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651화
1651화. 좋은 날이군. (1)
“밟아!”
“이 빌어먹을 놈!”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누군가를 에워싼 채 발길질을 했다. 그 아이들도 삐쩍 곯아 제 나이보다 배는 어려 보였다.
“허억! 허억!”
딱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던 아이들은 몇 번의 발길질만으로도 금방 지친 듯 숨을 헐떡였다.
“이…… 지독한 새끼.”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질린 듯 내려다보던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가자.”
“이대로 그냥?”
“그럼 죽일 거야?”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그러나 이내 모두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끄덕였다.
“가자.”
“퉷!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이들이 짜증과 허탈함 어린 표정으로 가래침을 뱉으며 몸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눈빛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맥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굶어야 하나.”
“저 망할 새끼들이 전쟁만 안 해 댔어도 밥은 구걸할 수 있었을 텐데.”
“구걸 같은 소리 하네. 아랫동네에서 굶어 죽은 사람만 열이 넘었다더라. 거지새끼들은 물론이고 멀쩡하게 살던 양반들까지 굶어 뒈지는 판에 우리한테 뭘 주려고 하겠어?”
“제길…….”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엔 비슷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건 어쩌면 절망감, 혹은 공포감. 또는 제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한 무력감일지도 몰랐다.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 건 힘 있는 이들이지만, 그 여파는 힘없는 이들이 고스란히 받는 법이다. 자의와 관련 없이 삶이 흔들리고 무너진 이들의 절망감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고 무거웠다.
“뭘 자꾸 돌아봐?”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빌어먹을, 뒈지면 뒈지는 거지. 당장 내가 뒈지게 생긴 판에 무슨 상관이야! 개소리로 힘 빼지 말고 가!”
결국 수긍한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뭔가 걸리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자꾸 돌아보는 대상은 어쩌면 그 자리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인간성,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이 버려야 할, 버릴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도 한참 뒤.
부스럭.
아이들에게 밟힌 후로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이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다.
말라비틀어진, 작디작은 몸. 여럿에게 밟히지 않았더라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어린아이였다.
성인도 버티기 힘들 가혹한 폭력을 온몸으로 모조리 받아 낸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거적이란 말도 호사일 만큼 남루한 옷과 아무렇게나 자라 산발인 머리카락까지, 거지보단 짐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꼬락서니였다.
“퉷.”
아이가 핏물을 뱉었다. 하지만 입 안에 가득 찬 비릿함은 가시지 않았다.
나약한 짐승처럼 주위를 둘러본 아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제 품 안을 뒤적였다.
이윽고 꼬질꼬질한 손에 쥐어진 건, 모진 폭행에도 결코 내어 주지 않았던, 짓밟혀 납작해진 시커먼 만두 하나였다.
아이가 작은 손으로 흙투성이가 된 만두를 작게 뜯었다. 그리고 제 입 안에 느릿하게 밀어 넣었다.
피와 흙이 너무 많이 묻어 구역질 나는 맛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오히려 다시없을 진미를 음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야윈 손가락이 만두를 다시 뜯는다.
이걸 손에 넣기 위해 온몸에 성한 곳이 없도록 얻어맞았지만, 아이는 그 사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굶어 죽는 것보단 얻어맞는 편이 나을 테니까.
아이는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는다. 그를 짓밟고 간 놈들 중에서도 며칠 내로 죽는 이가 나올 것이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만두 하나를 얻는 대가로 이 정도 매질이면 싸게 먹힌 것이다.
살아남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이가 더러운 소매로 제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친 그때였다.
“괜찮으냐?”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자마자, 아이는 남은 만두를 품 안에 쑤셔 넣고 이를 드러냈다. 몸을 웅크린 모양새가 주위를 경계하는 야생동물처럼 사나웠다.
그 모습에,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말을 걸었던 거지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냥 걱정돼서……. 괜찮은가 싶어서 말이다.”
“…….”
