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769화
1769화. 지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4)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처음 보인 것은 뾰족이 솟아 있는 천정이었다.
“윽.”
몸을 벌떡 일으키려던 백천이 답답한 숨을 토해 냈다. 육신 이곳저곳에서 지독한 통증이 덮쳐 온 것이다.
그의 시선이 자연히 제 팔로 향했다. 앙상하게 마른 팔이 시선에 들어온다. 그것으로 이 모든 상황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백천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막……?’
이상한 곳이었다.
천막이란 분명 사람이 임시로라도 머물기 위해 지어 올리는 것일진대,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 같지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최소한 갖춰져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천막 내부라고는 하지만 바닥조차 깔지 않아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본래 저런 색이 아니었을 천막의 벽은 흙먼지가 들러붙어 거뭇하게 물들어 있었다.
기본적인 집기조차 없어 휑하기만 한 천막은, 바닥 곳곳에 사람 하나 겨우 누울 만한 담요들이 깔려 있는 게 전부였다.
지금 백천이 누워 있는 곳도 그 담요 중의 하나였다.
‘여기가 어디지?’
백천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기억을 되살렸다.
사패련의 습격. 그리고 전투…….
‘복면인.’
백천의 눈이 짧게 흔들렸다. 아마 정신을 잃은 그를 복면인들이 이곳까지 데려온 모양이었다.
백천의 시선이 제 가슴 부근으로 향한다. 몸뚱이 이곳저곳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당소소가 보았으면 입으로 불을 뿜었을 만한 더러운 붕대들이었지만, 어쨌거나 저들이 그의 상처를 치료해 준 듯했다.
“…….”
백천의 눈이 이전보다 조금 더 신중해진다.
‘대체 저들은 누구지?’
그리고 그들은 왜 자신을 데려온 걸까? 이제 자신에게는 인질로서의 가치도, 사람 자체의 가치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텐데.
백천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뒤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은 몸이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지만, 이제 백천에게 이 정도의 고통은 익숙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백천이 천막의 입구 앞으로 걸어가 선다.
짧게 심호흡을 한 백천이 천막의 입구에 늘어져 있는 천을 젖히며 밖으로 나섰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 그리고 그 숲 이곳저곳에 자리한 너절한 천막들이었다.
하지만 백천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사람이 머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지어야 하니 지어 올렸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천막들, 그 천막들의 주변에 적지 않은 이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
괴이했다.
이곳은 아마 저들의 진지일 것이다. 하지만 백천의 눈에 보이는 이들은 하나 같이 복면을 쓰고 있었다.
백천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저들에게 있어서는 저 복면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밥을 먹고, 잠을 잘 때조차 저 복면을 덮어쓰고 있을 것 같았다.
“…….”
어깨에 검을 걸치고, 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이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천막을 지지대 삼아 몸을 기대고 있는 이들. 흙바닥에 반쯤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
그 자세는 각양각색이라는 말이 어울렸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지독한 나른함과 권태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위화감이 백천을 덮쳐 왔다.
패잔병.
이름을 붙이자면 그런 말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삶에 대한 의욕을 모두 잃은 것처럼 보이는 저들의 모습은, 더는 희망을 찾기 어려운 패잔병들의 모습과 가장 유사했으니까.
백천은 순간적으로 이곳이 부상자들을 모아 둔 곳이 아닌가 의심했다. 팔도 성치 않은 데다가 사패련과의 싸움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그가 부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 해서 이상할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부정되었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저들의 몸에서 부상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뭐지?’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당연히 느껴져야 할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럼 왜 이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마치 죽어 버린 사람처럼 굴고 있단 말인가.
그 위화감이 극심해질 무렵,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복면인 중 하나가 고개를 들어 백천을 바라본다.
순간적으로 백천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여야 할까? 아니면 포권을 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입을 열어 감사를 표해야 옳을까?
어쨌거나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하나가 그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분명하다. 위기에서 그를 구하고, 몸을 치료해 주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저들의 정체는 접어 두고서라도 우선 감사를 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백천의 그런 모든 고민은 복면인이 보인 반응에 일순 연기처럼 흩어졌다.
으드득.
복면으로 가려진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동시에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드러난 복면인의 텅 빈 두 눈이 짙은 증오를 머금었다.
“…….”
백천이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건 백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반응이었다.
다른 이들도 백천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백천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관심 없다는 듯 금세 고개를 돌려 버렸고,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처음 백천을 본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노골적인 증오, 그리고 적의(敵意).
살기 어린 시선들이 백천에게 쏘아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강대한 적.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적. 그 모든 것들 앞에서도 단 한 번도 어깨를 움츠려 본 적 없는 백천이다. 하지만 이 증오 어린 시선들은 그런 백천조차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파? 아니면 마……도?’
짐작해 보자면 그쪽이 맞다. 이들이 사파라면 백천에게 살기 어린 시선을 보이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마도라 해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납득은 해 볼 수 있다.
