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09화 : 루시퍼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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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검 – 109화 : 루시퍼의 아들


루시퍼의 아들

환아가 울고있다. 감내할 수 없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것이다. 날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서러운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의 손은 여전히 걸쳐 늘어뜨려 놓은 줄에 매달려 있다. 그게 마치 제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조막만한 작은 손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운명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환아가 갇혀 있었다.
난 얼른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변의 벽이 내려앉고, 그 너머로 낯선 음성이 들려옴에도 시선은 아들 환에게 고정되서 떨어질 줄 모른다. 나를 향해 다시금 시선을 맞춰 줄 것이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아빠, 왜 이제야 왔어요?’ 라고 말해 줄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 싶게 내 품안에 뛰어들어 환한 얼굴로 응석을 부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분명히.
“파천, 이렇게 만나게 되어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 마계에 든 걸 환영하마.”
뒤에서 들려 오는 소리는 내게 하는 말이 분명했지만 난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조각난 소리들이 간신히 내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왔다.
“환……아.”
고개를 들렴. 네가 그러고 있으면 아빠 마음이 아프잖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빠가 여기 있어.
“환아, 고개를 들고 아빠를 봐라, 어서. 울지 말고……. 사내의 눈물은 흔해서는 안 된다는 아빠 말 벌써 잊은 거니?”
언젠가 어스름 새벽녘에 동이 트는 전경을 아들 녀석과 함께 지켜본 적이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날 바라보며 힘찬 소리로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 이건 비밀인데, 사실은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요.”
제 어미한테도 똑같은 말을 했으리란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녀석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려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나도 환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보다도 더.”
“정말요? 아빠와 난 남자, 엄마는 여자. 역시 남자끼리만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전 앞으로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큰일을 하는 큰 사내가 되고 싶어요.”
“환아야.”
“네?”
“큰 사내는 어떤 사람일까?”
조금 생각하는 눈치더니 환아는 이내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큰 사내란……. 으음……많은 부하들을 거느림 사람요.”
“부하들을 많이 거느렸다고 큰 사내라 할 수는 없단다.”
“그럼요?”
“친구나 동료가 많지 않더라도 그들 중 단 한 사람일지언정 변함없는 신뢰를 준다면 그야 말로 훌륭한 거야.”
“신뢰요? 그건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어요?”
“마음을 얻으면 돼. 네 마음을 활짝 열어 제치는 순간 바닥에 볼품없이 굴러다니는 돌멩이조차 네 친구라고 외칠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해 보렴. 누구든 어두운 길을 가기 위해선 등불을 밝히지 않니?”
“네.”
“불을 밝히는 건 네 결심 하나로 족하지만 그 심지를 적실 기름은 네 마음속에서 흘러 나와야 한단다. 속임은 잠시의 친구를 만들지는 모르지만 어려움 가운데 변치 않는 친구로 남겨 주지는 않아. 그러니 너도 훌륭한 사내가 되려면 거짓 없는 진실로 대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불을 밝히는 건 네 결심 하나로 족하지만 그 심지를 적실 기름은 네 마음속에서 흘러 나와야 한단다. 속임은 잠시의 친구를 만들지는 모르지만 어려움 가운데 변치 않는 친구로 남겨 주지는 않아. 그러니 너도 훌륭한 사내가 되려면 거짓 없는 진실로 대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환아는 진정 알아들었는지 힘찬 대답을 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제가 아빠를 속이지 않듯이 아빠가 절 속이지 않듯이 말이죠? 진실 된 마음으로 대하면 되는 거군요.”
“그래, 진실이 그 사람의 마음까지 푹 적실 수 있게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
그랬었는데…….
네가 날 속였다고는 믿고 싶지 않구나.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들이고 설사 아빠를 속이고 원수들에게 날 팔았다 해도 그 사실만은 변함이 없구나.
“환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아빠 마음이 아파. 그러니……울지말고 날 봐……어서.”
환아가 고개를 든다. 여전히 눈물 흥건한 얼굴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아들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까이 다가선 난 떨리는 손을 내밀어 환아의 눌물을 닦아 내려싿. 내 무능함이 이 아이에게 이런 아픔을 주는구나.
“녀석. 사내자식이 이만한 일로 울면 장차…… 어찌 큰일을 하겠느냐?”
“아빠!”
환아가 무너졌다. 내 품에 매달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몸 속에 어디 이런 큰 설움이 담겨 있었던가. 감당하지 못할 죄의식이 슬픔을 부추겼는가? 무엇이 이 작은 아이로 하여금 이런 운명에 몸을 맡기게 했던가? 그래, 울어라. 마음껏 울어라. 앞으로는 널 안아주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위경에 처한 상황보다도 아들 녀석의 슬픔에 더 마음이 아파 온다.
“아주 감격적이군. 자, 자, 부자간의 상봉은 그 정도면 되었고, 이젠 내 차례인 것 같은데.”
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감미러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품에 안겨 있는 환아를 떼어내고 소리가 들려 온 곳을 돌아보았다.
