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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67화


“이 빌어먹을!”

드물게도 남궁도위가 욕지거리를 쏟아 내었다.

“아미타불…….”

함께 달려온 혜연 역시 앞에 펼쳐진 참상을 차마 보기 어려운 듯 눈을 감고 말았다.

과거 장강에서 몇 번이고 봤던 광경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참혹했다.

이런 참극이 다른 곳도 아닌 호북 한중간에서 펼쳐질 줄이야.

“놈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 찾아내라! 당장!”

“예! 소가주……. 아니, 부당주님!”

극히 노한 남궁도위가 명하니 당원들이 잽싸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남궁도위는 아랫입술을 콱 짓씹었다.

으득.

“……개 같은 놈들.”

명문가에서 자랐던 인물인지라 험한 말은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지 않은 욕지거리라도 해야 가슴을 터트릴 듯 짓누르는 분노가 덜어질 것 같았다.

“시주. 아직 부상도 다 낫지 않으셨는데…….”

“……제 부상 따위를 돌볼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남궁도위의 차가운 대꾸에, 혜연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도 생때같은 목숨들이 사라지고 있을 터. 그러니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다만…….

혜연이 착잡하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 마을을 짓밟은 적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천우맹도들의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이성이 반쯤 날아가 버린 듯했다.

당연한 일이리라. 죄 없는 이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 갔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정(正)이라는 글자를 쓸 자격이 없는 이일 테니까.

‘하지만…… 분노가 너무 크구나.’

이미 죽음에 익숙할 텐데도, 양민들의 죽음 앞에선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두려움 대신 노기와 증오로 무장한 이들이 굶주린 사냥개처럼 적의 자취를 쫓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확실한가?”

“예!”

개방 소속의 맹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추종술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다수의 인원이 이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족적으로 보건대 양민은 절대 아닙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최대한 빠르게 추격한다!”

“시주.”

혜연의 부름에 남궁도위가 돌아보더니 물었다.

“다른 생각이 있으십니까?”

말투야 평소처럼 정중했으나, 묘하게 노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대답 없이 남궁도위를 응시하던 혜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눈빛엔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럼 추격하겠습니다.”

“예, 시주.”

남궁도위가 두말없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섰다. 따르는 이들도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홀로 남은 혜연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웠다.

‘이 분노가 해가 되어 돌아오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로서는 사방에 들불처럼 번지고 들끓는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없었다.

* * *

“저기!”

“보입니다!”

전력을 다해 달리던 화산 제자들이 커다랗게 외쳤다. 과연 저 앞쪽에 마을 형상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아직 늦지 않았기를!’

지금 바랄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어떠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늦었는지 늦지 않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저 마을에선 아직 불길이 치솟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희망은 있다 할 수 있었다.

“저, 저기!”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광경을 본 화산 제자들이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저 새끼들이 기어코……!”

물론 저놈들이 꼭 사람을 모두 죽인 뒤 불을 지르는 식으로 순서를 정해 체계적으로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연기가 마을의 전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저곳에서 눈 뜨고 보기 힘들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는 했다.

“먼저 간다!”

파앗!

마음이 급해진 조걸이 앞으로 쏘아지듯 내달렸다.

“멈춰! 이 새끼야!”

윤종이 막아 세워 보려 했지만 조걸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조걸도 함께 온 사형제들이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저들의 속도에 맞춰 주다가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놓치게 된다.

이 판단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주저 말고 달려.”

그 순간, 어깨 바로 뒤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담담한 듯하지만 사실 그 안에 도사린 분노가 작게 일렁이고 있다.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만이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걸의 의지가 확신을 얻었다.

쾅!

땅에 금이 가도록 거세게 짓친 조걸이 한 줄기 섬전처럼 마을로 쏘아졌다.

“군사. 놈들입니다.”

“흠.”

호가명의 눈빛이 슬쩍 어두워졌다.

‘반 각은 더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느리다. 하지만 빠르다. 도무지 공존할 수 없는 수식어가 함께 붙는 이들이라니.

저들의 대응은 빈말로라도 빠르지 않았지만, 추격하여 달려오는 속도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다.

위협적인 기동력을 지녔다는 뜻이니, 이는 반드시 계산에 넣어 두어야 한다.

호가명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피 흘리는 시신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불길은 점점 마을을 살라 먹으며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물러난다.”

“예?”

“열을 남겨라. 마을에 남은 생존자들을 마무리하도록.”

“나, 남기라는 말씀은…….”

“아. 아니지, 잠깐.”

호가명이 문득 마을 구석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가 이내 차갑게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군.”

오랜만에 느끼는 피 맛에 눈이 뒤집힌 이들이 양민들을 마음껏 도륙하고 있었다. 억누르던 걸 한꺼번에 풀어 버린 참이니, 명을 내린다 한들 즉각적으로 반응할 리 없다.

굳이 몇을 골라 남기지 않아도 자연히 뒤처지는 이들이 나올 것이다.

“됐다. 집결시켜라.”

“예!”

호가명의 지시가 즉각 하달됐다.

마을을 들쑤시던 이들이 몸을 돌려 호가명의 주변으로 집결했다.

