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66화
1766화. 지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1)
“계속 따라가야 합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조용히.”
말허리가 끊기고도 앞을 응시하는 이의 입에선 계속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호위를 할 거라면 차라리 가까이에서 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이제 곧 위험한 지역으로 접어들 텐데, 이러다가는…….”
“상단주님의 지시다. 저들에게 어떠한 불편함도 주어선 안 된다.”
불만을 토하던 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맹의 본단을 지키는 게 저희 임무잖습니까. 엄밀히 따지면 은하상단주님은 저희 상관도 아니고요.”
“그래서 무시라도 하겠다는 거냐?”
“그런 건 아니지만…….”
은하상단주가 천우맹 소속이 아니라는 말도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직책이 없다고는 하나, 은하상단주가 맹주가 부재한 본단의 대소사를 모두 주관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그렇기에 본단을 지키던 그들이 저들의 호위로 따라나선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헛소리는 그쯤 해라. 무슨 문제가 있다고.”
끝까지 먹히질 않으니 투덜대던 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 역시 제 말이 의미 없는 투정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짜증을 부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앞서가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대체 뭐지?’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 덕에 느린 걸음으로도 이미 목표로 했던 호북과 하남의 경계에 접어들었다.
빨리 오는 건 좋으나, 저들을 호위하는 이들조차 먹고 쉬고 자지를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왜 이런 괴이한 짓을 하는 거지?’
가만히 보면 앞서가는 청년은 몰라도, 뒤따르는 이에게선 분명히 무공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럼 차라리 경공을 써서 빨리 가 버리면 될 일이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저들에게 조금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뒷감당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알았느냐?”
“……예.”
호위를 맡은 이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색으로 물든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눈썹 아래의 눈에선 진물이 흘렀다.
그 눈이 응시하는 건 앞서 걷는 이……. 정확히는 그의 발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묵묵히 내디딜 때마다 땅이 젖어 들어간다. 발에서 흐른 피가 대지를 적시는 만큼 이를 지켜보는 반선라마의 수심도 깊어졌다.
달뢰라마가 홀로 예토(穢土)를 떠나지 않은 부처라고 해도, 그 육신은 결국 평범한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분명 고통이 적지 않을 텐데, 저 걸음은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먹지도, 쉬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이어지는 고행 같은 걸음이다. 과연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는지. 감히 짐작하지 못할 드높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바라보기 괴로운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승이시여.”
“…….”
“스승이시여.”
반선라마의 외침이 재차 이어지고서야 달뢰라마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달뢰라마는 굳이 반선라마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러다간 몸이 상하십니다. 반드시 급히 가야 할 연유가 있는 거라면, 차라리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달뢰라마가 반선라마를 돌아보았다.
아직 앳된 홍안(紅顔)에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어색해 보였다. 다만 언제 보아도 빨려들 것만 같은 깊은 두 눈이 그 가운데 자리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누구도 번뇌를 대신 짊어져 줄 수는 없습니다.”
“…….”
“그렇기에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 스승이시여.”
“길에 끝이 있다고 믿는다면 지금의 고통은 인내해야 마땅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길에 끝이 없음을 알면 인내라는 말이 무용할 뿐이지요.”
반선라마가 깊이 합장했다.
사실 그는 달뢰라마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의 물음과 달뢰라마의 대답이 맞아떨어지질 않았으므로.
하지만 그는 이러한 대답에 익숙했다.
그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이에게는 같은 세상도 달리 보일 것이다. 심지어는 세상의 이치마저도.
“하지만, 라마. 그렇다면 어찌 이리 서둘러 가십니까?”
삶이 피할 수 없는 고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아해들이 겪는 고통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일 터.
고통이 번뇌에서 비롯되고 그 번뇌를 누구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면, 지금 달뢰라마의 걸음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음을 피까지 흘려 가며 꿋꿋하게 옮겨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질문을 받은 달뢰라마의 눈이 이제까지와 다른 빛을 머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그것이…….”
잠시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그 짧은 순간 반선라마가 본 건 살아 있는 부처 달뢰라마가 아닌, 고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저의 업이기 때문입니다.”
“……업.”
반선라마가 저도 모르게 깊은 탄식을 흘렸다.
저 업이라는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게 담겨 있는가.
저 대답은 모든 질문의 답이되, 동시에 어떠한 것도 알려 주지 않는 대답이었다.
반선라마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으니, 업을 논하는 달뢰라마에게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육신을 벗어나지 못한 이가 신선과 도를 논해 봐야 무용하고 허무한 것과 마찬가지다.
평소라면 대화가 이리 끝났겠으나, 오늘은 조금 더 이어졌다.
“결국 업이란 얽힘.”
반선라마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얽힘이라 하셨습니까?”
“얽히기에 고통스럽고, 그렇기에 끊어 내야 합니다. 하지만 끊어 내는 것 역시 고통일 뿐이지요.”
“…….”
“세상이 논하는 해탈은 곧 번뇌를 벗어던지는 것. 인간사 가득한 고의 바다를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러합니다, 스승.”
“한데 이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저 바랄 뿐입니다.”
