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42화
1742화. 보이지 않습니다. (2)
우드득.
손끝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감각이 지독하리만치 선명했다.
치솟는 뇌수, 생명이 빠져나가는 이의 얼굴, 뒤이어 비릿하게 퍼지는 피 냄새.
진득하게 달라붙는 현실적인 감각 속에서도 기이하게 정신은 점차 몽롱해져 간다.
‘뭐였더라……?’
숨이 끊어진 이를 내던진 후, 달려들어 오는 다른 이의 심장에 좌수를 박아 넣었다.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한 이가 마지막으로 힘없이 칼을 휘두른다. 그 칼날이 왼쪽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통이 번진다. 이제는 익숙하다.
아니. 익숙한 게 맞나?
볼을 타고 진득한 피가 흘렀다.
뭔가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꽤 중요한 것이었을 텐데.
콰각!
얼굴을 향해 날아들던 검이 손가락의 반지와 맞물린다. 쇠와 쇠가 충돌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쿠우웅!
묵직하게 뻗은 주먹이 활짝 열린 적의 가슴 한복판에 박힌다. 산산이 부서진 가슴뼈가 등을 뚫고 튀어 나가는 광경이 얼핏 보였다.
서걱!
와중에 무언가가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발끝은 오직 앞을 향하고 있었다.
“커헉!”
갑갑한 신음과 함께 등 뒤의 누군가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흘끗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처박힌 이의 풀린 눈이 순간 시야에 들어왔다.
‘이름이?’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등 뒤를 채우는 이들에게 관심을 준 적 없으니까.
시선은 다시 앞으로 향한다. 달려드는 적, 그들을 넘어 저 먼 곳 어딘가로.
어디일까? 아니,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잊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다.
그럼에도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가슴 깊은 곳부터 치밀어 오르는 걸 버텨 낼 수 없으니까.
그의 안에는 언제나 매캐한 염화(炎火)가 타오르고 있다.
걸음을 멈추면 그 자신마저 태워 버릴 것 같은 분노. 누구인지 모를 이를 향한 끝없는 증오. 목을 칼로 긁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갈증.
언제부터였더라, 이 정체 모를 갈증에 시달렸던 게?
찰박.
땅에 고인 피를 밟고 지나간다. 앞에서 달려드는 이들의 면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덤덤하게 읽는다.
분노와 울분, 공포와 좌절. 누군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울부짖고, 또 누군가는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악을 쓴다.
그 모든 게 제멋대로 뒤섞여 코앞에서 끓어오른다.
한없이 완벽하고 생생하게 담아 낸다고 해도, 그림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화폭 안에 담겼기 때문이다.
그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그저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콰앙!
달려들던 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날아간다.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찢긴 배에서 내장이 뭉쳐 쏟아지고, 격하게 젖혀진 고개에선 피가 솟구친다.
이 끔찍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모든 게 그저 몽롱한 꿈 같았다.
시야에 그의 손이 보인다.
피로 물든 창백한 손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형형색색의 반지가 잔뜩 끼워져 있다. 손목에 걸쳐 있는 너른 장포는 적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기이하다.
분명 그의 것인데, 모든 게 그의 것이 아닌 듯했다. 지독한 위화감에 구역질이 일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콰앙!
어디선가 날아든 거대한 도와 급히 펼친 푸른 강기가 충돌했다.
육신이 으스러질 듯 격한 통증이 번졌지만, 그마저도 현실감을 되살려 주지는 못했다.
산발한 노인이 두 눈으로 피눈물을 쏟으며 재차 공격해 왔다. 백발이 휘날릴 때마다 섬뜩한 눈빛이 처절하게도 번뜩였다.
콰앙!
하지만 그 도를 막는 주먹엔 한 올의 감정조차 어리지 않았다.
서걱!
팔목에 긴 상처가 생겨난다.
서걱!
가슴이 가로로 길게 베인다.
서걱!
도 날이 목 옆을 아슬아슬하게 베고 지나간다.
날아드는 도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독스러울 만큼 쌓아 올린 무학, 그리고 그 무학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을. 흘러넘칠 듯한 간절한 마음까지도.