그 수를 헤아리며 호가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모인 이들의 수가 예상보다도 적다. 고작 십여 명 차이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는 그의 통솔력……. 즉, 사패련의 통솔력이 생각 이상으로 떨어졌다는 증거다.

하지만 지금 이를 지적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상황을 확인한 걸로 됐다.

“전속으로 퇴각한다. 놈들에게 그림자도 밟히지 마라.”

“예!”

호가명이 미련 없이 획 몸을 돌려 땅을 박차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우뚝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전에…… 하나 해 둬야 할 게 있군.”

“예?”

그를 응시하는 수하들의 두 눈에 의문이 어렸다.

“으아아아앗!”

조걸이 마을 안으로 박차고 들어왔다.

불타는 집들 사이로 뛰어든 순간, 눈앞에 참상이 펼쳐졌다.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절명한 이들. 아직 식지 않은 피가 흙바닥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다. 참혹한 시신들이 여기저기 넝마처럼 널브러졌다. 이는 이전 마을에서 맞닥뜨렸던 악의(惡意)와는 또 달랐다.

‘어디냐?’

조걸은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빠르게 적의 종적을 찾았다. 두 눈에 핏발 선 모습이 광인과도 같았다.

“어디냐고!”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귀에 내리꽂혔다.

파앗!

머리가 그 소리를 채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주변 풍광이 이지러지며 세상이 길쭉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그 중앙, 조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오히려 배로 또렷하게 보였다.

달아나려는 여인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그 목에 칼을 휘두르는 장한. 어린아이의 주먹처럼 작게 보이던 광경은 이내 조걸의 시야를 모두 채울 만큼 확장되었다.

“야, 이 개자식아아아아아아아!”

광소를 터뜨리며 여인의 목을 베려던 장한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제게 닥쳐올 일을 채 예상도 하기 전에 조걸의 검이 그의 두꺼운 목에 박혔다.

쾅!

말 그대로 ‘쾌속’한 검이, 목을 대번에 끊어 내었다. 폭음과 함께 장한의 머리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털썩.

남은 몸뚱이는 썩은 고목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뭐, 뭐야?”

“웬 놈이냐?”

아무리 피에 취해 있다고 해도 동료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마음껏 날뛰던 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하나 조걸이 그들에게 해 줄 말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파아앗!

폭발적으로 발출된 검이 허공에서 열두 갈래로 갈라졌다.

콰득! 콰득! 콰득!

하나하나 정순한 내력을 가득 실은 검기가 사패련도들의 육신을 삽시간에 꿰뚫었다. 정파답지 않다 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살기 가득한 일격. 그러나 세상 누구도 지금 조걸의 손속을 두고 매정하다 탓하지는 못하리라.

조걸은 즉시 가장 앞에 선 이를 향해 쇄도했다.

“으, 으핫!”

적은 복부를 뚫리고도 본능적으로 도를 휘둘러 왔다.

콰득!

하지만 조걸의 검이 도를 쥔 자의 팔뚝을 단번에 찔렀다.

서걱! 서걱! 서걱!

팔꿈치를 베어 내고 어깨의 근육을 끊는다. 그로도 부족한지 가슴팍에 수십 번의 검격을 가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조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족해.’

열 번이 아니라 백 번……. 아니, 설령 천 번을 벤다고 해도 이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을까?

부족하다. 그 모든 죗값을 받아 내기에 인간의 육신은 너무도 나약하다. 너무도 쉬이 숨이 끊겨 버린다.

이렇게 공격당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한 손에 잘린 목을 쥔 이들을 대체 어떤 방식으로 단죄해야 한단 말인가.

한때 조걸은 청명의 손속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음은 한 번뿐이고, 같은 결과를 줄 것이라면 굳이 고통을 한 번이라도 더 주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 조걸은 청명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검은 그의 분풀이가 아니다. 그저 이들이 저지른 악행을 조금이라도 대갚음해 주고 싶었다.

“이, 이놈이!”

제 동료를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있는 조걸을 향해 사패련도 하나가 발작하듯 검을 내뻗었다. 조걸의 등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서걱!

툭.

검을 쥔 사패련도의 손이 고스란히 잘려 나가 추락했다.

“뭐…….”

고통을 채 다 느끼기도 전에 두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독하리만치 서늘해 한기마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푹!

“끄륵…….”

무언가 기다란 것이 그의 목을 뚫으며 뻗어 나왔다.

이게 화산이 천하에 자랑하는 매화검이란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세상이 검게 변했다. 더는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었다.

“지옥도 너흴 받아 주지 않을 거야.”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그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는 시리도록 무정했다.

파아아앗!

단번에 적을 해치운 유이설이 물 흐르듯 검을 움직였다.

이들을 그리 쉽게 죽여서는 안 된다는 듯 조걸이 고함을 내질렀다.

“사고!”

“낭비할 시간 없어.”

하나 유이설은 냉정히 조걸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더니 검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이미 마을에서 멀어지고 있는 어떤 무리가 보였다. 지금까지 지나쳐 온 곳들을 모두 지옥으로 만든, 마귀들.

“어떻게 할 거야?”

“뭘 묻습니까?”

조걸이 이를 악물었다.

“쫓아야죠! 지옥 끝까지라도.”

“좋아.”

유이설도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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