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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79화


1679화. 그냥 믿는 것뿐이야. (3)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가 금방이라도 피부를 찢어발길 것만 같았다.

패군과 화산검협.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에게 이를 드러냈다. 그 가공할 살기의 충돌에 천하의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홍견들마저도 감히 숨을 내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청명의 검이 뽑혀 나오고, 장일소의 장력이 청명의 심장에 틀어박힐 것만 같다.

새삼 알게 된다. 아무리 여유롭게 술잔을 나누고 있어도 이 두 사람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어느 하나는 숨이 끊어져야 비로소 그 끝을 맺을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그 지독한 살기의 충돌 속에서, 장일소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 대책 없는 믿음이.”

“…….”

“설마 뭐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

“응? 화산검협?”

그 살기와 조소가 뒤섞인 얼굴을 마주하던 청명이 시선을 돌린다. 천하의 장일소를 앞에 두고도 태연하게.

그리고 그 시선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무당.

불타오르고 있는 무당산이었다.

* * *

“아아아아아악!”

“사혀어어어엉!”

비명은 언제나 참담하다.

하지만 그 비명이 친밀한 이의 비명이라면, 그저 참담함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으드득!

무진이 악다문 이를 부러트릴 듯 갈아붙였다.

적의 칼에 꿰뚫린 진소의 육체가 덜덜 경련을 일으킨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이들 아니었는가.

하지만 이어지는 참상은 그 각오만으로는 버텨 내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쇄애애애액!

콰득!

휘둘러진 도가 진소의 몸을 연이어 베어 낸다. 그리고 더는 진기를 운용하지 못하는 진소의 몸은 그 잔인한 참격을 버틸 수 없었다. 사지가 분해되듯 잘려 나간 진소의 육신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무진만이 아니다. 그 광경을 본 무당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짐승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악에 받쳐 검을 휘둘렀다.

저들도 사람이지 않은가. 아무리 적으로 맞섰다고 한들, 인두겁을 쓴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사람이 사람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숨이 끊어진 이의 몸에 칼질을 해 대고, 부상을 입어 쓰러진 이를 농락하며 죽여 대는 잔혹함. 그건 무당의 검수들이 평생을 수련하면서도 알지 못한 세계였다.

“이 개 같은 놈들아! 으아아아아!”

“사제! 흥분하지……. 사제에에에에에!”

흥분해 검을 내지르던 이의 몸에 되레 창이 틀어박힌다.

“끄……으…….”

콰득! 콰득! 콰득!

일격에 복부가 꿰뚫린 이의 몸에 수많은 병장기가 날아들었다. 그 육신을 꿰뚫고 또 꿰뚫어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음에도 만족하지 못한 날붙이들이 쓰러지는 몸뚱어리를 사분오열 내 놓는다.

비장함은 어디에 있는가?

숭고함은 또 어디에 있는가?

‘아니야…….’

무진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에서 싸우기로 한 그들의 선택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다시 선택하라 해도 무진은 주저 없이 이 길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이 전투는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이의 숭고함도, 강호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는 이의 비장함도 이곳에는 없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잔혹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몇 마디의 찬사에는 절대 담길 수 없는 잔혹함과 처절함이었다.

죽어 간 이들은 과연 자신의 최후가 저런 모습이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그 최후를 알면서도 저리 싸울 수 있었을까?

“자리를 사수해라! 진영을 무너뜨리지 마라! 흥분하면 안 된다지 않느냐!”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같은 말. 지금껏 듣던 것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저 목소리에 이전과는 다른 불안과 공포가 어려 있다는 것을.

진영을 무너뜨리지 않고 싸워야 유리하다는 것이 아니다. 진영이 무너지는 순간 모두 죽는다. 모두 비참하게, 제대로 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아아아아악!”

또 하나의 생명이 그 끝에 달한다.

백안암 위로 오르는 사패련도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그들을 상대하는 무당의 제자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 가면 갈수록 더욱 버텨 내기가 버거워지고 있었다.

이미 모두가 직감했을 것이다. 이 전투의 결말이 무엇인지.

어쩌면 전설로 남을 수도 있겠지. 무당의 모든 제자들은 사파에 굴복하지 않고 무당을 지키다 백안암 위에서 산화했다. 그 한 줄의 글귀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정말 이곳에 있었을까?’

무진의 가슴에 비애가 차올랐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명예가, 그들이 사수하려 했던 영광이, 그들이 마지막에 움켜쥐려 했던 자존심과 자부심이 과연 이곳에 있었을까?

그 자부심이 과연 이곳에 선 이들 모두의 목숨을 내던질 만큼 대단한 것이었던가? 저 끔찍한 죽음으로 지켜 낼 만한 것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긴 했을까?

