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34화
1734화. 무엇이 옳은 건지. (4)
“뭐?”
윤종이 눈을 부릅뜨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냐?”
“드, 들으셨냐고요. 사형!”
“그 전에!”
문 앞에 선 조걸,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사, 사숙이 파문되었다는 소식 들으셨냔 말입니다.”
“뭔 개 같은 소리야!”
윤종의 입에서 드문 욕설이 터져 나왔다.
“지금 무당 내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허튼소리! 알면 우리가 먼저 알아야지, 그런 소식을 남에게 듣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아, 아니……. 그게 맞다는 건 저도 아는데.”
조걸의 얼굴은 여전히 질려 있었다.
그 표정에서 윤종은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로 무시해 버릴 수 없을 만큼 소문이 퍼져있다는 말이겠지.
윤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어, 어딜요?”
“확인 해야지. 태상장문인께로 간다.”
“…….”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은 빨리 진화해야 한다. 허튼 소문이 더 퍼져서 사숙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어서 가자!”
“예, 예!”
조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윤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린 이가 누군지 몰라도 반드시 찾아내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하지만 그런 윤종의 결심은 한 사람의 태연한 목소리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사실이다.”
“……예?”
윤종의 표정이 멍해진다.
잘못 들은 것인가? 아니면 그가 질문을 잘못했던가?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윤종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비단 윤종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 서 있는 오검들의 표정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윤종이 앞을 바라보았다.
굳은 얼굴의 현종, 그리고 오늘 아침에야 무당에 도착한 화산의 두 장로가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절로 마른침이 삼켜진다.
현자 배를 마주하는 것은 화산의 제자들에게 그리 드문 일도 아니건만, 윤종의 몸이 절로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건 아마 사문의 어른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제껏 없었던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태상장문인……. 지금 하신 말씀이…….”
그 순간, 현종의 눈빛이 윤종을 꿰뚫는다.
윤종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들은 적은 있다.
과거 그들이 강남에서 사패련의 천라지망에 신음할 때 태상장문인의 눈빛은 그때까지 화산의 누구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차고 날카로웠었다 했다.
직접 보지 못한 일이기에 그저 웃음으로 넘겼던 말. 하지만 지금 윤종은 어째서 제자들이 다들 같은 말을 그에게 전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종의 눈빛은 그만큼이나 차고 냉정했으니까.
그렇기에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자, 장문…….”
“왜입니까?”
더듬더듬 되물으려는 백상의 말을 끊고 윤종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물어야 할 것이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혼란으로 뒤죽박죽 뒤섞인 머리는 겨우 이 말만을 짜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 이곳에 서서 현종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어째서요!”
단 한 번도 현종에게 격한 소리를 내어 본 적이 없는 윤종이다. 하지만 지금의 윤종은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냐?”
“예, 태상장문인. 어째서…….”
“월권(越權).”
“……예?”
현종의 두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장문대리란 화산 장문인의 자리를 대리하는 위치일 뿐.”
“…….”
“그 자리에 있다 하여 문도들의 생사여탈에 대한 권한을 쥔 것이 아니다. 장문대리는 그저 장문인이 없는 곳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여 명을 내리는 이에 불과하다.”
윤종이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하나 화산 일대제자 백천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제자들을 위험에 밀어 넣었다. 적이 점거한 절벽으로 대책 없이 제자들을 이끌어 모두를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태, 태상……장문인. 그건…….”
“만일!”
윤종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찰나, 현종에게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온다.
“절벽을 벗어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화산이란 문파는 멸문지경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완벽한 정론이었다.
특히나 아차 했으면 화산의 모든 제자가 그 절벽 위에서 비명횡사했으리란 사실은 부정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드시 해야 했던 일이…….”
“반드시?”
현종이 노기에 찬 눈으로 윤종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 윤종이 또 한 번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 알량한 영웅심으로 문도들을 모두 사선에 밀어 넣는 것이 정말 반드시 내려야만 했던 결정이더냐?”
“…….”
윤종은 물론이고 다른 오검들의 눈에도 혼란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그건 장문대리 홀로 결정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일은 천우맹의 요청으로……!”
“그 요청의 가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더냐?”
“그건…….”
윤종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백천에게 있다.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윤종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현종이 없었던 그곳에 분명 존재했었던 이를.
“장문인…….”
오검들의 앞에 앉은 이들 한쪽에 그가 앉아 있었다.
운암.
실질적으로는 백천에게 모든 권한을 내어주고 보좌하는 역에 그치고 있다고 하나, 명목상으로 현 화산의 장문인은 분명 운암이었다.
그리고 윤종은 무당에서 벌어진 모든 결정에 있어, 백천이 운암에게 단 한 번의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당주나 부당주의 자리를 맡지는 않았다 한들, 분명 이 여정에 동행했던 그에게 말이다.
“하, 하지만 그렇다 하여 파문이라니요. 태상장문인, 이건…….”
“과하더냐?”
“저는…….”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잃을 만한 일을 벌여 놓고도 파문이 과하더냐?”
“…….”
윤종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아 희생자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나빠 제자들을 잃었다 해도 너는 똑같이 말할 수 있더냐?”
“…….”
“스스로의 목숨을 내거는 것은 협심이나, 타인의 목숨을 내거는 것은 아집이다. 그 아집의 대가로 파문이 과연 과한 것이더냐?”
현종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너는 과하다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일을 그냥 넘겼을 때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더냐?”
