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55화
1755화. 나 역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5)
붉다.
세상 모든 것이 검붉게 물들어 있다.
하늘을 꿰뚫을 듯 솟은 봉우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모조리 시체로 뒤덮였다.
……손끝이 떨린다.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구역감과 강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들끓던 증오가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명조야.”
두 눈을 부릅뜨고 절명한 사질을 부르며, 그렇게 손을 떨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불가능했다.
미처 감기지 못한, 숱한 눈들이 그를 보고 있다.
때론 온정을, 때론 질시를, 또 때로는 두려움을, 즐거움을 담았던 눈들. 이제 그 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비어 버린 눈들 사이에서, 청명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더없이 증오스럽다.
영혼을 마귀에게 팔아 저 증오스러운 악적의 목을 베어 낼 수 있다면, 청명은 한순간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청명에게 가장 큰 고통을 선사하는 건 이 지독한 증오심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드득.
질끈 깨물고 있던 입술이 끝내 찢기며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아픔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사형…….”
힘겹게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보인다. 더없이 그리웠던 이의 모습이. 하지만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이의 모습이.
“장문사형…….”
눈물 같은 건 나지 않는다. 그런 건 진즉에 말라붙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손을 뻗었다. 그 몸짓이 애처로웠다.
영영 잃었다. 되찾을 수 없다.
증오스러운 적의 목을 베고, 그 육신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발겨 살점을 씹어 먹는다 한들, 이미 죽어 버린 이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남았다.
그가 바라보던 이들. 그를 바라보던 이들. 그가 살아가게 해 주었던 이들, 그를 살아가게 해 주던 이들.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없다.
“어…….”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스러져 간 이들의 대의, 희생, 올곧음을 안다. 차마 청명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위대했다는 사실 또한.
하지만 그 대가가 결국 이 꼴이라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오열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진정 이런 결말조차 감수했던 거라면. 죽어 있는 이들의 얼굴은 어찌 저리 고통스러운가. 저들이 정녕 이런 죽음을 바랐을까?
“어으…….”
청명의 손이 휘적이며 앞으로 계속 뻗어졌다.
그때였다.
“후회라도 하는 거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피로 흠뻑 젖은 청명이 느리게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한 사람이 곁에 서 있었다. 이 지독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훤한 차림의 사내가.
“당…….”
청명의 눈이 흔들렸다.
“……보.”
제 이름을 불린 이는 냉랭한 미소를 띠었다.
“후회라도 하느냐고 물었소.”
……안다. 당보는 죽었다. 이곳에 있을 리 없다.
“형님이 무슨 자격으로?”
“…….”
“이들은 자신의 원대로 죽었소. 나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겠지. 거기에 형님의 책임은 없소. 막아 내지 못한 걸 책임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
“……보야.”
“그럼에도 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다는 건 그저 오만이오. 형님은 신이 아니오. 모든 걸 해낼 수는 없지.”
청명은 당보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냉랭한 말을 쏘듯이 내뱉는 당보의 얼굴은 실로 무감각해 보였다. 두 눈에 과거와 같은 온정 따윈 한 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눈빛이 청명을 날카롭게 베는 것 같다.
“잘 알고 있지 않소? 후회라는 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나 할 수 있는 거요. 형님에게는 후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소. 그러니까…….”
당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는 처참한 대산의 정상을 꼼꼼히, 그러나 차갑게 관조했다.
“이건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겠지.”
“…….”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렇지 않소?”
바뀌어 간다.
당보의 말이 끝난 순간, 주변의 익숙한 얼굴들이 점차 낯설게 변해 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더 익숙한 모습들로 바뀌었다고 해야 옳다.
절명했던 장문사형 청문의 모습이 익히 아는 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숙.”
백천이 처절한 고통이 다 가시기도 전에 죽은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쓰러져 있다. 말라붙은 피와 서늘한 한기로 얼룩졌다.
이런 광경은 너무 익숙하지만, 백천만은 절대 그리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백천은 정확히 그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고.”
그 곁에는 유이설이 쓰러져 있다.
“윤종……. 조걸, 소소, 혜연…….”
그가 아는 모두가 이곳을 채우고 있었다.
“장문인……. 남궁도위, 소백아…….”
화산의, 천우맹의 모두. 나아가 그가 알던 모두가 있다.
그의 세상이 이곳에 쓰러져 있다.
“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하지만 당보는 여전히 서늘한 목소리로 조소했다.
“알겠소? 형님은 후회하는 게 아니오. 두려워하는 거지. 그저 잃는 걸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오.”
“나는…….”
당보가 큭큭 소리 내어 나직이 웃었다.
“웃기는 일이지. 천하의 매화검존이 방구석에서 겁쟁이처럼 덜덜 떨고 있다니. 마교 놈들이 보면 웃다가 배가 터져 죽을 일이로군.”
청명이 매섭게 두 눈을 부릅떴다. 흰자위에 붉은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네가…… 뭘 알아.”
“…….”
“속 편하게 뒈져 버린 새끼가 뭘 아냐고!”
분노와 공포가 비명 같은 고함으로 터져 나왔다.
“잃어 보지도 않은 새끼가! 나만 내버려 두고 먼저 그렇게 죽어 버린 새끼가 뭘 아냐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을 하나하나 잃어 가는 사람의 심정을 네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겁먹었다고?”
“이……!”
