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1782화
1782화. 이제 당신이 해야 할 후회입니다. (2)
외진 곳에 자리한 천막을 바라보며, 오검의 얼굴에는 작은 초조함이 어렸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글쎄.”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빤히 보던 윤종이 한숨 쉬었다.
“뭔가…… 조언이라도 해 주는 게 아닐까?”
“조언이요?”
“달뢰라마시니까.”
“…….”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해도 어쨌건 불가에서는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는 분이시지 않으냐. 그런 분이 여기까지 친히 왔다면, 청명이 녀석에게 뭔가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었겠지.”
조걸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살아 있는 부처라니, 전에도 생각했지만…… 그걸 믿어도 되는 겁니까?”
“…….”
“예? 혜연 스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갑자기 저한테……. 포달랍궁과 소림은 종파가 다릅니다.”
혜연이 당혹하여 뺨을 붉혔다.
“그래도 같은 불가잖아요. 저희보다는 더 잘 아실 것 아니에요. 우리가 무당이랑 가는 길은 달라도 무당의 가르침은 혜연 스님보다 더 잘 아는 것과 같은 이치죠.”
“걸아. 내 생각에 너보단 혜연 스님께서 무당의 가르침을 더 잘 아실 듯하구나.”
“제 생각에도요.”
“나도.”
“이 양반들이 진짜…….”
조걸이 뿔난 강아지처럼 으르렁대었다. 혜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는 부처라…….’
포달랍궁의 말에 따르자면 달뢰라마는 윤회를 거듭해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다. 심지어 다시 태어나고도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정녕 사실이라면…….
“달뢰라마가 진정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윤회하는 존재라면, 부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겠지요.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아…….”
혜연의 말에, 윤종은 놀란 얼굴로 탄성을 흘렸다.
중원의 불가와 포달랍궁은 서로를 은근히 경원하는 관계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혜연은 달뢰라마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혜연이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입을 뗐다.
“다만……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우려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
윤종이 의혹 어린 얼굴로 되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불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윤종이 바로 답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에 반해 조걸은 발끈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스님.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 뭐냐. 불가의 가르침을 적은 서적 아닙니까? 연구하고 공부하는 거. 도가로 따지자면 도경이죠.”
조걸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하자 혜연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조걸 도장.”
설마 그런 거 하나 모르겠느냐며 조걸이 혀를 차려는데, 혜연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네?”
조걸은 멍하니 고개를 갸웃했다. 혜연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탄식했다.
“불경이란 불자가 공부해야 하는 것. 하지만 그 안에 쓰여 있는 것은 그저 석가의 말씀뿐입니다.”
“……그게 왜요?”
“석가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이해한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이는 달리 말해, 석가께서 하신 말씀은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수백 년간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걸이 조금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많은 경전이 싹 다 부처의 말씀이라고요?”
“경전의 수가 불어난 까닭은, 석가의 말씀이 너무도 난해하여 수많은 이들이 오랜 연구를 통해 해석을 덧붙여 왔기 때문입니다.”
“아니…….”
조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경은 그런 식으로 생겨나지 않았기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우려할 일이란 말씀이십니까?”
혜연이 침중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윤종에게 보내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이들은 석가의 말씀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찌어찌 이해한다고 해도, 속에 숨겨진 깊은 진의를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지요.”
“…….”
“한데 설마 석가께서 중생들을 가르치고 구원하기를 아까워하셨겠습니까?”
“……그건 아니겠죠.”
혜연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분께서는 최선을 다해 아는 바를 알리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우매한 중생들이 그분의 높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그 말인즉…….”
윤종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혜연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만약 달뢰라마께서 정말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부처와 다름없다면…….”
혜연의 목소리에 깊은 수심이 묻어났다.
“그분의 말에 담긴 의미는 감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닐 겁니다. 설령 상대가 청명 도장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혜연이 눈을 감으며 반장을 취했다. 얼굴에 다소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아미타불…….”
청명이기에 말이 통할 수도 있을까? 아니, 그이기에 오히려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혜연이 아는 청명은 인간의 화신 같은 자다. 욕망하며 자애롭고, 들끓으며 안온한 이.
그렇기에 청명의 귀에는 더더욱 들리지도, 닿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이치가 아닌,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말 따위는.
‘시주.’
다만 혜연은 바랄 뿐이었다.
이번의 대화가 청명에게 무언가라도 남기기를. 다만 그 흔적이, 지금도 홀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을 그에게 또 다른 혼란이 되지 않기를.
“……죽이지 마라? 내가 가장 증오하는 이를?”
“옴 마니 반메 훔.”
짧게 진언을 왼 달뢰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하…….”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달뢰라마를 보던 청명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가 했더니…….
“악인이라고 해도 말이냐?”
“…….”
“그가 숱한 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해도? 살려 두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이들을 지옥으로 몰아갈 자라고 해도?”
“…….”
“그저 대책도 없이 살려 두라는 건가?”
“그러합니다, 시주.”
청명이 큭큭거리며 어깨를 떨고 웃었다. 이 웃음이 호의에서 비롯된 게 아님은 누구라도 알 터였다.
웃음기를 채 다 거두지 않은 채, 청명이 비꼬았다.