한 치의 틀림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윤종은 납득할 수 없었다. 백천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장문대리의 자리를 내어준 것은 다름 아닌 현종이 아니던가.
“다른 징계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굳이 파문이라는 극단적인 벌을 내려야 할 정도로…….”
하지만 윤종은 스스로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태상……장문인. 혹여?”
“그만 가 보거라.”
“…….”
“너희가 어떤 말을 하건 내 결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돌아가거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조걸이 막 발작하려 하자 윤종이 그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사형!”
“일단 나가자.”
“아니 사형 여기서 물러나면!”
“알았으니 나와!”
윤종이 조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를 끌고 나온다. 그러자 백상과 유이설, 당소소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둘을 따라나섰다.
마지막 순간 유이설이 알 수 없는 눈빛을 현종에게 보냈지만, 현종은 그 눈빛에 화답하지 않고 식어 버린 찻잔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검들이 밖으로 나가자 지금껏 침묵하던 현상이 입을 열었다.
“사형.”
“…….”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입니까?”
그 말에 현종이 눈을 감는다.
“사형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또 들여야 하겠지.”
현종의 두 눈에 씁쓸함이 어렸다.
“지금은 전시다. 당장 다음 전쟁이 지난 뒤에 녀석이 살아 있을 거라 누가 보장할 수 있더냐?”
이미 현종은 모든 것을 들은 뒤였다.
생각 같아서는 백천을 이곳에 꽁꽁 묶어 두고 그들만 전장에 나서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 혈궁의 무리가 백천에게 원한을 품고 이 무당의 경내까지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듣지 않았던가.
혈궁은 중원의 무인들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막측한 사술에 능한 이들. 그런 이들에게 노려진 이상 후방 역시 백천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종이 아는 백천이라면, 몸이 어떤 상황이든 간에 홀로 뒤에 남으려 들지는 않을 터. 결국은 그가 화산의 장문대리로 존재하는 한 언제고 목숨의 위기와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사형…….”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현상이 한숨으로 현종을 말리는 걸 포기하자, 이번에는 현영이 입을 열었다.
“아이들의 충격이 적지 않을 겁니다.”
“…….”
“어쨌거나 백천이는 백천이입니다. 아무리 청명이가 있고, 윤종이가 있다지만, 그 녀석이 화산의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한다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화산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의 파문. 그 여파가 화산을 어떠한 곳으로 만들지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다만 적어도 그 영향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공들여 쌓았던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화산에 있어 백천이란 주춧돌이나 다름없는 이였으니까.
“그럼에도 정말……. 정말 생각을 바꾸지 않으실 겁니까?”
현종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쩌면 현종의 고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현종은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러서려 들지 않았다.
몇 번의 늦은 결정. 몇 번의 떠넘김. 그리고 몇 번의 외면.
후대를 생각한다는 그 변명 속에서 그가 잃은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현종은 이번만은 잃을 생각이 없었다. 설령 이 결정이 화산에 심대한 충격을 준다고 해도.
현종은 그날 화산의 문을 열어젖혔던 아이의 미래를 닫아 버릴 수 없었다.
“원시천존.”
현종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왜 막으시는 겁니까?”
“…….”
“아니. 태상장문인이 하시는 말씀이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런 일로 파문을 하면 솔직히 여기서 멀쩡히 화산 무복 입고 있을 인간이 몇이나 됩니까?”
“…….”
“물론 사숙이 개중에 좀 더 정신 나간 인간인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걸아.”
“안 되겠습니다. 제가 다시 들어가서 담판을…….”
“걸아!”
윤종이 호통치듯 외치며 조걸을 바라보았다.
“……태상장문인께서는 사숙을 파문하려는 게 아니다.”
“예? 그게 무슨…….”
“사숙을…… 종남으로 보내시려는 거다.”
“…….”
조걸의 얼굴이 순간 괴상해진다. 머리에 몰렸던 피가 식자 그제야 윤종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파, 파문 아닙니까?”
“…….”
“파문되었던 제자가 다시 문에 돌아올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겠지.”
“그럼……. 그럼 다르잖습니까? 사숙이 파문되어 버리면 영영 종남의 제자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사숙은…….”
조걸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사숙은…….”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으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백천을 종남으로 보낼 방법이 없다. 그건 백천이 어떻게든 거부할 테니까. 설득 같은 말랑한 말로 그의 마음을 돌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철벽같은 백천의 입장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그래도…….”
“태상장문인께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여기신 모양이다.”
조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하지만 사숙은요?”
“…….”
“논리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숙은요? 죄도 없이 화산에서 파문되어 버릴 사숙의 심정은 어쩝니까? 이게 진짜 옳은 방법입니까?”
윤종이 눈을 감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형?”
무엇이 옳은가.
여전히 윤종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옳음을 찾아가는 고행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조걸의 손이 윤종의 어깨를 아프도록 움켜잡는다.
눈을 뜬 윤종이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를 내뱉으려 하는 순간, 윤종은 깨달았다. 조걸의 시선이 그에게 닿아 있지 않다는 것을.
조걸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은 이유가 그저 답답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윤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윤종은 보아야 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이라는 감정을 가득 품고 선 이들. 그런 이들 사이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숙…….”
새하얀 화산의 무복을 입은 그들의 장문대리가 표정 없는 얼굴로 그들을 향해. 아니, 현종이 있는 전각을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