몽롱한 와중에도 저 감정들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야를 가늘게 좁히며 노인의 뒤편을 응시했다. 무리의 대부분이 다급히 몸을 돌리며 달아나는 꼴이 보였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
글쎄, 어떨까.
우우웅!
푸른 강기가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뭉쳤다. 손가락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두 개의 반지가 마치 푸른 화염을 집어삼키듯 기운을 빨아들였다.
파아아아앙!
이내 두 줄기의 푸른 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전력으로 휘둘러지던 도가 순간 멈칫했다. 아주 찰나였지만, 목숨을 건 싸움에선 그 틈도 절대 짧지 않다.
잠깐의 머뭇거림 끝에 도가 막아선 것은 제게로 날아드는 반지였다.
카아아아아앙!
반지와 맞부딪힌 도가 뒤로 튕겨 올랐다. 동시에 새하얀 손이 벼락처럼 노인의 가슴 중앙을 꿰뚫었다.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 안에 경악, 절망, 안타까움이 일렁였다.
그에 대한 감상은, ‘역겹다’였다.
꼴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래, 처음에는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망설인다. 어떻게든 주저한다.
그리고 그 찰나의 망설임이 지켜야 할 것은 물론, 제 목숨까지 끊어 놓고 만다.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장 격렬한 순간, 모든 것과 모든 것이 충돌하는 순간, 세상은 숨겨 놓았던 속살을 드러낸다. 본디 그 속살은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겨운 것들로 차 있다.
콰앙!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그대로 부서진다. 뇌수와 부러진 뼈들이 비산한다.
숨소리가 점점 더 크게 귓속을 메운다.
흐릿하다. 한층 더 몽롱하다. 피부에 쏟아지는 피가 뜨거워도, 몸을 찌르는 살기가 날카로워도, 폐부가 터질 듯 숨이 거칠어져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내면에 있는 화염만이 차츰 생생해질 뿐이다.
숯덩이를 삼킨 듯한 울분과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증오.
그러나 이를 이기지 못해 악을 쓰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다만 비틀비틀 끝없이 앞으로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비웃었다.
‘뭐였더라?’
글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디딘 발이 이젠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시신을 짓밟았다.
언제고 모두가 공평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시선이 위로 향한다.
작열하는 태양이 그를 굽어보고 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일평생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은 절로 그 태양을 향해 뻗어졌다.
소매가 흘러내리며 숱한 상처가 드러났다. 그제야 보였다. 이 옷을 물들인 건 적의 피가 아니라 온전히 그의 피다.
극심한 현기증과 구역질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태양을 향해 뻗은 손을 조금 더, 그리고 더 허공에 휘저었다. 안타까울 만큼 절박하게 뻗었다.
눈앞이 몽롱한 가운데, 타는 듯한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초점 흐리던 눈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느리게 좌에서 우로, 주변을 살폈다.
화려하게 치장했음에도 야전의 거친 속살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 천막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던 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몸을 덮고 있던 부드러운 이불이 스르륵 걷히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흉터가 종횡하듯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꿈속에 입었던 상처들도 이젠 빛바랜 흉터로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 모든 일이 이미 한참 지나갔음을 다시 알려 주듯이.
장일소가 창백한 손끝으로 상체에 새겨진 흉을 가볍게 매만졌다.
아무런 감흥도 없고, 상관도 없다. 어차피 모두가 보는 건 그가 걸치는 화려한 장포이므로. 그 안의 몸뚱이가 어떤 꼴인지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미처 다 닫지 못한 천막의 문은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틈새로 이미 꼭대기까지 떠오른 해가 보였다.
꿈속에서 그랬듯, 느리게 해를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닿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손을 뻗을 가치가 있는 것.
아마…… 그때도 분명히 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 비할 수 없이 극심해진 갈증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좋은 날이군.”
장일소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 * *
“부산스럽다고…….”
기다란 손가락이 붉은 입술 근처를 톡톡 두드렸다.
“무당산이 말이지?”
