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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87화


1687화. 조소로 빛바랠지라도. (2)

“아래다! 아래에서 온다아아아아악!”

“뭐, 뭐야?”

절벽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다급한 비명에 힘겹게 절벽을 기어오르던 이들이 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라니. 이제 정상이 거의 코앞인데, 아래에서 대체 뭐가…….

“어……? 히이이익?”

의문은 금세 공포로 뒤바뀌었다.

움켜잡을 곳조차 변변찮은 가파른 절벽을, 시커먼 무언가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날카롭게 돋아난 비늘들이 희게, 또 붉게 물들었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은 저도 모르게 위로 손을 쭉 뻗었다.

이대로 저것과 맞닥뜨려선 안 된다. 전장에서 갈고닦아 온 생존 본능이 일제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오, 올라가! 올라가라아아아아아!”

“저리 비켜, 이 새끼야!”

매달려 있던 사패련도들이 기겁하며 한 발이라도 더 빠르게 절벽 위로 오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무의미하게 바스러졌다. 절벽을 타오른 검은 용의 발톱이 어느새 그들의 후미에 틀어박힌 것이다.

타아아앗!

매끈한 절벽을 박차고 허공에 떠오른 조걸의 눈이 불길의 색에 물들며 붉게 빛났다.

타아앗!

그의 발이 다시 한번 절벽 면을 박찼다.

산짐승조차 감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할 절벽. 무학을 익힌 이들도 기어서 오를 수밖에 없을 만큼 더없이 높고 험난한 절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조걸은 그 절벽을 말 그대로 내달리고 있었다. 절벽 면을 바닥 삼아 수직으로.

탓! 탓! 타앗!

좌우로 종횡하듯 절벽을 차오른 그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후미에 매달려 있던 사패련도를 향해 솟구쳤다.

“아, 안 돼!”

사패련도가 있는 힘을 다해 커다란 도를 조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베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떨쳐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하지만 그 순간 사패련도는 조걸의 가라앉은 눈빛과 맞닥뜨렸다.

콰득!

“끄윽…….”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깨닫기도 전에 가슴을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번지며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몸속에서 새빨갛게 달군 쇠가 요동치는 것만 같다. 곧이어 가슴 안에 틀어박힌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지며 내부를 헤집어 놓는 감각이 지독히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투웅!

이윽고, 그 몸에서 검을 뽑아내는 반동으로 조걸이 다시금 위로 솟구쳤다.

피를 뿌리며 추락하는 사패련도와 절벽 위로 솟구치는 검은 검수들이 교차하는 모습이 흡사 절벽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타아아앗!

추락하는 이를 지나쳐 절벽을 내달리는 화산의 검수들, 그 가장 앞에서 조걸이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냈다.

“으아아아아아!”

적들 역시 발작적으로 병기를 휘둘렀다.

조걸의 눈이 광망을 내뿜었다. 눈앞에 수두룩한 요철들이 생겨난다. 매끈한 절벽 면에 비해 너무도 타오르기 수월해 보이는 날카로운 장애물들이 말이다. 이런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타아아앗!

조걸의 몸은 마치 내리꽂히는 벼락처럼 적들의 사이를 갈라 내었다.

“컥!”

“크헛!”

“아아악!”

그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검기조차 뿜지 않는 검이 마치 암살자의 비수처럼 절벽에 매달린 적들의 몸뚱이를 무정하게 파고들었다.

카아앙!

검과 날붙이가 맞부딪히는 순간, 조걸의 몸은 마치 누군가가 등을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 쑤욱 전진했다.

“으, 으아아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패련도가 짐승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조걸을 향해 검을 마구잡이로 찔러 대었다.

채앵!

하지만 그 검은 단숨에 허공으로 튕겨 오르고, 그 검이 있어야 할 자리를 길고 매서운 낯선 검이 채워 냈다.

콰드득!

검이 목 옆으로 박히며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탓! 탓!

등, 그리고 어깨에 무언가가 닿는 감각이 정신을 잃고 싶을 정도로 큰 고통이 밀려드는 와중에도 뒤섞여 전해졌다.

‘어…….’

그 순간 찾아온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이전에 의아함이었다.

몸이 획 뒤집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익숙지 않은 무언가가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텅 비어 버린 동공. 그것은 이미 숨이 끊어져 버린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하나, 둘……? 아니, 다섯. 아니면 열?

수십의 사람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 어쩌면 조금 위에, 어쩌면 조금 아래에.

‘어?’

