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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36화


1736화. 버텨 낼 수 있을까? (1)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호가명은 그리 생각했다. 굳이 열 길 물속이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지금 그의 앞에 선 이는 유달리 그 속내를 헤아리기 힘든 이였다. 어쩌면 저 얼굴을 감고 있는 붉은 붕대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도무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붉은 눈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호가명은 저들의 뜻을 짐작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출신’에 있다고 생각했다.

혈궁.

그들은 이질적이다. 무척이나.

그들은 무파이면서도 무파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새외이면서도 다른 새외의 문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중 호가명을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저들이 대체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알기로 혈궁은 하나의 종교다. 과거에는 혈궁이 아니라 혈교(血敎)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지 않은가.

그래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들은 대부분 공통된 두 가지의 목표를 가진다. 하나는 그들이 모시는 이의 뜻을 따르고 이해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바로 그 뜻을 전파하는 것.

호가명이 혈궁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저들은 종교의 탈을 쓰고 있되, 전도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만의 교리를 따르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알 수가 없다. 전도하지 않는 종교의 수장이 대체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는지. 그가 숨 쉬고, 걷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말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상할 것이 없다고, 그런 종교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새롭게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렇다면 저들은 어째서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는가?’라는 의문이었다.

하나 그 의문을 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말라 비틀어져 버린 고목처럼 서 있는 혈궁주에게서는 그 어떤 소통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알아낼 수 있을까?’

아무리 장일소, 그의 주군이라 한들 저자의 속내를 짚어 낼 수 있을까?

호가명이 그런 의문을 품을 무렵, 장일소가 입을 열었다. 그 특유의 독특한 비음과 함께.

“흐음.”

장일소가 혈궁주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 짙은 흥미가 떠올라 있었다.

“어떻지?”

“…….”

“칙칙하고 더러운 굴에서 나와 본 세상이 더없이 즐겁기라도 하던가?”

그 말에 혈궁주의 얼굴을 감싼 붕대가 살짝 꿈틀댄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너희가 언제고 다시 그 더러운 굴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장일소를 바라보는 혈궁주의 두 눈에서 은은한 혈기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장일소의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알잖니.”

장일소가 쿡쿡 웃는다.

“어차피 다른 길 따위는 없단다. 이제 그 더러운 굴마저도 너희에게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니까.”

“알고 있다. 네 말대로.”

그 순간, 혈궁주에게서 쇠를 긁어 대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전보다 조금 더 짙고 무거워진 목소리였다.

“다른 길 따위는 없다는 걸.”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혈궁주의 눈이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장일소를 응시한다.

“우리가 그동안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인정하지.”

“깔끔하군.”

“이제부턴 다를 것이다.”

“…….”

장일소가 말없이 혈궁주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혈궁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장일소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보지.”

“…….”

“가도 좋단다.”

혈궁주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단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천막을 빠져나갔다.

“…….”

그러자 호가명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장일소를 바라본다.

“려, 련주님.”

분명 혈궁주의 의도를 알아보겠다고 부른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짧은 문답으로 뭘 알아냈다는 말인가.

“흐으음.”

호가명이 채 그 당황을 표현하기도 전에, 장일소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늘어진다.

“재미있군.”

“련주님, 대체…….”

“응?”

장일소가 고개를 뒤로 젖혀 호가명을 바라본다. 유달리 붉은 그의 입술이 묘하게 휘어졌다.

“왜 그러니? 가명아.”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려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쯧쯧. 가명아, 가명아. 뭘 그리 뻔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장일소가 젖힌 고개를 다시 들고는 제 앞에 놓인 잔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말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지어낼 수 있는 것에는 반드시 거짓이 섞이기 마련이니까.”

장일소가 찰랑거리는 술잔을 가만히 바라본다. 독한 주향이 넘실 풍겨 왔다.

“하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것도 있지. 겉으로 보기에는 물과 다름없을 정도로 맑은 술이라 한들, 풍기는 향은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사라졌더군.”

“사라졌다 하시면?”

장일소가 쿡 하고 웃는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글쎄. 두려움이라 해야 하나, 껄끄러움이라 해야 하나. 그런 얄팍한 말로는 다 전할 수 없지만, 늪에 빠진 인간이 보여 주는 절망 같은 게 있었지. 저들에겐.”

“…….”

“그런데 그게 없어졌다.”

“저들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었단 말씀입니까?”

“글쎄.”

장일소의 두 눈에 요사스러운 빛이 흘렀다. 마치 세상 모두를 조롱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두려움에 시달리던 사람이 언제 그 두려움을 벗어 던지는 줄 아니?”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란다. 하나는 그 공포의 근원이 사라진 경우.”

“…….”

“다른 하나는…….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때지.”

장일소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신경 쓸 것 없단다. 다른 생각을 품은 건 아닌 모양이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저들이 하려는 게 우리가 하려는 일과 딱히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고 해야겠지.”

호가명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해석하자면 저자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분명하나, 지금은 그저 덮어 두자는 뜻이다. 하지만 호가명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덮어 둔 일은 반드시 곪아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언젠가는 그 곪아 버린 상처가 커다란 올가미가 되어 련주님의 목을 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장일소가 잔에 든 술을 천천히 들이켰다.

“아주 잘.”

독한 주향이 입안 가득 몰려온다. 마치 독이라도 삼킨 것처럼 뜨겁고 아찔했다.

