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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60화


1760화.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5)

파앗!

발에 힘이 실렸다. 날아드는 몸짓이 흡사 먹잇감의 머리를 노리는 매와 같았다.

탓.

용맹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한 각법이었지만, 그 공격은 가벼운 손짓에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막혀 버렸다.

이내 쭉 뻗어진 손바닥이 상대의 텅 빈 가슴을 가벼이 두드렸다.

하지만 그 가벼운 움직임의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가슴을 밀린 이의 몸이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뒤로 밀려 튕겨 나갔다.

“아둔하기 이를 데 없군. 무의미하다고 수없이 말했거늘, 아직도 몸에 밴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건가?”

표정 없이 차가운 말을 내뱉은 허도진인이 공간을 접듯이 백천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일권을 뻗었다.

“큭!”

백천이 이를 악물며 몸을 뒤틀었다. 아직 근육이 붙어 있는 어깨로 날아드는 주먹을 스치듯 피한 그가 곧장 회전하며 허도진인의 가슴을 향해 쇄도했다.

쿠웅!

하지만 이번에도 나가떨어진 건 백천이었다. 허도진인이 서릿발 같은 눈길로 백천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몸으로 느끼라 하지 않았나.”

“쿨럭.”

“사량발천근이란, 말 그대로 넉 냥의 힘으로 천 근의 무게를 발하는 것.”

파앗.

허도진인이 발을 뻗었다. 딱히 힘이 실리지 않은, 허초에 가까운 발길질이었다. 그러나 내력을 거의 쓸 수 없는 백천에게는 이조차도 치명적인 절초였다.

백천이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굴렸다. 바로 위로 허도진인의 발길질이 파공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 직후 백천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했다.

퍼억!

하지만 지나갔던 발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돌며 백천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백천이 숨이 넘어갈 듯한 신음을 토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무리 망가진 몸이라도 넉 냥의 힘쯤은 있겠지. 하지만 제힘만으로 어찌해 보려 드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천 근은커녕 백 근도 다스리지 못하는 게 자명한 이치다.”

투웅!

가볍게 진각을 밟은 허도진인이 어느새 일어난 백천을 향해 권을 뻗었다. 백천이 격하게 고개를 틀어 주먹을 피해 내었다.

“피하고.”

파앗!

이번엔 팔꿈치가 백천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겁하여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던 백천은 움찔하며 어깨를 다급히 밀어 올렸다.

“막고.”

백천이 반사적으로 허도진인의 가슴팍을 향해 발을 뻗었다.

“반격한다.”

쿠웅!

발이 제대로 허공을 가르기도 전에, 허도진인의 어깨가 백천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백천은 다리를 올리려던 자세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멍청하기 짝이 없다.”

허도진인이 경멸 어린 눈으로 백천을 노려보았다.

“피하고, 막고, 반격하는 그 모든 게 사량발천근의 무리와 반함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였는가?”

“으…….”

“상대의 힘을 이용하려면 피해서는 안 되고, 막아서도 안 되고, 모자란 힘으로 어설프게 반격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그저 흘리고 되돌릴 뿐!”

쾅!

허도진인이 꾸짖듯 땅을 세게 내리밟았다.

“그 몸에 아직도 잘난 패기가 남았는가?”

“…….”

“모든 무학의 시작은 관(觀), 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보아 한계를 알고, 적을 보아 강대함을 알아야 한다. 그대가 능유제강의 원리를 깨닫고자 한다면 그것을 넘어 흐름마저 볼 줄 알아야 할 터!”

백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해서도, 막아서도, 반격해서도 안 된다. 수없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그가 익혀 온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저 말이 옳다는 걸 아무리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도 수십 년간 몸에 쌓아 온 것들이 한순간 사라질 리는 없는 것이다.

“이해했는가?”

“예!”

백천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도진인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윽고 백천의 코앞에 나타났다.

쾅!

이어 전사경(纏絲勁)의 묘리가 담긴 공격이 날아들었다. 허도진인에게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힌 백천은 마치 아이가 가지고 놀다 놓친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땅에 처박혔다.

일순 숨이 막히며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말은 잘도 하는군.”

“죄송…….”