벽이 있던 주위로 아홉 명이나 되는 존재들이 차례로 앉아 있었다. 작은 몇 개의 층계를 경계로 상단과 하단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 위쪽에 큰 의자가 있었으며 거기 화려한 복장의 미청년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일렬로 나란히 앉은 자들이 보인다. 그들 중 하나는 일전에 대면한 적 있던 쿤다리와 동행한 여인이었다.
그녀 뒤쪽에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자가 보였다.
애써 긴장을 감추며 한 명씩 찬찬히 살폈다. 가슴이 뛴다. 본능적인 위기감은 이미 위험 신호를 넘어서 둔감해지기 시작했다. 좌절은 빠르게 엄습해 왔다.
“그대들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정체가 짐작은 갔지만 나는 재차 확인했다. 가장 상단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 내 물음에 답했다.
“지배자.”
“지배자?”
“마계 마황, 루시퍼. 네가 앞으로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루시퍼…….”
천마에게 들은 대로 그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기운은 강렬했고 감싼 분위기는 신비롭기만 했다. 시선을 피하고 싶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얼굴에 화려한 미소가 폭발한다. 도저히 흠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무언가 결여된 것 같아 내게는 추하게 보였다. 받아들일 수 없는 선입견이 아마도 시선을 일그러뜨렸을 것이다.
이마 가운데 보석을 박아 넣은 듯 칠채보광을 내뿜는 게 유독 눈에 띄었으며, 기이하게도 동공과 머리칼이 동일한 무지개 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주변의 존재들 역시 머리털과 동공의 빛깔이 각기 똑같았다. 머리털이 붉으면 눈동자도 붉었고, 눈동자가 보랏빛이면 머리털도 그와 같았다.
한없이 차가운 느낌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정반대의 인물도 보였다. 공통적인 건 하나같이 인세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용모의 소유자들이라는 점. 빈틈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절대강자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에 오히려 오기가 발동되었다.
“내 가족과 친인들을 네가 잡아 갔느냐?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잘 지내고들 있지.”
그의 눈은 강력한 마력으로 내 의식을 빨아들였다. 정신마저 몽롱해지는 듯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였다.
“아들의 배신을 마주한 소감이 어떤가?”
배신……. 배신이라고? 천만에 난 내 아들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너보다는.
“난 녀석에게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게 했지. 네가 선맥의 후예들이 숨어 지내는 곳을 찾아 가던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네 뒤를 쫓았다.”
그곳마저 알고 있단 말인가.
“처음에 난, 네가 이곳으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저아이…… 저아이의 생각은 다르더군. 오지 않기를 바라는 중에도 네가 올 거라 믿고 있더란 말이야. 그래서 난 저 아이의 맹목적인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어.
그래서 물었지. ‘네 아버지 파천이 널 찾아오면 넌 어떻게 할 거냐’고. 지금 네가 보는 바와 같이 아이는 널 버리고 엄마와 동생을 선택한 것이다. 어찌 보면 가족 모두를 살리고자 했는지도 모르지.
기특한 아이야. 제 의지로 비등한 두 개의 가치 가운데 하나를 버리고 나머지 하나를 선택하다니. 그럼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지. 그래서 저 아이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무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랬던가? 환아가 내게 한 말은 그런 의미였던가? ‘전, 약속을 지켰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예요’ 라는 그 말이 엄마와 화아를 제 손으로 지키겠단 말이던가? 어쩌면 저번에 했던 설란의 당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군. 허허허, 그래, 장하구나. 아암, 그래야지.
“난 그 아이를 양자로 삼기로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잘못 들었을 것 이다. 아들로 삼겠다니. 나는 혼란과 분노의 심경에 마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제 할 말을 마저 이어 갔다.
“장차 그 아이로 하여금 마계의 모든 신민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내 아들이 된다는 건 영광스런 일이지. 물론 그만한 자격이 있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내 선물이? 분노하는군. 너의 그 분노는 참 무책임한 거야. 이곳은 나의 영역. 내 마력만이 완전성을 획득하는 곳. 너는 내 포로. 네 운명은 내가 관장한다.
물론 네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마. 저항은 무의미하다. 순응하고 받아들인다면 너 또한 나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절대의 힘도 더불어 주겠다. 세상을 경영하게 해주마. 어떤가, 내 제안이?“
“내가 받아들일 것 같은가. 분명히 밝히거니와 난……언제까지나 네 적으로만 설 것이다. 내 대답은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다.”
“생각했던 대로 고집이 세군. 내 너를 권속에 두고 영광된 자리에 동참시키려 했건만 이런 은혜를 그리 쉽게 묵살하다니. 보기보다 어리석은 자야.”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마황과 대마신들이 함께 있는 자리다.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여길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일 것이다.
“내가 충고 하나 하지. 결정은 천천히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하는게 좋을 게다. 네 선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존더 말미를 주지. 그 동안 고민해 봐라. 네 선택 이후로 내 모든 판단도 유보하겠다.”
[파천, 루시퍼를 격동시켜라. 진정한 적으로 설 수 있게끔 기회를 달라고 해라. 진정 강자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내보내 달라고 말해 보라.]
지금까지 참견하지 않던 ‘그’의 소리였다. 난 당연히 그래야 할 것만 같아 거부감 없이 ‘그’의 충고에 따랐다.
