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02화
“숙여!”
진금룡이 이송백의 뒤통수를 움켜잡고 절벽으로 들이밀었다. 거의 동시에 온몸이 뒤흔들릴 정도의 강한 풍압과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으득.
이를 악문 진금룡은 폭발이 진정되자마자 눈으로 종리곡이 있는 방향을 좇았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눈에도 핏발이 서려던 찰나.
한껏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걷히며 종리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장문인!”
다행히도 종리곡은 절벽에 발을 붙인 모습 그대로였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호들갑 떨 것 없다.”
“하나……!”
이송백이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제 입술을 깨물었다.
종리곡이 튕겨 나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찢기고 뜯겨 나간 의복 사이로 혈흔이 비쳤다. 충격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 것이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얼굴을 차게 굳힌 종리곡이 중얼거렸다.
이번 한 번은 어떻게든 막아 냈지만, 계속 이어진다면 쉬이 넘길 수 없을 터였다.
이곳에 매달린 태양궁도들은 각자 가슴에 커다란 폭약을 품고 있다. 심지어 이것을 특별한 장치 없이 열양기공만으로 터뜨릴 수 있다는 건, 지금 이 절벽에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폭탄이 가득하다는 의미였다.
“놈들은 가슴에 품은 폭약을 제 마음대로 터뜨릴 수 있다. 조심해라.”
“하, 하지만 어떻게…….”
이송백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거리를 두고 검기를 날릴 때는 폭발에서도 제 몸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을 코앞에 두고 검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 그 와중에 적의 품 안에서 터지는 폭탄에 어찌 대처하란 말인가.
“어떻게?”
종리곡의 눈가가 꿈틀했다. 마침 상황을 지켜보던 태양궁의 정예 하나가 종리곡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압!”
그의 양손에서 주황빛 장력이 솟구쳤다. 한 점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종리곡을 향해 퍼부으려는 듯 맹렬한 기세였다.
“장문인!”
이송백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종리곡이 고작 저런 상대에게 당할까 봐 놀란 게 아니다.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종리곡을 향해 달려드는 이의 얼굴에 어려 있는 선명하고 필사적인 각오가.
그러나 종리곡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날아드는 이를 맞이했다.
우웅!
한차례 검명을 떨친 종리곡의 검이 앞으로 뻗어졌다. 대단하게 쾌속하거나 강하지도 않은 검격이지만,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타다다닷!
검신이 타음(打音)을 남기며 허공을 연이어 찔렀다. 검기가 장력이 뻗어 나올 공간을 선점하며 흡사 하나의 거대한 방패처럼 적의 장력을 튕겨 냈다.
투우우웅!
하지만 그 순간, 당연히 물러나야 할 태양궁도가 외려 두 눈을 부릅뜨며 종리곡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새빨간 불꽃이 솟구쳤다.
또 한 번 폭발을 직감한 이송백이 두 눈을 부릅뜬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종리곡의 검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쇄도해 단숨에 적의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서걱!
가슴에 박힌 검이 이내 깔끔한 원을 그려 내었다. 태양궁도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아…….’
이송백도, 그리고 진금룡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파앗!
이윽고 잘린 태양궁도의 목이 위로 솟구쳤다. 가슴팍에 있던 폭약과 잘린 머리, 둥그런 두 개의 물체가 절벽에서 튕겨 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앙!
떨어진 폭약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절벽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이라 절벽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었다.
“터지는 게 있다면, 터지기 전에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다.”
절벽에 퍽퍽 부딪혀 가며 굴러떨어지는 적의 몸뚱이를 일별한 종리곡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절벽을 점거하고 있는 적들을 냉정히 헤아렸다.
이송백의 가슴이 난데없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게…… 종남의 검!’
까마득한 격차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생각한 적 있었다. 어쩌면 조금쯤은 따라잡은 게 아닐까. 저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만 느껴졌던 스승들의 경지를 어쩌면 조금 엿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종리곡의 검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진금룡에 뒤지지 않는 재능을 타고난 이가 진금룡이 살아온 인생의 두 배는 넘는 세월 동안 한시도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해야 닿을 수 있을 경지.