“아아아아악!”

친인과 같았던 이의 가슴에 칼이 틀어박힌다. 그 죽음을 보며 인간 같지도 않은 이들이 비릿하게 웃어 댄다. 그 지독한 광경을 막아 내기엔 그의 검은 너무도 무력했다.

검을 잡은 무진의 손이 떨렸다.

어쩌면 이 광경을 만들어 낸 것은 저들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의 치기가, 그의 오기가 이 지옥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그 현실이 무진의 두 눈을 뿌연 물기로 채워 냈다.

* * *

“좋은 말이란다. 믿음.”

장일소가 잔에 찬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그의 입가에 비릿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어린다.

“하지만 그건 또한…… 무책임의 다른 말이기도 하지.”

“…….”

“알겠니?”

그 눈빛에 어린 조소가 청명을 꿰뚫는다.

“진정으로 능력이 있는 자는 믿음 따위를 운운하지 않는단다. 가능한 일을 하고, 가능하게 만들어 내지. 어설픔 바람을 계획에 섞어 대는 게 아니라.”

장일소의 시선이 쓰러진 채 가는 숨을 이어 가는 허도진인에게로 향한다.

“저기 저 얼간이도 마찬가지지.”

“…….”

“우습지 않니?”

장일소가 쿡쿡대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저놈은 결단이란 걸 내릴 줄 아는 이였단다. 장강에서 저자가 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겠지. 그런데…… 그런 놈이 이번엔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 대는 게 이상하지 않니? 몇 해 사이에 머저리가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야.”

청명이 말없이 장일소를 쏘아보았다.

“저자가 뭐라 지껄인 줄 아니?”

“…….”

“자신은 제자들을 막을 수 없다더군. 그들의 뜻을 꺾을 수 없다던가? 하하하핫!”

장일소가 과장되게 양팔을 벌렸다.

“보렴. 이게 그 결과란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주관을 잃어버린 이가 만들어 낸 참극이지.”

“…….”

청명의 눈이 허도에게로 향한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허도진인이었지만, 아직 의식은 붙어 있는지 그의 몸이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장일소의 말이 들리는 것이겠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스스로 책임을 졌어야지. 어설픈 객기 대신 냉철한 이성을 부여잡았어야지.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돼지 새끼는 결국…….”

장일소의 손이 느슨하게 늘어진다.

“저런 꼴이 되는 거란다.”

장일소가 고개를 느릿하게 내저었다.

“그런데……. 네가 저 돼지와 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이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걸.”

말없이 허도진인을 보던 청명이 무심한 얼굴로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기울여 장일소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쪼르륵.

잔에 술을 가득 채운 청명이 술병을 내려놓고는 장일소를 똑바로 응시했다.

“다 지껄였으면 마셔.”

“…….”

장일소와 청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짧게 충돌했다.

청명을 빤히 바라보던 장일소가 손을 뻗어 채워진 잔을 다시 비워 낸다. 그런 장일소를 향해 청명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믿음의 다른 말이 무책임이라 했지.”

“……그래.”

“나는 조금 달라.”

“…….”

“나는 믿음을…….”

청명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간절함이라 부른다.”

* * *

“검을 들어!”

짐승의 포효 같은 외침이 백안암 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허공이 목이 터져라 소리친다.

“좌절할 여유 같은 건 없다! 내가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내가 아니라 사형제가 죽는다!”

그의 검이 달려드는 사패련도의 목과 가슴을 연이어 꿰뚫어 냈다.

“후회도, 절망도 살아남은 이의 것이다! 너희가 왜 검을 잡았는지를 잊지 마라!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마라! 네 사형제의 목숨이 너의 검에 달려 있다!”

무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무언가 불쑥 치솟아 오른다.

새파랗게 벼려진 칼. 그리고 그 칼을 휘감고 있는 선연한 도기를 보는 순간 무진의 육신이 얼어붙었다.

‘늦…….’

카아아앙!

차마 눈을 감지 못한 무진의 시선에 옆에서 뻗어 나온 검이 날아드는 도를 쳐 내는 광경이 생생히 들어온다.

“사숙! 괜찮으십니까!”

“…….”

무진이 본 것은 그를 구해 낸 진현의 검이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두고 무진을 구하려다 적의 도에 베인 진현의 어깨였다.

그로 인해 튀어 오른 핏물이 무진의 두 눈에 아프게 틀어박혔다.

“아직입니다! 아직!”

무진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대체 무슨 감상에 젖어 있었는가?

