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01화
336장 알게 된 것뿐이다.
당군악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조걸을 바라본다.
‘그 와중에…….’
무아지경으로 검기를 쏘는 젊은 검수. 그의 존재가 주변에 있는 이들을 무채색으로 만든다. 오직 그 혼자만 홀로 색을 발하고 빛나는 것처럼.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태양궁의 정예이다. 심지어 한 문파의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장로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놀랍다는 말보다 오히려 황당하단 말이 잘 어울릴 광경이다.
‘이 격전 중에 또 한 번 벽을 뛰어넘는다는 건가?’
그토록 강력한 열양장력을 갈라내기란, 이전의 조걸에겐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상식을 뛰어넘는 성장이다.
‘아니, 조걸뿐만이 아니다.’
당군악은 조걸의 뒤를 따라 태양궁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화산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새외오궁 중 하나인 남해태양궁을 오히려 사정없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당군악의 손에 들린 비도가 가공할 속도로 발출되었다.
콰드득!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간 비도가 천면수사의 발 앞에 꽂혔다. 당군악의 시선이 잠시 떨어진 틈을 타 몸을 빼낼 기회를 엿보던 천면수사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못 간다고 했을 텐데?”
“이 빌어먹을 놈이…….”
천면수사의 몸 곳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군악의 비도가 새긴 섬뜩한 상처였다.
그러나 사실 당군악의 사정도 그리 좋진 않았다. 의복 곳곳이 바스러진 채 너덜거렸고, 그 틈으로 보이는 살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천면수사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정말 끝까지 발목을 잡을 셈이냐!”
그 와중에도 천면수사는 절벽 끄트머리에 자꾸 시선을 뺏겼다. 당군악을 견제하는 것도 중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굉음이 들려오고 바닥이 모조리 무너질 것만 같은 공포가 더 컸다.
“고작 저런 놈들 때문에 목숨을 내던지겠다고? 천하의 독왕이? 당가의 가주가?”
“고작이라…….”
당군악의 입가에 고소가 걸렸다.
“이립이나 되었을까?”
“……뭐?”
“아니, 대부분은 이립조차 되지 못했지. 그런 이들이 지금 새외오궁 중 하나인 남해태양궁의 최정예들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알고 싶지 않은가?”
당군악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저들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별 엿 같은 소리를…….”
천면수사는 체면이고 뭐고 없이 흉흉하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화산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이지, 화산의 미래 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도리도 없다.
당군악의 비도는 그의 경공보다 빠르다. 어설프게 달아나려다간 등에 그대로 비도가 날아와 꽂힐 것이다.
그렇다고 당군악을 제압하는 것 역시 여의치 않다. 저자와 제대로 승부를 가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백 초를 더 겨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동안 절벽이 버텨 주겠는가.
“비켜라, 독왕! 정말 둘 다 죽자는 거냐!”
“글쎄.”
당군악의 손에 들린 비도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은데?”
침착하던 당군악의 눈빛이 순간 형형해졌다.
까마득한 후배가 다시 못 볼 광경을 보여 주었는데, 그가 약한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앞장서서 길을 열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등 뒤를 지켜 주는 정도는 해야 어른으로서 면이 서지 않겠는가.
“네가 정말 내가 아는 독왕 당군악인가?”
“…….”
“젊은 놈들의 열기에 취해 머리가 돌아 버리기라도 한 건가? 너의 이 멍청한 짓거리가 당가의 패망을 불러올 것이다. 어느 미친 가주가 제 문파도 아닌 다른 문파를 위해 목숨을 건단 말이냐!”
그 말에 당군악이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뻔한 격장지계다. 평소의 천면수사라면 입 밖에도 내지 않을, 수준 낮은 도발이다. 천면수사의 마음이 그만큼이나 급하다고 여기고 무시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당군악은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확실히 걱정은 좀 되는군.”
“……뭐?”
당군악의 시선이 절벽 쪽으로 향했다. 그의 두 눈에 묘한 빛이 잠시 일렁였다.
“그리 대책 없는 인간이 나 하나가 아니어서 말이다.”
당군악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타아아아앗!”
이송백이 묵직한 백색 검기를 내뿜었다. 단 한 점의 내력도 남기지 않을 기세였다.
우우우우우웅!
마치 그의 뜻에 공명하듯, 검이 울음을 터뜨렸다. 발출된 검기가 절벽 면을 가로질러 쏘아졌다.
“이놈이……!”
쇄도해 오는 검기를 본 태양궁도들이 분기탱천하여 짙은 살기를 터뜨렸다. 어디 저런 애송이 놈들이 감히 태양궁도를 향해 검을 휘두른단 말인가.
화아아아악!
이윽고 주황빛의 열양기공이 뿜어져 날아드는 검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짙고 무거운 검기와 작열하는 장력이 허공에서 뒤얽히며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쿠우우우웅!
그 여파에 이송백의 몸이 뒤로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하나도 아닌 여럿이 뿜어낸 장력이었다. 이송백 홀로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의 몸이 절벽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가 팔을 붙들어 끌어당겨 주었다. 이송백이 눈을 크게 치떴다.
“사, 사형!”
“멍청한 짓거리는 작작 해라!”
진금룡이 이를 악문 채 차갑게 외쳤다.
“정면으로 맞붙지 마! 놈들은…….”
“사형! 위에!”
말을 멈춘 진금룡이 위를 획 올려다보았다. 그의 바로 눈앞으로 주황빛 겁화가 쏟아져 오고 있었다.