“예.”
콧소리를 흘리며 장일소가 물었다.
“흐음.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적들이 몰려 있으니, 당연히 무당산 내에 감시의 눈을 두었다. 하지만 내부까지 들어가 자세한 원인을 알아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알아내겠습니다.”
“아니, 됐다. 내버려 두렴. 이유야 뭔들 어떠니.”
장일소가 쿡쿡 웃었다.
“중요한 건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지. 적이 보고 있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부산을 떨 만큼 심각하단 소리니까.”
호가명이 수긍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흥얼거리던 장일소가 물었다.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또 싸우고……. 그러고도 지치지 않고 거듭해 싸우면 어찌 되는 줄 아니?”
“련주님처럼 되겠지요.”
“…….”
즐겁게 웃던 장일소가 멈칫하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호가명을 보았다. 자신이 기대하던 대답이 아닌 듯했다.
“……틀렸습니까?”
“끄응. 아니, 뭐 맞기는 하지만……. 보통은 아니지. 보통은…… 상처가 곪아 들어가지.”
뺨을 가볍게 긁적인 장일소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한창 머리에 열이 올라 있을 때는 모른단다. 몸에 찬 고름이 얼마나 자신을 좀먹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고 머리에 치솟았던 열이 빠졌을 때쯤에야 알게 돼.”
장일소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미 상처가 모두 썩어서 되돌릴 수 없어졌다는 걸.”
호가명이 짧은 탄식을 토했다.
피해를 입은 건 이쪽뿐만이 아니라는 장일소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저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건했던 건, 비단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 상처를 돌아보지도 못할 만큼 격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육신 역시 처참한 상처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치명적이라는 걸.
장일소가 호가명을 보며 물었다.
“가명아. 어찌하는 게 좋겠니?”
눈에 희미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잠시 말을 고른 호가명이 말했다.
“저라면…… 놈들의 혼란을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수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치겠지요.”
“흐음.”
장일소가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얼핏 긍정적인 반응처럼 보이지만, 호가명은 이게 긍정의 신호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것도 좋겠지. 확실히 그것도 즐겁겠어. 하지만…… 좀 더 보고 싶지 않니?”
“무엇을 말입니까?”
“상처를 째고, 고름을 짜낸다면 분명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 럴 수 없다면 어떨까?”
“…….”
“제 몸이 썩어 가는 걸 알면서도 손쓰지 못하는 아둔한 돼지들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도 꽤 즐거울 것 같은데 말이야.”
장일소는 확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들이 겪는 소요가 무엇 때문이건, 결코 수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마 맞을 것이다. 장일소의 예측이니까. 그럼에도 호가명은 단 한 가지 불안을 놓지 못했다.
“매화검귀도 수습하지 못…….”
하지만 말을 꺼냈던 그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의문이 스쳤기 때문이다.
장일소는 왜 그와 독대했을까? 그를 잡아 두는 게 이번 전쟁에서 이길 방법이라는 호가명의 전술을 전적으로 신뢰해서? 정말?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이유가 그것뿐이었을까?
“……확인하셨군요.”
장일소가 흥미롭단 시선으로 호가명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거 확인하러, 아니…….”
호가명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손댈 수 없게 만드신 겁니까?”
장일소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살짝 멈추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술잔을 건네듯 느리게 앞으로 내밀었다.
“누구나 버릴 수 없는 게 있단다.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거지.”
“…….”
“그런데 때로는 그게…… 자신을 진창으로 이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더구나.”
이 순간, 호가명의 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듣는 한 사람이 있었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검수였다. 표정도, 정체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생각하니?”
“…….”
“응?”
그 정체 모를 이를 향해 장일소가 잔을 내밀었으나, 복면인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감히 장일소의 잔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장일소는 어떤 불쾌한 기색도 없이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런, 이런. 영 흥취를 모른다니까.”
내밀었던 잔은 장일소가 도로 가져가 들이켰다.
이를 바라보는 복면인의 두 눈에는 숱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휘몰아쳤다. 백천의 두 눈에 담긴 것과 실로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