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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32화


1732화. 무엇이 옳은 건지. (2)

“지금 뭐라 지껄였냐고!”

“걸아!”

윤종이 재빨리 조걸을 만류했다.

“잠깐, 잠깐만! 다짜고짜 화내지 말고…….”

하지만 그의 노력은 다시 한번 들려온 당소소의 목소리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내 말이 틀렸어요?”

“뭐?”

조걸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심지어 어떻게든 만류하고 중재하려던 윤종마저도 당황하여 그녀를 돌아보았다.

“소소야. 너, 지금 네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알고 말한 거예요.”

“…….”

“똑똑히 알고 그렇게 말했어요. 사숙이 종남에 귀문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소소야!”

윤종은 순간 넋을 잃었고, 조걸은 이를 갈아붙였다. 그리고 유이설은 이 순간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차마 이 언쟁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백상과 혜연만이 애꿎은 아랫입술을 짓씹을 뿐이었다.

“사형을 종남으로 보내자고?”

“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왜 안 되죠?”

“당소소!”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윤종이 드물게 언성을 높였지만, 당소소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 아니에요? 문적(門籍)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사숙이 종남으로 적을 옮긴다 해서 사숙이 사숙이 아니게 되기라도 하는 거예요?”

“적어도 더는 사숙은 아니겠지.”

윤종이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백천이란 이름은 없어질 테고. 그건 화산의 제자에게 내려지는 도명이니까.”

“그게 뭐 어때서요? 이름은 이름일 뿐이에요. 직위는 직위일 뿐이고요! 우리가 아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더냐?”

“그럼 그렇게도 어려운 문제예요?”

윤종까지도 시종일관 냉랭한 태도를 보이니 당소소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다.

“다들 정신들이 나가 버리기라도 했어요? 고작해야 소속이 바뀌는 문제잖아요!”

“…….”

“알량한 이름과 직위를 지키기 위해 사람이 남은 평생을 저 꼴로 사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자고요?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여기에 가둬 두고 평생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부축이나 해 줘요?”

“누가 그러자고 했느냐!”

“그럼 뭔데요!”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힌 윤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마음이 그런 건 아니나, 결국 당소소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잠시 냉기가 흘렀다. 이윽고 당소소가 조걸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사형도 윤종 사형이랑 같은 생각이에요? 사숙이 종남 사람이 되게 하느니, 차라리 저 모양으로 화산에서 평생 살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괴이한 일이다.

당소소의 말에 가장 먼저 극렬하게 반감을 드러냈던 게 조걸이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지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답해 보세요, 사형.”

조걸이 두 손을 살짝 말아 쥐었다.

그들에게 있어 ‘화산’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젠 일부를 넘어 전부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조걸에게는 화산이란 이름이 중요한 만큼 백천도 중요했다.

“난 이해를 못 하겠어요.”

당소소가 말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화산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건데요.”

“…….”

“나는 상관없어요. 사숙이 화산 사람이든, 종남 사람이든. 그래도 사숙은 사숙일 테니까. 내가 아는 백천이란 사람이니까. 그러니 내게는 사숙이 낫는 게,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프지 않은 게 백배는 더 중요해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듯 호흡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그 알량한 화산이라는 두 글자를…….”

“말조심해.”

큰 결심이 필요했던 당소소의 뒷말은 불쑥 날아든 고저 없는 목소리에 툭 끊어졌다. 유이설이 가라앉은 눈으로 당소소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가벼운 이름 아냐. 알량하다는 말을 붙일 만큼.”

평소 말수가 극히 없는 유이설이 이토록 단호하게 말하는 일은 드물었다. 당소소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그녀 역시 흥분해서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 이름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지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사실상 당소소 역시 그 이름의 의미를 함께 만들어 온 사람인데.

유이설이 괴로워 보이는 당소소를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뗐다.

“사형은 거부할 거야.”