“마황,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제안?”
“네가 진정한 강자라면, 그리고 다른 차원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내게도 기회를 다오. 너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길 빠져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진인을 찾아가야 한다. 이제 와서 간절함이 더해지는 건 왜일까?
난 이 목표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이대로 좌절하기엔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루시퍼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넌 내게 그럴 제안을 할 가치조차도 없는 하찮은 인간. 감히 인간 따위가 내게 협상을 제시하다니. 훗, 이건 어떠냐? 여기 있는 대마신중 하나와 싸워 이겨라. 그럼 네 소원을 들어 주지.”
[틀렸군.]
‘그’의 중얼거림처럼 내 낙담도 컸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좋다.”
“네 기백에 찬사를 보내마. 이들 중 누구를 선택할 건지 결정할 시간을 주겠다. 인간계의 시간으로 3일의 말미를 주지. 이들을 소개할까, 저쪽 끝부터 아사셀…….”
그는 자신들의 수하들이자 동료들이기도 한 타락한 천사, 마계의 대마신들에 대해 하나씩 상세한 설명을 했는데 각기 그 이름들이 아사셀, 메피스토, 브리트라, 다사, 발리, 타루나, 찬드라였다.
“파천,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뜻을 바꾼다면…… 우리와 함께 하겠다면 너에게 이 자리에 이들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영광을 부여하겠다.”
대마신의 자리를 부여해 주겠다는 유혹인가. 승낙하면 지금의 이 난처한 상황도, 앞으로의 고민도 없어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련된 모든 친인들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거절한다. 난 그대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대들은 악이며 척결해야 할 적이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적의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고 말았다. 루시퍼의 차분하던 음성도 좀더 격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악이라……. 왜 우리가 악이라는 건가? 그리고 네가 그렇게 단정지어 말하는 근거는?”
“힘으로 인간들을 강제하고 압제하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악이다.”
“해방시키고자 하는데, 그럼에도 악인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이더냐? 우리는 간섭을 원하지 않는다. 선택은 우리의 것. 너희가 관여할 게 못 된다.”
“순응에 길들여져 있는 인간이 선택을 운운하는군. 인간의 삶이란 비참함의 극치지. 선책이 아닌 강요에 의한 삶. 태어남도 죽음도 네 의지가 아니라는 거지. 들끓는 욕망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하고……. 욕망마저 거세당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함부로 속단하지 마라. 네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지 마라. 인간들의 삶이 어떻든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루시퍼는 제 할 말만 계속했다.
“인간들의 역사란 것도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아무리 고상한 말로 치장해 봐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게 전부지.”
정말 그게 정부일까? 아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내가 장차 다스릴 세계엔 그런 부조리함이 없어진다.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빼앗지 않아도 모든 권리가 주어진다. 욕망은 넘치게 채워질 것이고. 이런 풍족함으로 분쟁은 사라진다.
모든 억압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데…… 이런 나를 해방자가 아닌 억압자라 한단 말이더냐!”
“해방자? 낯간지럽지도 않나? 평화를 깨고 모든 이의 자유를 강탈한 네가 해방자라고?”
잠깐 날 직시하던 루시퍼는 두 손을 모아 깍지 끼고는 턱을 괸다.
“너란 놈 역시 천상계나 선계의 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놈들이 우리를 향해 뭐라 하는지 알고 있나?”
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다른 차원계의 영자들이 마계를 두고 뭐라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 마계를 하등하다고 말하지. 영격은 형편없고 욕망에만 충실한, 그래서 발전이라고는 없는 해악이라 말한다. 오만한 그놈들을 지금껏 난 용서하는 마음으로 관대히 내버려 두었었지. 이제는 아냐!”
침노는 시작되었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 사활을 건 대결은 전 우주에 걸쳐 시작될 것이다,
“신이 가만있으리라 여기는가! 너희의 이런 패악한 행위를 용서하실 것이라 믿는단 말이냐?”
기껏 한 얘기가 이랬다. 내가 언제부터 신을 찾았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어리석은 인간. 천궁은 이번 일에 나서지 못하지. 왜 내 아버지 페타트론께서 우주를 방황하시는지 아는가? 계약이 유효한 이상 천궁은 결단코 먼저 나서지 못한다. 하하하하.”
그랬던가? 그래서 이런 무모하게 보이는 침략을 시도할 수 있었던가? 어쩌면 저 자의 호언장담처럼 마계가 모든 걸 삼킬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담담한 노릇이었다.
루시퍼의 웃음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내실을 넘어 밖으로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순간 그의 이마에서 칠색 광채가 더욱 강하게 스며 나왔다.
난 루시퍼의 명에 따라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저항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내 아들도 나와 함께 나올 것이라 여겼는데 루시퍼의 뜻은 그렇지가 않았다.
“네 아들과 딸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내 권능으로 두 아이를 장성시켜 아름답고 강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지녔으되, 그 힘은 뭇 존재들을 능가할 것이며 그 아름다움은 인가들 중 으뜸이 될 것이다.”
난 아수라들에게 힘없이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환아는 끝내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죄의식으로 날 마주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운명이 저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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