사패련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두 눈에 붉은 전경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니……!’

그것이 불타는 무당산이란 걸 깨닫고서야 사패련도는 자신이 절벽에서 추락하고 있음을 알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허공이라도 부여잡겠다는 듯 부질없는 몸부림이 펼쳐졌지만, 새가 아닌 사람이 허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다.

“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

그뿐만이 아니라 절벽에서 떨어지게 된 이들이 모두 사람의 목에서 나왔다 믿기 힘들 비명을 내지르며 속절없이 추락했다.

오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건만, 추락하는 데는 그저 한순간이었다.

투웅! 투웅! 투웅!

추락한 이들의 몸이 연달아 처박히며 산을 울렸다. 아래를 지키고 있던 천우맹도들이 흠칫하여 위를 올려다보았다.

“으……아.”

경탄도, 신음도 되지 못한 애매한 앓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너무 많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던 사패련도들이 화산의 움직임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우습게도, 밤의 어둠을 가르며 떨어지는 새하얀 사람의 몸뚱이가 마치 밤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느껴졌다.

쿠웅! 쿠웅!

연신 들려오는 소리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남궁도위가 외쳤다.

“피해라!”

“위에서 떨어진다! 앞쪽을 비워!”

서둘러 지시를 내린 그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고 다시금 절벽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비인가……. 이래서야 누가 사파고, 누가 정파인지.”

시커먼 화산의 무리가 적들 중앙을 파고드는 광경이 똑똑히 보인다. 아마 천하를 다 뒤져도 저런 짓을 해낼 수 있는 건 오직 한 곳뿐일 것이다.

“화산…….”

쇄애애애액!

화산 검수들의 손에 들린 장검은 흡사 어둠이 드러낸 송곳니처럼 절벽 면에 매달린 이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콰득!

“커헉!”

매달린 이의 등을 꿰뚫는 동시에 절벽에 검을 박아 넣은 화산의 검수들이 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띄워 올린다.

타앗!

밟을 곳이 없다면 검을 박아 넣고, 검을 박을 수 없다면 적의 몸을 밟고 오른다.

윤종의 두 눈에 날 선 눈빛이 일렁였다.

‘그 빌어먹을 단장애에 비하면야.’

쾅!

적을 밟은 윤종이 쏘아진 화살처럼 또 성큼 위로 올랐다.

“이런 건 절벽 같지도 않아!”

파아아아앗!

그의 검이 허공에서 수십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분열한다. 그림자 하나하나가 아직도 악착같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적들의 하체로 파고들었다.

“아아아아악!”

“입 닥쳐, 이 새끼들아!”

화산 검수들의 검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철저한 유린에 가까웠다.

항상 적들에게 쫓기며 길을 열어 냈던 그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리되고 보니 어째서 그간 강호에서 화산의 검이 ‘사파의 검’이라 불리며 경원시되었는지 모두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윤종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듯 입술을 짓깨물었다. 마음이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

“더 빨……!”

“아아아아아!”

“큭! 이놈들이!”

윤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에야 당황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지만, 적들도 역시 녹록한 이들은 아니었다. 이 절벽에서 병기를 맞대는 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들고 있던 병기들을 미련 없이 화산을 향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얼핏 무의미한 발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랬다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투척’이라는 수단이 유용하게 남을 수 있었겠는가.

우우우우우웅!

내력을 잔뜩 실은 병장기들이 머리 위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카앙!

“사형!”

“윤종아!”

“큭!”

날아드는 병장기를 어렵게 쳐 낸 윤종이 절벽 면에 몸을 밀착시켜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의외로 잘 훈련되어 있다.

사패련의 장창병들이 절벽에 오르기를 멈추고 아래로 이동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다시 저들의 후미로 접근하면 일제히 창을 써 공격해 올 것이다.

물론 절벽에 붙어서야 제 위력이 나오기 어렵겠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빌어먹을, 이러면 시간이 지체되는데.’

잠깐 고민하던 윤종이 피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단 마음으로 절벽을 움켜잡은 그 순간.

“어깨 좀 빌릴게.”

“엇?”

누군가가 윤종의 어깨를 가볍게 밟았다.

마치 깃털이 내려앉았다 날아간 듯한 느낌만 잠깐 스쳐 지나갔으나, 가벼운 감각과 달리 눈앞의 광경은 어마어마했다.

휘이익!

“사고!”

윤종의 어깨를 밟은 유이설이 쏘아진 화살처럼 절벽 위로 쇄도했다. 아니,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절벽이 아닌 절벽에서 삼 장 남짓 떨어진 허공이었다.