앞뒤 다 자른 말이었지만 그 의미를 이해 못 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네, 알아요. 그러니…… 설득해야죠. 어떻게든.”

당소소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꾸역꾸역 말했다. 그녀 역시 확신 같은 건 감히 할 수 없었다.

다만 백천을 염려하고 생각하는 마음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조걸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머릿속이 복잡한 듯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나, 참……. 그럼 화산에 남겠다고 한 사숙을 우리가 설득해서 종남으로 내쫓자?”

“…….”

“저 꼴이 되어서라도 화산에 남겠다고 한 이를?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을?”

“네.”

“망할.”

조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소소에 대한 화는 아니었다.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해서였다.

답답한 마음에 늘 찾던 사람을 또 찾았다.

“사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종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렇죠?”

“종남 옷을 입은 사숙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니까.”

“하긴 전에 잠깐 본 것만으로도 못 봐 줄 광경이었죠.”

“그건 진짜 못 봐 주겠네.”

과거에 개방 잠입을 위해 변장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변장일 따름이었으니까. 윤종이 씁쓸하게 말했다.

“속이 뒤집히고, 위장이 쥐어뜯기는 것 같겠지만…… 얼핏 마주칠 때마다 사숙이 아무렇지 않은 척해 대는 얼굴이 더 속 뒤집히는 것도 사실이다.”

깊은 한숨을 흘린다.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소소.”

“네, 사고.”

“사형은 나아져?”

“……아뇨. 어려울 거예요.”

“나빠져?”

당소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유이설은 지금껏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얼마나 더 살 수 있어?”

긴 침묵이 흘렀다. 그것만으로도 이곳 모두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유이설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모두를 훑어보았다.

“생각이 같을 필요 없어. 어린애 아니잖아. 뭐가 옳은지 정해 줄 필요도 없어.”

유이설답지 않게 긴 이야기 끝에 짧은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니까 행동해. 각자 믿는 대로.”

“…….”

“대신, 하려면 제대로 해.”

그 순간, 모두의 눈에 작은 결심이 어렸다.

* * *

화산이라는 문파를 처음 상대하는 이들은 대체로 당황하곤 한다.

이유야 간단하다. 화산의 제자들이 그 명성에 비해 소탈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좋게 표현했을 때의 얘기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순진해 빠졌기 때문이다.

화산의 제자들이 정말로 순박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경험한 일로만 따지자면 웬만한 문파는 찜 쪄 먹고도 남을 지경이다.

그저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장문인인 현종과 장로들의 심성이 은연중에 그대로 이어진 게 원인이다.

결국 화산의 제자들은 어떠한 사안을 어찌 해결해야 할는지는 아주 잘 알지만, 그 와중에 다칠 이들을 염려하느라 냉정히 이행하진 못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백천은 당하는 이의 입장에서 그 성정들이 어떤 식으로 느껴지는지를 이번 기회에 여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돌아가라.”

“사숙.”

“돌아가라 했다.”

백천이 이를 악문 채 제 방까지 쳐들어온 이를 바라보았다.

“너까지 이러기냐?”

백천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노기가 아니라, 명백한 짜증이었다.

“다른 놈들은 그렇다 쳐도, 너만은 이러면 안 되는 게 아니냐?”

지금 앞에 선 이는 백천의 뒤를 이어 장문대리가……. 정확히는 언제고 화산의 장문인이 될 사람이었다.

윤종이 면목 없단 얼굴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다들 짜기라도 했느냐?”

“각자의 뜻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윤종을 한참 노려보던 백천 역시 이내 마주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 대놓고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대신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윤종을 응시했다.

“그래, 알겠다. 알겠는데…… 그럼 제대로라도 하든가.”

윤종은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백천을 종남으로 쫓아낼 수 있을지는 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감정을 사정없이 긁어 버리는 거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므로, 팔을 쓸 수 없게 된 백천을 적당히 조롱하기만 해도 그가 화산에 품은 감정을 몇 푼쯤 쉬이 덜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육체적으로 슬그머니 압박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지금의 백천은 평범한 양민보다 못한 처지니 말이다.

