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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768화


1768화. 지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3)

“걸아!”

마을에 뛰어든 윤종이 순간 펼쳐진 광경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끔찍한 참상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의 입장상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이 자식 어디야?”

“윤종아! 저기!”

조걸을 먼저 발견한 백자 배가 그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멀리 달려 나가는 조걸의 뒷모습을 본 윤종이 분노를 터뜨렸다.

“저 망할 새끼가!”

말을 도통 들어 먹지 않는 망아지를 끌고 다니는 기분이다. 백천이나 청명은 저놈에게 목줄을 잘 채웠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수로 그랬던 걸까?

“사패련을 추격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할 거냐?”

윤종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추격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 있다.

“사숙!”

“응?”

백상이 윤종의 부름에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집 안에 숨은 생존자들이 있을 겁니다. 칼 든 저희를 두려워해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테니, 설득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십쇼. 몇 사람 더 데려가시고요.”

“아, 알았다.”

“그리고 소소! 부상 당한 이들을 치료해 줘. 서둘러!”

“예, 사형!”

“열 명 정도는 따로 빠져서 불을 꺼라! 자칫하다가는 집 안에 숨어 있는 분들이 변을 당할 수도 있다. 당장 움직여!”

“알았다!”

“예!”

윤종이 획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와! 적을 추격한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무리하지 마라, 걸아!’

당장 조걸과 유이설을 지원해야 한다. 그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군사! 놈들이……!”

호가명이 말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감정 따윈 한 올도 실리지 않은 냉철한 눈빛이었다. 어느새 놈들이 후미에 거의 따라붙은 게 보였다.

고작 두 사람이지만…….

‘빠르군.’

무시무시한 속도다.

화산의 경신법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딱히 들어 본 적 없는데, 저들의 속도만 보자면 개방이나 곤륜에도 뒤지지 않을 듯했다.

물론 중앙에 있는 호가명에게까지 닿으려면 아직 거리가 있으나, 어쨌든 후미가 이렇게나 빨리 따라잡혔으니 위협적이라 할 만했다.

“어, 어엇!”

가장 후미에 있던 이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쫓아오는 이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이미 숱한 전투를 치러 본 이들은 경험상 안다. 사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기는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수적 우세를 활용할 수도 있고, 시간을 끌며 버틸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강자에게 맞설 방법 따위야 수없이 많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강자와 대적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으, 으아아아아악!”

바로 달아나는 등 뒤에서 강자가 덮쳐올 때.

서걱!

잘려 나간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운명을 직감한 듯 두 눈 질끈 감긴 머리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 흙바닥에 처박혔다. 비참한 최후이지만, 그들이 저지른 짓에 비하면 축복에 가까운 죽음이었다.

“어딜 도망가, 이 개자식들아!”

서걱!

조걸의 검이 거침없이 적들의 육신을 꿰뚫었다.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었다.

실전에서 갈고닦은 그의 검은 이제 평범한 사패련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지에 올랐다. 정면으로 맞상대해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검을 등 뒤에서 맞는다? 그 결과야 너무 뻔해서 어린아이도 알 지경이었다.

흡사 양 떼를 쫓는 범의 이빨처럼 조걸의 검이 적들의 등에 무자비하게 꽂힌다.

“아아아아악!”

검이 빠르게 회전하며 속을 헤집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리 풀린 사패련도가 허물어지면, 조걸은 한 올 요행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아예 그 목을 쳐 버렸다.

파앗!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조걸은 이 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미 그곳을 뛰어넘어 앞으로만 향하고 있었으므로.

“군사!”

“흠.”

호가명이 차가운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작 둘?’

예상보다도 훨씬 추격이 빠르다 했더니, 인원이 둘뿐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둘밖에 안 되는 수로 이만한 인원을 쫓아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저 화산 놈들은 정말이지 예상 안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군사! 피해가 커집니다!”

상식적인 대처는 이쯤에서 군을 멈추고 저들을 상대하는 거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달아나며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이들이 아니다.

호가명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후미보다 더 먼 곳을 넘겨다보았다.

‘화산.’