확실히 걱정 어린 목소리였다. 이토록 차디찬 세상에선 감히 바라기도 어려운 다정함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 온기에 차고 싸늘한 눈빛만을 보냈다.
거지는 이를 알면서도 인자한 관심을 쉬이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거라.”
거지가 정말로 걱정된다는 듯 아이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몸이 그렇게 상했는데 찬 데서 자면 얼어 죽고 말 거다. 내가…….”
그렇게 몇 발짝 다가서던 거지가 순간 멈칫했다. 아이가 품 안에서 만두 대신 날카로운 날붙이를 꺼내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주춤한 거지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어렸다.
그렇게 아이와 날붙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거지의 얼굴이 일순 거짓말처럼 악독하게 일그러졌다. 조금 전 다정하게 말을 걸던 이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뭔가 머릿속으로 재어 보듯 아이를 빤히 보던 거지가 이를 뿌득뿌득 갈더니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아무래도 먹다 남은 만두 조각에 날붙이를 상대할 위험을 감수하는 건 너무 손해 보는 장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런다고 네까짓 놈이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
“다 뒈져 가는 애새끼가……. 네가 죽으면 내가 꼭 삶아 먹어 주마. 지켜볼 거다. 개 같은 놈.”
아이에게 쏟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거지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려 빠르게 멀어졌다.
그렇게 거지가 멀어지고도 한참을 경계하던 아이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뚝거리는 걸음이 인적 드문 곳을 향해 느리고 꾸준하게 이어졌다.
어둠이 내린 밤.
훤한 대낮에도 위험할 만한 깊은 산 중턱까지 오른 아이는 익숙한 손길로 낙엽 더미를 헤집었다.
두어 번 손길을 가하니 웅크린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아이는 그 안으로 몸을 욱여넣고 지친 듯 늘어졌다.
의식이 가물가물했지만,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는 대신 품 안의 만두를 꺼내 또다시 잘게 찢어 꾹꾹 씹기 시작했다.
아이의 표정은 도무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만두를 씹으며 아이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옥 같은 세상이다.
목숨의 가치란 항상 같지 않다. 평화로운 세상에서야 사람의 목숨이 더없는 가치를 가지지만, 이런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 따위는 이 쉬어 빠진 만두 반 토막만큼의 가치도 없다.
아이의 목숨이 가지는 가치는 그보다 더 적을 터였다.
가장 비참한 곳에서 가장 비천한 이는 결국 누구도 살지 않는 곳까지 밀려날 수밖에 없다.
높은 데서 아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 수많은 불빛이 들어왔다.
마을이다. 아직 그에게는 너무도 멀고 두려운 곳.
사람이 사는 마을과 그가 있는 산을 구분하는 경계는 바로 저 불빛이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지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아이는 그렇게 무심한 손길로 만두를 찢어 입 안에 밀어 넣으며 아래에 펼쳐진 불빛의 강을 홀린 듯 응시했다.
짙은 흙 맛, 코로 밀려 들어오는 썩은 낙엽의 향.
아이의 시선이 조금 더 먼 곳으로 향했다.
저 먼 곳의 불빛은 가까운 데서 보이는 불빛보다 몇 배는 더 밝고 화려하다.
지금의 아이는 발조차 들일 수 없는 곳이다. 저 화려한 불빛을 누리는 이들은 이 꺼질 듯한 불빛에 의존해 사는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이들이므로.
아이가 느릿하게 야윈 손을 뻗었다.
불빛이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잡으면 실로 따스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이의 손에는 닿지 않았다. 그 불빛에 가득 담겨 있을 온기 한 점조차도.
그가 누릴 수 있는 건 그저 뼛골 시리도록 파고드는 한기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낙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알게 되었으니까.
저 불빛들도 처음부터 저곳에 있었던 게 아니다. 누군가의 불빛을 빼앗고 강탈해 더 많은 불빛을 가지게 된 이들이 저곳을 차지한 거다.