진금룡의 두 눈이 커다래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마치 커다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아니, 마치 전설 속 용이 포효하는 듯한 창룡후(蒼龍吼)와 함께,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푸른빛 장력이 솟구쳤다.
주황빛 장력과 푸른빛 장력이 맞부딪혔다. 흡사 타오르는 화염 속으로 푸른 창룡이 뛰어드는 듯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푸른 장력이 진금룡에게로 날아드는 장력을 막아 냈다.
“하압!”
연이어 두 사람 뒤에서 백색 검기가 쏘아져 왔다. 검기는 비산하는 열양장력의 파편마저 모조리 파훼해 버렸다.
“개방주님?”
“자, 장문인?”
풍영신개는 말없이 두 사람을 스쳐 올라갔다. 곧이어 노기 어린 고함이 둘의 귓전을 때렸다.
“이 멍청한 놈들!”
두 사람은 눈을 의심했다. 설마 종리곡이 직접 이 절벽을 오를 줄이야.
제자를 쏘아보는 종리곡의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이송백은 물론이고 진금룡마저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게, 둘은 장문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절벽을 올랐다. 원칙대로라면 항명으로 목이 잘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상황.
종리곡이 차갑게 그들을 쏘아보다 외쳤다.
“진금룡! 이송백!”
“예, 장문인.”
두 사람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그러나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논죄는 나중에 하겠다.”
“……예?”
“우선 적들을 처리한다! 따라와라!”
종리곡이 대답도 듣지 않고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진금룡과 이송백은 순간 멍하니 서로를 보았다. 그러다 얼른 절벽을 박차며 종리곡의 좌우로 따라붙었다.
머리 위로 또다시 붉은 장력이 쏟아졌다. 아직 닿지도 않았건만 온몸을 태울 것처럼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종리곡의 눈이 새파란 빛을 내뿜었다.
“감히!”
쇄애애애액!
그의 검이 허공을 내그었다.
수십 개의 검영이 삽시간에 수백 개로 불어난다. 빼곡하게 쏘아진 검영은 이내 검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벽을 만들어 내었다.
이송백의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날아든 장력은 물론이고, 몸을 태울 것 같던 열기마저 종리곡의 검벽을 뚫어 내지 못했다. 주황빛 화염이 마치 해안에 솟아오른 절벽에 부딪힌 파도처럼 포말을 뿜어내며 부서지고 밀려났다.
‘이, 이게?’
천하삼십육검.
청명의 말에 따르자면, 가장 완벽한 방어의 검이자 대지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거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검이다.
그 천하삼십육검의 진수가 종리곡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송백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검은 무겁다. 아니, 사실은 그가 무거워지려 했다.
종남의 검이 꽃이 되려 하니 그의 검은 단단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지금 종리곡은 검으로 그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정확히는 종리곡의 검에 어린, 종남의 선조들이 숱한 세월에 걸쳐 이룩해 온 모든 것들이 이송백에게 전하고 있다.
‘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송백만큼 무겁지 않다. 그리고 진금룡의 검처럼 가볍지도 않다. 확연한 특징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치우치지 않는다.
사실 완전(完全)이라는 건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야.’
저만한 검을 발출하고 있음에도 종리곡의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펼쳐 내는 신법의 속도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 가파른 절벽을 발끝으로만 오르고 있음에도.
그 순간이었다. 이송백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자, 장문인, 앞에……!”
타오르는 열양장력 사이로 시커먼 무언가가 날아들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 남궁도위를 빈사 상태로 만들었던 그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미처 대처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들의 바로 앞에서 폭약이 터져 버렸다. 진금룡과 이송백이 본능적으로 절벽을 움켜잡은 채 몸을 숙였다.
하지만 그뿐.
흔들림은 느껴졌으되, 풍압이나 충격은 전해지지 않는다.
놀라 고개를 든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굳건한 종리곡의 등과 그가 펼쳐 내고 있는 검벽뿐이었다.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마치 철벽과도 같은.
‘이만한 폭발을……?’
격이 다른 경지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종리곡의 무위가 이송백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 종리곡이 일갈했다.
“뭣들 하느냐! 와라!”
“예, 장문인!”
이송백과 진금룡이 다시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다시 머리 위로 두 개의 폭약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종리곡마저 순간 이를 악물었다.
“장난질을.”
그런데 그때, 무언가가 그들의 앞에 유령처럼 나타나더니 날아드는 폭약을 후려쳐 절벽 멀리 날려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치 폭죽처럼 허공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풍영신개!”
“태상방주님!”
날아드는 폭약을 주저 없이 처리한 풍영신개의 몸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났다. 종리곡도 지지 않고 검을 회수하며 쏘아 낸 화살처럼 앞으로 쇄도했다.
“놈들이!”
퍼어엉!
이윽고 풍영신개의 장력이 절벽에 매달린 태양궁도의 가슴에 작렬했다. 그렇게 연이어 십여 장을 날려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린 풍영신개가 절벽 속으로 깊게 박힌 폭약을 뽑아내었다.
“이 거지 새끼가 어딜!”
계획을 방해하는 모습에 분개하여 장력을 날리려던 태양궁도의 목으로 차가운 검기가 날아와 박혔다.
“컥…….”
목을 부여잡은 이가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종리곡을 응시했다.
“나를 원망……. 음?”
목이 뚫린 채 피를 흘리던 이의 눈빛에 순간 알 수 없는 웃음이 어렸다. 실로 악독한 기운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단 걸 종리곡이 눈치챈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태양궁도의 몸이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다.
“이, 이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윽고 그 몸이 절벽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