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667화
1667화. 미래는 있을 테니까. (2)
“타아아아압!”
가파른 비탈, 검고 흰 무복을 입은 무당의 검수들이 날다람쥐처럼 내달렸다.
“저기다!”
“모조리 베어 내라!”
파아아앗!
지는 노을빛을 받아 옅은 붉은색으로 물든 검이 비탈을 오르던 사패련도들의 육신을 향해 쏘아졌다.
“으아아앗!”
몸 곳곳이 불에 그을리고 일그러진 사패련도들은 날아들어 오는 검을 보더니 악을 쓰며 도를 휘둘렀다.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은 저 얇은 검 따위야 일격에 부러트려 버릴 수 있단 강맹한 기세를 실어서 말이다.
사실 흔한 검기조차 두르지 않고 허공을 가르는 철검은 평범한 양민들에게야 두려운 흉기가 되지만, 무학을 익힌 이들에게는 딱히 위협이 되지 않는 쇠막대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지금 사패련도들의 패기에도 근거가 없지 않다.
휘이이이잉!
특히나 바람을 가르는 그들의 대도 무게가 오십 근에 달하니 더욱 그렇다. 사패련도는 제 무기가 가녀린 철검을 단번에 두 동강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본때를 보여 주마, 이 샌님 놈들!’
이런 강한 확신을 만들어 준 건, 어쩌면 지나치게 풍부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장강에서 무당을 농락한 적 있다. 그리고 무당의 터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무당산에서도 한심한 도사 놈들을 손도 발도 쓰지 못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과거라면 무당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벌벌 떨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미 청성과 아미를 지웠고, 소림과 팽가, 공동을 패퇴시킨 사패련에게 있어 무당이란 이름은 더 이상 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상대할 수 있다. 얼마든지 쓰러뜨릴 수 있다.
사패련도들은 그리 믿었다. 지나온 과거가, 경험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토록 굳건하던 믿음에 이변이 일어난 건, 도와 검이 맞닿은 순간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가가각!
‘엇?’
두 병기가 충돌하는 그 찰나에, 사패련도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소리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검기가 실리지 않았다고 한들,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검과 도가 이만한 속도로 충돌하는데 바늘로 철을 긁는 소리가 나는 건 말이 안 된다.
‘뭔……?’
그다음 알아챈 ‘이상함’은 다름 아닌 그의 도였다. 검을 깨뜨리고 단번에 도사의 몸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도가 통제를 벗어나며 괴이한 방향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더욱 이상한 건, 도를 쥔 사내는 비틀린다는 느낌을 조금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아귀로 여전히 도를 잡고 있는데, 뜻하는 곳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외려 처음부터 그리 휘두르려 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빈 허공을 가르고 있다.
그런 괴이한 광경이 눈앞에 연이어 펼쳐진다.
‘어, 어떻…….’
그러나 사패련도는 이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목을 향해 날카로운 검이 날아들고 있고, 그걸 피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귀, 귀신…….”
심지어 검은 그리 빠르지도 않았다. 검날이 장한의 목을 부드럽게 가르고 들어왔다. 거칠지 않고 매끄러운, 하나 피할 여지 없이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서걱!
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한기가 아니었다면, 그 검에 살의가 어려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했으리라.
나뭇잎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검격이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신음조차 남기지 못한 사패련도는 그 자리에서 맥없이 허물어졌다. 심지어 그 순간에도 제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던 ‘강함’과 다르다. 몰아치는 벼락, 대기를 찢는 천둥, 산을 가르는 막대한 지진 같은 힘. 본디 절정의 검격이라는 건 이러한 힘을 품고 있다.
하지만 지금 무당의 검수가 쓴 검은 그 모든 걸 품은 절정의 검격보다 배는 더 무섭고, 배는 더 뛰어났다.
‘이…… 이게 무당…….’
숨이 끊어지는 순간, 사패련도는 비로소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천하를 오시하는 무당의 검을 상대했음을.