화산의 본대가 그들을 추격하고 있다. 만일 여기서 발이 묶여 시간을 지체한다면 금세 덮쳐 올 것이다. 지금 이곳의 전력만으로 화산과 맞상대한다? 이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화산이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문파냐 하면 그렇지 않겠지만, 적어도 호가명과 사패련의 입장에서는 가장 상대하고 싶지 않은 문파였다.

“제길! 왜 이렇게까지…….”

부관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화산과 엮이기만 하면 항상 일이 이상할 만큼 틀어지니 그럴 만도 했다.

반 각만 먼저 움직였다면 희생 없이 여유롭게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 반 각이 결국 실력인 법이다. 부관들도 결국 전략을 다루는 이들이기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군사! 먼저 가십시오. 저희가 발을 묶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차선책을 꺼내 들었다.

“군사께서는 무사히 복귀하셔야 합니다! 뒤는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나 호가명은 슬쩍 부관들을 돌아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그럴 것 없다.”

“군사!”

“다들 멈추라고 해라.”

“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부관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호가명은 태연하게 발을 멈췄고, 그제야 부관들이 기겁하며 달아나는 이들을 잡아 세웠다.

“저, 전군 정지!”

겁에 질려 있던 이들이 가까스로 다시 대오를 갖추며 등 뒤의 추격자를 향해 무기를 겨눴다.

“하…….”

어느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를 뒤집어쓴 조걸이 멈추었다. 그가 달려온 자리마다 시신들과 핏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혈로(血路).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윤종이 다른 사형제들을 이끌고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공격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시간만 끌어도 될 터. 유이설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가볍게 들썩이던 어깨를 진정시켰다.

조걸이 비아냥거렸다.

“달아나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 모양이지? 일찍도 깨닫는군. 멍청한 새끼들이.”

“아니. 굳이 달아날 필요가 없을 뿐이다.”

호가명이 담담히 조걸의 말을 받았다.

“……뭐라고?”

“끌고 와라.”

“예, 군사.”

다소 미심쩍은 듯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부관들이 명을 받들었다.

‘뭐 하는 거지?’

조걸이 의혹 어린 눈길로 그 양을 지켜보는데, 뒤쪽에서 격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이곳까지 죽기 살기로 쫓아온 윤종이 조걸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채었다.

“잡아 놨으니 됐잖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아,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저 새끼들부터 처리하시죠.”

조걸이 검을 들어 올렸다.

윤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견딜 수 없이 짜증이 치밀지만, 조걸의 말이 옳았다. 게다가 다소 걸리는 지점이 많았다.

‘왜 멈춘 거지?’

어째서 본대가 추격해 올 때까지 순순히 기다려 준 걸까? 저놈들이 설마 정정당당히 붙어 보겠단 심산이었을 리도 없고.

“저, 저거?”

“어?”

의심의 눈초리로 사패련 무리를 살피던 화산 제자들 몇이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저 미친놈들이…….”

조금 전 마을에서 생존자들을 보지 못했다. 저들이 학살을 채 다 끝내기 전에 조걸이 당도했음에도.

윤종은 이를 겁에 질린 이들이 불타는 집에서 차마 나오지 못하고 숨어 있어서라고 여겼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으므로.

하지만 이 순간 윤종은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청명이나 백천이었다면 당연히 알아차렸을, 끔찍한 가능성 말이다.

“아아아아악!”

한 무리가 사패련도들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팔과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어서 거동도 불편해 보였다.

저들은…… 무학을 익힌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잔뜩 겁에 질린 그들의 눈빛을 본 순간, 윤종은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틀어쥐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여인, 아이, 노인……. 모두 약자들이다. 그런 이들의 수가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이윽고 끌려 나온 이들의 목에 사패련도들의 무기가 겨눠졌다. 금방이라도 연약한 목숨을 끊어 버릴 듯 위협적이었다.

“달아날 필요가 없지. 달아나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니니까.”

“너……. 너 이 개새끼…….”

조걸의 두 눈에 핏발이 불거졌다.

온기라고는 없이 이 상황을 주시하는 호가명의 얼굴을 난도질해 버리고 싶었다. 저런 종자가 사람이랍시고 말을 지껄이는 상황을 참기 어려웠다. 화가 너무 들끓다 못해 육신이 금방이라도 펑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확인해 보지.”