유이설의 모습이 허공에 떠오른 달과 겹쳐졌다.

파라라락!

그녀의 매화검이 마치 연검처럼 부드럽게 휘둘러졌다. 그 끝에서 붉은 꽃잎 형상의 검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숱하게 피어난 매화 꽃잎이 꽃이 필 리 없는 삭막한 절벽 위로 환상 같은 매화 숲을 만들어 냈다.

“아…….”

절벽에 매달린 적은 물론이고 화산의 검수들마저 일순 넋을 잃을 정도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부드럽게 휘돌던 매화 잎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며 꽃잎의 비로 화했다. 그리고 절벽에 매달린 사패련들을 향해 아름답게 쏟아졌다.

여리디여린 매화 잎이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춤을 추는 듯했다. 절벽에 매달린 이들 중 몇이 저도 모르게 밀려오는 매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움켜잡기라도 하려는 듯.

그것이 시작이었다.

서걱!

살갗에 닿은 매화 잎이 독기 어린 칼날이 되어 피부를 꿰뚫고 뼈에 박혀 든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허공에 날리는 수백, 수천의 꽃잎이 절벽을 빽빽이 메운 이들의 육신을 여지없이 꿰뚫는다. 살을 베고, 뼈를 끊고, 차마 감지 못한 눈에 틀어박힌다.

치명적인 검기 한 번에 기껏 정비했던 전열이 단번에 흐트러진 사패련도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윤종이 외쳤다.

“지금이다! 가자, 걸아!”

“으라차아아아아!”

두 사람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단번에 절벽을 타고 올라 적진을 꿰뚫었다. 준비했던 장창이 제대로 뻗어질 기회도 주지 않고, 두 사람의 검은 단번에 적들의 목을 베어 냈다.

휘잉.

한편, 검기를 뿜어낸 유이설은 그 모습 그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사고?”

“으악! 사매!”

화산의 제자들이 기겁하며 고함을 쳤다.

파아아앗!

그때, 무언가가 유이설을 향해 날아들었다.

타앗.

유이설이 제 발밑으로 날아든 커다란 도를 밟으며 다시 가볍게 몸을 띄워 올렸다. 연이어 날아든 병장기를 징검다리 삼아 몸을 날린 그녀는 이내 뻗어져 온 한 사람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표정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덤덤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백천이 유이설을 향해 싱긋 웃어 주고는 고개를 들었다.

추락하는 사패련도들과, 그 사이로 틈을 벌리고 있는 화산의 검들. 컴컴한 하늘, 그 위로 떠오른 달. 그 모든 걸 넘어 백천은 찾아내었다. 조걸과 윤종이 열고 있는, 정상에 이르는 길을.

‘갈 수 있을까?’

백천이 순간 멈칫했다.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유이설이 그의 소맷자락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시선은 백천이 바라보던 곳에 고정한 채.

소매 끝에서 전해지는 그녀의 악력이, 그리고 검을 움켜쥔 자신의 손이 말하는 것 같았다.

백천이 입술을 살짝 말아 넣었다가 물었다.

“열 수 있어?”

“얼마든지.”

가슴이 든든하게 차올랐다. 백천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사매!”

“네.”

파앗.

두 사람의 몸이 섬전처럼 절벽을 내달렸다.

조걸과 윤종은 이 시각에도 전력으로 검기를 뿜어내었다. 절벽 위로 피어오른 매화가 그들의 좌우로 피어올랐다.

“아―미―타―불―!”

마침 등 뒤에서 웅혼한 불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신호인 것처럼 유이설과 백천이 절벽을 박차며 아주 높게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

서기 어린 황금빛 권력이 그들의 발밑을 스쳤다. 조걸과 윤종이 연 길로 혜연의 권력이 질주했다.

터엉!

허공을 박차고 다시 절벽에 내려선 두 사람의 눈에 정상까지 일직선으로 열린 길이 들어왔다.

쾅!

절벽 면을 박차는 소리가 폭음처럼 울려 퍼졌다.

동료들이 열어 낸 길을 단번에 내달린 두 사람의 신형이 마침내 하늘과 맞닿은 절벽의 정상에 도달하는 그 순간.

화아아아아악!

생각지도 못하게, 세상이 희게 물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투명할 정도로 흰 손이었다.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손그림자가 정상으로 오른 두 사람의 육신을 향해 뻗어져 왔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로 치솟는 흰 포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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