부드러움으로 능히 강함을 이기는 것(能柔制强). 그게 무당의 검이고, 무당이 천하제일의 검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린 비결이었다.
서걱! 서걱!
사방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악착같이 절벽을 타고 올라와 흉흉한 병기를 휘두르던 사패련도들의 몸뚱이에 흐르는 물처럼 매끄러운 검이 스친다.
“커헉!”
“아아아아악!”
남궁은 패(霸)로써 천하를 짓누르고, 화산은 환(換)으로 천하를 농락한다. 하지만 무당은 그저 유(柔). 그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천하와 공존하는 것이다.
“이익! 이 새끼들이……!”
이를 악문 사패련도 하나가 발작처럼 무당 검수의 목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곧바로 이 대도를 향해 무당의 낭창한 송문고검이 쇄도했다.
타탁!
봄의 나비처럼 도 날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 검은 이내 도의 옆면을 가볍게 통 두드렸다.
원(圓)이 생겨난다. 부드럽게 유영하는 송문고검이 허공에 끝없이 동그라미를 그려 낸다. 밀어 내듯, 당기듯, 쓰다듬듯.
짧은 순간 숱한 인력과 척력의 교차가 이어지자, 날아들던 대도의 방향이 어느새 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뭣!”
벼락처럼 뻗어 가던 대도가 그 힘과 속도를 온전히 보전한 채 방향만 반대로 바뀌어 날아갔다. 도의 주인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치떴다. 피해 보려 격하게 목을 옆으로 틀었다.
서걱!
자신의 애병이 목을 반 치쯤 갈라 내고 지나간다.
피가 쏟아지는 목을 향해 무당의 송문고검까지 날아들었다.
“마, 말도 안…….”
투둑!
가벼운 실을 손으로 끊는 듯한 소음과 함께, 소나무 문양이 새겨진 무당의 검이 사내의 목을 뚫었다.
목에 완전히 파고든 차가운 금속을 채 느끼기도 전에 숨이 끊겨 생명을 잃은 몸뚱이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노오오오오옴!”
장한들이 거친 고함을 토하며 무당의 검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 검이 뽑혀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저 귀신 같은 검을 쓰는 이의 몸에 병장기를 박아 넣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투웅!
가죽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목을 뚫렸던 이의 몸이 그들을 향해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헉!”
시신이 날아들어 오니 모두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중간 과정이 없음에 놀라서였다. 시신을 날리기 위해서는 몸뚱이를 잡고 힘을 주어 휘두르는 과정이 있는 게 마땅한데, 조금 전엔 그 과정이 얼마나 빨랐는지 시신이 홀로 공간을 격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베, 베어야 하나?’
그 때문에 판단이 아주 잠깐 늦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당의 검은 이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우둑!
이윽고 시신 뒤에서 날아든 검이 봄볕에 늘어지는 버드나무 잎처럼 드리우며 부드럽게 장한의 심장을 통과했다.
“끄…….”
검이 심장에 박히는 순간, 장한은 빠르게 잡고 있던 도를 버리고 검을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입으로 진득한 피가 주르륵 쏟아졌지만, 두 눈에는 원독이 형형하게 차 있었다. 그 독기 어린 마음이 치명상을 입은 몸에 마지막 힘을 불어넣은 것이다.
“죽어라아아아아아아!”
이 틈에, 지척의 사패련도가 온 힘을 다해 무당 검수의 머리를 향해 도를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아!
그 풍압만으로도 땅의 풀이 눕고 모래가 휘날릴 만큼 가공할 도격이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머리쯤이야 어찌 될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하지만 무당의 검수는 무리하게 검으로 막는 대신, 비어 있는 좌수를 느긋이 들어 올렸다. 이는 마치 돌진하는 수레 앞에서 사마귀가 앞발을 드는 것처럼 무력하게만 보였다.
그 순간.
빙글.
무당 검수의 손이 허공에 작은 원을 그렸다.
