈)가 맞는다면, 지금은 놈을 건드려선 안 된다. 적어도 아직 사람임을 자처하는 이라면 말이다.

거한의 눈길이 비틀대듯 걷는 유생의 뒷모습에 꽂혔다.

저벅.

버거운 걸음이 다시 한번 내디뎌졌다.

– 포기하게.

유생의 입술이 비틀렸다.

– 그는 자네 같은 이가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세.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알고 있다.

그도 멍청한 이가 아니다. 세상에는 그 같은 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악을 써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땅을 밟는다 해도, 유생이 사는 세상과 그놈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 누구도 자네를 안타까워할지언정 돕지는 않을 걸세. 그게 불의라는 것을 알더라도 말일세.

옅은 웃음이 흘렀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지만, 그 대상이 그 말을 했던 이인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원하는 것이 복수라면 차라리 지금까지 하던 것을 계속하게나. 쓸개를 핥는 심정으로, 언젠가 자네가 그를 직접 처단할 자리에 오를 때까지.

그때가 언제일까?

그가 늙어 죽은 뒤에? 죄를 저지른 놈은 호사 속에 천수를 누리다 가고, 쓸개를 핥던 이는 아쉬운 대로 남겨진 그의 자식들 살점이라도 씹어 먹으라는 말인가? 그걸 ‘복수’라 하는가? 그걸?

– 세상은 불의(不義)하네. 그렇기에 우리 같은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 불의한 세상을 옳게 만들어야 하네. 사사로운 감정으로 모든 걸 부정해서는 안 되네. 아무리 멀고 어렵다고 해도 그 길을 가는 이들이 유자(儒者) 아니던가.

– 나는 그가 영원히 지금의 권세를 누릴 거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네. 죄는 언제고 반드시 그 대가를 묻는 법. 자네가 굳이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그는 언젠가 반드시 몰락할 것일세.

– 사사로운 정으로 모든 걸 망치기에는 자네의 미래가 아깝지 않은가. 자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도 아쉽지 않은가. 대의(大義)를 보아야 하네, 대의를!

찰박.

구정물이 발목께에 튀었다. 과거였다면 질색했겠지만, 지금은 발목이 축축하게 젖는 감각이 들어도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깨끗하단 말인가?

제게는 딱히 대단하지도 않았을 재산을 탐내어 멀쩡한 가문을 풍비박산 낸 권세가는 깨끗한가? 그럼 그 권세가의 전횡에 비명횡사한 그의 가족들은 더럽단 말인가?

입으로는 항상 의(義)의 도리(道理)를 논하던 이들이 명백한 불의 앞에 침묵하는 건 또 어떤가. 과연 깨끗한가?

구역질이 치밀었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공부했던가?

그가 평생에 걸쳐 익혔던 도리와 법도(法度). 온 마음으로 궁구했던 제도(制度)와 힘없는 이를 향한 선의(善意).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며 살아왔다. 차라리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허울들을 비웃을 용기라도 있었더라면 비참하게 죽어 간 가족들과 함께 죽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비의 목이 잘릴 때, 그는 공맹의 도리를 논했고.

누이가 간살 당할 때, 그는 성현의 말씀을 되새겼다.

심판받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너절한 욕심으로 그의 집안을 짓뭉개 버린 더러운 작자인가, 아니면 그들의 죽음조차 알지 못한 채 웃고 떠들어 대던 자신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방안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그 말씀대로라면 진정 심판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유생 자신일 터.

하지만 아직은 죽을 수 없다.

더러운 놈들이 살아 있는 한. 저들이 숨을 쉬는 한. 저들이 가문의 쌀로 배를 채우고, 가문의 술로 입을 축이는 동안은 결코 죽을 수 없다.

저벅.

비척대며 걷던 유생이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 붉게 칠해진 커다란 문이 놓여 있었다. 제대로 된 현판조차 없지만, 유생은 이곳이 자신의 목표였던 그곳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곳 앞에만 취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술기운에 비틀대는 이도,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무뢰배들조차도 감히 이곳에만은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까.

이윽고 유생이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쿵! 쿵! 쿠웅!

손이 부서지도록 두드리던 그는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는 듯 아예 문을 잡아당겼다. 걸쇠가 걸리지 않은 문이 이내 활짝 열렸다.

붉은 문 너머는 다른 세상인 것처럼 고요했고, 무거운 분위기가 짙었다. 그 속으로 그는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뭐냐?”

술에 취해 정원 한편에 드러누워 있던 이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에 보았던 거한과는 달리 마른 편에 속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그와 마주한 순간 유생은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살인에 익숙한 이들.

그래, 들었다. 이곳에는 사람을 숨 쉬듯 죽여 대는 인간 백정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아마 저자도 손에 피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생은 돌아서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움이란 걸 가질 수 없으므로.

두려움을 느낄 자격은 진작에 잃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하나뿐.

“나는…….”

유생의 두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호가명이다.”

“……호가명?”

“너희 당주에게 안내해라.”

거치도를 든 이의 눈썹이 꿈틀했다.

유생, 호가명이 씹어뱉듯 덧붙였다.

“백안귀(白顔鬼)……. 장일소와 거래를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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