그뿐일까. 떠올리자면 수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딱히 대단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생각해 낼 만한.

그러나 화산의 제자들은 그걸 실행할 만큼 독하질 못하다. 그러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백천을 설득하려 했다. 최대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많이 어설펐습니까?”

“어.”

“그래도 소소 정도는…….”

“감았던 붕대를 세 번 도로 풀었다가 감으면서 자기가 당가를 떠나 화산으로 온 게 얼마나 좋은 선택이었는지 끝도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더구나. 한 번쯤 바꿔 볼 만하다면서.”

……하여튼 헛똑똑이 같은 게.

“백상 사숙도 왔다 갔습니까?”

“종남이 돈이 많아서 먹고살기 좋다더라. 심지어 나는 정당한 진가라서 거기 재산도 삼 할은 빼먹을 수 있을 거라던데?”

“그 미친 인간이.”

“응?”

“아니, 아닙니다…….”

정말로 그 인간에게 재경각을 맡겨도 될까? 화산이 망하고 마는 건 아닐까?

“혹시 혜연 스님은……?”

“파문도 당해 볼 만하다더라.”

더 미친 인간이 따로 있었다.

“사, 사고는요?”

“다짜고짜 쳐들어와 사람을 뚫어지게 빤히 보더니 아예 방구석에 죽치고 앉더라. 계속 그러고 있길래 사람 불러 끌어냈다.”

“……끌려 나가기는 했습니까?”

“그 짓을 세 번 정도 반복하니 다시 안 오더라.”

윤종은 때아닌 고뇌에 빠졌다. 듣다 보니 그게 그나마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상 이 문파의 미래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백천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걸이는 안 물어보냐?”

“솔직히 좀 듣기 무서워서요.”

“그건 그냥 나도 이야기 안 하마.”

“……감사합니다.”

윤종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화산 놈들이 다 그렇지. 의욕만 가득하면 무엇 하나. 의지만 있고 사람을 상처 입힐 용기는 없는 것들이.

“사숙.”

“가라.”

“예?”

백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팔이 멀쩡했다면 지금쯤 미간을 꾹꾹 지압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슨 헛소리할 건지 안 들어도 들리니까 나가라고.”

“아니. 일단은 들어 보기라도…….”

“나가라고 했다.”

결국 참다못한 백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종을 걷어찼다.

“아, 아니, 사숙! 힘으로 이러는 건!”

“그럼 패든가.”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그럼 꺼져.”

백천이 다시 한번 격하게 윤종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문밖까지 윤종을 몰아낸 그가 달아나는 등에다 대고 외쳤다.

“다시 얼씬거리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둔다!”

“내, 내일 뵙겠습니다.”

“오지 마!”

백천이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윤종이 저 멀리 전각 뒤로 사라지고 나서야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들이.”

알고는 있다. 저 멍청한 짓들이 다 백천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야심한 시각까지 그의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진 않았을 테다.

다만…… 백천은 조금 서글펐다.

저 마음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백천이 화산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온기 어린 마음들을 이렇게 받아들이고야 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던 백천이 문득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어이.”

전각 위 처마. 아무도 없는 그곳을 빤히 보던 백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남는 술 있냐?”

빈 허공에 던진 말이지만, 이내 대답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그가 머무는 전각의 처마 위에서.

“술이야 항상 있지.”

“어디서 났냐?”

“장문인 처소 근처에 창고 하나 있던데?”

무당의 창고에 있던 물건을 슬쩍했단 소리다. 백천이 피식 웃었다.

“나도 한 병 줘 봐. 조금 마시고 싶으니까.”

그러자 처마 위에서 팔베개하고 누워 있던 청명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그의 옆에는 미리 준비한 듯한 술 몇 병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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