“이런 게 대단하신 부처의 자비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 아니면 미래를 보고 온 이의 예언 같은 거?”
달뢰라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부르든, 저는 그저 나약한 인간의 육신에 갇힌 한낱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청명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럼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저의가 뭐지?”
“시주…….”
“아가리 닥쳐.”
청명이 콱 손을 뻗어 천막을 움켜쥐었다. 당장에라도 비틀어 무너뜨려 버릴 듯이.
“눈이 있으면 봤을 테고, 귀가 있으면 들었을 테지! 그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
“여기까지 오며 네가 봤을 시체들을 붙들고도 그따위 말을 지껄일 수 있나? 그 위대하신 부처에게 그들의 한 맺힌 목소리 따위는 전혀 닿지 않는 모양이지?”
달뢰라마가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진언을 외었다.
“어찌 안타깝지 않고, 가엾지 않겠습니까. 만물이 그러합니다. 모든 것이.”
“…….”
“고해의 바다를 헤매는 모든 존재가 가여울 따름입니다. 하나, 시주. 제 말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제가 이 말을 시주에게 전함은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청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달뢰라마를 쏘아보았다.
“내가 증오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아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놈을 살려라? 왜? 천마 놈이 되살아났으니 둘이 손잡고 함께 막아서기라도 하라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다 잊고, 하하호호 웃으며 힘이라도 합치라는 거냐?”
이제 청명의 빈정거림은 조롱이라기보다 넘쳐흐르는 분노에 가까웠다.
“시주.”
“대체 놈을 뭐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달뢰라마는 몇 번이고 입을 벙긋거렸다. 답답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움직임이었다.
“저는……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무엇을 논하고자 하는지. 저는 세상이나 마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달뢰라마가 청명을 직시하며 또렷하게 말했다.
“제가 논하는 건 시주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뭐라는 거야?”
“다시 한번…….”
그러나 순간, 달뢰라마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핏기가 가셨다.
“스승이여! 괜찮으십니까?”
반선라마가 황급히 달뢰라마를 부축했다. 하지만 달뢰라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그를 밀어 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이에 못 이긴 반선라마가 마지못해 물러났다. 몇 번의 진언으로 자신을 다스린 달뢰라마가 다시 청명을 응시했다.
“매인 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여기까지입니다.”
“…….”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건 그저 시주를 위해서임을.”
그 뜻은 확실히 전해졌다.
청명 역시 알았다. 이자가 하는 말이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지만, 적어도 청명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되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너도. 아니, 그쪽도 기억해 둬.”
“…….”
“나는 놈을 죽인다.”
“…….”
“하지만 그건 내가 놈을 증오하기 때문은 아냐.”
달뢰라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만한 죄를 지은 이를 살려 두는 게 옳지 않기 때문이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도탄에 빠뜨릴 이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설령 그 방식이 너희가 말하는 살계를 여는 것이라고 해도.”
“…….”
“때로는 엄정함이 더 큰 자애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책임을 짊어진 이는 망설여선 안 된다. 그 무게를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말을 이어 나가는 청명의 눈빛엔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그게 너희가 아닌 우리의 방식이고, 내가 배운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망설이지 않아.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을 듣는다고 해도, 내가 행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달뢰라마의 눈빛이 깊게 침전하듯 어두워졌다.
“……배운 것.”
“그래.”
그는 이윽고 양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러더니 공손히 청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례했습니다.”
“…….”
“도장께서 배우고 실천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길에 못지않을 터인데, 잠시의 조급함을 못 이겨 뜻 모를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청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달뢰라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리 마음을 정하셨다면, 부디 마음을 굳게 먹으시길. 인간사 고통도 후회도 모두 마음에 달렸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피안(彼岸)일지니.”
달뢰라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지막으로 청명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러더니 한 점 미련도 느껴지지 않는 걸음으로 천막을 빠져나갔다.
“스승이여.”
당황하여 쫓아 나가려던 반선라마가 멈칫하며 청명을 돌아보았다.
“시주. 그저 무례하다고 여기지만은 마시오.”
“…….”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스승께서는 인간의 육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계시외다. 생각하시는 바를 시원히 전하지 못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오.”
청명은 반선라마를 뚫어지게 응시할 뿐, 어떠한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스승께서 전하고자 한 말씀이었던 이상,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오. 이것만은 잊지 말아 주시오.”
반선라마가 정중히 예를 표하고 달뢰라마를 따라 천막 밖으로 나갔다.
또다시 천막에 홀로 남은 청명의 얼굴에 촛불 그림자가 드리웠다. 얼굴의 절반을 물들인 어둠은 점차 짙어져 갔다.
“……후회라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달뢰라마가 던진 화두가 청명을 휘감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잠시 곱씹던 청명은 이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달뢰라마가 아무리 대단한 자라고 해도, 심지어는 말 그대로 부처라 해도 상관없다.
그가 따르는 건 부처의 말도, 찬란한 불법도 아니므로.
그가 지켜 왔고, 또 앞으로 이어 가야 할 것들은 이미 가슴속에 단단히 새겨져 있다.
그 가르침이 청명을 이끌 것이다.
‘그렇죠, 장문사형?’
청문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