그런 경지를 마음가짐 하나로 쉬이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오오오오!”
그 순간, 커다란 고함이 귀에 꽂혔다.
진금룡과 이송백이 본능적으로 시선을 내리니 절벽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솟구쳐 오르는 남궁명이 보였다.
남궁명이 대동한 천우맹의 정예들이 지금 막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지금의 그들보다 더욱 도움이 될.
종리곡이 물었다.
“물러날 테냐?”
그러자 두 사람의 눈에 각오가 어렸다.
“종남에 물러남은 없습니다.”
“그럼 내 뒤로 붙어라.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훔쳐 내라!”
“예, 장문인!”
파앗!
종리곡은 사기를 북돋울 말 한마디 없이 단숨에 적들을 향해 훌쩍 몸을 날렸다. 진금룡과 이송백은 필사적으로 그런 장문인의 뒤를 따랐다.
‘진동룡.’
벼락같이 움직이며, 진금룡의 시선이 얼핏 절벽 위로 향했다.
‘너는 화산을 택한 게 옳은 선택이라 했었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네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백천에게는 확실히 화산이 옳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지금부터도 그러할까?
종남에는 있다. 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길이 되며, 심지어 앞에서 이끌어 줄 이가. 그러니 믿고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백천은 어떤가. 그 엉망인 몸으로도 선두에 서서 싸워야 할 처지다. 지금부터 펼쳐질 가시밭길을 과연 그가 홀로 열어 낼 수 있을까?
이미 백천은 상처 입었고, 해질 대로 해져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시밭길 한가운데를 헤쳐 나간다.
“소가주!”
그때, 남궁명이 남궁도위의 어깨를 움켜잡고 제 아래로 끌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소가주, 이곳은 제가 막겠습니다! 소가주는 보중하십시오!”
“안 됩니다, 총관님! 저는……!”
“시키는 대로 해라, 도위! 강제로 끌어내리기 전에! 나는 남궁의 총관이기 이전에 네 숙부다!”
들려오는 격한 목소리에 진금룡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태양궁도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절벽이 무너지면 위에 있는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말은 백천도, 그의 골칫덩어리 막냇동생도 죽는다는 뜻이다.
‘아직 보여 주지 못한 게 있다.’
그리고 아직 해 주지 못한 것도 있다. 진금룡은 절벽 면을 더 강하게 박찼다.
“절대 부수게 두지 않는다!”
그의 두 눈에 귀화와 같은 안광이 타올랐다.
* * *
“사형!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던 백천이 곧장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등 뒤의 이상한 느낌 같은 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절벽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어차피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가지. 이 길을 열어 무당과 함께 살아 나가는 것이다.
‘강하다.’
그들이 막아선 적들이 만만치 않음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 중 최강일지도 모른다. 화산도 이렇게 단독으로 한 문파와 정면으로 자웅을 겨뤄 본 적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화아아아악!
끓어오르는 열기가 연신 백천의 전신을 덮쳐 왔다. 숨쉬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무당의 생존자들을 짊어지고 있다. 저들을 뚫기 위해 이대로 걸음을 옮기는 건, 맨발로 가시밭길을 내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
“장문……대리. 우릴 두고…….”
무진 역시 의식이 혼몽한 가운데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백천이 딱 잘랐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이곳은 곧…….”
“압니다!”
백천이라고 모를까. 이 절벽은 곧 위험에 빠진다. 어쩌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진의 말대로 무당을 포기하고 그들이라도 살아서 나가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선택지였다. 백천에게는 그랬다.
“장문대리……!”
“빌어먹을! 사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인간이 왜 검을 잡습니까.”
“…….”
“검을 쥔 순간부터 목숨이란 건 내놓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지켜야 할 것은 목숨이 아닙니다.”
그래. 지켜야 할 것은 목숨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백천도 싸울 수 있다. 잃은 게 크고, 잃어 갈 것이 더 큼에도,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화산을 쉬이 보지 마십시오.”
백천의 눈이 강건하게 앞을 향했다.
“저 새끼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거든요.”
설령 그가 부족하다 해도, 저들은 부족하지 않다. 그가 잃은 것 이상을 저들이 채워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