“지금 자네의 힘은 삼류라 칭하기에도 민망하지. 고작해야 힘센 양민 수준에 지나지 않네.”

“…….”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법을 완벽히 익히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전장에서도 일다경을 채 버티지 못할 걸세. 안 되겠으면 차라리 포기하게. 남은 생, 흙을 일구고 살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테니.”

이는 크나큰 모욕이 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백천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더욱 굳건해진 그의 두 눈을 보며 허도진인이 짧게 탄식했다.

“잠시 쉬세.”

“더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자네가 아니라 내가 판단하는 걸세.”

“……예.”

백천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면 따위는 조금도 차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쉴 거라면 한순간도 낭비 없이 전력을 다해 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허도진인의 눈빛이 자못 심각해졌다.

백천을 지도한 지 고작 며칠이나 되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보인다. 저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에서, 그가 전하려 했던 사량발천근과 능유제강의 묘리가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

‘어설프지만…….’

이는 당연하다. 육신이 저 꼴이니 어설플 수밖에.

그 말은 곧, 만일 백천의 육신이 멀쩡했다면 지금쯤 그가 경악할 만큼의 성취를 보였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천고의 기재를 데려다가 가르친다고 해도 실마리를 잡는 데만 한 달은 족히 걸릴 텐데.’

물론 허도진인도 최대한 속성으로 가르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모든 걸 고려해도 이게 정말 가능한 속도인가?

이 청년이 진정 허공마저 능가하는 천고의 기재란 말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하문하십시오.”

허도진인이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자네는 무학을 누구에게 배웠는가?”

“예?”

질문을 내뱉은 허도진인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화산의 제자더러 누구에게 무학을 사사했느냐고 묻다니, 이게 얼마나 황당한 질문인가.

그러나 답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우문이지만…… 혹여 대답해 줄 수 있겠는가?”

“어릴 적에는 사실 가문에서 무학을 배웠습니다. 종남의 진신절기는 배우지 못했지만요. 그 후 화산에 입문해서는 대부분 운검 사숙께 무학을 배웠습니다.”

“운검이라…….”

“물론 뭐…… 나이가 좀 들고부터는 거의 청명이 놈에게 맞으면서 배웠지요.”

순간 허도진인의 눈빛이 어둑해졌다.

또다시 그 이름이다.

“맞아 가며 배웠다고?”

“예. 그냥 몸으로 구르다 보면 묘리 같은 건 알아서 익혀진다고 하던 녀석이라서요.”

“자네보다 배분도 나이도 어린 이에게 말인가?”

백천이 피식 웃었다.

“이상하지요. 하지만 막상 그놈과 지내다 보면 그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상하지 않다라……. 정말인가?”

“예?”

“그 아이는 자네보다 어리네. 그런데 보아하니 화산의 검을 쓰는 이들은 대부분 그 아이에게 영향을 받은 듯하더군.”

허도진인이 백천을 물끄러미 보았다. 행여 거짓이 있다면 얼굴에서 다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백천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그 눈을 마주 보았다.

허도진인은 황당할 지경이었다.

“자네의 몸에는…… 이미 사량발천근의 이치가 담겨 있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미리 심어 놓은 것처럼 말일세.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제고 상승으로 가는 벽을 만났을 때 조금이나마 편히 오를 수 있도록.”

“…….”

“누가 그랬다고 생각하나?”

백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답이야 빤하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아이가 숨기고 있는 게 정녕 없다고…….”

백천은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차분히 말했다.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습니까?”

허도진인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해가 되지 않는 비밀이라면, 굳이 파헤치려 들지 않는 것도 사람의 도리일 겁니다.”

“……그것으로 만족하나?”

“이런 처지인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제 사질이고, 저는 놈의 사숙일 뿐입니다.”

백천이 담담히 말했다.

“그걸로 충분치 않습니까.”

허도진인이 나직이 탄식을 흘렸다.

“우둔한 건지. 똑똑한 건지.”

“제 몸에 이미 그 묘리가 심겨 있다면…… 다행입니다. 물론 그걸 심은 사람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어쨌든 조금 더 빠르게 익힐 수 있단 말이겠지요.”