호가명은 그 모든 증오가 담긴 눈빛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이윽고 손을 뻗어 한 여인의 목덜미를 잡아채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 죽는다.”

“너…….”

“약속하지. 물러난다면 오늘은 더 피를 보지 않겠다. 내일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의 이들은 살릴 수 있을 거다.”

호가명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어렸다.

“너희가 정말 이들을 생각한다면 답이 뭔지는 알겠지.”

“닥치…….”

콰득!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호가명이 잡았던 여인의 가슴팍으로 삐죽한 검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여인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몸을 축 늘어뜨렸다.

“나는 진심이다.”

“이 개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더 참지 못해 박차고 나가려는 조걸을, 윤종이 필사적으로 찍어 눌렀다.

“진정해, 이 새끼야!”

“사형! 저 새끼가! 사형! 으아아아아아아아!”

털썩.

숨이 끊긴 여인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호가명이 또 다른 인질을 끌어당겼다. 역시 그의 표정엔 변화랄 게 없었다.

이번엔 아주 어린 여자아이였다. 너무 겁에 질려 차마 울지도 못하고 끅끅거리고 있었다.

순간 조걸의 이성이 아득히 날아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여기서 이대로 달려들었다가 저 아이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을, 대체 어찌 감당할 수 있지?

“오해하는 모양인데, 이건 거래가 아니다. 명령이지.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죽는다.”

호가명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간의 정이 있으니 조언하자면, 물러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양민 몇십을 죽이는 대가로 내 목을 벨 수 있다면 너희에겐 확실히 남는 장사일 테지.”

“너…….”

“어차피 아무도 모를 거다. 안 그런가?”

콰득!

“아아아아아아악!”

호가명의 단도가 아이의 팔에 박혔다.

“아픈 모양이군. 대답해 봐라. 너는 지금 누가 더 원망스럽지? 나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저기서 버티고 있는 저놈들인가?”

아이는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약속하지. 저들만 물러나면 너희는 살 수 있다. 손끝 하나 더 대지 않고 보내 주지.”

“…….”

“이렇게 약속했는데도 이 자리에서 너희가 죽게 된다면, 그건 내 탓은 아니다.”

그 순간 조걸은 보았다.

아이는 물론이고, 저들에게 사로잡힌 양민들의 눈빛에 원망이 차오르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화산이 되레 저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너, 너 대체…….”

하지만 저들의 잘못이 아니다. 저 간악한 놈이 이리 만든 것이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마귀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조걸은 넋이 나간 얼굴로 호가명을 응시했다.

한때 저들도 어쩌면 이쪽과 그리 다르지 않은, 그저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말을 지껄였던 그때의 제 혀를 뽑아 버리고 싶었다.

“안 움직이는 걸 보니 아직도 이해 못 한 모양이군.”

서걱! 서걱!

삽시간에 두 개의 목이 또 떨어져 나갔다.

“멈춰! 이 개자식아! 멈추라잖아!”

“시시한 협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시간이 아깝지. 결정해라. 물러날지, 아니면 날 죽일지. 그도 아니면…….”

호가명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해서 되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적당히 외면하고 시간을 끌어서, 마주해야 할 죄책감에서 달아날지.”

“너…….”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던 윤종이 입을 열었다.

“……반드시 죽여 주겠다.”

“얼마든지.”

윤종이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돌렸다.

“가라.”

“사형!”

“인질은 반드시 풀어줘야 할 거다. 시신이라도 온전히 남기고 싶다면.”

“원하는 걸 얻었으니 굳이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꺼져라.”

윤종이 죽일 듯한 눈으로 호가명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호가명의 얼굴에 짙은 비웃음이 어렸다.

“그 잘난 협의에 경의를.”

이 말을 끝으로 호가명이 돌아섰다.

“가자.”

“예, 군사.”

사패련이 천천히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서두르는 기색 따윈 없었다. 흡사 조롱하는 듯이.

화산의 검수들은 그 광경을 망부석처럼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으…….”

철저하게 패배했고,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화산 모두가 독심나찰 호가명이라는 이름을 심장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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