“정녕…… 옳은 일입니까?”
“……스승?”
반선라마의 두 눈에 순간 의혹이 스쳤다.
“묻고자 합니다. 벗어남이 과연 옳았습니까?”
“그게 대체……?”
이윽고 달뢰라마를 보는 반선라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덮였다.
수행자는 모든 일에 의문을 품어야 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깨뜨려야 한다. 자신의 세상을 부수지 않은 이는 나아갈 수 없으니까.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이는 감각의 한계를 부수고, 관념의 허상을 뛰어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하지만 지금 달뢰라마가 꺼낸 의문은 그런 단순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수행자들의 마지막 목표인 ‘해탈’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는…… 저는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달뢰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눈빛으로 반선라마를 응시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반선라마의 눈에는 저 눈이 지독히 서글퍼 보였다. 달뢰라마는 이미 인간의 오욕칠정 따위야 한참 전에 초월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러니 가려 하는 것입니다.”
“…….”
“라마의 말대로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렇겠지요. 그렇기에 이것은 그의 업이 아닌, 나의 업입니다. 미련이란 이름의.”
“스승.”
“그저…… 듣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저…….”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달뢰라마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선라마는 짙은 탄식을 흘렸다.
‘나의 업이라…….’
해탈이란 본디 번뇌를 벗어나고, 고해를 벗어남을 뜻한다. 이는 곧 인간을 얼기설기 얽은 업조차 뿌리친다는 뜻 아니던가.
하지만 달뢰라마는 자신의 업을 논했다.
해탈의 과정을 넘어 스스로 부처가 된 이조차 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인간의 육신에 머무르는 불완전한 해탈로는 업의 무게가 주는 고통을 변함없이 감내해야 한단 의미일까?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궁금함이 커졌다.
‘화산검협.’
달뢰라마는 대체 그에게 무엇을 묻고자 함일까? 그리고 화산검협은 그 질문에 무어라 답할 것인가?
아마 곧 알 수 있으리라.
시야에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이 들어왔다.
‘무당.’
그들이 찾는 이가 저곳에 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를 쥔 이가.
* * *
파아앗.
불타는 마을을 향해 조걸이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들었다. 동시에 섬전처럼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 검은 이내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며 갈 길을 잃었다. 조걸은 그 어디에도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이…….”
없다.
적뿐만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사하고 개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으드득.
조걸이 거칠게 이를 갈아붙였다. 마을 한중간에 쌓인 시체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시신의 탑은 흡사 작은 봉분처럼 솟아 있었다.
보는 즉시 알았다. 편의를 위해 쌓아 둔 게 아니다. 오로지 보여 주기 위해 쌓은 것이다.
뒤늦게 이곳에 도달한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조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야…….”
분노와 자책으로 번뜩이는 두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어디야! 어디 있어! 이 개 같은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어!”
“진정해라, 걸아!”
“놔요!”
조걸이 윤종의 손을 뿌리쳤다.
조금만 일찍 왔다면 이렇게 모두 죽지 않았을 것이다. 저들이 양민들을 언제든 공격할 수 있음을 왜 몰랐단 말인가.
“죽여 버리겠어……. 모조리!”
조걸이 분노에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떠난 적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쪽입니다. 여기! 놈들이 이쪽으로 향했습니다, 사형!”
조걸이 앞뒤 안 가리고 땅을 박차려던 그때였다.
“잠시만요! 여기도 발자국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아난 것 같습니다.”
“뭐?”
조걸이 멈칫했다.
추격도 중요하지만, 생존자 보호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그럼 인원을 나누어…….”
“잠깐. 너희, 이쪽으로 잠시 와 봐야겠다.”
“예?”
앞쪽에서 말없이 상황을 살피던 백상이 손짓했다.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모두 두말없이 그가 선 곳을 향해 달려갔다.
“……이건?”
백상이 가리킨 건 시신이었다. 물론 여기엔 온통 시신이 널려 있으니 얼핏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모두 백상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굳혔다.
“……사패련인가?”
“그래 보입니다.”
목이 달아난 시신 몇의 의복 양식이 사파 놈들 것과 같았다.
“누군가가 여기서 놈들과 싸웠다는 건가?”
“하지만 누가? 우리가 제일 먼저 왔을 텐데…….”
“……근처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차갑게 식은 시신들을 내려다보는 화산 제자들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윤종이 말했다.
“우선 적을 추격하시죠. 시간을 끌면 놈들이 다른 마을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래야죠!”
“소소. 네가 몇을 이끌고 생존자들을 찾아봐라.”
“그럴게요.”
“서둘러라!”
“예!”
조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적의 흔적이 남은 방향으로 내달렸다. 다른 화산의 제자들 역시 윤종의 지시대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윤종은 그 자리에서 선뜻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이 있어서였다.
땅에 떨어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철검 한 자루. 저것이 이상하리만치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형!”
“알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재촉에 윤종이 땅에 떨어진 검을 급히 집어 들었다.
‘아니겠지.’
그 검을 제 허리에 찬 윤종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이내 조걸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황량한 바람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