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31화
1731화. 무엇이 옳은 건지. (1)
“갈아 드릴게요.”
당소소가 조심스럽게 백천의 붕대를 풀어냈다. 서서히 드러나는 백천의 앙상한 팔을 보며 당소소의 두 눈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회복이 빨라요. 외상은 거의 나았어요.”
“……그렇더냐?”
“네. 이제는 사숙께서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는지에 달렸어요.”
“그럼 나아질 것 같으냐?”
“그럼요. 당연히 나아질 거예요.”
당소소의 딱 자른 듯한 대답에 백천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당가주님께서는 어려울 거라 하시던데.”
“돌팔이예요.”
“응?”
당소소가 단호하게 부연했다.
“돌팔이라고요, 그 사람. 독만 주물러서 의술은 잘 몰라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백천이 이내 파핫 하며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며칠 만에 크게 웃은 건지 알 수도 없었다.
당소소는 눈살을 찌푸렸다.
“농담처럼 들으시네? 저희 아버지는 독왕이지, 의선(醫仙)은 아니잖아요. 다 믿을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백천은 더욱 황당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냐는 듯 그런 그를 당당하게 마주 보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네. 그러니까 꾸준하게 노력하세요. 계속하다 보면 손끝에 감각이 돌아올 거예요.”
꾸욱.
그사이 새 붕대가 빠르게 감아진다.
외상이 다 나은 팔에 붕대를 감는다는 건 무의미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 알지만, 당소소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정성을 다했다.
지금 그녀가 백천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다 됐어요.”
헌 붕대를 챙기는 당소소를 물끄러미 보던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를 끼쳤구나.”
“네? 별 이상한 말을 다 하시네요. 당연한 걸 가지고.”
그녀는 챙겨 온 것들을 빠르게 늘어놓았다.
“자, 보세요. 여기 환약은 매끼 챙겨 드시고, 들여오는 탕약도 남김없이 다 드셔야 해요. 그래야 회복이 빨라요.”
“그래.”
백천이 담담히 대답했지만, 당소소는 물러서지 않고 그의 두 눈을 빤히 응시했다.
의아함을 느낀 백천이 왜 그렇게 보느냐 물으려는데, 그녀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숙.”
“……음?”
“더는 병을 고칠 수 없으리라 여기는 환자에게 의원이 할 말이 무엇일 것 같으세요?”
“그야…….”
백천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병을 고쳐 줄 수 없는 의원은, 환자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미안하다……인가?”
“아뇨.”
당소소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도피에 불과하죠. 의원이 해선 안 될 말이에요.”
“……그럼?”
“사숙은 이길 수 없는 적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노력해야지.”
“어째서요?”
“그래야 이길 수 있을 테니까. 언젠가는.”
“맞아요.”
당소소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은 어렵지만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고쳐 드릴게요. 제가 반드시.”
“…….”
“그러니까 그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제 노력이 허무해지지 않게. 아시겠죠?”
그제야 의중을 알아챈 백천이 빙그레 웃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명심하마.”
“네, 그럼 전 나가 볼게요.”
당소소가 도구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그러마.”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백천의 곁을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게 백천을 위한 배려가 아님을 아니까. 아마 지금의 백천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조차 고통이리라.
당소소는 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방을 나섰다.
그러나 주저 없이 당당하던 걸음은 서서히 느려졌다. 그러다 방문을 닫고 어두워진 하늘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몸이 무너질 듯 휘청였다.
‘안 돼.’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흔들리는 모습도, 슬퍼하는 모습도 백천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의원의 얼굴은 환자의 거울과 같다. 그녀가 절망하면 환자 역시 절망한다. 의원은 절망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
아예 눈에 맺혀 버린 듯 잔상이 사라지질 않는다.
앙상한 팔, 잘게 떨리는 어깨, 담담함을 가장한 얼굴에 보이는 짙은 그림자까지.
가능할까? 장담했던 대로, 언제고 그녀가 백천의 팔을 고칠 수 있을까?
당소소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핑 고였다.
차라리 의원의 길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슴이 저미지는 않았을 텐데.
설령 가능하다 해도, 수없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그 긴 시간 백천은 깊은 절망을 안고 살아야 한다.
어찌 이리도 가혹할까.
하늘을 올려다본 채 눈물을 삼킨 그녀는 깊은 한숨으로 애써 속을 달랬다. 그리고 제 숙소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이윽고 무당이 내어준 그녀의 방 인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사실입니까?”
“그, 그렇다니까!”
“잠깐만! 제대로 다시 말해 보세요! 사숙을 고칠 수 있다고요?”
당소소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당소소는 거칠게 앞에 보이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엇?”
“소, 소소야?”
방 안에 있던 익숙한 이들의 당황한 시선이 쏟아졌다. 심지어 조걸에게 멱살 잡힌 백상까지도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당소소는 뭐에 홀린 듯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숙의 몸을 치료할 수 있는 영약이라니.”
윤종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물건이 실제로 존재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리 가까이에.
“이 개 같은 종남 새끼들! 그런 걸 가지고 있었으면 진즉에 내줬어야지!”
조걸이 울분이 터진다는 듯 바닥을 쾅 내리쳤다. 윤종은 침착하게 그를 말렸다.
“종남의 귀물이라고 하지 않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사람보다 물건이 중요합니까?”
윤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은 이런 논쟁이나 할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백상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의 진위였다.
“소소야.”
“……네, 사형.”
“네가 듣기엔 어떠냐? 말이 되는 이야기 같으냐?”
당소소는 고민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도 같아요.”
“정말?”
조걸이 흥분하여 되물으니 당소소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 장문인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해요.”
