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48화
1748화. 화풀이라고 해도 좋아. (3)
그 시각.
“아, 아미타불…….”
혜연의 입에서 앓는 듯한 불호가 새어 나왔다.
‘저건 도대체?’
혈교도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가느다란 촉수가 사방을 휘젓는 광경이라니,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짐승? 아니, 차라리 곤충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몸에서 저런 게 나온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촉수가 헤집고 나온 곳은 그의 권이 적중했던 부위다. 꺼멓게 죽었던 살이 저 지렁이 같은 촉수의 요동과 함께 제 색을 되찾고 있었다.
이 무슨 조화인가?
아무리 세상이 넓고 그가 알지 못하는 기이하고도 망측한 사술이 넘쳐난다고는 하나, 저건 그가 아는 무학의 상식을 까마득히 뛰어넘는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으려 몇 번이고 불호를 외었다.
“크흐…….”
그사이 문제의 혈교도는 입술 새로 흘러내린 피를 느릿하게 닦아 내더니 혜연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혜연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크하아아아아!”
나직하던 혈교도의 신음이 괴성으로 바뀌었다. 혈기를 내뿜으며 혈교도가 쇄도해 왔다.
혜연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뭐, 뭐야 저거?”
다른 쪽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조걸의 두 눈이 경악으로 뒤흔들렸다. 그가 직접 잘랐던 팔이 도로 제자리에 붙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우윽……. 제길.”
조걸은 왼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촉수가 팔과 팔을 이어 붙이는 광경은 나름대로 담대하다고 자부해 온 조걸조차 신음하게 할 만큼 기괴했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치밀었다.
‘베어 낸 곳이 다시 들러붙는다고?’
팔뿐만이 아니다. 길게 갈라진 옆구리에서도 저 흉측한 촉수가 꿈틀대고 있다. 베는 족족 다시 달라붙는다는 건데, 저런 놈들을 대체 어찌 상대한단 말인가.
“아니…….”
“침착해.”
그때, 냉정한 유이설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사고, 하, 하지만…….”
“사술은 방대해, 원래. 우리가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런 건 살면서 보기는커녕 들어 본 경험조차 없으니.
“하지만 간단해. 해결책.”
“예?”
유이설이 스르륵 검을 들어 올렸다.
“목이 잘리고도 사술을 쓸 수 있는 이는 없어.”
“……놈들도 바보가 아니면 목을 막지 않을까요?”
“팔다리를 봉쇄해, 넌. 내가 목을 자를 테니까.”
조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이쪽이 사파라고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다.
“……내가 멍청한 건지, 사고가 똑똑한 건지 모르겠네요.”
조걸의 입에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솔직히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런 광경을 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게 대단한 거다. 이럴 때의 유이설은 화산의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우리야 둘이니까 그렇다 치고…… 혼자 간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위험할 것 같은데.”
“뻔한 소리.”
조걸은 이번에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법이 또 따로 있겠는가? 이곳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지원하러 가는 수밖에.
“그럼 시작합니다.”
“가.”
“으라차!”
조걸이 힘껏 땅을 박차며 앞으로 짓쳐 달려들었다.
* * *
윤종의 턱을 타고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목이 잘렸잖아.’
그런데 일어서고 있다. 잘린 목이 다시 들러붙는다.
이런 걸 무어라 일컬어야 할까? 회복? 아니면 재생?
무엇이든 사람에게선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무학 자체가 인간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고, 사람으로서는 낼 수 없는 힘을 내게끔 한다. 평범한 이의 입장에서, 잘린 몸이 다시 붙는 이와 검 하나로 산을 무너뜨리는 이 중 어느 쪽이 더 기괴해 보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윤종은 공포가 치미는 걸 느꼈다. 그가 알아 오던 상리(常理)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는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윤종은 두려움을 억누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을 채 다 다스리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움직였다.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군.”
혈교도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득의양양하게 다가왔다.
“멍청하기 짝이 없어. 은총을 보면 감격해야 마땅하거늘, 되레 두려움을 느끼다니.”
윤종의 감각이 슬쩍 뒤쪽으로 향했다. 꼭두각시처럼 몸을 일으킨 혈교도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뒤에 선 놈은 목이 거의 달아났었다. 아무래도 부상 정도에 따라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뒤쪽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게 문제다. 언제 회복될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으니.