백천이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가겠습니다.”

“……우둔한 게 맞는 것 같군. 쉬라고 했을 텐데.”

“제게 여유가 좀 없어서요.”

허도진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청년의 재능이 허공에 미치지 못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일 이자가 무당의 제자였다면…….

‘나라고 해도 장문의 자리는 반드시 이 청년에게 넘겨주고 싶었겠군.’

왜 화산과 종남이 이 청년 하나에 그리도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 한 인정이 얼굴에 드러나진 않았다.

“오만을 버리게. 묘리가 그 몸에 배어 있다고 해도 족히 칠 주야는 더 걸릴 걸세.”

“그렇게까지 시간을 끌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하루 내에 익혀 보이겠습니다.”

“……입은 살았군.”

타앗!

백천이 문답무용으로 허도진인에게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음을.

이 몸으로 계속해서 무학을 익히겠다는 것도, 최상승의 묘리를 사흘 만에 몸에 욱여넣겠다는 것도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알면서도 백천은 해야 했다.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이리 무너진 것이 그의 사질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잊히지 않았다.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 여겼던 그의 사질이 그날 밤에 지었던 표정이.

모든 것을 잃은 아이처럼 흐느끼던 얼굴이 내내 눈앞에 선했다.

‘망할 새끼.’

백천이 여기서 무너진다면, 이 모든 게 놈의 책임이 되어 버린다. 세상 모두가 그리 여기지 않는다고 해도 그놈만은 분명히 그리 생각할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순 없다.

그러니 백천은 증명해야 한다.

그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음을. 여전히 백천임을.

세 치 혀가 아닌 이 육신으로 일어서서, 그 멍청한 얼굴에 반드시 한 방을 먹여 줘야 한다.

“타아아압!”

백천이 이를 악물고 허도진인의 가슴팍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여기 있었어?”

들려온 목소리에, 청명이 느리게 시선을 돌렸다. 찾아온 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참 찾았다. 어딜 그렇게 나다니는 거냐?”

“왜.”

윤종은 청명의 대답이 평소보다 무뚝뚝함을 느꼈지만, 지적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왜기는. 사형제들에게 선기 쓰는 요령을 전달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잘…….”

조용히 말하던 윤종이 순간 흠칫했다.

“청명이 너……?”

청명의 입가가 어째 거무튀튀한 게 보여서다. 자세히 보니 마치 무언가를 문질러 닦은 듯했다.

반사적으로 청명의 소매를 흘끗 본 윤종은 청명의 어깨 너머 뒤쪽까지 살폈다. 바닥을 물들인 시커먼 무언가가 보였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서늘해졌다.

죽은 피다.

그제야 윤종의 코끝으로 비릿한 악취가 전해져 왔다. 전장에서 몇 번이고 맡은 적 있다. 이건 썩어 버린 피에서만 풍기는 냄새다.

대관절 왜 청명이 저런 죽은 피를 토하는가.

“청명아!”

윤종이 대답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명은 말없이 윤종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윤종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어깨를 붙들려고 했지만, 청명이 거칠게 쳐 냈다.

“건드리지 마.”

“대체 무슨 일이야. 언제 이렇게…….”

“뭐가?”

“…….”

윤종을 쏘아보는 청명의 눈길은 차갑다 못해 한기까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윤종은 그 싸늘한 눈빛보다 청명의 안색이 더 눈에 걸렸다. 핏기라고는 없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괜찮은 거냐, 너 정말?”

“내 걱정할 틈 있으면 본인들이나 걱정해. 당장 내일 죽어 나자빠질지도 모를 판이니까.”

차갑게 내뱉은 청명이 획 시선을 돌리며 멀어져 갔다.

윤종은 입술을 짓씹으며 청명의 뒷모습과 그가 흘렸음이 분명한 죽은 피를 번갈아 보았다.

당장 어떻게든 해야 한다. 하지만…….

‘저게…… 정말 내가 아는 청명이 녀석이 맞나?’

조금 전 느꼈던 냉기는 낯설기까지 했다. 그리고 낯선 느낌은 이내 둘 사이의 벽이 되었다.

주먹을 쥐고 고민하던 윤종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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