“차라리…….”

“알잖니, 가명아.”

“…….”

“팔에 독화살이 박혔다고 해도, 눈앞에 적이 있으면 느긋하게 뽑고 처치할 시간 따위는 없단다. 나중에 그 팔을 잘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싸워야 하는 법이지.”

“미리 잘라 내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럼 적이 나를 죽이겠지. 한쪽 팔이 떨어진 병신 따위야 쉬운 상대일 테니까.”

호가명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장일소의 말처럼 그도 알고 있었다.

엉망진창이다.

하오문도, 태양궁도, 혈궁도, 모두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련이란 이름으로 저들을 묶어 두긴 했지만, 이 느슨한 연결은 언제 끊겨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또한 호가명은 알고 있었다.

전쟁이란 애초에 이런 것. 승과 패가 쌓일수록 서로에 대한 반감만이 가득해진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전쟁이었다.

다만…….

“술이 있어서 참 다행이지 않니?”

“……련주님.”

호가명은 장일소를 위로하려 했다. 누구보다 여유롭고 느긋해 보이나, 이 상황에서 그가 짊어진 부담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걸 호가명만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장일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호가명의 예상에서마저 조금 벗어나 있었다.

“득시글대는 돼지 놈들이 풍기는 구역질 나는 냄새를 조금은 가려 주잖니.”

“…….”

호가명이 멍한 얼굴로 장일소를 바라보았다.

변함이 없다.

이 사내는, 이런 상황에서도……. 잠시나마 약한 마음을 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하지만 가명아.”

“……예, 련주님.”

“익숙하잖니?”

장일소가 부드럽게 웃으며 호가명을 바라본다.

“…….”

그 눈빛을 한참 바라보던 호가명이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 익숙하다.

저열한 아귀들이 손톱만 한 이득을 위해 악다구니를 써 대는 광경도.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의 등에 칼을 박아 넣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광경도. 그리고 그 적의 가득한 놈들 사이에서 웃으면서 싸우는 방법도.

사파의 가장 깊은 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그들에게는 딱히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일이 이런 와중에도 똑같이 벌어진다는 게 우스울 뿐.

하지만 또 이해할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전쟁이 격해질수록 사람은 저열해진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단다. 강호를 뒤흔드니, 한 세력의 주인이니 해 봐야, 어차피 좀 커다란 돼지 새끼에 불과하니까.”

“…….”

“쥔 목줄만 놓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는 이를 드러내지 않을 거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호가명은 그 말의 이면 역시 모르지 않았다. 저들의 목줄을 쥐고 통제하며 이만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갉아먹는 일인지.

장일소의 하얀 얼굴에 언뜻 보이는 보기 드문 음영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텨 내야 한다. 전쟁이란 오물을 삼키며 나아가는 것이니까. 마지막까지 견뎌 내지 못하는 쪽이 패한다. 그 사실을 장일소도 호가명도 알고 있었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단다.”

“예?”

어느새 장일소가 빙긋 웃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물론 나도 허세를 부릴 입장은 아니지. 언제 어디서 목에 칼이 박힐지 모를 상황이니까.”

장일소가 잔에 채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의 등에는 이미 여러 자루의 독 묻은 날이 들이밀어져 있다. 그가 조금만 빈틈을 보인다면 그 비수들은 여지없이 그의 등을 꿰뚫을 것이다.

하지만 제거할 수도 없다. 그 비수들을 밀어내는 순간, 그가 원하는 것들은 영영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는 것.

등 뒤에서 그를 겨누는 비수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아가는 것이, 천하의 패자가 되려 하는 이들이 당연히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렇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란다.”

“…….”

“전쟁이란 단순하지. 반드시 완전할 필요는 없단다. 그저 적보다 조금 나은 걸로 충분하니까.”

장일소의 두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전쟁의 늪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잖니.”

그들은 현실과 욕망이라는 늪에 빠져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더욱 깊이 빠져드는 진창에.

하지만 저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 지금 진창 속에 있을 것이다. 장일소가 빠진 진창이 아니라 이상이라는 진창 속에 말이다.

“그들이 스스로 무너질 거라 보십니까?”

“글쎄.”

장일소가 빙긋 웃었다.

“그리 쉬울 리는 없겠지.”

“…….”

“하지만 알아 두렴. 저런 것들을 무너뜨리는 건 현실의 칼 같은 게 아니란다. 저들은 제 목에 칼이 박혀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 다만…….”

장일소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난다.

“믿어 왔던 이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지.”

“…….”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말이다.”

장일소의 두 눈이 짙은 허무와 열기를 동시에 담았다.

“벗어날 수 있을까? 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그 모순을? 버텨 낼 수 있을까? 그 모순의 상징이 무너지는 것을?”

장일소가 쿡쿡대며 웃는다.

“아쉽군. 마주 앉아 술잔이라도 기울인다면 더 즐거울 텐데.”

장일소가 술잔을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술을 넘긴다. 화산검협과 마주했던 때의 흥취가 그 술에 담겨 있었다.

* * *

그리고 그 시각.

허무와 열기. 장일소의 두 눈에 담겼던 것과 기이할 정도로 닮은 눈빛을 띤 한 남자가 제 앞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백천.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화산 대제자 백천.”

“…….”

“태상장문인을 뵙습니다.”

너른 대전에 숨 막힐 듯한 긴장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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