‘제길.’
윤종은 문득 조걸의 빈자리를 절절히 실감했다. 그 녀석만 여기에 있었어도 포위 따위는…….
“지원이라도 기다리나? 딱히 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
“처음의 위세는 어디로 갔지? 이래서 너희 같은 놈들이 역겨워. 떼 지어 있을 땐 하늘 높은 줄 모르다가 혼자 남으면 이토록 비굴해지니.”
윤종의 굳게 닫힌 입가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속이 훤히 보이는 도발이다. 이런 데 넘어갈 그가 아니다. 그럼에도 저 말이 그의 폐부를 깊숙하게 찔렀다.
‘걸이라면 겁을 먹지는 않았겠지.’
유이설이라면 주저 없이 다시 공격했을 테고, 당소소라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을 것이다. 청명? 그놈은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겠지.
하지만 윤종에겐 무엇이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느끼고는 있었다.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히 봤을 때, 지금 그가 하는 역할이라 해 봐야 날뛰는 조걸의 뒤를 수습하고 받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 말이 아팠다.
‘하지만……!’
혈교도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윤종은 반사적으로 뒤로 훌쩍 물러나려다가 아차 하여 이를 사리물었다. 등 뒤에도 적이 있다. 잊어선 안 된다.
‘침착해!’
그저 베인 곳이 아문 것뿐이다. 벨 수 없는 게 아니다. 상대의 실력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 아물었다면 다시 베면 그만이다.
거칠게 달려들며 팔을 휘두르는 적을 향해 윤종이 검을 내뻗었다. 섬전 같은 검이 적의 목으로 향한다.
정석적인 수. 하지만 정석이기에 더없이 위협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을 다 뻗은 순간 윤종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콰앙!
윤종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끄르르륵.”
피가래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종의 검은 정확하게 복면인의 목을 꿰뚫었다. 이치대로라면, 목이 꿰뚫린 이는 윤종을 공격하기도 전에 숨이 끊겼을 터.
하지만 혈교도는 목이 꿰뚫리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종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커헉!”
한바탕 구른 윤종이 거친 기침을 토했다.
늑골이 모조리 부러진 듯한 격통이 번졌다. 입 안이 터져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빌어먹을…….’
윤종이 어리석었던 게 아니다.
무(武)라는 게 그러하다. 찰나 간에 생사가 갈리는 교착점에서 생각 따위는 무의미하다. 무학이란 수많은 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게끔 하는 과정과 같다.
공격당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적의 목을 노린 건,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윤종이 그간 강제로 만들어 온 습관이기도 했다.
한데 숱한 위기에서 윤종을 구해 주었던 그 오랜 습관이 이 순간만큼은 외려 방해가 되고 말았다.
“후욱.”
윤종은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혈교도의 뻥 뚫린 목에서 또다시 괴이한 촉수가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다. 뚫려 있던 구멍이 점점 메워졌다.
물론 새로 자라난 살은 평범하지 않았다. 옅은 붉은색이 아닌, 한눈에 봐도 거무튀튀한, 나무둥치 같은 색의 살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또 상처가 사라지고 있다.
‘이건 안 되겠…….’
순간적으로 질렸던 윤종이 멈칫했다. 두 눈이 점차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 무리입니다, 사숙!
그날 그는 외쳤었다. 하지만 백천은 돌아보지 않았다.
윤종은 길게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천이라면 어찌했을까.
우선은 다리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나약한 의지가 떨림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활짝 편 어깨가 그 자신에게도 힘이 된다고 믿으면서.
‘답이 없을 리 없다.’
그랬다면 저 혈궁 놈들이 새외에 잠자코 머물러 있었을 리 없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윤종은 저들이 물러나는 광경을 직접 본 바가 있다. 만일 놈들의 몸이 무한히 재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절대 그리 물러나지는…….
‘잠깐.’
윤종이 다시 한번 멈칫했다. 혈궁과 청명이 맞닥뜨렸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놈이 물러나면서 뭐라 했더라?’
분명 청명의 검에…….
“하앗!”