“아미타불. 어찌 그렇소이까? 최고의 의원이신 당가주께서도 전혀 가능성이 없다 하셨는데…….”
“의술은 과거가 지금보다 더 뛰어났거든요.”
혜연은 부연 설명을 원하는 듯 의아하게 당소소를 보았다.
“그게, 물론 의술이 퇴보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당연히 민간에 전해지는 의술은 예전보다 나아졌죠. 하지만…….”
“최고라 불리는 이들은 다르다, 이거야?”
“네, 사형. 그거예요.”
“그럴 수가 있나?”
조걸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갸웃거렸다. 윤종이 어깨를 으쓱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건 없지. 당장 이곳 무당만 해도 개파 이래 아무도 삼봉 조사의 경지를 엿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으냐?”
“아……. 그도 그렇네요. 소림도 마찬가지고.”
“아미타불…….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리 들으니 이해가 쉬웠다.
“그럼 그…… 성수 어쩌고 하는 데가 의가에서는 그런 위치라는 거야?”
“네. 성수장의 의술은 지금까지도 의가에서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성수장의 비약인 대라성수라면…….”
모두가 당소소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숙의 몸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긴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고칠 수 있다. 백천의 몸을.
그 말만이 마치 천둥처럼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순간 조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종이 당황했다.
“뭐 하는 거냐, 걸아! 어디 가?”
“여기서 우리끼리 떠들어 봐야 뭐 합니까? 가서 만나 봐야죠!”
“누굴?”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종남 장문인이지!”
“앉아, 인마! 경거망동하지 마라!”
“경거망동은 무슨 얼어 죽을. 사숙의 몸을 치료할 약을 찾았는데, 무릎 꿇고 싹싹 빌든, 두들겨 패든, 훔치든. 어떻게든 얻어 내야죠!”
“멈추라고, 이 새끼야!”
윤종이 결국 거칠게 쫓아가 소매를 잡아채었다. 조걸은 물러서지 않고 윤종을 노려보았다.
윤종이 소리쳤다.
“이건 태상장문인께 전한 말을 우리가 엿들은 거잖느냐!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부로 굴면…….”
“그럼 뭘 어쩌자는 겁니까? 그냥 손가락 빨고 기다립니까?”
“그게 아니지 않으냐! 내 말은…….”
“압니다! 안다고요! 하지만, 제기랄! 내버려 둔다고 뭐가 해결이 되느냐는 말입니다!”
조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저 새끼들이 내건 조건 못 들으셨습니까?”
윤종이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조건 때문에 기쁜 소식을 듣고도 차마 이런저런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종남의 제자가 되라니,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랍니까?”
조걸의 두 눈에 불길이 일었다.
“사람 새끼면 그렇게 굴면 안 되죠! 우리가 종남에 해 준 게 얼만데!”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예?”
“예사 약이 아니다. 종남의 귀물이지. 그런 물건을 문외로 함부로 돌릴 수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종남의 제자에게만 사용이 허락되어 있겠지.”
“…….”
“선조께서 그리 정하셨다면, 종남의 장문인도 다른 방법이 없잖느냐?”
“그럼 차라리 아가리를 다물고 있든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윤종의 한숨 섞인 말에, 조걸의 눈이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사형.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무슨 생각이라니?”
“설마 사형 지금…… 사숙을 종남으로 귀문(歸門)시킬 생각이신 겁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사숙이 어떻게 종남에 가?”
“그럼 왜 그렇게 태평합니까? 말해 보십쇼. 저 개 같은 놈들이 사숙을 고칠 방도를 두고 우릴 가지고 노는데, 종남에 쳐들어가 대가리를 죄 깨 버리는 한이 있어도 뺏어 와야죠!”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조걸과 윤종이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험악한 이 논쟁을 보면서도, 다른 이들은 차마 말리거나 말을 얹지 못했다.
백천을 구할 방법이 생긴 건 실로 큰 경사다. 설령 가능성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에 걸린 조건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아니, 그 약을 구하기만 하면 뒷일은 어떻게든 된단 말입니다. 예? 그러니까 우선…….”
“못 들었느냐?”
소식을 전한 후로 내내 침묵하던 백상이 입을 열었다.
“사형이 거절했다니까.”
“…….”
“설령 종남에서 그 약을 훔쳐 온다고 한들, 사숙이 순순히 그걸 먹겠냐고! 그 꽉 막힌 양반이! 보나 마나 벽 보고 획 돌아앉아 버리겠지!”
“강제로라도…….”
지지 않겠다는 듯 중얼대던 조걸은 이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하려던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뭘 어쩌자는 겁니까?”
“그걸 모르니 나도 너희한테 와서 이러고 있잖느냐! 방법을 모르겠으니까.”
조걸이 갑갑한 마음을 담아 연신 벅벅 마른세수했다. 방법은 찾았는데 속이 더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어떻게 얻어 낼 방법이 없을까요? 다른 걸 내어준다든가.”
“안 될 거다. 사문의 법도가 그러하다면, 장문인께서도 방법을 찾을 수 없으실 거다.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야. 원칙의 문제지.”
조걸이 다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려는 바로 그때였다.
“……가면 되지 않아요?”
“응?”
“……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당소소가 그들을 똑바로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사숙이 종남의 사람이 되면 해결되는 거 아니냐고요.”
“…….”
“그럼 사숙은 고칠 수…….”
“너!”
그 순간 조걸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거세게 일그러졌다.
“너…… 지금 뭐라 지껄였어?”
단 한 번도 그녀를 향해 본 적 없던 맹렬한 노기가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