끊길 듯 끊길 듯 계속해서 이어지는 면면부절의 장력. 이는 날아드는 도 앞에 영원히 이어질 듯 중첩된 나선의 형상을 그려 내었다.
하나의 원이 회전하고 스러질 때마다 대도에 어렸던 무시무시한 도기가 점차 깎여 나간다. 물론 허공에 그려진 원도 힘없이 이지러졌지만, 하나의 원이 스러질 때, 또 다른 원이 피어오르니 실로 면면부절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도가 무당 검수의 머리 지척에 이르렀을 때, 도를 에워쌌던 도기는 한 줄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턱.
그제야 느긋한 손이 도를 가볍게 움켜잡았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경이로운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린 사패련도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쿠우우우웅!
잠시 후, 그의 몸이 허공을 빙글 돌아 형편없이 땅에 처박혔다. 등이 땅에 닿는 순간 칠공에서 핏물이 울컥 솟구쳤다.
절명. 그 외의 결론을 떠올리기란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도를 잡고 손목을 비트는 그 가벼운 한 수가 수십 년간 전장에서 버티고, 또한 사신처럼 군림해 온 사패련도의 목숨을 단번에 끊어 놓았다.
이 정도 되니 가공할 기세로 달려들던 사패련도들도 다소 주춤하며 검수를 경계하였다.
뒤를 따라 비탈을 오르던 이들 역시 영문을 모르고 함성을 내지르려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읽으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후.”
무당의 검수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여전히 적의 심장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부드럽게 움직여 피를 털어 내었다. 사패련도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처럼 차분했다.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군. 무당의 무학이 그토록 우스워 보였던가.”
검은 부드러움을 담는다.
손은 끊이지 않는 의지를 담는다.
흐르는 물은 언제고 끊어질 듯하지만, 끝끝내 면면부절 이어지는 법. 때로는 아이의 손을 간질이는 부드러움을 담고, 때로는 산을 뒤트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물.
무당의 무학은 그저 그 물을 닮으려 할 뿐이다.
“뭣들 하느냐! 덮쳐라!”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린 사패련도들이 아까보다 더 사납게 함성을 내질렀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했다거나 성격이 폭급하여서가 아니다.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북돋고 옆에 선 다른 이들을 재촉해야 하기에 본능적으로 지르는 소리였다. 한번 흐름에 휩쓸리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자들의 발악이었다.
“죽여라아아아아아!”
무당의 검수는 그 거친 발악 앞에서도 그저 도도했다.
“누구도 여길 지나갈 수 없다.”
물의 흐름을 담은 이, 무당의 진현이 사패련도들을 향해 검첨을 겨누었다.
“여긴 장강이 아니라 무당이다. 그 사실을 똑똑히 알려 주지.”
상처받은 송문고검이 그 말에 공명하듯 울어 대었다.
“뭐라 지껄이는 거냐!”
진현의 입가에 살짝 비정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사냥당하는 건 바로 너희라는 것도.”
타앗!
그 순간 누군가가 진현의 뒤에서 솟구치는 제비처럼 뛰어올랐다.
선두에 선 진현을 타 넘은 무당의 검수들이 겨우 사기를 다시 끌어 올린 사패련도들의 머리 위로 강하했다.
서걱! 서걱! 서걱!
물처럼 매끄럽게 휘둘러진 검이 사패련도들의 육신 곳곳에 붉은 선을 긋고 지나간다. 하나같이 치명상이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살을 베어 내는 소리가, 저 아래서 들리는 거대한 화마의 소음과 뒤섞여 퍼져 나간다.
“얕보지 마라! 우리가 바로 천하제일검문, 무당의 검수다!”
이 한마디를 위해 지금까지, 이 순간까지 참아왔다.
진현은 검을 단단히 부여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비겁한 자가 아니야!’
그의 눈에 피와 검, 호기가 넘실거렸다.
등 뒤로 내리고 있는 어둠을 채 알지 못하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