청명이 덜덜 떨리는 손을 말아 쥐었다.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옳은 길이며, 그가 해야 하는 일이고, 그가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차선 따위는 없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래, 그걸 알아서 주저앉고 싶은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며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그래도 무섭겠지. 싸운다는 건 잃는다는 것과 같으니까.”
“…….”
“하지만 형님은 그 잃는 과정이 무서운 거요. 백사장에서 두 손 가득 움켜쥔 모래를 단 한 톨도 잃기 싫어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아이같이.”
그래서 싸웠다. 가장 앞에서 가장 치열하게. 그럼 잃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이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피로 얼룩진 전장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목을 베어 내는 짓거리를 반복할수록, 그 자리에는 그가 아닌 매화검존이 서 있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과정과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결국 그 끝은 같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떨칠 수 없었다.
“형님은 이기적인 사람이오. 대의 같은 건 모르지, 오직 자신만 알 뿐.”
당보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겠지. 당신이 키워 낸 나무들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과거의 의지를 이어 가는 모습이.”
“…….”
“하지만 어느 순간 알아 버렸을 거요. 언제고 그들은…….”
당보의 시선이 다시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시신이 화산의 무복을 입고 있다.
“가장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을. 심지어 이젠 형님이 없을 때조차 말이오.”
청명이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순간에도 손에 쥐여 있던 검이 뺨에 상처를 남겼다. 피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청명의 눈은 갈 곳을 모르고 불안하게 떨렸다.
“마치…… 과거의 화산처럼.”
“닥쳐…….”
“자랑스럽지. 훌륭한 일이오. 위대하고. 그래……. 꼭 과거의 그들처럼.”
“닥치라고!”
“하지만 알지 않소, 형님.”
당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마귀처럼 변해 간다.
“그 끝이 어디인지.”
파아아앙!
청명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당보의 몸이 사선으로 베였다. 하지만 몸이 갈라지고도 당보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아직까진 운이 좋았지. 하지만 언제고 그 좋았던 운이 다하고, 형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 도사 형님은 이것과 같은 광경을 또 마주하게 될 거요. 잘 알고 있지 않소? 다른 이들은 몰라도, 형님은 알아야지.”
“이……! 그 입 닥쳐!”
“그때 형님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려. 그땐 원망할 이조차 없을 텐데.”
이를 악문 청명이 물었다. 두 눈에 핏발이 서다 못해 혈관이 터지며 흰자위가 붉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데? 내가!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했다는 건데!”
“그걸 왜 나에게 묻소?”
“……뭐?”
“물으려면 저들에게 물어야지.”
당보의 서늘한 말에 청명이 움찔했다. 굳어 있던 고개를 억지로 느리게 돌렸다.
처참히 쓰러져 있던 시신들이 어느새 모두 일어서 있었다.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 지극히 괴기스러웠다.
“그냥 뒀어야 했어.”
“……조걸.”
“그럼 나는 죽지 않았겠지. 적당히 사천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다른 시신들도 비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멸문한 화산에서 홀로 도인의 길을 걸었겠지.”
“당가에 남아 있었어도, 사형이 없었다면 죽을 일은 없었을 거야.”
“나는 소림에서 파문당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방장께서도 당신을 스스로 잃지 않으셨겠지.”
모두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느리게 들었다.
“어…….”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 있다. 그 공동(空洞)이 청명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얼마간, 모두 한 걸음씩 비척비척 다가오기 시작했다.
청명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주춤 뒤로 물러섰다.
“너 때문이야.”
“사형 때문이에요.”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죽지 않았을 거야.”
뒷걸음질 치던 청명이 이를 악물었다.
“너희가! 너희가 원한 거잖아! 너희가 그러길 바란다고 했잖아! 나는…… 나는 바라지 않았어. 나는……!”
“너 때문이야.”
누군가가 뻗은 손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 발을 움켜잡는다.
손. 손. 손. 손. 손.
숱한 손이 전신을 뒤덮어 왔다.
그중 삐쩍 마른, 유달리 눈에 띄는 손 하나가 그의 얼굴을 움켜쥐듯 덮었다.
“사…….”
“너 때문이다.”
두 눈이 뻥 뚫린 처참한 얼굴에선, 이제 그 헌앙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독한 증오만이 실린 앙상한 손이 청명의 얼굴을 쥐어뜯었다.
“아니야……. 죽지 않았어!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나는……. 나는!”
“하지만 곧 잃게 되겠지. 그렇지 않소?”
청명이 획 고개를 돌렸다.
암적색 절망이 세상을 뒤덮은 가운데, 홀로 고고한 당보가 그를 보며 비웃었다.
“안타깝게도.”
“너…….”
“그곳도 지옥이구려.”
* * *
어둠이 짙게 깔린 가운데, 방구석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청명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주르륵.
입술 새로 검은 피가 진득하게 늘어졌다. 눈동자에 자조가 어렸다.
당보는 죽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조금 전에 본 당보는 그가 알던 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스웠다.
그렇다면 그건 당보가 아니라 청명이니까. 당보가 차갑게 쏟아내던 그 모든 발언은, 어쩌면 청명이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모른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지독한 악몽.
스스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끔찍한 이질감.
그리고…… 점점 커지는 상실감.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늘, 가진 것을 조금씩 잃어 가는 감각.
이 모든 걸 무어라고 하는지 청명은 안다.
극복해야 한다. 이겨 내야 한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육신이 그를 배반하고 있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잠식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이를 악물고 태연한 척 버티는 것뿐이었다.
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테니까.
“장문사형…….”
청명은 검은 피로 젖은 무릎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줘요.”
모든 게 그를 좀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