허공의 말이 맞다. 그가 흔들리면 죽는 것은 그 혼자가 아니다. 지금 그의 검에 실려 있는 것은 그 하나의 목숨이 아닌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압!”

무진의 검이 가공할 검기를 휘감고 휘둘러졌다.

“사숙!”

푸른빛의 맑은 검기가 뻗어 나간 곳에 백색과 흑색의 검기가 휘몰아친다.

무진이 뿜어낸 검기가 전면을 공격해 오던 사패련도들을 일거에 휩쓸었다.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 기함할 검기의 존재가 일방적으로 정해지던 전장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멈춰 세웠다.

“와라! 사파의 잡졸들아! 내 시신을 넘기 전에는 무당을 범할 수 없다!”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지켜야 할 숭고함 따위는 이곳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곳에 선 것 자체가 그들의 치기가 만들어 낸 실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싸워야 할 이유는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는.

“내 사형제들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다!”

호기로움도, 정의로움도 내던진 무진의 검이 더없는 절절함으로 물들었다.

* * *

“……간절함?”

“그래.”

청명이 무심한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말이지? 간절해서 믿게 된다는 건가? 누군가 나 대신 무언가 해 주기를?”

“…….”

“그게 무책임과 뭐가 다르지?”

“달라.”

“쯧. 억지를 부리는구나. 다를 게 없잖니.”

“달라.”

“…….”

청명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나 정말 간절하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해내야지. 누군가를 믿기보단.”

장일소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아니, 끄덕여지려 했다.

“허도진인이라고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

청명은 허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분명 허도의 귓가에도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믿는 것을 택했지. 힘으로 꺾어 의지를 부수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는 대신. 더 어렵고 힘든 길을, 어쩌면 파멸일지도 모를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건 어리석음이지.”

“아니. 우린 그걸 간절함이라 부른다.”

청명의 입가가 뒤틀린다. 그의 새하얀 이가 짐승의 송곳니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잘 들어 둬. 이 멍청한 새끼야.”

“…….”

“네 말은 옳아. 단 하나도 틀리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기에 네가 멍청한 거야.”

장일소의 눈이 가늘어졌다.

“멍청하다?”

“그래. 오직 네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뤄 내겠다, 그게 너의 방식이라면.”

청명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날아들었다.

“네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건 어쩔 셈이지?”

“…….”

장일소의 얼굴이 순간 굳어진다.

“포기할 텐가? 내려놓을 건가? 아니면 별수 없다 고개를 저어 버리고 할 수 있는 것만 움켜쥐려 할 것인가?”

“…….”

“사람이란 언제고 반드시 부딪힌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내 능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과.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고, 고개를 내저을 수도 없는 일과!”

“흐…….”

장일소의 고개가 돌아간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허도가 목소리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뤄야 하는 이가 가진 간절함. 아무리 스스로를 밀어붙여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아야 하는 절망감. 그걸 나는. 아니, 우리는!”

청명이 이를 드러냈다.

“믿음이라 부르는 거다.”

* * *

“사숙!”

“그래! 나도, 나도 보인다!”

무진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어쩌면 이 급박한 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까지도.

하지만 세상 누구도 그런 무진을 탓하지 못하리라.

그의 눈에 보였다. 이 높은 무당산의 아래. 아직은 저 먼 곳에.

일련의 무리들이 이곳을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광경이.

알 수 있다. 아직은 아득해 그저 형체만 볼 수 있다 해도. 저들이 누구인지, 어째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

“천…….”

무진의 손이 벌벌 떨렸다.

아니, 어쩌면 떨리는 것은 손이 아니라 가슴일지도 모른다.

무진의 얼굴이 무너지듯 일그러지는 것과는 반대로 어둠 속에 흐릿하던 형체들은 조금씩, 하지만 확연하게 선명해졌다.

“천우매애애애앵!”

무진이 가슴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 세 글자. 이제는 너무도 많은 것을 담은 세 글자가 울려 퍼진 순간 오기와 절망만이 가득했던 백안암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일변한다.

“천우맹! 천우맹이 왔다아아아아아아!”

검을 쥐고 싸우던 이들도. 최후를 준비하던 이들도. 남은 것을 모두 쏟아붓던 이들도. 심지어 무당이라는 대어를 작살에 꿰어 놓고 환호하던 이들마저도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돌린다.

솟아오른 봉우리 너머로 선명히 보인다.

마치 어둠을 갈라 내듯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모두를 이끌 듯 검을 뽑아 든 이의 눈부신 백의가.

“백천! 화산이다! 화산이 천우맹을 이끌고 왔다! 지원군이다!”

반드시 오리라, 반드시! 그들이라면.

그 믿음이란 이름의 간절한 바람이 마침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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