그들이 빼앗을 수 있었다면, 자신 역시 빼앗아서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가 훔쳐서 품 안에 밀어 넣었던 쉬어 빠진 만두처럼. 저 불빛들도 언젠가는…….
아이의 눈동자 속 불빛들이 점점 더 커져 간다.
더없이 따뜻하게 번져 나가던 불빛은 이내 활활 타오르듯 세상을 휘감는다. 나뉘어 있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세상의 모든 곳이 환한 불빛으로 가득해진다.
황홀하다. 아이는 그 온기를 잡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쩌적!
아이가 응시하던 세상에 금이 갔다. 붉게 물들어 따스해 보이던 세상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내 그 틈을 타고 검붉은 핏물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아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검붉은 핏물은 빠르게 세상을 뒤덮었다. 온기 하나 없다. 차갑고 역겨운 무(無)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아…….”
아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뿐, 제대로 된 말이 되지 못한 목소리는 상처 입은 짐승의 신음처럼 쏟아지기만 할 따름이다.
“아……. 아아…….”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어 간다.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아이의 두 눈에 가혹한 절망이 들어찼다.
“아아아아아아아악!”
* * *
“련주님.”
“…….”
“련주님?”
감은 눈을 따라 촘촘하게 드리워져 있던 긴 속눈썹이 잘게 흔들렸다.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고, 색 옅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삭막한 느낌을 주는 방을 멍하니 훑던 두 눈이 이윽고 제 앞에 선 이에게로 향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대답 대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타오르듯 붉은 장포, 금실로 수놓인 화려한 용 문양, 널따란 소매 아래로 드러난 긴 손가락,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색색의 화려한 가락지들.
현실이다. 그는 찢기고 더러운 누더기를 입고 있지 않다.
팔걸이에 얹어 뒀던 손을 뒤집었다. 드러난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가 한동안 이를 빤히 바라보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렇다 할 표정 없는 뜻 모를 얼굴이었다.
“……동경.”
“예.”
그의 명에 시비가 재빨리 동경을 그의 앞으로 받쳐 들었다.
동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낯설게 보았다.
화려한 치장을 마친 얼굴. 얼굴로 드리워진 면류관의 류 사이로 다 큰 성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 짐승 같은 아이와는 다르다. 새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그리고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까지.
달라졌을까?
지금 이 동경 속 사내는 과거의 그와 달라졌을까? 얼굴이 바뀌고, 몸에 걸친 것이 달라졌다고 해서?
동경을 물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비들이 분분히 달려들어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단장해 주었지만 그런 손길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앞에 보이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렇게 문고리를 잡고는 잠시 멈칫했다.
– 납득하십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감았던 눈을 뜨고 마침내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쾅.
부서질 듯 활짝 열린 문 너머로 펼쳐진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이들이 도열해 있다.
들끓는 흥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욕망을 억누르며.
칼날 같은 눈빛으로 무장한 이들이 오직 그, 그 하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내, 장일소의 붉은 입꼬리가 점점 뒤틀리듯 올라가 짙은 미소를 띠었다.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도열한 이들의 한쪽 옆에 서 있던 호가명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그렇게 시선을 마주한 채 서 있던 호가명이 이내 묵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련주님.”
“…….”
“명령을.”
장일소의 눈이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동쪽에 뜬 태양이 그를 환영하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좋은 날이군.”
그의 눈빛이 과거의 어느 날, 닿지 않는 불빛을 응시하던 아이의 것과 닮아 간다.
여전히 그는 원하던 것에 닿지 못했다. 그러니…….
“가자꾸나.”
이제는 손에 넣으러 가야 한다. 영원히 바라만 보던 것들을.
저벅.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장일소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곳.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이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으로 가는 길은 이미 훤히 열려 있다.
“우선은…… 하남부터 시작할까?”
기름한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가자꾸나. 세상을 손에 넣으러.”
“예!”
도열한 이들이 그를 따른다.
잠시 숨죽이던 칼날이 이제 세상을 향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끝내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