하나 그런 백천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들에게서는 사파 특유의 사기(邪氣)도, 마도만의 마기(魔氣)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색무취, 아니……. 굳이 따지자면…….
“화산의 개…….”
그 순간, 백천의 생각이 멈췄다.
‘화산?’
지금 화산이라고 한 건가?
복면인 중 하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조금 전의 의욕 없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그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잘도…….”
그 살기의 목적은 명백하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몸을 일으킨 이를 만류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저자의 손에 백천이 난도질당해도 딱히 상관없다는 듯 방관할 뿐이었다.
백천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훑었다. 그러나 당연히 검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끄그극.
관리 되지 않아 녹이 슨 검이 복면인의 검집에서 뽑혀 나온다.
증오로 두 눈을 물들인 복면인이 단숨에 바닥을 박차고 백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엉망인 몸 상태의 백천으로서는 반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속도. 녹이 슬어 곳곳이 검게 물든 검이 허공으로 강렬하게 치솟았다.
“…….”
하지만 그 검은 내리그어지지 못했다. 허공으로 치켜 올려진 검이 그대로 멈춰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백천의 바로 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민 복면인의 두 눈에서 지독한 고뇌와 증오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백천조차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압도되어 굳어 버린 그때.
퍼억!
백천을 위협하던 복면인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저 멀리서 한 복면인이 걸어왔다. 얼굴을 가려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분명 주변 다른 복면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바닥을 구른 복면인은 그 말에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복면의 아래를 슬쩍 당겨 피 섞인 가래를 뱉어 내고는 원래 제가 있던 자리로 가 버렸을 뿐이다. 그러고는 처음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늘어뜨렸다.
“…….”
기괴하다. 그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복면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가 백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천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자가 그를 구해 준 그때의 그 복면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기…….”
“따라와라.”
복면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당연히 백천이 그를 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먼저 걸어가는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천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증오를 보이던 이들은 어느새 모두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참아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듯이. 어쩌면 그들의 분노와 증오조차 딱히 의미가 없다는 듯 말이다.
‘대체 여기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그리고 이곳을 이해할 방법은 저 남자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없었다.
백천이 굳은 얼굴로 발을 뗐다.
그 천막은 다른 천막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넓고 사람이 앉을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게 다르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론 백천이 눈을 뜬 천막과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천막을 바라보는 백천의 시선은 분명 달라져서인지, 이전과는 느낌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여긴…….’
처음 백천은 이 천막들을 보며 패잔병의 막사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 앉아라.”
“예.”
백천이 복면인이 권한 자리에 군말 없이 앉았다. 그러자 복면인도 백천의 반대편에 앉는다. 책상이라고 부르기에도 낯부끄러운 작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턱.
복면인이 허리춤에서 꺼낸 병을 탁자 위에 올리고는 마개를 열었다.
독한 화주 냄새가 확 풍겨 온다. 그리 질이 좋지 않아 보이는 값싼 술이다.
복면인이 백천에게 권하지도 않고 제 복면을 끌어당기고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손가락 끝으로 잡아당긴 복면 사이로 희끗희끗한 수염들이 보였다.
턱.
술병을 다시 내려놓은 복면인이 백천을 똑바로 바라본다.
“화산 장문대리 백천.”
“…….”
“맞나?”
“……이제는 아닙니다. 한때는 그리 불렸었지만.”
“무슨 의미지?”
“저는 화산에서 파문당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화산의 소속이 아닙니다.”
그 말에 복면인이 백천을 빤히 바라보다가 쿡쿡하고 웃음을 흘렸다.
“파문을 당했다. 그러니 이제 화산의 제자가 아니다.”
“……예.”
복면인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끼익하는 거친 소리가 백천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리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거였다면 좋았겠지. 그대도, 우리도.”
“…….”
한참 동안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던 복면인이 고개를 내려 백천과 마주했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가?”
“……모릅니다.”
“그렇겠지.”
턱.
복면인이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탁자 위에 올린다. 싸구려 철검. 백천이 허도진인에게 받은 것 같은 무명검(無名劍)이었다.
스륵.
검을 올린 복면인이 주저 없이 제 복면을 벗기 시작했다. 금세 복면이 벗겨지고 복면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 적어도 그 나이가 쉰은 넘었으리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그 얼굴에 길게 그어진 검상만이 이 사람이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으리란 걸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다시 묻지. 내가 누군지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당연히 그러시겠지.”
복면인. 아니 이제는 장년인이라 불러야 할 이가 순간 파안대소를 터뜨린다.
“당연히.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파아아앗.
그 순간, 복면인이 탁자 위의 검을 벼락같이 뽑아 백천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서걱!
목에 닿은 검이 피부를 가르며 파고든다. 그 섬뜩한 통증에 백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알았어야지.”
“…….”
“적어도 네가 화산의 장문대리라면. 아니, 장문대리였다면!”
그 근원을 짐작할 수 없는 증오.
그 증오를 받아 내는 백천의 눈이 짧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