생각이 다 이어지기 전에 적들이 눈을 까뒤집으며 달려들어 왔다. 윤종은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 몸을 뒤로 띄웠다.
‘선기(仙氣)?’
분명 그리 말했던 것 같다.
콰가각!
기형도와 검이 충돌했다. 그 순간 혈교도가 반대쪽 팔을 뻗어 윤종의 검을 휘감아 왔다.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짓거리다.
하지만 이들이라면 가능하다. 팔이 잘리건, 꿰뚫리건 상대의 검을 잠시라도 묶어 둘 수 있으면 남는 장사이므로.
윤종이 기겁하며 검을 끌어 회수했다. 찰나의 틈에 혈교도의 기형도가 윤종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들과 달리 결코 다시 달라붙을 수 없는 목을.
‘선기!’
윤종의 숨이 거칠어졌다.
선기, 즉 신선의 기운. 도가의 검을 쓰는 이들이라면 꿈에서도 바라 마지않는 것. 그러나 정작 그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아냐.’
떠올려 보면 이들의 약점이 선기라고 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술의 천적이 선기라고 했을 뿐.
청명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카하하핫!”
바로 그 순간, 뒤쪽에서 적이 내지르는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등 뒤로 파고들어 오는 맹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윤종이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콰앙!
거의 동시에 그가 서 있던 곳의 땅거죽이 터져 나가며 흙과 돌이 비산했다.
“후욱!”
연신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럼 왜 알려 주지 않았지?’
선기가 이들을 상대할 해답이고, 언제고 화산이 이들과 다시 충돌할 수 있음을 알았다면…… 청명은 어째서 선기를 끌어 올리는 법을 모두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어째서?
“당나귀 같은 놈이 수치를 모르는군.”
“그러면서 그렇게 잘난 척해 왔다는 거지.”
윤종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을 구른 모습을 두고 혈교도들이 이죽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조롱은 윤종을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처음으로 윤종의 입이 열리자 혈교도들이 눈에 이채를 띠며 윤종을 빤히 보았다.
“잘난 척은 한 적 없소. 애초에 그리 잘난 인간이 아닌지라.”
“하하!”
신랄한 비웃음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윤종은 노기 대신에 서늘하고 차분한 숨을 머금었다.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말한 것이니 화낼 이유도 없다.
괴물 같은 사제 놈들과, 볼 때마다 더 높이 성큼 올라서 있는 사숙과 사고. 그들에 비한다면 윤종에게는 비범함이 없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가.
두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시간을 너무 끌었습니다. 그만 처리하고 가는 게…….”
“안다.”
혈교도들이 대화하며 슬쩍 위쪽을 응시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무당산 쪽에서 지원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쪽이 되레 위험해질 터.
“끝내라.”
“예.”
혈교도들이 넓게 윤종을 포위했다.
윤종은 그런 그들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일격에 끝내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느껴졌다. 이번엔 대처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자신이 입을 상처를 개의치 않는 이들이 해 오는 합공은 상상 이상으로 흉악하고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는 대신 깊게 심호흡했다. 검이 묵직한 검명을 토해 냈다.
‘청명은 왜 말해 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백천은 어째서 그가 하려는 것, 행하려던 바를 말하지 않았을까?
“카하하아앗!”
한 혈교도가 곧장 윤종을 향해 쇄도하자, 이에 보조를 맞추듯 다른 놈들도 섬뜩한 기형도를 치들며 덮쳐왔다.
윤종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맹렬한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눈빛은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 무엇도, 그 어떤 것도 갑작스레 바뀌지는 않는다. 한순간에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리 보인다면, 그건 그 뒤에 숨은 긴 시간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뿐이다.
날카로운 기형도들이 사방에서 윤종의 육신을 찢기 위해 날아든다.
흡사 타인을 관조하듯 지켜보고만 있던 윤종이 검을 서서히 움직였다.
‘말하지 않은 게 아니야.’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뿐.
특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반드시 있을 테니까.
그가 이제껏 쌓아 온 시간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의 답은 그의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武)이고 그것이 도(道)이니!
“믿어라.”
윤종의 중얼거림에 이어, 날카로운 검의 첨단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붉은 꽃잎이 소담스레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투명하고도 맑은 새벽이슬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